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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여수의 사랑>…상처의 시원(始原)이자 종착지, 여수(麗水)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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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시원(始原)이자 종착지, 여수(麗水)

7080문학이야기 : 한강의 <여수의 사랑>


한강의 중편소설 <여수의 사랑>은, 맨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와 닮은꼴이다. <채식주의자>가 육식을 거부하는 여성과 친족들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폭력성을 드러내려 했다면, 1인칭 소설 <여수의 사랑>은 상처난 자아에 유폐된 채 살아가는 결벽증 여성의 고백이다. 결벽증은 육식을 거부하는 것과 닮아 있다. 두 소설 주인공이 지닌 내면은 ‘낭하의 시간들’을 오래 견뎌온 것마냥 단단하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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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여수의 사랑》

여수에서 가족을 잃은 유년의 기억(상처)을 씻기 위해 속을 게워내고 몸을 씻어도 떨치지 못하는 ‘내’(정선)가, 자흔이란 여성을 만난 뒤 상처의 진원지인 여수를 되찾아 가는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여수의 사랑>은 1994년, 그녀의 나이 25살 때 썼다. 작품은 그해 《리뷰》 겨울호에 실렸고 이듬해 7월 소설집으로 묶였다. 소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수, 그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대고 있을 것이다.

소설 줄거리는 이렇다. ‘나’(정선)는 결벽증을 앓고 있고, 어린 시절 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트라우마에 갇혀 산다. 손가락을 입에 집어넣어 토악질을 하는 ‘나’, ‘나’는 계속 손을 씻는다. 손가락 끝이 우툴두툴 불어 오를 때까지. “뭐가 더럽다는 거예요?” 자흔이 묻는 말에 ‘나’ 는 대답하지 않는다.

무구(無垢)한 여자 자흔. ‘나’는 자흔을 통해 ‘나’를 본다

자흔은 ‘나’의 룸메이트다. 빠듯한 월급에 혼자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16절지 백지 석장에 검은 사인펜으로 ‘동숙자(女) 구함’이란 전단지를 붙였더니 어느 날 자흔이 찾아왔다. 백치처럼 무구(無垢)한 웃음을 웃는 여자다. ( 때가 없다는 뜻의 ‘무구’라는 단어가 소설 속 여러 번 등장한다.)

자흔의 첫 모습, 두꺼운 겨울 외투는 단추가 하나씩 어긋나게 채워져서 정강이께의 밑단이 ㄱ자로 각져 있다.

‘내’가 자흔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자흔은 얼굴을 붉히며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인천이라고 대답했다가 전주, 남원, 삼례, 곡성, 순천까지 끄집어낸다.

“…아니오, 사실은 여수예요.”


‘내’가 반신반의한 말투로 “그러면 여수 어디에 살았느냐”고 묻자 자흔은 더욱 당황스러워하며 말을 더듬는다.

“잘 몰라요.…워낙 어릴 때 떠나와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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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10경(景) 중 으뜸인 오동도


어느 날, 자흔은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내 고향, 여수가 아닐지도 몰라요. 다만 그 기차가 여수발 서울행 통일호였다고 하니까, 어릴 때부터 그곳이 내 고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지나가는 얘기라도 여수, 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쩡 하고 울리곤 했어요.”

자흔은 여수발 열차에 버려진 고아였다.

여름이 되자 ‘나’는 내 살갗에 다른 사람의 살이 닿는 게 싫다. 땀은 이마에서, 목에서, 겨드랑이에서, 사타구니와 종아리와 발가락 하나하나로 흘러내린다. 퇴근해 집으로 돌아와 피부가 발갛게 부어오르도록 비누칠을 하고 수건으로 문지른다. ‘나’는 몸에 땀이 차는 끈적끈적한 느낌을 견딜 수 없다. 모든 사물에서 썩어가는 냄새가 난다. 더위와 눈병과 콜레라보다도 ‘나’를 괴롭히는 것은 자흔에게 풍겨오기 시작한 여수의 냄새였다. 

여수의 냄새.  그 냄새는 오래 곰삭아 너덜너덜해진 옛 상처의 농한 냄새다.

“제발 내 몸에 손대지 말아요!”

다음날 아침 자흔은 말도 없이 떠난다.

‘나’ 역시 여수가 고향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동생 미선을 바다로 떠나보낸 아픔이 있다. ‘내’가 혼자 건져졌을 때 ‘나’를 둥그렇게 둘러싼 사람들의 입에서 “살았다”는 낮은 탄성과 함께 이런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죽을라면 혼자 죽을 것이지 어쩐다고 죄 없는 어린 것들을….”

