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8월, 나는 崔鍾賢(최종현) 鮮京(선경) 사장과 崔鐘明(최종명) 상공부 차관보를 중심으로 짜인 民官사절단의 일원으로 사우디 아라비아를 방문했다. 선경이 새로 건설키로 계획하여 정부의 인가를 받아 놓은 日産 15만 배럴 규모 제4정유공장의 원유공급線을 확보하기 위한 교섭단이었다.
 
  선경의 崔鍾建 회장과 崔鍾賢 사장 형제가 정유공장 건설에 뜻을 두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부터였다. 섬유제품으로 시작하여 제품의 원료인 실의 생산으로 사업을 확장해 간 선경의 오너들은 자연스럽게 화학섬유의 원료인 석유화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석유화학의 모태인 정유사업에 뜻을 두게 되었다. 석유-석유화학-섬유제품의 수직계열화를 이룬다는 꿈이었다.
 
  국내의 정유공장은 대한석유공사(울산), 호남정유(여천), 경인에너지(인천) 등 3社가 있었는데, 여기에 제4정유공장을 건설키로 하고 1972년 말 정부의 인가를 받아낸 것이었다. 제4정유공장 건설을 위해 선경은 이미 鮮京合纖(선경합섬)에 깊이 참여하고 있던 일본의 데이진(帝人), 그리고 종합상사인 이토추(伊藤忠)와 원유 수송을 맡은 船社인 재팬 라인(Japan Line)의 합작투자로 鮮京油化를 설립하였다.
 
  원유공급선으로는 이란, 쿠웨이트, 사우디 아라비아를 대상으로 공급 가능성을 타진하였으나 사우디 아라비아가 여러 면에서 가장 바람직한 대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원유공급 협상이 시작됐다.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한 로비와 협상에는 당시 中東지역에 깊이 라인을 형성하고 있던 일본의 종합상사 이토추가 앞장을 섰다. 이 업무를 총괄하여 지휘한 사람이 유명한 소설 「불모지대」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세지마 류조 부사장이었다.
 
  일본 측 파트너는 물론이고 사우디 아라비아의 협상 대상자들과 일선에서 접촉할 한국 측 실무 총 책임자는 정유업계의 실력자였던 全民濟(전민제) 全엔지니어링 대표였다. 나는 선경 직원으로 全民濟씨를 보좌하여 해외 출장 때마다 수행하게 된다.
 
  당시 나는 29세의 대리로 나이로 보나 직위로 보나 약관의 티를 벗어나지 못한 때였다. 1970년대 초부터 선경은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젊고 패기 있는 사원들을 밖으로 내보냈는데, 나는 겁도 없이 中東지역을 맡아 황무지를 가는 마음으로 수출전선에서 뛰었다. 레바논,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UAE 등 中東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선경의 직물 수출 길을 트는 것이 임무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中東 산유국들의 국가 재정이나 사람들의 살아가는 형편이 오늘날과는 달라서 가난한 편이었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1973년 3월 나는 中東에서 200만 달러어치의 계약을 따냈다. 그해 회사의 총수출액이 1000만 달러대 정도였으니 200만 달러 계약이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中東을 잘 아는 사람이 되었고, 회사 또한 中東 시장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원유공급 교섭을 위한 民官사절단을 파견할 때 회사 측의 실무자로 내가 뽑힌 내력은 이러했다.
 
 
 
 야마니와 K씨와 대리인들
 
   원유공급선 확보를 위해 民官사절단을 파견하게 된 이유는 사우디 아라비아 측의 요청 때문이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일단 사우디 아라비아와 미국 석유 메이저의 합작으로 설립한 아람코(ARAMCO)를 통하여 메이저들에게 공급된다.
 
  그 외에 개별적으로 사우디 아라비아로부터 원유를 공급 받으려면 정부 간 계약(GG Base)으로만 가능하게 돼 있었다. 즉, 민간회사인 선경유화가 사우디 아라비아로부터 원유를 공급받으려면 한국 정부를 앞세워 한국 정부와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 간에 계약을 맺는 형식으로 공급하도록 돼 있었다. 실무적으로는 민간회사가 본국 정부의 위임장을 받아 사우디 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민(PETROMIN)과 계약하는 형식이었다.
 
  사우디 아라비아로부터 석유를 공급받는 일은 이처럼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한국의 민간회사에 얼마 만한 양의 석유를 공급해 주느냐 마느냐 하는 결정은 전적으로 사우디 아라비아 측이 마음 먹기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루트를 통해 어떤 식으로 로비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그 무렵 일본 종합상사의 정보망은 세계의 구석구석을 꿰뚫고 있었다. 일본 이토추가 선경유화의 원유공급을 따내기 위한 창구로 선택한 대상은 파이잘 국왕의 오른팔 역할을 하던 K씨로서 사우디 아라비아 정보 총책임자였다. 사우디 아라비아 CIA의 책임자인 K씨는 왕비의 친동생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종적인 결정은 이런 실력자들에 의해서 내려지지만, 다른 나라의 민간 비즈니스 맨들을 상대로 협상하는 자리에 이런 사람들이 직접 얼굴을 내미는 일은 없다. 협상은 대부분 사적으로 창구 역할을 하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민간인을 앞에 내세워 이 민간인이 제반 협상을 진척시켜 놓으면 최종 마무리 단계에 가서야 직접 해당 기관의 책임자를 만나 공식적인 절차를 밟게 된다.
 
  사우디 아라비아 CIA 총책임자 K씨의 민간인 협상 창구는 K씨의 조카인 베드라위(Bedrawi)였다.
 
  베드라위는 영국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고, 흰 피부에 갈색 머리칼을 지닌 몸집이 뚱뚱한 30代의 미남이었다. 그는 당시 제다港 부근에 있던 유일한 현대식 고층건물인 퀸스 빌딩에 사무실과 거주처를 정해 놓고 全세계의 비즈니스 맨들을 상대로 협상을 하고 있었다. 이토추가 한국의 제4정유공장에 공급할 원유 교섭의 창구로 선택한 인물이 바로 이 사람이었다.
 
  그러나 베드라위는 그야말로 窓口에 지나지 않았다. 그 뒤에는 K씨가 있었고 K씨와 별도로 석유장관인 야마니(Yamani) 장관의 對민간 창구와도 교섭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야마니 장관의 對민간 창구는 압둘라 박쉬(Adulla Bakhsh)였다. 그러나 압둘라 박쉬의 존재는 아직은 등장하지 않는다. 1979년의 제2차 오일쇼크를 극복하기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와 원유 공급계약을 교섭할 때 비로소 전면에 등장하여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소설 「불모지대」 주인공의 모델 이토추商社 세지마 류조
 
   사절단이 방문하기 전에 이미 베드라위를 통하여 상당한 수준의 협상이 진척을 본 상태였다. 교섭 과정에서 베드라위에게 한 가지 약속한 것이 있었다. 베드라위가 추진 중이던 불포화 폴리에스테르 수지 공장을 제다에 건립하는 데 선경을 비롯하여 이토추, 데이진이 함께 주주로 참여하고, 全엔지니어링도 공장의 건설을 맡는 것과 함께 주주로 참여키로 한 것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협상을 이루어 놓은 상태에서 민간회사와 정부의 공동사절단은 사우디 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민을 방문했다. 여기서 원유공급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사실은 이미 정지작업을 다 마쳐 놓은 상태였다. 사절단의 방문은 마무리를 위한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인데, 그 결과를 외교적인 큰 성과로 치부하여 자만에 빠진 것이었다.
 
  리야드에 있는 페트로민 본부를 방문했던 사절단은 제다로 가서 당시 막 개설했던 駐사우디 아라비아 한국대사관을 방문했다. 대사관 겸 관저인 건물을 찾아갔으나 건물만 얻어 놓은 상태이고 家具는 아무것도 없었고, 커튼도 달려 있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崔鍾賢 사장이 즉석에서 한국대사관의 모든 家具를 한국의 전통적인 디자인으로 맞추어 보내 줄 것을 약속했다. 이번 사절단 파견으로 가장 덕을 본 것이 선경이었기 때문에 선심을 쓴 것이었다.
 
