월간조선로고
2011년 7월호

핫 이슈

‘나가수’ 열기

전문가가 선정한 이 시대 최고의 가수는?

글 : 서철인  월간조선 기자

글 : 함승민  월간조선 인턴기자

[1980년 이전] 조용필,
[1980년 이후] 임재범·이승철


⊙ 1980년대 이전 데뷔가수 1위 조용필, 2위 송창식
⊙ 1980년대 이후 데뷔가수 이승철, 임재범 공동 1위
⊙ “부족한 한국의 ‘가수 인력풀’이 ‘나가수’의 한계”
⊙ “아이돌, 죽지는 않겠지만 변화는 필수”
  ‘우리나라에서 노래를 제일 잘하는 가수는 누구일까?’ 어린아이 같은 이 질문이 대한민국 대중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MBC <우리들의 일밤>의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때문이다.
 
  ‘나가수’는 매회 7명의 가수가 노래를 불러 500명의 청중평가단 심사를 받고 최하위 점수의 가수가 탈락하면 새 가수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서바이벌식 프로그램이다.
 
  ‘꼴찌’가 탈락한다는 설정이 시청자들에게 관심을 끌고, 참가 가수들이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면서 ‘나가수’는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인터넷 음원차트는 ‘나가수 미션곡’ ‘나가수 미션곡의 원곡’ ‘나가수 참가 가수의 예전 노래’ 등 ‘나가수’ 관련 음원이 순위권을 장악했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검색순위도 ‘누가 떨어졌다더라’ ‘누가 새로 합류한다더라’라는 ‘나가수’ 관련 뉴스나 루머로 도배됐다.
 
  ‘나가수’ 열풍과 함께 가수들의 가창력이 대중의 관심사가 되면서, 한편으로는 ‘일반 청중이 아니라 전문가가 봤을 때 가장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누구일까’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월간조선》은 대중문화·음악평론가 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한국 대중가요 역사를 통틀어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를 선정했다. 응답자가 각각 1980년 이전 데뷔가수 3명, 1980년 이후 데뷔가수 3명씩을 뽑는 방식으로 순위를 매겼다. 1980년대를 기준으로 한 건 편의상 나눈 것이다.
 
 
  歌王 조용필, 압도적 1위
 
조용필.
  설문조사 결과 1980년 이전 데뷔가수 1위는 조용필(12표)이 뽑혔고 이어 송창식(5표), 이미자·배호(4표) 순으로 나타났다.
 
  조용필은 응답자 전원에게 최고의 가수로 선정돼 부동의 1위임을 입증했다. “진성, 가성, 탁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창조적인 창법을 들려주고, 음악의 전 장르를 아우를 수 있는 전대미문의 보컬”로 인정받은 것이다.
 
  2위는 “자유롭고 분방한 봉건시대의 가객” 송창식. “독특한 창법으로 7080 라이브의 단골손님”으로 평가되는 그는 최근 ‘세시봉’으로 복고열풍을 일으키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미자와 배호가 4표씩을 얻어 공동 3위로 선정됐다. 이미자는 “신에게 축복받은 자연 그대로의 보이스를 가지고 있다”, “기품이 있으면서도 애수 어린 창법이 깊은 공감을 준다”는 찬사를 받았다.
 
  배호는 “가요사상 가장 스타일리시한 창법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음과 동시에 “모창 가수들이 쏟아낸 짝퉁 배호 음반으로 절반은 신화가 되어버린 안타까운 가수”라는 평도 눈에 띄었다.
 
  그 외 패티김 이난영 남인수 양희은 김정호 현인 나훈아 하춘화 심수봉이 1표씩을 얻었다.
 
 
  록밴드 출신들이 1980년 이후 데뷔가수 1위
 

  1980년 이후 데뷔 기준에서는 좀 더 많은 가수가 각축전을 벌였다.
 
  1위는 5표씩을 얻은 이승철과 임재범. 1위 두 명이 모두 록밴드 출신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승철은 “감성과 파워가 조화됐고, 기교와 음정, 성량 등 3박자를 고루 갖춰 록부터 발라드까지 무리 없이 소화해 내는 라이브황제”라는 평이다.
 
  최근 ‘나가수’에 출연해 ‘너를 위해’ ‘여러분’으로 1위를 하고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한 임재범은 “어떤 곡도 ‘임재범의 창법’으로 소화해내는 록보컬의 레전드”, “기교와 형식을 넘어선 깊이감을 갖춘 가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선희와 김현식은 4표씩을 얻어 공동 3위로 뽑혔다. 선정 이유로 이선희는 “누구보다 폭발적인 가창력을 가진 80년대 최고의 라이브 디바”, 김현식은 “동적이고 강렬한 창법, 진한 페이소스를 품고 청중을 압도하는 에너지를 갖췄다”는 의견이 나왔다.
 
