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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태완 ‘Stand Up Daddy’

[분석] 김억과 김소월의 詩 〈못 잊어〉 논란 2라운드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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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억의 〈못 잊어〉는 여인과 生離別 하며 쓴 즉흥시”

⊙ 〈못 잊어〉 담긴 김억의 편지는 1923년 3월 23일 작성. 素月 시보다 두 달 앞서
⊙ 김억, 유봉영 선생에게 ‘罪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 김억은 소월의 특별한 스승. 평북 정주 오산학교에서 소월의 詩才 키워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한국인이 가장 애송하는 시 중 하나인 김소월(金素月)의 〈못 잊어〉는 절절하고 가슴 시린 시어(詩語)만큼이나 시작(詩作) 배경에 관심이 가는 작품이다.
 
  넉 달 전 《월간조선》 5월호는 ‘김억과 김소월의 〈못 잊어〉’ 제하의 기사를 통해 소월이 《개벽》지(1923년 5월호)에 〈못 잊어〉를 발표하기 한 달 앞서, 시인 안서(岸曙) 김억(金億)이 유봉영(劉鳳榮) 선생에게 쓴 편지 속에 등장하는 〈못 잊어〉를 소개했다. 유봉영은 나중 《조선일보》 주필, 부사장과 학교법인 숙명학원 이사장, 제8대 국회의원(민주공화당)을 역임한 애국지사다.
 
  《월간조선》은 또 두 개의 〈못 잊어〉가 ‘시정(詩情)과 제재(題材)가 닮아 동일인이 쓴 작품의 변주(變奏)’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김억이 편지를 쓴 시점을 ‘1923년 4월 16일’이라 명시했다.
 
  그러나 《월간조선》 보도 이후 〈못 잊어〉가 담긴 김억의 편지 소장(발굴)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전북 완주 책박물관장이자 서울 인사동에서 고서점 호산방(壺山房)을 운영하는 박대헌(朴大憲)씨는 “오래전 언론인 L씨로부터 김억이 쓴 엽서와 편지 20여 통을 얻었는데 그 속에서 김억의 〈못 잊어〉가 실린 편지가 나왔다”고 밝혔다.
 
  1999년 영월책박물관을 설립한 그는 2013년 전북 완주군 삼례책마을로 박물관을 이전하여 책마을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저서 《서양인이 본 조선》(1996)과 《우리 책의 장정과 장정가들》(1999)로 제37회와 40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박대헌 관장은 《월간조선》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편지 시점이 1923년 4월 16일이 아니라 그해 3월 23일이며, 소월의 〈못 잊어〉 풍이 묻어나는 시는 원고지에 쓰였고 모두 4장”이라는 것이다.
 
 
  “소월의 〈못 잊어〉 풍의 시는 원고지에 쓰였고 모두 4장”
 


  편지 겉봉의 수신처는 ‘봉천성 성소서변문 외(奉天省 城小西邊門 外 太平寺西胡同) 유봉영’, 발신처는 ‘평북 정주(朝鮮 平北 定州郡 郭山) 안서’로 기재돼 있다고 밝혔다. 박 관장은 “고향(정주)에 머무르고 있던 김억이 중국 봉천으로 옮겨다니던 유봉영에게 쓴 편지”라며 “유봉영은 당시 평북 철산(유봉영의 고향)과 경성, 중국 상해, 봉천 등지를 오갔다”고 했다.
 
  안서는 〈못 잊어〉를 담은 편지 겉봉 뒷면에 ‘반드시 재회시(再回示) 줍시요. 그렇지 않으면 돌려줍시오. 떠나기 전에 꼭 일자(日字)를 가르쳐 줍시오’라고 썼다.
 
  반드시 답장을 달라고, 답장을 안 하려거든 편지를 되돌려달라고 청한 것이다. 편지에 무슨 사연을 담았기에 편지봉투에 그런 애절한 글을 부기(附記)했을까.
 

김억의 1923년 3월 23일자 4장의 원고지 편지.

  김억이 240자(12×20) 원고지에 쓴 4장의 편지 전문을 살펴보자. 시인은 편지 첫머리에 ‘1923년 3월 23일, 평북 정주군 곽산(에)서’라고 적어 놓았다.
 
  도입부는 사변적인 내면의 심경(‘나는 그저 그 모양입니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찾으려는, 그러나 그것은 암만해도 쓸데없는 일인 듯합니다.’)이 이어진다. 그러다 두 번째 장 편지 말미에 이런 사연을 고백한다.
 