  사우디 아라비아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대답을 듣게 되자 한국 측 못지않게 쾌재를 부른 것은 일본 측 파트너들이었다. 그들은 사절단에 공식 합류하여 대표를 보내지는 않았으나 사전 협상을 추진해 온 당사자들이었기 때문에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공편은 제다-베이루트-도쿄-서울로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도쿄를 경유하면서 하룻밤을 일본에서 묵게 되었다.
 
  공항에서부터 시작된 일본 사람들 특유의 손님 환대는 게이샤집 만찬으로 이어졌다. 이토추 상사의 세지마 부사장의 직접 안내로 게이샤집에 도착하자 80세가 넘은 여주인이 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기다리고 있다가 손님이 도착하자 90도로 허리를 꺾으며 절을 하여 맞았다.
 
  앞장섰던 세지마 부사장 역시 90도 맞절을 하여 여주인의 환대에 답했다. 세지마씨는 朴正熙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종합상사 설립을 위한 마스터 플랜을 작성하는 등 韓日 경제협력의 막후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OPEC에 의해 「非우호국가」로 분류된 韓國
 
  사우디 아라비아 측으로부터 제4정유공장에 대한 원유공급 약속을 받고 돌아온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1973년 10월6일, 中東의 화약고에 다시 불이 붙었다. 제4차 中東전쟁이 발발한 것이었다. 이집트와 시리아의 선제공격으로 불이 붙은 이번 전쟁은 이집트 측이 『1967년 6일전쟁 당시 이스라엘 측이 점령한 지역에서 완전 철수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공언했으나 개전 36일 만인 11월12일 휴전협정으로 사실상 종료되었다.
 
  그러나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쟁은 막을 내렸으나 전혀 새로운 전쟁의 불꽃이 全 세계로 옮아 붙고 있었다. 이른바 제1차 석유파동이 그것이다. 제4차 中東전쟁이 일어나자 아랍 산유국들은 이 전쟁을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위력을 과시할 절호의 기회로 활용했다. 10월16일 쿠웨이트에서 소집된 OPEC 회의는 10월 이후 회원국의 산유량을 달마다 5%씩 감소시켜 나가는 한편, 원유 가격을 일방적으로 인상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발표를 했다.
 
  더 나쁜 것은 이때까지 미국 편에 서 있던 사우디 아라비아가 아랍 여러 나라의 석유무기화에 적극 동조하여 그 핵심에 서게 된 것이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親이스라엘 정책을 펴 온 미국과 네덜란드에 대해 석유 수출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고, 이어 이 조치는 全세계의 「親이스라엘 국가」 또는 中東 국가에 非우호적인 국가에 대한 원유공급 중단조치(Embargo)로 확대됐다.
 
  「非우호국가」로 분류된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OPEC의 석유 가격은 두 달 사이에 4배나 올랐다.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물량이었다. 아무리 비싼 돈을 지불하고도 필요한 원유를 확보할 수 없다면 이제 막 중화학 공업화 시대로 진입하려던 한국 경제는 마비될 것이고, 경제가 마비되면 정치가 불안해질 것이고, 정치가 불안해지면 휴전선의 대치 상황에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우리나라의 석유 3社에 원유공급 감량 통고가 온 것은 11월6일이었다. 그러자 朴正熙 대통령은 吳源哲 경제수석을 미국에 급파한다. 吳수석은 걸프, 칼텍스, 유니온 오일 등 석유 메이저의 경영주들을 만나 한국에 대한 원유공급을 안정적으로 해 주기로 약속을 받고 돌아온다(吳源哲 著 「에너지 정책과 中東 진출」).
 
  그러나 제4차 中東전쟁이 가져 온 결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中東 석유의 생산과 공급의 권한이 메이저로부터 中東의 개별국가와 그 협의체인 OPEC로 이관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中東의 석유무기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메이저로부터 원유의 안정적인 공급 약속을 받은 것은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당장 사우디 아라비아의 엠바고를 풀 열쇠는 되지 못했다.
 
 
 
 「석유무기화 정책」 배후의 브레인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의 빗장을 풀 일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자 정부는 吳수석을 미국으로 급파하는 한편, 비슷한 시기에 金鍾泌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사절단을 리야드로 급파했다. 상공부 崔鐘明 차관보는 이미 8월에 사우디 아라비아를 방문하여 『향후 鮮京을 통하여 원유를 공급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사우디 아라비아 측의 협상 생리를 터득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崔차관보는 이번 사절단에 崔鍾賢 선경 사장이 동참하여 협조해 달라는 요청을 해 왔다.
 
  그러나 崔사장은 그 무렵 형님인 崔鍾建 회장이 폐암 말기의 위독한 상황에서 투병하고 있었으므로 金총리를 수행하여 해외로 나갈 처지가 아니었다.
 
  崔사장은 이미 全民濟 사장에게 선경을 대표하여 원유 교섭과 합작공장 건설의 책임을 맡겨 온 터이므로 이번에도 全사장으로 하여금 金총리를 수행케 했고, 나도 全사장을 동행했다.
 
  갑자기 총리를 대표로 하는 거물급 사절단을 맞이한 駐사우디 아라비아 한국대사관은 허둥대고 있었다.
 
  문제의 핵심은 제4차 中東전쟁의 성격과도 관계가 있었다. 제4차 中東전쟁에서 이스라엘과 전면에서 싸우는 나라는 물론 이집트와 시리아였다.
 
  그러나 후방에는 中東 아랍 제국들의 단결된 지지와 지원이 있었다. 그것이 강력한 힘으로 표출된 것이 OPEC의 석유무기화 정책이었는데, 아랍권을 뭉치게 하고 석유무기화 정책을 공동으로 펴나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 중의 하나가 사우디 아라비아 CIA의 총책임자인 K씨였다. 원유공급 중단과 같은 전략적인 조치도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를 꽁꽁 얼어붙게 만든 문제의 핵심에 K씨가 있다면 공연히 외곽만 두들기고 다녀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全民濟 사장은 곧장 베드라위를 찾아갔다. 그에게 한국이 처한 입장을 설명하고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일단 K씨를 만나는 것이 문제를 푸는 핵심인데 베드라위라고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로서도 24시간을 쪼개 쓰는 사우디 아라비아 CIA의 총책임자를 사전 약속도 없이 무턱대고 만나게 해 줄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그저 『기다리면서 기회를 만들어 보자』는 대답이 고작이었다.
 
  베드라위가 나름대로 열심히 뛰었던지 기회는 의외로 빨리 왔다. 기다린 지 이틀째이던가, 밤 12시가 넘어서 베드라위가 허겁지겁 호텔로 찾아왔다.
 
  『지금 당장 金총리와 Y대사 두 사람만 나와 함께 K씨의 사저로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서둘러 주시오』
 
 
 
 『내가 다섯을 셀 때까지…』
 
  Y대사는 기겁을 했다. 아무리 일이 급하다 하지만 한 나라의 총리가 도둑질하 듯이 한밤중에 남의 나라 관리를 사저로 찾아가서 만날 수가 있단 말인가.
 
  『의전(Protocol)상 이건 말이 안 됩니다. 국무총리가 어떻게 자다 말고 남의 사저를 찾아갈 수 있습니까. 내일 아침 정식으로 그의 사무실을 방문하게 해 주시오』
 
  베드라위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멍하니 Y대사를 바라보고 있던 베드라위는 화난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
 
  『내가 다섯을 셀 때까지 함께 가겠다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하고 나는 돌아가겠소』
 
  베드라위는 권투 심판이 카운트하듯 큰 소리로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런 다음 돌아서서 자동차 시동을 걸자마자 전속력으로 달아나 버렸다. 자동차의 굉음과 연기 속에 서 있는 Y대사의 벗겨진 이마에 땀이 흘렀다.
 