  “서구 대중음악의 모방에 그치지 않는 독창적인 사자후를 가진” 전인권, “20년간의 음반판매량과 꾸준한 팬층, 발라드에서의 영향력을 넘어서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목소리를 지닌” 신승훈, “탁월한 비트감각과 뛰어난 곡 소화력이 돋보인다”는 김범수가 공동 5위로 뒤를 이었다.
 
  그 밖에 이소라 김광석 김건모 인순이 조규찬 나얼 한영애 박완규 이은미 등이 선정됐다.
 
  설문에 응답한 평론가들에게 ‘나가수’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먼저 ‘나가수’ 열풍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많은 응답자가 ‘가창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답했다.
 
  “아이돌이 장악한 ‘보여주는 음악계’에 싫증난 대중이 ‘노래’를 잘하는 가수와 진정한 음악적 감동을 찾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서바이벌 형식이 더해져 대중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냈다는 분석도 있다. 한 응답자는 “가창력을 담보한 가수들이 좋은 노래를 들려주는 밋밋한 편성이라면 지금 정도의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프로 가수들의 경연을 일반인이 직접 순위를 매기는 다소 황당한 버라이어티 형식이 대중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냈다”고 대답했다.
 
  “감성적인 추억과 노래가 전달해 주는 감동과,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주는 긴장감이 주요 이유인 것 같다”는 의견이다.
 
 
  ‘나가수’ 甲論乙駁
 
  다른 한편에선 “정말 열풍인 건지 확신할 수 없고, 설령 열풍이라고 해도 그 이유는 한 시대를 호령했던 가수를 경쟁 시스템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데에 재미를 느끼는 것일 뿐이다”, “그 시간대의 공중파 방송에서 무슨 프로그램을 하건 그 정도의 시청률과 관심은 나온다. ‘나가수’ 자체가 아니라 유명 가수들이 대결을 펼치는 연예 미디어에 대한 열광이다”는 비판적 의견도 있었다.
 
  ‘나가수’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은 “‘나가수’가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에 대한 질문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났다. “아이돌과 상업적 음악의 판에서 ‘음악’과 ‘가수’라는 직업의 정의를 복원시켰다”, “한동안 ‘연예·오락’이 돼버린 음악이 ‘예술’로 회귀하는 기회가 됐다”는 순기능이 언급됐다. “고막에서 울리던 음악을 감정적 체험의 음악으로 다시 이끌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반대로 “중년의 문화가 돼버린 70~80년대 음악과 팝·가요의 경계가 무너져버린 국적불명의 음악이 지배하는 2000년대 음악 사이에 끼여 있던 90년대 음악을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듯 보였으나, 이내 ‘유명 가수를 경쟁시켜 떨어뜨리는 재미나 누려 보자’는 원래 목적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이 돼버렸다”와 같은 비판적 의견도 나왔다.
 
  또 “잔잔한 노래를 선곡하거나, 노래를 ‘편하게’ 부르면 꼴찌를 하게 돼 가수들이 자기 개성을 버리고 악을 쓰기 시작했다”, “‘가창력’이란 것의 관점을 고정시키면서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신곡이 아닌 미션을 통한 리메이크곡이 가요 차트를 점령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등의 부작용도 제시됐다.
 
  실제로 온라인 음원사이트 <멜론>의 5월 가요차트를 보면 50위권에는 ‘나가수’ 관련 음원이 24%(12곡), 100위권 내에는 26%(26곡)로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나가수’ 열풍이 얼마나 더 지속될까”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은 대동소이했다.
 
 
  “‘나가수’, 시한부 인생”
 
‘나가수’는 최근 스포일러, 다른 가수의 공연 장면에 똑같은 청중의 모습을 넣는 편집 실수 등으로 논란의 대상이 됐다.
  “본격적인 아이돌 음악 이전 가수들의 재기와 함께 새로운 문화코드로 이어질 것이다”는 소수 답변도 있었으나, 대부분 “당분간 계속되겠지만, 우리 가요계에 임재범 박정현 김범수 같은 인재풀이 얼마나 있느냐가 관건이다”, “6개월 이상은 가겠지만 실력과 지명도를 겸비한 가수를 섭외하는 데 점차 한계가 올 것이다” 등의 답변이 많았다.
 
