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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오렌지 맛 오렌지>...우리 주변의 ‘비읍’을 찾아서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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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오렌지 맛 오렌지>...우리 주변의 ‘비읍’을 찾아서

7080문학이야기 : 성석제의 <오렌지 맛 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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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비읍과 닮은 우리 이웃의 얼굴들.

고교 교과서에 실린 성석제(1960~)의 단편  <오렌지 맛 오렌지>는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쓴 풍자적, 해학적 콩트다. 1997년 펴낸 소설집 《재미나는 인생》에 실렸다. 콩트를 장편(掌篇)소설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장편’이란 손바닥만한 크기의 짧은 글을 의미한다.

등장인물은 ‘비읍’과 ‘비읍의 아내’ 그리고 회사 동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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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재미나는 인생》
“비읍 씨,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말예요. 사면초가에서 왜 적군이 초가를 불러요?”
“역시 리을 선배님은 여자라서 역사는 잘 모르시누만. 그게 말임다. 항우가 적벽대전에서 유방에게 포위가 됐는데 말임다.”
“적벽이 아니라 해하(海河)겠지.”
“차장님, 적벽이나 해하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말임다. 한나라 군사가 초나라를 포위하고 오래 있다가 보니까네 초나라 유행가를 다 배웠다는 검다. 항우가 듣다가 그 노래가 너무 슬퍼서 아, 졌다 하고 자살을 했단 말임다.”

비읍은 편집부에 새로 들어온 신참치고는 아는 게 많다. 문제는 그가 아는 건 모두 조금씩 틀리다는 사실이다. 삼국지의 ‘적벽대전’과 초한지의 ‘해하의 결전’을 구분하지 못하듯.

그런데 비읍은 자신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동료들은 그가 실수할 때마다 그의 별명을 그 실수를 상징하는 말로 바꾼다. 가령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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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소설가
“비읍 씨. 일 안하고 아침부터 거기서 뭐해요?”
“차장님. 저 문방구 앞에서 우산 들고 있는 아가씨 다리 참 죽여줍니다. 가히 뇌살적이군요.”
“비읍 씨. 이거 비읍 씨가 교정 본 거죠? 그렇게 뇌살 좋아하면 쇄도(殺到)를 살도라고 하지 왜 그냥 놔뒀어요?”

“하하하. 리을 선배님. 선배님의 다리 역시 뇌살적이지만 저 아가씨는 춘추가 선배님의 연치에 비해 방년 이십 세는 적어 보이고 따라서 또 뭐냐. 원스 어폰 어 타임 투기는 칠거지악으로…….”

“지금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얏!”

그 다음부터 한동안 그의 별명은 ‘살도’가 됐다. 비읍은 뇌쇄(惱殺)를 ‘뇌살’이라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잡학다식 하지만 뭔가 한두 가지가 모자란다. 그 모자람의 여백이 주위를 즐겁게 한다.

비읍이 결혼을 했다. 동료들이 집들이에 갔더니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십 년 넘게 마누라를 호령하며 살아온 사람처럼 군다. 그의 아내는 몸빼 차림이다. 홍분(紅粉)의 아리따운 새댁을 보러 갔던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린다. 그리고 그 부인이 내온 음료수가 비읍에게 새로운 별명을 선사한다.

“내가 산 건 백 퍼센트 천년 무가당 오렌지 주스였단 말야. 그런데 그게 언제 오렌지 맛 음료로 바뀌었는지 모르겠어. 정말 환상적인 부부야.”

일동은 그의 집을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그를 당분간 ‘오렌지 맛’이라고 부르기로 만장일치로 합의한다. 또 그 아내를 ‘오렌지 부인’으로 명명한다.



성석제의 소설은 즐겁다. 마치 1930년대 김유정의 소설 <봄봄>이나 <동백꽃>에 비견된다. 김유정의 해학성이 당대 농촌사회의 토속성에 근간한다면 성석제의 해학성은 도회적이고 현대적이다. 두 작가의 공통점은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스하다는 점이다. 작가는 인물(비읍)을 이기적이고 얄밉게 그리고 있지만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이지 않다. 채만식의 풍자소설 <태평천하>와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

주변을 둘러보면 꼭 비읍을 닮은 문제적 인물이 한둘씩 있다. 이기적이지만 비밀이 없고 남의 상처엔 인색하나 때론 유쾌하며 그리 악의적이지 않다. 이런 인물은 타협을 잘하지만 명분을 중요시해 고집이 세다. 종잡을 수 없다고 할까.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은, 프로이드식(式)으로 복잡한 방어기제를 많이 쓴다는 의미다. 어쩌면 내면의 상처가 깊다는 뜻인지 모른다.

그런 인물에게 ‘살도’가 아니라 ‘쇄도’가 옳고, ‘뇌살’이 아니라 ‘뇌쇄’가 맞다고 가르쳐야 할까.

입력 : 2016.06.29

조회 :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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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 ‘Stand Up Dad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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