  다음날 아침 Y대사는 어젯밤에 일어난 일을 총리에게 보고했다. 金총리는 역정을 냈다.
 
  『당장 날 깨워서 데리고 갔어야지, 지금 만나는 장소와 시간을 따지게 됐소? 프로토콜이고 뭐고 따지고 있을 만치 한가한 때냐 이 말이오』
 
  그러나 이미 버스는 지나간 후였다. 金총리는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 일 때문이었을까. 다음 해 Y대사는 무더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시원한 나라 노르웨이로 전출되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같은 나라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작은 수의 테크노크라트들이 나라를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넘쳐나는 오일 달러를 뿌리며 여유작작하게 사는 것으로 알기 쉬우나 실제로는 하루 24시간을 쪼개 쓸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공무에 묻혀 있다. 全세계가 24시간 돌아가고 있으므로 그들 또한 거기에 맞추어 24시간 업무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새벽 2~3시에도 회의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잠도 잠깐씩 짬을 내어 눈 붙이는 정도이다.
 
  따라서 집무실이든 사저이든, 별장이든, 외국에 마련해 둔 저택이든 그들이 머무는 곳이 곧 집무실이다. 손님들은 저택이나 사무실의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시간이 허락되면 그 때 만나서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협상을 하고 나와야 한다.
 
  그날 밤, 베드라위는 K씨가 사저에 있다는 것, 잠깐이나마 짬이 생겨 한국 총리를 만날 수 있겠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황급하게 金총리가 머물고 있는 호텔로 찾아왔던 것인데 뜻밖에도 대사로부터 「프로토콜」이라는 한가한 소리를 듣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 버렸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金총리는 현지의 사정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를 깨웠어야지』 하는 질책 속에는 국익을 위해 의전상의 문제는 별것도 아니라는 대국적인 생각과 함께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 관리들의 행태에 대한 이해가 묻어 있었다.
 
 
 
 사우디 아라비아 實力者들이 중시하는 德目은 「友情과 신뢰」
 
  金총리 일행 사절단은 소득 없이 귀국했으나 鮮京을 대표하는 全民濟 사장과 나는 사우디 아라비아에 더 머물렀다. 첫째, 총리 일행은 시간에 쫓기는 몸이므로 무한정 버틸 수가 없어 부득이 귀국했으나 이 국가적인 문제를 누군가는 남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고, 둘째 당장의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먼 장래를 위해서도 베드라위-K씨로 이어지는 라인을 원래대로 복구해야만 했다.
 
  우리는 베드라위를 만나 金총리의 심정을 전하고, 한국 대사 또한 총리를 모시는 입장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으로 이해를 구하였다. 베드라위는 계속하여 우리를 위해 기회를 만들어 보기로 약속했다.
 
  며칠 후 베드라위 측으로부터 급한 전갈이 왔다. 여름 왕궁이 있는 타이후의 자기 별장으로 급히 오라는 것이었다. 타이후는 여름 왕궁이 있는 산악지대로 사우디 아라비아 주요 관리들의 별장도 여기에 몰려 있다.
 
  全사장과 나는 급히 타이후에 있는 베드라위의 별장으로 달려갔다. 넓은 응접실에는 우리말고도 일본 대사를 비롯하여 많은 외국인들이 초대되어 있었다.
 
  갑자기 베드라위가 일본 대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힐난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자기네가 필요로 할 때는 허리를 굽신거리며 사정하다가 형편이 바뀌면 태도가 달라지니 믿을 수가 없다』
 
  그러자 나이 많은 일본 대사는 이 무례한 젊은이 앞에서 화를 내지도 못하고 아주 부자연스러운 영어 발음으로 더듬거리며 변명했다.
 
  『일본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매우 우호적인 나라이고, 앞으로도 이 우정은 변치 않을 것이다』
 
  사우디 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하는 中東 오일 파워를 실감케 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사우디 아라비아 사람들이 아시아를 비롯한 외국 외교관이나 비즈니스 맨들에게 기대하는 가장 큰 덕목이 「신뢰와 우정」임을 강조하여 보여 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베드라위는 나중에 우리를 별도로 불러서 엠바고를 풀기 위한 先行조건을 제시했다.
 
  『한국이 엠바고를 풀기 위한 우호국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공식으로 이스라엘과는 단교하고 親아랍국가임을 발표하고 이를 일간신문에 크게 보도해야 한다』
 
  당연히 그런 조건이 붙을 것으로 예상은 했으나 막상 제의를 받고 보니 큰일이었다. 이스라엘도 이스라엘이지만 미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당장 답을 줄 수 없는 문제였다. 전화나 텔렉스로 본국에 알릴 수 있는 내용도 아니었다. 모두 극비사항이기 때문이었다.
 
  全사장은 사우디 아라비아에 남고 나는 다음날 즉시 이 메시지를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 사이 崔鍾賢 사장은 형인 崔鍾建 회장이 별세했으므로 상가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곧장 상가로 직행하여 이 엄청난 조건을 내놓았다.
 
  장례식을 마치고 선경의 2代 회장으로 취임한 崔鍾賢 회장은 형을 잃은 슬픔에 잠길 사이도 없이 정부 측과 이 문제를 놓고 협의, 몇 차례에 걸쳐 문구를 수정하는 우여곡절 끝에 대한민국이 親아랍국가로서 우호국임을 발표했고, 신문들은 이 사실을 대문짝만 하게 보도했다. 이로써 엠바고로 묶여 있던 사우디 아라비아의 원유공급 루트는 한국을 향하여 다시 개방되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엠바고가 풀리자 서로 공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金총리의 사절단이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全民濟 사장이 제대로 보고를 안 해서 일이 어렵게 풀렸다』고 떠넘기는 소리도 있었다. 참으로 한심한 풍토였다.
 
 
 
 崔鍾賢 회장의 상상력과 인내심
 
   崔鍾建 회장이 49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고 그 뒤를 이어 동생인 崔鍾賢 선경 사장이 제2대 회장으로 올랐다. 신임 崔회장의 나이는 45세였다. 나는 1973년부터 崔鍾賢 회장과 가까운 거리에서 일할 기회를 가졌다. 가까이 있으면서 나는 한 가지 의문을 지니고 있었다. 거대한 재벌을 이루고 그것을 운영해 나가는 오너의 자질은 무엇일까. 즉, 보통 사람과 무엇이 달라서 이런 거대 조직을 일구고 이끌어 가는 것일까 하는 소박한 의문이었다.
 
  대답은 뜻밖에도 간단했다. 꿈이 있다는 것이었다. 꿈이 있다는 것은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과 같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지레 겁을 먹고 「안 된다」고 생각 자체를 포기하는 일도 崔회장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오랜 세월 뜸을 들이면서 차근차근 추진해 나갔다. 석유-석유화학-섬유제품의 산업을 수직 계열화하려는 꿈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中東, 특히 거대 산유국인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친밀한 관계 유지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일회성이 아닌, 오래 지속하는 우호관계는 신뢰와 우정을 쌓는 일 외에는 王道가 없다. 崔회장은 인내심을 가지고 사우디 아라비아 측과 신뢰와 우정을 쌓아 나갔다. 그것이 제1차 석유파동과 제2차 석유파동의 국난을 극복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내친 김에 선경이 油公을 인수하여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그룹으로 솟아나는 원동력이 되었다. 재벌이든 구멍가게든 이유 없이 거저 되는 일은 없는 것이다.
 
