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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태완 ‘Stand Up Daddy’

광주대단지 사건과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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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단지 사건과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도시빈민의 비애 담은 ‘아홉 켤레’의 슬픈 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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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서울 도시 철거민들이 집단이주한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일대(지금의 성남시 수정.중원구) 모습. 사진출처=나무위키
 
성남시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일대에서 발생한 광주대단지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실태조사에 나선다. (한국일보328일자, 경기일보328일자 )
 
이 사건은 1970년대 서울시의 판자촌 철거에 떠밀려 광주군(지금의 성남시 수정구와 중원구)으로 강제 이주 당한 주민들이 생존권을 요구하며 벌인 집단 저항이었다.
철거민들은 1969년 주택단지 조성사업이 채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쫓겨와 가수용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1971년엔 서울시가 보름 만에 집을 지어 신고하라거나, 보름 만에 땅값을 일시불로 지급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여기다 경기도에서는 가옥 취득세를 납부하라는 통지서를 발부, 주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을 좌절시켰다. 결국 그해 810일 불합리한 정책의 시정을 요구하며 입주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도시빈민의 저항으로 번졌다.
이와 관련, 성남시의회는 광주대단지 사건 실태조사 및 명예회복에 대한 조례안을 마련키로 하고 현재 여야 합의로 성안 중이다. 조례안에는 지난 1971년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일대(지금의 성남시 수정.중원구)에서 발생한 광주대단지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실태조사, 위원회 구성, 지원활동 등을 담고 있다.
성남시 관계자는 조례안은 광주대단지 사건으로 희생된 성남시민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실태조사를 통해 당시 처벌된 주민 22명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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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길의 중편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광주 대단지 사건을 배경으로 쓰여 졌다. 고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이 소설은 1977창작과 비평에 발표됐다. 경찰의 보호관찰 대상자이자 시위사건 주동자였던 권씨가 학교 교사인 오 선생의 문간방으로 이사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참담한 고생 끝에 경기 성남 시청 뒷산 은행주택을 산 다음, 자그마치 100평 대지 위에 슬라브 집을 지은 오 선생. 그의 집에 권(안동 권)씨네가 문간방으로 이사하던 날. 그 풍경이 가관이다 못해 장관이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모처럼 게으른 아침을 먹는 중인데 딩동 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웬 아낙네가 자기 몸무게만큼은 나갈 커다란 보퉁이를 머리에 인 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숨이 턱에 닿아 있었다. 대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9살쯤 먹어 보이는 계집애 하나가, 다시 그 계집애로부터 몇 걸음 떨어져 세 살 가량의 사내애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일가의 가장인 안동 권씨는 가파른 언덕길 저 아래에다 보퉁이를 내려놓은 채 숨을 돌리면서 마악 담배를 꺼내 무는 참이었다.
 
집주인인 오 선생을 보더니 사내는 일껏 입에 물었던 담배를 도로 호주머니에 쑤셔 넣은 다음 퍽이나 힘에 겨운 동작으로 보퉁이를 들어 어깨에 메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짐무게에 압도되어 중심을 못 잡고 이리저리 휩쓸리면서 근근이 언덕을 올랐다.
오 선생이 어안이 벙벙해 있는 동안에 권씨는 슬그머니 한쪽 발을 들더니 다른 쪽 다리 바짓자락에다 구두코를 쓰윽 문질렀다.
이어서 이번엔 발을 바꾸어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먼지가 닦여 반짝반짝 광이 나는 구두를 내려다보면서 비로소 그는 자기 구두코만큼이나 해맑은 표정이 되었다. 오 선생 아내는 화가 단단히 났다.
 
계약금 받을 때만 해도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들이 여간 뻔뻔하지 않아요. 20만원이면 시세보다 훨씬 싸게 내놓은 줄 자기네도 눈이 있고 귀가 있으니까 잘 알 거에요. 그런데 단돈 10만원 쥐고 한마디 상의도 없이 불쑥 쳐들어오다니, 생각할수록 괘씸하다니까요. 그런 기본적인 약속마저 어기는 사람들이라면 이담엔 무슨 약속인들 못 어기겠어요.”
 