자흔이 떠나고 ‘나’ 는 회사에 휴가원을 내고 여수행 기차표를 끊었다.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중얼거림. ‘…아버지’.
여수, 마침내 그곳 승강장에 내려서자 바람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 어깨를 혹독하게 후려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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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여수역 명칭은 사라지고 여수엑스포역으로 바뀌었다.

자흔과 ‘나’의 같은 점과 다른 점

‘나’(정선)와 자흔은 상반된 성격을 지녔다. 자흔은 뭔가를 자꾸 잃어버리고 너절하게 늘어놓는 성격이다. 결벽증인 ‘나’는 먼지와 냄새와 그리고 과거의 상처를 지우기 위해 연신 걸레를 훔치고 토악질을 하며 몸을 씻는다.

두 여자는 ‘여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자흔은 여수발(發) 열차에 버려진 상처(孤兒)로 살아가지만 언젠가 여수로 돌아갈 꿈을 꾸며 살아간다. 그녀의 지갑 속에는 여수행 기차표가 있다. ‘나’는 가족을 잃은 여수 앞바다의 상처를 떨쳐버리지 못한 채 살아간다. 감히 무서워 여수에 갈 꿈을 꾸지 못한다. 자흔이 떠나면서 ‘나’는 여수를 찾을 생각을 굳힌다. 여수는 상처의 근원이다. ‘나’는 연어가 물살을 거슬러 시원(始原)으로 가듯 여수행 열차를 탄다. 소설은 여수역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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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여수역

‘키득키득, 한옥식 역사의 검푸른 기와 지붕 위로 자흔의 아련한 웃음소리가 폭우와 함께 넘쳐흐르고 있었다.’

여수는 떨칠 수 없는,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야할 모든 이의 상처다. 누구나 사람은 상처를 떨치려 하지만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상처는 시원(始原)이다.

시원과 화해할 때만 상처를 이겨낼 수 있다. 국내 최남단 역이자 전라선의 종착역이 있는 여수는, 이 소설에서 시원의 공간이다. 시인 김명인의 시 <여수>는 <여수의 사랑>과 울림이 닿아 있다. 아마도, 한강은 김명인의 <여수>에서 소설의 모티프를 얻지 않았을까. (작가 한강도 소설 도입부에  시 <여수>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여수

 - 김명인

여수, 이 말이 떨려올 때 생애 전체가

한 울림 속으로 이은 줄 잊은 때가 있나

만곡진 연안들이 마음의 구봉을 세워

그 능선에 엎어놓은 집들과 부두의 가건물 사이

바다가 밀물어와 눈부시던 물의 아름다움이여, 나 잠시

그 쪽빛에 짐 부려놓고서 어떤 충만보다도

돌산 건너의 여백으로 가슴 미어지게

출렁거렸다, 밥상에 얹힌

꼬막 하나가 품고 있던 鳴梁은

어느 바다에 가까운 물목인지

밤새도록 해류는 그리로 빠져 나갔을까, 세찬

젊음만으로도 몸이 꽁꽁 굳어지던

그런 시절에는 싸늘한 질문에 갇히고, 우리가

누구인 줄 자꾸만 캐물어 마침내 땅 끝

에 가닿는 절망조차 함께 나누었던

그 여정으로 나도 한때 아름다운 진주를 품었다

칠색 자개 얹어 동여매던 저녁 나절의 무지개여, 麗水가

旅愁여도 좋았던

상처의 시절은 단단히 기억하지, 밀려온 진눈깨비조차

참 따뜻한 나라라고, 적시자 녹아 흐르는 눈이

녹슨 철선이 발하는 고동으로 어느새 푸석푸석한

노을에 칠갑되기도 했느니

마음이 헐어가고 시절이 

더욱 쓸쓸해지면 누군들

그걸 잊을까, 휠체어에 실려 C병동 쪽으로

옮겨지던 맥박은 희미하게

되살아나 그곳이 마지막 희망임을

어렴풋이 알았을 그때에도 아득한 낭하 같던 시간들

여수, 거기 누가 있어 골목 끝 빈 집을 두드리랴

두드려 여직 우리의 이름을 나눠 부르랴

그때에도 우리는 기억하는지

담 너머로 번져오르는 동백꽃, 그 붉음에 취해

단 한 번 내다 건 紅燈 가까이 얼굴을 비춰

눈 가장이에 덧낀 주름으로 세월을 헤아릴지

시 <여수>를 읽고 <여수의 사랑>을 읽고, 다시 <여수>를 읽고 <여수의 사랑>을 넘긴다. 가슴 속 묵직한 것이 꿈틀댄다.


입력 : 2016.06.29

조회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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