  1974년 1월, 나는 崔회장의 지시로 제다로 날아갔다. 사우디 아라비아에 남겨둔 뒷일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베드라위를 만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약속한 불포화 폴리에스테르 수지 공장 합작사업의 추진을 협의했다. 선경으로서는 제1차 오일쇼크 극복에 기여했다는 공로는 있었으나, 선경유화의 제4정유공장 건설의 꿈은 수포로 돌아간 마당이었다. 油價가 천정부지로 뛰자 일본 측 파트너들이 한국에서의 새로운 정유공장 건설사업에서 한발 물러서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선경유화에 원유공급을 교섭하는 과정에서 베드라위에게 약속했던 불포화 폴리에스테르 수지 공장 건설에 대한 투자는 약속대로 이행해 나갔다. 선경으로서는 얻는 것 없이 투자만 한 셈이었다. 이 공장은 全엔지니어링이 건설을 맡아 성공적으로 준공했다. 이 일로 인하여 사우디 아라비아, 특히 베드라위의 선경 崔회장에 대한 신뢰는 부동의 「브라더」로 굳어졌다.
 
  오랜 세월 인간의 생존한계 상황인 사막에서 살아온 中東 사람들은 좀처럼 남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믿음을 주면 철저히 신뢰하고 어떤 난관에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한 사람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면 고구마 줄기처럼 그 줄기를 타고 줄줄이 새로운 친구를 얻게 된다. 좁은 사회인데다 族長(족장) 중심 부족사회의 관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게 신용을 잃으면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그런 면에서 崔회장은 사우디 아라비아에 많은 자산을 쌓아 놓고 있었다.
 
 
 
 『韓國에서 술 좀 마시고 가자』
 
  베드라위는 한국 사람을 좋아했다. 全民濟 사장이 한국 방문을 초청하자 그는 흔쾌하게 응하여 1974년 꽃 피는 봄에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을 방문한 그는 한국을 열렬히 사랑하는 팬이 되었다. 한국의 전통 문화, 한국의 산천, 한국의 사람들 모두가 그에게는 경이의 대상이었다.
 
  베드라위에 이어 사우디 아라비아 왕의 특사 죡달이 한국을 방문했다. 뒤에서 K씨가 영향력을 행사한 탓이었다. K씨는 왕실의 특사로 죡달을 보내면서 『한국에 가면 꼭 선경의 崔회장을 만나보고 선경이 어떤 회사이고 한국과 협력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오라』고 주문했던 것 같다.
 
  죡달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를 수행했다. 선경합섬과 직물공장을 차례로 구경시키고, 상공부에서 마련한 헬리콥터를 타고 울산공업단지를 하늘과 지상에서 자세히 살필 수 있게 했다.
 
  죡달에 이어 사우디 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민의 부총재인 자말 자와가 비료공장 합작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대만에 오는 길에 한국에 들렀다. 역시 K씨의 부탁으로 선경 崔회장을 만나보기 위함이었다. K씨도 용의주도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나는 공항에서부터 자말 자와를 영접했다. 링컨 컨티넨탈을 타고 공항을 빠져 나오자 자말 자와는 앞자리에 앉은 나에게 말했다.
 
  『나는 술도 잘 마신다. 대만에 갔더니 종교국가(Holy country)에서 온 사람이라고 주스만 대접하던데 한국에서는 술 좀 마시고 가고 싶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당장 그날 저녁 崔회장은 張禮準 상공부 장관과 자원담당 국장을 비롯한 몇 사람을 三淸閣(삼청각)으로 초대하여 자말 자와를 접대했다. 그는 옆에 앉아 시중 드는 미녀가 권하는 대로 술을 마셨다. 斗酒不辭(두주불사)의 張禮準 장관과 맞대작하는 모습은 볼 만했다.
 
  예정일자를 연기해 가면서 잘 쉬고 난 자말 자와는 떠나기 전날 워커힐 호텔 특별실에서 崔회장과 마주 앉았다. 그는 『소문 대로 崔회장은 훌륭한 기업가임을 확인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 힘껏 도울 테니 좋은 친구로 지내자』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런 다음 자말 자와는 한 마디 충고를 얹었다.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 中東, 특히 사우디 아라비아의 특수한 商습관이나 멘탈리티를 이해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향후 비즈니스를 넓혀 나가기 위해서는 中東에 常駐(상주) 오피스를 설치하고 주재원이 상시 주재하면서 문화와 생활습관을 익히고 인적관계를 견고하게 맺어 놓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崔회장은 『매우 좋은 충고』라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즉석에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친구를 주재원으로 파견하겠다』
 
  그러자 자말 자와는 몇 마디 더 보탰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아직도 외국인이 상주하기에는 생활 여건이 너무 어려우니 일단 베이루트에 사무실을 열고 수시로 사우디 아라비아로 출장하여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1975년 7월, 나는 베이루트에 선경의 지사 사무실을 개설했다.
 
 
 
 內戰 상태의 베이루트에서 스파이로 몰려 자동소총 사격받았던 위기
 
  레바논의 베이루트는 「中東의 파리」라는 별명에 걸맞게 아름다운 도시였다. 외교와 상업의 중심지답게 생동감이 넘치는 도시이기도 했다. 지사 사무실을 내고 가족과 함께 옮겨 간 나는 이곳을 거점으로 中東 全지역을 상대로 돌아다니면서 선경의 폴리에스테르 직물의 수출 업무에 몰두했다. 그리고 가끔 사우디 아라비아를 방문하여 베드라위를 포함한 「친구」들을 문안하고 우정을 확인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베이루트를 둘러싼 국제 정치 기류가 심상치 않았다.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의 이해가 레바논에서 정면으로 충돌하고, 여기에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적 갈등이 증폭되어 복잡하게 얽혀 들면서 1975년 10월 마침내 레바논은 내전 상태에 말려 들고 베이루트는 방향도 없이 날아드는 포화 속에 잠겨 버렸다. 아름답던 거리는 점차 폐허로 변해 갔고 외국인들은 서둘러 보따리를 싸고 제 나라로 돌아갔다. 내가 사무실을 차린 지 겨우 3개월 되던 때의 일이었다.
 
  나는 쉽게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다. 사무실도 새로 내고, 빈 아파트에 새 가구를 들여 놓은데다 이제 겨우 활동을 시작했을 뿐인데 여기서 도중 하차하기는 정말 싫었다. 그러나 전쟁은 장난이 아니었다. 시내 전체가 포화 속에 묻히면서 우리 가족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 앞에 고립되어 있었다.
 
  10월30일 밤, 그날도 밤 새도록 대포 소리가 요란했다. 새벽녘에 나는 문득 공항이 패쇄되지나 않았나 걱정이 되었다. 날이 밝는 대로 망원경을 들고 아파트 뒤편의 조그만 언덕으로 올라갔다. 네 살 난 아들놈이 따라나서기에 아이도 함께 자동차에 태우고 갔다.
 
  언덕 꼭대기쯤에서 자동차를 세우고 망원경을 꺼내어 공항을 살피려는 순간이었다. 숲 건너편 길에서 군인 지프 한 대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지프에는 붉은 터번을 쓴 이슬람 쪽 군인 세 명이 타고 있었는데, 운전병을 제외한 두 명은 자동소총을 들고 있었다. 이른 새벽에 언덕에 올라 망원경으로 공항을 살피는 행위가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고 판단하는 순간, 나는 아들을 급히 차에 태우고 시동을 걸었다. 그러자 지프도 내가 있는 방향으로 급회전을 했다.
 
  나는 전속력으로 언덕을 내려오며 백 미러로 뒤를 보았다. 지프는 100여m 뒤에서 쫓아오고 있었다. 아파트에 멀지 않은 골목길에서 커브를 트는 순간 내 차를 향해 자동소총이 발사됐다. 아들에게 시트 아래로 몸을 숙이게 하고 나도 자세를 바짝 낮추어 아파트 앞에 자동차를 세웠다. 어느새 쫓아왔는지 지프에서 뛰어내린 군인들이 내 차를 에워싸고 총구를 들이댔다.
 