하지만 오 선생은 이 순경한테서 들은 안동 권씨의 과거에 관해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아내의 눈 밖에 난 사람들인데, 만약 권씨가 전과자라는 걸 알게 된다면 아내는 필경 까무러치고 말 것이었다. 더구나 다른 것도 아니고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파괴했다는 죄로 여러 해를 복역하고 나와서는 시방도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는 위험인물임을 알아차리게 된다면 단 하루도 한 지붕 밑에서 살지 않으려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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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선생의 아들 동준이가 마당에서 커다란 풍선을 가지고 뛰어놀고 있었다. 같이 놀고 싶어서 권씨네 애들이 치근치근 따리를 붙이는 기색이었다. 반응이 없자 애들은 돈준이를 한 대 쥐어박았는지 울리고는 문간방에 들어가더니 제 어미를 조르는 눈치였다. 잠시 후 오 선생은 마당에서 권씨네 애들이 손에 손에 여러 개의 풍선을 나눠 들고 마냥 희희낙락해 있었다. 그 풍선의 정체는 오이처럼 생긴 해괴한 모양이었다. 의심의 여지 없는 콘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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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윤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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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이었다. 문간방 툇마루에 앉아 권씨가 바탕과 빛깔이 다르고 디자인이 다른 갖가지 구두를 대여섯 켤레나 툇마루에 늘어놓은 채 그는 떨고 바르고 닦는 데 여념이 없었다. 구두를 구두 아닌 무엇으로, 구두 이상의 어떤 것으로, 다시 말해 인간이 발에다 꿰차는 물건이 아니라, 얼굴 같은 데를 장식하는 것으로 바꿔 놓으려는 엉뚱한 의지의 소산이면서 동시에 신들린 마음에서 솟는 끈끈한 분비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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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경이 또 찾아왔다. 지나는 길에 잠깐 들렀다지만 반드시 그런 것 같지만도 않은 것이, 대뜸 책망 비슷한 투로 이렇게 말했다.
 
이거 보세요, 오 선생. 권씨가 닷새 전에 직장을 그만뒀어요.”
 
(오 선생) “그럼 또 실직했다는 얘깁니까.”
 
(이 순경) “출판살 때려치웠어요. 전번하곤 사정이 좀 달라요. 책을 만드는 데 저자들 요구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게 아니라 틀린 걸 지적하고 저잘 자꾸만 가르치려드니깐 사장이 불러다가 만좌중에 주의를 주었대요. 네가 저자냐고, 네가 뭔데 감히 고명하신 저자님 앞에서 대거리질이냐고 말이죠. 그랬더니 그 담날부터 출근을 않더라나요.”
 
오늘 아침만 해도 정상적으로 출근하는 것 같았는데...어제도 그랬고....”
 
오 선생은 직설적으로 다시 물었다.
 
사건 당시 권씨는 주모자급이었습니까?”
 
사건이란 1971년 경기도 광주대단지(성남)의 주민 5만여명이 출장소(시청)와 파출소, 경찰서를 불태웠던 폭동을 의미한다. 주민들은 격렬한 시위를 벌이며 한동안 광주대단지 전역을 장악하기도 했다. 서울시의 판자촌 철거조처에 의해 밀려난 이들은, 토지불하 가격 인하와 세금감면을 구호로 내걸었었다.
 
성장의 결실에서 소외된 계층의 경제적 평등을 위한 투쟁은 군사정권 치하에서 억눌려온 정치적 자유를 위한 투쟁과 함께 70년대 한국사회를 특징지은 양상의 하나였다.
 
이 순경의 말이다.
 
제가 경찰관이 되기 전 일이니까 자세한 건 몰라요. 하지만 권씨가 주모자라기보다 주동자였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거의 완벽할 만큼 증거를 남겼으니까요. 경찰 백차를 뒤엎고 불을 지르고 투석을 하고 시내버스를 탈취해 가지고 시가를 질주하는 사람들 가진 속에서 권씨는 항상 선두를 서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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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초, 오 선생이 가정방문 길에 어느 학교신축 공사장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콘크리트 골조를 비잉 둘러 얼키설키 엮어 지른 비계가 머리 위로 높다랗게 보였다. 모두들 걷어붙이고 벗어젖힌 몸들이 무척이나 탐스럽고 강인해 보였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한 사내가 오 선생 눈에 띄었다. 그는 흡사 널벅지들 틈에 낀 간장종지로 왜소해 가지고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옮기는 것이었다. 권씨였다.
 