  열기가 갑자기 꺼지진 않겠지만 경연 때마다 가수를 탈락시키고 새 가수를 영입해야 하는 시스템의 태생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가창력에 대한 진부한 기준을 만족시키면서 대중적인 지명도까지 고루 갖춘 가수들의 저변은 뻔한 것이고, 결국 시작부터 시한부였던 셈”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전 방송보다 이후 방송이 얼마나 더 충격적이냐를 기준으로 봤을 때, 임재범을 넘어설 무엇인가가 나오지 않는다면 시들해질 것”이라는 언급처럼 좀 더 자극적이고 감성적인 접근이나 변화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었다.
 
  시청률 조사회사 AGB닐슨미디어리서치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6월 5일 오후 5시10분에 방송된 ‘나가수’는 전국 가구 시청률 12.6%를 기록했다. 이는 5월 29일 기록한 17.3%보다 4.7%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첫 방송부터 매회 화제를 낳았던 ‘나가수’는 출연진과 PD 교체로 방송이 중단되었다가 재개된 5월 초 이후 줄곧 시청률 상승세를 보여 왔다.
 
  하지만 최근 방송에서 ‘긴장감이 다소 떨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시청률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스포일러와 편집 실수 등으로 인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가수들의 가창력이 대두될수록 뭇매를 맞는 것은 아이돌 가수다. TV에서는 아이돌 위주의 예능 프로그램이 퇴출되고, 가요 순위 역시 아이돌 그룹이 약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이명수 자유선진당 의원은 이른바 ‘립싱크 금지법’을 발의하기까지 했다. 립싱크 금지법은 ▲대중 가수와 성악가들, 뮤지컬 가수들은 상업 공연에서 립싱크를 할 수 없고 ▲음향 설비나 가수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 립싱크가 불가피할 경우 이를 사전에 알려야 하며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각오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립싱크 금지는 결국 춤과 외모를 앞세운 아이돌 가수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몇 년간 이어진 아이돌 가수의 ‘초강세’를 생각해 보면 ‘한순간에 이렇게 될 수가 있나’ 싶기까지 하다.
 
 
  아이돌, 변해야 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이돌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팝시장에서도 아이돌 가수가 강세이듯이, 대중문화를 이끄는 10대를 주축으로 한 아이돌 음악의 수요가 있는 한 노다지가 되어 줄 아이돌 음악에 대한 투자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공산품으로서의 음악 역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다양성의 차원에서 아이돌 그룹 음악의 존재 역시 그 가치가 있다” 등 아이돌 음악의 순기능도 언급됐다.
 
  다만 “예전처럼 비주얼에 의존하는 한 생존주기는 짧아질 것”이라는 지적은 응답자 대부분이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비주얼과 안무에만 치중하고 음악성이 약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음악성과 음악외적인 요소를 겸비한 아이돌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씨는 “감각적이고 소비적인 기존의 패션적 지향을 버리고 가창력을 담보한 감동적인 노래로 무장되는 진보의 과정이 없다면 과거 아이돌의 영광은 ‘아! 옛날이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노래에 신경 쓰는 아이돌 그룹이 나오고, 대규모 편성보다는 가창력 중심의 2~3인조 그룹이 많이 만들어질 것이다”, 또는 “음악성을 강조한 팀과, 비주얼을 강조한 팀으로 양극화 현상이 보일 수도 있다”는 전망도 눈에 띄었다.
 
  KBS <자유선언 토요일> ‘불후의 명곡2: 전설을 노래하다(이하 불후의 명곡)’는 이런 변화의 징후로 해석된다.
 
  ‘불후의 명곡’은 ‘나가수’와 비슷한 형식이지만 출연진이 아이돌 가수라는 점이 특징이다. 노래 잘하는 아이돌 가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이것이 ‘아이돌치고는 노래 잘하네’ 식의 관심에서 머물지, 새로운 트렌드가 될지는 조금 더 두고 볼 일이다.⊙
 
설문에 응해 주신 분들
 
  ▲강일권(Music Is My Weapon 편집장) ▲강태규(쿨투라 편집위원) ▲강헌(대중음악평론가)
  ▲김광현(월간 재즈피플 편집장) ▲김태훈(팝칼럼니스트) ▲박은석(웹진100beat 편집장)
  ▲성시권(대중음악평론가) ▲송기철(대중음악평론가) ▲송명하(월간 핫뮤직 수석기자)
  ▲이헌석(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대중문화평론가)
  ▲한경석(핫트랙스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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