  총을 겨누고 있는 병사들의 눈을 보니 밤새 전투에 지친 때문인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여차하면 방아쇠를 당길 태세였다.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기는 내 아파트이고 나는 코리안으로 잘못된 일은 하지 않았다』고 영어로 설명을 했으나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냥 『스톱, 스톱』 하면서 총부리를 들이댈 뿐이었다. 『왜 도망 갔느냐?』 하고 따지면서 흥분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무법천지인 전쟁판에서 그들 중 한 명이 홧김에라도 방아쇠를 당기면 모든 일은 끝난다. 눈앞이 아득한데 마침 아들놈이 시트 밑에서 기어 나왔다. 그 천진한 모습을 보더니 군인들 중 상급자로 보이는 운전병이 『오 케이』 했다. 지프는 다시 군인들을 태우고 급발진하여 돌아갔다.
 
  아들을 데리고 아파트로 올라가 보니 아내는 베란다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마침 베란다에 나왔다가 우리가 도착하는 모습, 그리고 뒤따라 군인들이 포위하여 총부리를 대는 모습을 지켜본 아내는 오금이 저려 그 자리에 떨면서 앉아 있었다.
 
  다음날 나는 가족을 데리고 런던으로 나왔다. 이 때 네 살이었던 첫 아이는 어느 새 장가 들어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다.
 
  이듬해인 1976년 1월, 나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제다에 선경 지사 사무실을 개설했다. 中東으로 내디딘 발길을 멈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다 사무실의 개설에는 서울을 방문했던 페트로민 부총재 자말 자와의 민간 창구역인 압둘라 박쉬의 도움을 받았다.
 
 
 
 커미션에 철저한 사우디 아라비아人의 商習慣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사무실을 열고 주재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지인 스폰서를 세워야 한다. 이 현지인 스폰서가 법적인 보증을 서는 대신 그 代價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도움을 주고 그 代價를 받는 것은 사우디 아라비아 특유의 철저한 상습관이었다. 어떠한 서비스에도 代價가 따른다.
 
  직물 장사를 하는 사우디 아라비아人 친구가 있었다. 나와 오랜 거래로 마음을 터놓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 그가 어느 날 자기 아버지 가게로 나를 데리고 가서 소개시켜 주었다. 거기서 직물 수출에 관한 작은 거래가 이루어졌다. 며칠 후 그 친구를 만나니 커미션을 달라고 했다.
 
  『당신이 아버지를 나에게 소개시켜 준 것은 단순한 소개일 뿐이고 나는 친구 아버지에 대한 예의로 인사차 갔다가 우연히 약간의 거래가 이루어진 것뿐인데 무슨 커미션이냐. 당신이 내 커미션 에이전트도 아니지 않느냐. 게다가 이번 거래는 당신 커미션에 해당하는 금액 이상으로 값을 싸게 드렸으므로 당신에게 커미션을 지불할 수 없다』
 
  그러자 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너의 실수다. 이 나라의 관행은 그렇지 않다』
 
  그는 한참이나 사우디 아라비아의 상습관을 설명하면서 나에게 교육을 시켰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서울에서 자말 자와가 들려 준 그대로였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사업을 하려면 사우디 아라비아의 상습관과 관행을 익혀야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그 후 나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관행을 따라 사우디 아라비아 친구들을 사귀고 신뢰를 얻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가 이런 노력을 한 것은 선경 崔鍾賢 회장의 初志一貫(초지일관)한 자세 때문이기도 했다. 1차 오일 쇼크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면서도 선경에 도움이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유공장 건설의 꿈도 유보되었고, 불포화 폴리에스테르 수지 공장 합작 건설의 약속을 이행하느라 필요 없는 자금이 들었다.
 
 
 
 韓國 퉁소의 애절한 가락을 사랑한 사우디 아라비아 石油相 야마니
 
  그러나 崔회장은 묵묵히 사우디 아라비아에 공을 들였다. 사우디 아라비아 요인들을 서울로 초청하여 환대했고, 가끔 사우디 아라비아를 방문하여 우정을 쌓았다.
 
  1976년 崔회장이 제다를 방문했다. 그 때까지 崔회장은 사우디 아라비아 CIA 총책임자인 K씨를 직접 대면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崔회장이 사우디 아라비아를 방문하자 압둘라 박쉬가 주선하여 처음으로 崔회장과 K씨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오랫동안 중간 매개인을 사이에 두고 많은 대화가 이루어져 왔던 두 사람이 비로소 처음 만나게 된 것이었다.
 
  압둘라 박쉬는 직접 차를 몰아 호텔로 왔다. 崔회장과 나를 태우더니 어느 건물 앞에서 다른 차로 바꾸어 탔다. 새로 바꿔 탄 자동차는 CIA 소속 자동차 같았다. 우리를 태운 자동차는 어느 캠프 안으로 들어가더니 2층 건물로 들어섰다. 2층인데도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가 전자 감식기 역할을 하고 있었다.
 
  K씨는 드넓은 방에 혼자 조용히 앉아 있었다. 흰 턱수염을 곱게 기르고 잔잔한 미소를 띠며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인상이었다.
 
  『崔회장, 당신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말하십시오』
 
  K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崔회장은 고맙다는 뜻으로 목례를 하면서 대답했다.
 
  『지금은 특별히 부탁 드릴 일이 없습니다』
 
  작은 잔에 담긴 아리비안 차가 은은한 향기를 뿜었다. 차를 몇 잔이나 마시면서 두 사람의 환담은 이어졌다. 그 분위기는 오랜 친구 간의 만남 이상이었다.
 
  K씨와 함께 석유문제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다른 한 사람의 실권자는 물론 야마니 석유장관이었다. 야마니도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야마니 장관은 차분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차분한 성격 그대로 동양적인 문화와 예술에 심취했다. 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저녁 만찬 자리에서 국악의 명창 한 분이 창 하는 것을 듣고 반해 버린 일이 있었다. 70代의 여자 국악인이었는데 창이 끝나자 야마니는 손수 일어나 명창을 자기 옆으로 앉혀 놓고는 『이런 기막힌 노래는 처음 들었다. 환상적이다』며 찬탄을 금치 못했다. 처음 듣는 퉁소의 애절한 가락도 그를 매료시켰다. 그는 국악을 진심으로 좋아했고, 창을 한 국악인을 존경했다. 그리고 동양의학에 특히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지압의 효능을 믿었고, 禪(선)에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
 
  나는 한국에 왔다가 사우디 아라비아로 갈 때마다 홍삼과 한국산 실크를 선물로 잔뜩 사가지고 가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홍삼은 야마니 장관 같은 남자들이 좋아했고, 한국산 실크는 그들의 부인들이 좋아했다. 덕택에 내 별명은 「코리안 진셍」이었다.
 
  1978년 10월, 나는 3년3개월의 中東지사 근무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귀국했다. 中東의 전략적 중요성은 석유에 있었으나 그동안 필자의 업무는 석유와 관련 없는 일반 수출업무에 치중돼 있었다. 한 가지 소득이 있었다면 사우디 아라비아에 많은 친구를 둔 점이었다. 崔鍾賢 회장이 직접 나서서 쌓아놓은 우정의 자산이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 무슨 소용이 될 것인지는 나로서는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돌아오던 1978년 10월은 이란에서 정치 소요가 일어나기 시작한 때였다. 소요는 폭동으로 발전하고 1979년 1월16일 팔레비 왕정의 붕괴, 호메이니의 이슬람교혁명으로 사태가 발전했다.
 
 
 
 『자네 사우디 아라비아 친구 보고 하루에 5만 배럴만 달라고 해 봐』
 
  그에 앞서 1978년 12월27일 이란은 자국산 석유의 對外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석유 업자들은 재빨리 원유쟁탈전을 벌이고 메이저들의 투기성 시장 조작으로 현물 가격이 급등했다. 제2차 석유파동의 시작이었다. 1978년 배럴당 13달러 70센트이던 원유 가격은 1981년 10월34달러 선에서 상승행진을 멈추기까지 장장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상승곡선을 그렸다. 석유의존형 에너지 소비 구조를 지니고 있던 한국 경제는 다시 한 번 위기를 맞았다.
 
  1979년 12월13일. 12·12사태 다음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막 들어온 참이었다. 책상 위의 전화 벨이 울렸다.
 