내가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죠?”
 
학생들 가정방문을 다니다 지나는 길에 우연히
 
그는 가득 의심을 담은 눈으로 나와 내 반 학생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그날 저녁 권씨는 잔뜩 취해서 문간방 대신 오 선생의 안방으로 직행해 와서 두 홉들이 소주병 하나를 푹 꽂는 기세로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하는 말.
 
이래봬도 나 안동 권씨요!”
 
그날 저녁 권씨는 술에 취해 자신이 전과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정을 털어놓았다. 난생 처음 내 집의 꿈에 부풀어 20만원이라는 거금을 변통, 철거민 입주권을 샀다. 가까스로 대지는 마련했으나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비바람을 가릴 여유는 아직 없어 땅을 묵히다가 또 간신히 낡은 텐트 하나를 구해서 버티기를 몇 달이나 했다. 선거철이었다. 지상낙원 건설의 청사진에 갖가지 공약들이 한획 한획 첨가됐고 부동산 투기업자들이 날아다녔다.
어느 날 통지서가 날아왔다. 전매 소유한 땅에다 집을 짓지 않으면 불하를 취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보름 만에 집을 지어야할 판이었다. 시멘트와 각목과 블록으로 얼기설기 집을 지었더니 다시 통지서가 왔다. 이번에는 분양 전 토지 20평을 평당 8000원 내지 16000원으로 계산하여 7월말까지 일시불로 납부하는 조건으로 불하받으라는 것이었다. 기한 내 납부하지 않으면 해약은 물론 법에 의해 6개월 이하의 징역이나 30만원 이하의 벌금을 과한다는 것이었다.
역시 보름기한이었다.
그 무렵 광주대단지토지불하가격시정대책위라는 유례없이 긴 이름의 임의단체가 조직됐다. 대책위는 곧 투쟁위로 개칭됐다. 정말 우연히, 타의에 의해 시위에 참여하면서 그는 전과자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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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오 선생의 집에 강도가 침입했다. 구두까지 벗고 양말 바람으로 들어온 강도의 와들와들 떨리는 다리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부주의하게도 오 선생 아들의 발을 밟고 질겁하며 녀석의 어깨를 토닥거리는 것이었다.
오 선생은 직감했다. 강도가 문간방 권씨라는 사실을.
강도가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선 다음 엉겁결에 문간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오 선생이 대문은 저쪽입니다라고 말하자 강도는 문간방 부엌 앞에서 한동안 망연해 있다가 이윽고 대문 쪽을 향해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다.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대문에 다다르자 그는 상체를 뒤틀어 이렇게 내뱉었다.

이래 봬도 나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오.”

그 다음 날, 그 다음 다음 날도 권씨는 귀가하지 않았다. 오 선생은 권씨의 문간방을 처음으로 들여다보았다. 장롱 따위가 자리잡고 있을 자리에 아홉 켤레나 되는 구두들이 사열받는 병정들 모양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정갈하게 닦인 것이 여섯 켤레, 그리고 먼지를 덮어쓴 게 세 켤레였다. 문득 (권씨가 신은) 한 켤레의 구두가 쉽사리 돌아오지 않으리란 걸 알딸딸하게 깨달았다.
 
에필로그
 
화이트 컬러 노동자의 상징인 구두. 권씨는 문간방에 살망정 반짝이는 구두를 신는다. 어쩌면 그에게 구두는 지식인의 마지막 보루와 같은 것인지 모른다.
도시 빈민으로 이리저리 밀려다닐 처지인 그가, 남겨진 아홉 켤레의 구두를 통해 지키려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또 돌아오지 않는(떠나간) 한 켤레의 구두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래봬도 나 안동 권씨요!”, “이래 봬도 나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오라는 허위의식과 반짝이는 구두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 소설은 권씨를 통해 도시 소시민의 위선과, 도시화와 산업화라는 미명하에 권씨를 강도로 만든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사실적으로 그린 역작이다. 성남시가 광주대단지 사건을 재조사, 진상을 밝힐 예정이란다. 국가폭력에 도시빈민으로 추락했던 1970년대 수많은 우리의 권씨들, 가난한 철거민의 상처도 함께 치유되길 기대해 본다.
입력 : 201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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