  『일반상품 부장입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회장실 비서였다. 빨리 회장실로 오라는 전갈이었다. 노크를 하고 회장실로 들어서니 사장단 모두가 앉아 있었다. 한눈에 비상사태임을 알 수 있었다. 회장이 가리키는 대로 말석에 가서 앉자 회장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나서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金부장말이야. 지금 나라가 朴대통령 돌아가시고 아주 어려운데 아, 글쎄 원유가 바닥 나게 생겼단 말이야. 한 10여 일분밖에 재고가 없다는 거야. 겨울은 닥쳐 왔지, 원유공급은 어렵고, 현물시장 가격은 40달러나 되는데 그나마 구하기도 쉽지 않은 모양이야. 거, 자네 친구들 있잖아. 사우디 아라비아 친구들 보고 좀 도와 달라고 해 봐. 하루에 한 5만 배럴만 달라고 해 봐』
 
  둘러앉아 있던 사장들의 얼굴에 「무슨 황당한 소리냐」는 표정이 떠올랐다. 석유 때문에 모든 기업들이 비상이 걸려 있고, 많은 기업들이 부도 위기에 내몰려 있는 국가적 비상사태 속에서 이제 겨우 서른다섯 살 먹은 부장 하나를 앉혀 놓고 무슨 꿈 같은 소리를 하고 있나, 한심하다는 표정들이었다. 어떤 사장은 아예 눈을 감고 소파 뒤로 머리를 젖히고 있었다.
 
  그러나 당장 그런 지시를 받는 실무자인 내 입장에서는 눈앞이 캄캄할 뿐이었다. 실제로 그 당시 우리나라의 석유 비축분은 유조선에 실려 오고 있는 양을 합하여 열흘 분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에 하루 5만 배럴이면 석유 수급은 일단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하루 5만 배럴을 확보하라는 것인가.
 
  그러나 대답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우선 압둘라 박쉬가 어디 있는지 수소문해 보고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남자로서 일생일대의 부탁이다』
 
  회장실을 나온 나는 곧 압둘라 박쉬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박쉬의 측근으로부터 『내일 런던의 집으로 갈 예정』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회장실을 나온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나는 다시 회장실을 노크했다.
 
  『오늘 저녁 비행기로 런던으로 떠나겠습니다』
 
  런던行 비행기 속에서 내 마음은 1000근의 납덩이에 짓눌린 느낌이었다. 압둘라 박쉬가 과연 런던의 집으로 가 있을 것인가, 아니면 계획을 바꾸어 미국이나 또 다른 엉뚱한 곳으로 가 버리지나 않을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요인들은 행선지를 알리지 않고 다닌다. 사무실에서도 잘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쪽에서 약속을 할 수가 없다. 본인은 물론이고 측근들과 한참 친해진 후에야 겨우 『오늘 밤은 어디에 있을 것』이라는 귀띔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꼭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한번은 압둘라 박쉬를 따라잡기 위하여 48시간을 유럽과 미국을 날아다닌 적도 있었다. 특히 야마니 장관처럼 자가용 비행기로 全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인물을 따라잡기는 정말로 어렵다.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만나면 이야기할 시간은 단 5분 정도, 꼭 해야 할 요긴한 말만 하면 끝이다. 요인을 만나기 전에 민간 창구를 통해 모든 협의를 끝내 놓고 정작 결정권을 가진 인물과 만나서는 극히 사무적인 몇 마디만 나누면 그만이다.
 
  런던에 도착하는 즉시 나는 압둘라 박쉬의 집에 전화를 했다. 다행히 박쉬가 직접 전화를 받았다.
 
  『미스터 金이 어쩐 일이냐? 내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느냐? 어쨌든 반갑다. 마침 시간이 있으니 지금 당장 집으로 오라』
 
  압둘라 박쉬의 집이 있는 이셔 지역은 런던 시내에서 한 시간 거리였다. 그의 집은 숲으로 둘러싸인 대저택이었다. 뒤뜰에는 큰 장미 정원과 수영장이 있었고, 아름드리 고목들이 들어서 있었다.
 
  1년여 만에 만난 우리는 서로 껴안고 양쪽 뺨을 번갈아 갖다 대는 아랍식 인사를 나누었다. 인사를 마치고 소파에 앉자 나는 압둘라 박쉬의 무릎 위에 두 손을 얹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곧장 본론을 꺼냈다.
 
  『남자로서 일생일대의 부탁이다. 꼭 도와주기 바란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혼란한 상황에서 석유위기를 맞아 원유 재고가 10여 일분밖에 없어 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다. 겨울은 닥쳐 오고 이대로 가면 北에서 공산당이 쳐내려올지도 모른다. 사우디 아라비아도 공산국가를 싫어하지 않느냐.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를 도와주기 바란다』
 
  단숨에 말을 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압둘라 박쉬는 기가 막힌 듯 한동안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행운아다』
 
  살았구나. 가슴이 뛰는데 압둘라 박쉬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마침 오늘 밤 야마니 장관이 브뤼셀에서 런던으로 올 예정이니 내일 오전 10시에 자신에게 전화를 하라는 것이었다. 한번 만나려면 全세계를 일주해야 하는 야마니 장관이 마침 내가 런던에 도착한 날 밤에 런던으로 올 예정이라는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일이 잘 풀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데…』
 
  다음날 오전 10시,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압둘라 박쉬의 밝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헤이, 미스터 金, 좋은 소식이다. 지금 당장 내 집으로 와라』
 
  집으로 달려가니 어제와는 달리 압둘라 박쉬는 사뭇 엄숙한 표정이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절대로 조그만 실수도 해서는 안 된다. 야마니 장관이 한번 일을 시작하면 돌이킬 수가 없다. 마침 지금 사우디 아라비아에는 정부 간 베이스로 한 5만 배럴 정도 내놓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사실은 유럽 국가들 중 한 나라에 줄 예정이다. 그러니 오늘 당장 서울로 돌아가서 너희 정부와 상의해서 빨리 답을 주기 바란다. GG베이스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선경에 위임장을 주면 선경이 한국 정부를 대신해서 페트로민과 하루 5만 배럴씩 3년간 공급한다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代價는 이러이러하다. 모든 것은 성사될 때까지 절대 비밀에 부쳐야 한다』
 
  호텔에 돌아와 崔鍾賢 회장에게 『가능성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돌아가 말씀 드리겠습니다』고 전화를 해놓고 곧장 비행기를 탔다.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회장실 비서가 차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崔회장은 먼저 동력자원부 장관실로 가서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곧장 장관실로 오라는 전갈이었다.
 
  장관실로 가니 崔회장이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 함께 A장관실로 들어갔다.
 
  『金부장, 수고 많았습니다. 정말 된다는 것입니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사우디 아라비아 쪽의 요구사항을 전했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데 여부가 있습니까』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돼 가고 있었다.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런던의 압둘라 박쉬에게 전화를 걸어 『방금 동력자원부 장관을 만나고 오는 길인데, 모든 일이 잘 되었으니 예정대로 추진해 주기 바란다』고 부탁했다.
 
  며칠이 지나자 압둘라 박쉬한테서 전화가 왔다.
 
  『빨리 한국 정부의 위임장을 가지고 崔회장이 직접 리야드의 페트로민 본부에 있는 자말 자와 부총재에게 제출하고 원유 계약 체결을 부탁하라』는 것이었다.
 
  내부적으로는 이미 야마니 장관이 파아드 황태자에게 구두보고를 하여 내락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당시 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 관련 계약의 최종 결정권자는 파아드 황태자였다. 공식적으로는 페트로민-야마니-5인 위원회-각의-황태자의 결재 라인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야마니 장관과 황태자의 협의로 충분했다.
 
 
 
 동자부 장관-야마니 회담 추진
 
  남은 일은 한국 정부가 선경에 위임장을 써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그토록 기뻐하던 A장관의 태도가 돌변해 있었다. A장관은 선경에 위임장을 주는 대신에 자신이 직접 야마니 장관을 만나러 갈 테니 만날 약속을 주선하라고 했다.
 
  이는 사우디 아라비아 쪽의 관행을 너무 모르고 하는 일이었다. 사우디 아라비아 쪽에서는 어디까지나 선경을 파트너로 삼되 다만 정부 간 베이스의 형식을 지키기 위해서 한국 정부의 위임장을 요구한 것인데 한국 정부의 해당 부처 장관이 이제 선경을 제치고 직접 나서겠다는 것이니 사태가 이상하게 꼬일 가능성이 커졌다.
 
  우리는 내심 불안했으나 장관의 요구라 거절할 일도 아니었다. 압둘라 박쉬에게는 『동력자원부 장관이 마침 中東 국가를 순방하는 길에 사우디 아라비아에 들러 야마니 장관을 만나기를 요청하니 만날 약속을 주선해 주기 바란다』고 전화를 했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압둘라 박쉬는 순간적으로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듯 역정을 냈다.
 
  『崔회장 보고 오라고 했지, 언제 장관더러 오라고 했느냐』
 
  그는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장관이 가겠다는데 어쩌겠는가. 당시 야마니 장관은 세계적인 인물이 돼 있었다. 당시엔 美 국무장관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세계의 언론이 그의 표정 하나 하나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 야마니와 어렵사리 약속이 이루어졌다. 며칠 후 A장관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사우디 아라비아로 떠났다.
 
  나는 한 발 먼저 사우디 아라비아에 가 있다가 제다의 공항에서 A장관을 영접했다. 공항에는 나말고도 한국의 몇몇 건설회사 사장들도 나와 있었다.
 
  어떤 건설회사 사장은 자가용 비행기를 대기시켜 놓고 A장관을 리야드로 모셔 갈 준비를 해놓고 있었다.
 
  리야드로 A장관 일행을 뒤따라 간 나는 야마니 장관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압둘라 박쉬의 사무실에 앉아 야마니 장관과 A장관 사이에 오간 대화의 내용을 모두 전해 들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 텔렉스로 崔회장에게 보고했다. 그 텔렉스는 물론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서울의 안기부에서도 체크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간, A장관을 수행한 관리들도 같은 보고를 해당 부서와 청와대에 보내올 것이고 이를 스크린하는 안기부에서는 두 보고서에 나타난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기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A장관 수행원이 보낸 텔렉스가 중요한 대목, 즉 장관의 입장을 난처하게 할 수 있는 대목을 빼놓고 보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안기부는 이런 일을 챙기고 있었다.
 
 
 
 『너희 長官이 우릴 죽일려고 환장했느냐?』
 
  야마니 장관을 만난 A장관의 요구는 한 마디로 한국에 줄 5만 배럴의 원유를 선경이라는 민간기업을 개입시키지 말고 대한석유개발공사를 통해 공급해 달라는 것이었다.
 
  민긴기업에 주겠다면 왜 하필 선경이냐, 한양·삼성 등 다른 기업들도 직·간접으로 뛰고 있는데, 하필 선경에만 이런 기회를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야마니 장관은 이 요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동안의 추진 경위가 이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협조하겠다』는 식으로 좋게 말하고 있었다.
 
  「협조」를 약속받고 돌아온 A장관은 얼마 후 다시 사우디 아라비아로 날아갔다. 채근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대답은 앞서와 비슷했다. 사우디 아라비아 측의 대답은 『문제가 있어 지연되고 있으니 그리 알아 달라』는 식으로 부드러웠으나 딱 부러진 약속은 없었고, 되는 일도 없었다. 장관이 직접 오면 안 된다는 암시가 포함된 말이었으나 A장관은 알아듣지 못했다. 압둘라 박쉬는 나에게 하소연했다.
 
  『당신이 다 만들어 놓은 일을 뒤늦게 너희 나라 장관이 포크만 들고 나타나 먹겠다고 하니 우리 입장만 곤란해 죽을 지경이다』
 
  1980년 3월3일, 초조해진 A장관은 세 번째로 사우디 아라비아로 날아갔다. 이날 야마니 장관과 A장관의 만남은 오전 10시로 잡혀 있었다. 그보다 30분 전인 오전 9시30분에 페트로민 부총재인 자말 자와는 자신의 방에서 미팅을 준비하고 A장관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자말 자와는 『선경을 통해 계약을 추진하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자 A장관은 곧 이어 만난 야마니 장관에게 방금 자말 자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내세워 곤란한 질문을 했다.
 
  『조금 전 자말 자와를 만나 보니 선경 이야기를 하던데 당신이 시킨 일이냐』
 
  『선경에 계약을 줄 경우 代價는 얼마냐』
 
  『선경을 지명하여 위임장을 주지 않으면 이번 계약은 없는 것인가』
 
  공개석상에서 이런 질문을 해대자 당황한 야마니 장관은 『나는 선경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뱉아 버렸다.
 
  미팅이 끝난 후 야마니 장관은 압둘라 박쉬의 멱살을 잡을 정도로 크게 화를 냈다. 그러자 압둘라 박쉬는 야마니에게 당한 것을 나에게 화풀이 했다.
 
  『너희 장관이 우릴 죽이려고 환장을 했느냐』
 
 
 
 공든 탑이 무너지는가
 
  그는 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당장 내 방에서 나가라』
 
  큰일이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1979년 12월14일 런던으로 날아간 이후 1980년 3월3일까지 우리 쪽에서는 온갖 수모와 어려움을 오직 제2차 석유파동에서 나라 경제를 조금이라도 회생시킨다는 보람으로 참아 내고, 사우디 아라비아의 「친구들」 쪽에서는 崔회장과의 사이에 그동안 쌓아 놓은 우정을 허물지 않기 위하여 인내심을 발휘해 온 것인데,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대폭발을 일으키며 무너진 것이었다. 압둘라 박쉬는 계속해서 길길이 뛰었다.
 
  『앞으로 전화도 하지 말고 나타나지도 말라. 꼴도 보기 싫다』
 
  이렇게 허무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한 나라의 운명이 걸린 일을 이런 식으로 허물어 버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미 사우디 아라비아에는 「코리안게이트」가 폭발할 지경에 와 있었다. A장관이 선경과의 계약 대신 다른 기업과의 계약을 끈질기게 요구하면서 국내 기업 중 사우디 아라비아와 관련이 있는 기업들은 모조리 나서서 무슨 왕자를 잡았느니, 무슨 장관의 줄을 대었느니 하면서 사방을 들쑤시고 다녔고, 그 소문이 현지에서도 파다하게 나돌았다. 야마니 장관과 압둘라 박쉬의 입장이 말이 아니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A장관의 집념과 인내심도 보통 이상이었다. A장관은 3월16일 쿠웨이트에 들렀다가 네 번째로 사우디 아라비아로 와서 야마니를 만났다. 지난 번 공식석상에서 수모를 당한 야마니 장관은 이번에는 사저에서 A장관을 맞았다.
 
  이 때 A장관은 『한국의 대한석유개발공사를 통해서 원유 도입 계약을 체결하면 안 되겠느냐』고 제의했다. 야마니는 『글쎄 연구해 봅시다』고 대답해 놓고 나서 A장관을 보낸 후 『더 이상 이 딜은 없는 일로 한다』고 선언해 버렸다.
 
 
 
 油公 인수
 
  한편 우리 정부에서는 그동안 A장관의 말만 믿고 기다렸으나 몇 달 동안 사우디 아라비아를 네 번이나 내왕하면서 협상을 폈는데도 아무런 성과가 없자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고 방향을 다시 설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안기부가 체크한 A장관과 야마니 장관 사이의 대화 내용도 내가 崔회장에게 올린 동일 내용의 보고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崔圭夏(최규하)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특유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 줬다. 사태가 답답하게 전개돼 나가자 대통령에게 이 일의 수습 방향을 내려 달라고 요청하자 대답은 늘 『장관하고 잘 상의해서 하시오』라는 한 마디뿐이었다.
 
  일이 난처하게 되자 3월19일 정부는 부득이 李漢彬(이한빈) 경제부총리의 이름으로 선경 崔鍾賢 회장에게 위임장을 발급해 주었다. 위임장을 받은 야마니 장관은 駐사우디 아라비아 한국대사에게 전화로 물었다.
 
  『당신 나라에서는 장관이 높은가요, 부총리가 더 높은가요』
 
  『당연히 부총리가 더 높습니다』
 
  『알았습니다』
 
  위임장이 페트로민에 접수된 지 1주일만에 선경의 崔鍾賢 회장과 페트로민의 자말 자와 사이에 3년간 하루 5만 배럴의 원유를 공급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고 1월분부터 소급하여 船積(선적)하기 시작했다.
 
  현물시장 가격이 42달러할 때 24달러의 공시가격으로 하루 5만 배럴의 원유를 공급받게 된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얼마 후 사우디 아라비아로부터 5만 배럴을 추가로 공급받게 되어 제2차 석유파동을 극복하고 1980년대 초의 한국 경제가 다시 약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선경에도 좋은 결과가 있었다. 이 원유공급 계약 체결이 대한석유공사의 걸프사 지분 50%와 경영권을 넘겨받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1980년 걸프가 油公의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1979년 당시 세계 500大 기업 중 165위로 랭크되어 있던 거대 기업 油公을 국내 기업 중 누가 인수하느냐 하는 문제가 경제계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油公 인수의 가장 큰 자격 조건이 안정적인 원유 도입 능력에 있었으므로 사우디 아라비아로부터의 원유공급 계약 체결 실적은 선경의 油公 인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韓國의 국가 信認度가 갑자기 A플러스로 올랐던 배경
 
  문제는 걸프사에 지불할 1억 달러의 조달이었다. 동력자원부가 제시한 선경의 油公 인수 조건 중에는 『인수 자금을 조달할 경우에는 산유국의 오일 머니(산유국 계열 금융기관 포함)를 유치할 것』이라는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光州사태 이후 한국에 대한 국제 信認度(신인도)에 비추어 1억 달러를 선뜻 내놓을 산유국 은행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프랑스에 있는 알 사우디 아라비아 은행을 찾아갔다. 총재는 압둘라 박쉬였고, 담당은 스웨덴 친구였다. 담당을 만나 이야기해 보았더니 『1주일 후에 보자』고 했으나 눈치가 잘 안 될 것 같았다. 일주일이 되던 날, 나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전날 포도주 반 박스를 퍼 마시고 다음날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알 사우디 아라비아의 스웨덴 출신 담당을 만나러 갔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미안하다. 한국은 국가 신인도가 낮아서 안 되겠다』
 
  『국가 신인도가 낮다니, 뭐가 어떻게 불안하다는 것인지 자세하게 말해 달라』
 
  나는 대들 듯이 물었다.
 
  『신문을 보면 전부 데모하는 모습밖에 없다. 이런 나라가 불안하지 않으면 어떤 나라가 불안하단 말인가』
 
  『지금 당신은 신문을 보고 하는 말이지?』
 
  『그렇다』
 
  『당신은 기껏 신문에 난 기사나 보고 은행을 운영하느냐』
 
  『무슨 말이냐』
 
  『신문에 난 것이 전부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다. 당신은 한국에 가 본 일이 있느냐?』
 
  『가 본 일이 없다』
 
  『가 보지도 않고 신문 보도에만 의존하여 한국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내가 당신 부부와 은행간부 중 한 사람 부부를 한국에 초청할 테니 와서 보고 한국이라는 나라와 선경 및 油公이 어떤 회사인지 직접 눈으로 보고 결정해 달라』
 
  『그럼 오후에 전화해 주면 대답하겠다』
 
  오후에 전화했더니 그는 『10일 후에 가겠다』고 했다. 10일 후 과연 그는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왔고, 궁금했던 모든 것을 샅샅이 보고 갔다. 그의 소감은 이랬다.
 
  『이렇게 평화로운 한국이 불안한 나라로 보도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는 돌아가 한국의 국가 신인도를 A플러스로 매겼고, 그에 근거하여 1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했다. 선경은 단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 油公을 인수함으로써 단숨에 재계의 상위급으로 올라섰다.
 
  따지고 보면 崔鍾賢 회장이 1970년대 초부터 사우디 아라비아에 들인 정성과 노력이 10년 가까운 세월을 거쳐 무르익은 후에 얻은 값비싼 열매였을 뿐 일반인들이 오해하기 쉬운 것처럼 정치적인 이유나 우연히 따낸 행운은 아니었다.
 
  내가 中東에 나가 있었거나 자주 왕래했던 197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초까지 제1, 2차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中東 여러 나라들, 그 중에서도 특히 사우디 아라비아의 사회상도 엄청난 변화의 물결을 탔다. 1973년 1차 석유파동 때만 해도 가난했던 이 사막 국가는 1차 석유파동 이후 오일 달러가 물 밀 듯이 밀려들면서 스스로도 제어하기 힘든 변화의 급물살에 떠내려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제2차 석유파동 이후 그 변화는 더욱 가속화했다.
 
 
 
 幸福은 재산의 크기와 無關했다
 
  우선 오일 머니가 쏟아져 들어오자 처음에는 돈 있는 사람들이 집을 크게 짓고 카펫과 가구에 돈을 들였다. 손으로 짠 페르시아 카펫으로 거실을 장식하고, 이탈리아 가구와 중국식 가구를 경쟁적으로 들여 놓아 집집마다 마치 가구 국제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그 다음은 음식이었다. 全세계에서 유명한 조리사들을 경쟁적으로 초청하여 미식에 탐닉했다. 부인들은 당연히 보석의 수집에 열을 올렸다. 파리·뉴욕 등 해외 유명 도시에 빌딩을 매입하는 것도 취미의 일종이었다. 알 사우디 아라비아 은행만 해도 샹젤리제 거리 한가운데에 있었다.
 
  젊은이들은 자극을 찾아 나섰다. 스포츠카를 몰다가 사고를 당해 비명횡사하는 젊은이들이 늘었다. 압둘라 박쉬의 아들 하나도 그런 사고를 당해 일찍 갔다. 30代만 지나면 영양과잉으로 몸이 뚱뚱해지고 성인병에 노출되었다.
 
  야마니 장관은 자기용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다.
 
  친척 친구들이 줄줄이 찾아오지만 대부분은 돈을 뜯으러 오는 무리들이다. 그 때문에 현금 다발을 미리 여러 개 마련해 두었다가 친척들이 찾아오면 긴 말 들을 것 없이 다발 하나씩 줘 쫓아 버린다고 했다. 야마니 장관은 가끔 『나는 친구가 없다』고 고백하는데, 이는 사실인 것 같다. 부러울 것 없는 이 사나이의 외로움은 그 무엇으로도 치료하기 힘들 것 같다.
 
  알 사우디 아라비아 은행 회장인 압둘라 박쉬 역시 외롭기는 마찬가지였다. 파리에서 그를 만나려고 했을 때 그는 미리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의 열쇠를 주면서 나더러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조지 생 호텔의 하루 3000달러짜리 스위트룸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그는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들어오더니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나서 치킨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웠다.
 
  그런 다음 창가에 서서 샹젤리제 거리의 맞은편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이 내 빌딩이야』
 
  그 말에 내가 대답했다.
 
  『그런 빌딩을 가지고 있으면 뭐하느냐. 당신은 겨우 오후 4시에 치킨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는 근로자에 지나지 않는다』
 
  『맞다』
 
  그는 수긍했다. 그리고 한탄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누군들 알겠는가. 崔鍾賢 회장도 생전에 생태찌개 한 그릇으로 식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선경의 하급 직원들이 요리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는 순간에도 崔회장은 간단한 식사로 때우는 수가 많았다. 사람의 행복은 재산이나 기업의 크기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오일 달러가 사우디 아라비아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시킨 것이 아닌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