  〈…광인(狂人)? 이취(泥醉)? 연애열중(戀愛熱中)? 이 세 가지만이 현실세계의 모든 고통에서 자유롭게 하여 주는 듯합니다. 진정한 고백을 하면 나는 그동안 웃음은 로맨스를 가졌습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17세의 소위 생이별(生離別)짜리와 놀았습니다. 한데 그것이 곽산 일주(郭山 一周)에 가득히 소문이 났습니다. 하고 저 편에서는 공동생활(共同生活)을 청(請)하여, 참말로 딱하였습니다. 만은 그것도 이제는 지내간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온갖 힘을 다하여 다른 곳으로 살림 가도록 하였습니다. 죄(罪)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사람의 맘이란 물과도 같고 바람과도 같은 것이매 그것을 어찌합니까. 일전에 이러한 말을 - 그 말은 쓰지 않습니다. - 듣고 즉흥(卽興)으로 시(詩) 하나 지어주었습니다.…〉
 
  시인 김억은 ‘같이 살자’고 청하는 17세 난 애인을 떠나보낸 데 ‘죄를 지었다. 그러나 어찌하느냐’고 토로한다. 그러면서 떠나는 이에게 즉흥으로 시를 지어 주었다. 이것이 〈못 잊어〉인 것이다. 네 번째 장 편지에 〈못 잊어〉가 실려 있다. 시 전문은 이렇다.
 
 
  떠나는 여인에게 ‘못 잊도록 사무치게 생각이 나거든…’
 
  〈못닛도로 사모차게 생각이 나거든, / 야속하나마 그런데로 살으십시구려, / 그려면 더러는 니저도 집니다.
  못닛도록 살틀하게 그립어오거든 / 설으나마 세월만 가라고 합시구려, / 그러면 더러는 니저도 집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럿케 말하겠지요, / “사모치게 생각나는 못니즐 당신을 / 그대로 생각을 안는다고 니저바리며,
  살틀하게 그립어오는 못니즐 당신을 / 그런대로 세월을 보낸다고 닛겠읍닛가?”〉
 
  이 시를 현대어로 고쳐 쓰면 아래와 같다.
 
  〈못 잊도록 사무치게 생각이 나거든 / 야속하나마 그런대로 사시구려, 그러면 더러는 잊어도 집니다.
  못 잊도록 살뜰하게 그리워 오거든 / 서러우나마 세월만 가라고 하시구려. / 그러면 더러는 잊어도 집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렇게 말하겠지요, / “사무치게 생각나는 못 잊을 당신을 / 그대로 생각을 않는다고 잊히리며,
  살뜰하게 그리워 오는 못 잊을 당신을 / 그런대로 세월을 보낸다고 잊겠습니까?”〉
 
  그런데 두 달 뒤인 그해 5월에 발간된 《개벽》지에 김소월은 〈사욕절(思慾絶)Ⅰ, 못잊도록 생각이 나겠지요〉를 발표한다. 김억의 〈못 잊어〉와 시적 제재가 비슷하다. 《개벽》에 실린 전문을 옮겨본다.
 
  〈못닛도록 생각이 나겟지요, / 그런대로 歲月만 가랍시구려.
  그러면 더러는 닛치겟지요, /아수운대로 그러케 살읍시구려.
  그러나 당신이 니르겟지요, /“그립어 살틀이도 못닛는 당신을
  오래다고 생각인들 떠지오릿가?”〉
 

전북 완주 책박물관장이자 서울 인사동에서 고서점 호산방(壺山房)을 운영하는 박대헌(朴大憲)씨.

  박대헌 관장은 “안서의 편지에 실린 시와 《개벽》에 발표한 소월의 시, 소월의 시집 《진달래꽃》(1925년 刊)에 수록된 〈못 잊어〉는 시어와 리듬에서 차이가 날 뿐, 같은 시가 개작을 통해 변모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리만큼 내용과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못 잊어〉는 떠나는 임을 그리며 쓴 동기가 분명한 만큼 원작자가 안서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도 덧붙였다.
 
  “안서는 소월의 특별한 스승입니다. 안서는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소월의 시재(詩才)를 발굴해 키웠으며, 그를 문단에 데뷔시키고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 스승’이 되어주었습니다. 소월이 쓴 대부분의 시를 미리 받아 첨삭(添削)·정서(正書)한 다음, 잡지사에 넘겼고요.”
 
  안서와 소월의 시가 닮은 것은 다른 시에서도 확인된다. 안서의 또 다른 편지에 시 〈사향(思鄕)〉이 나오는데, 첫 행이 ‘공중(空中)에 나는 제비의 몸으로도’로 시작한다. 그런데 소월의 《진달래꽃》에 실린 〈제비〉의 첫 행도 ‘하늘로 날아다니는 제비의 몸으로도’로 되어 있다.
 
  사실, 소월은 1920년대 초 한국 문단에서 ‘소(小)안서’로 불렸을 정도다. 안서는 소월이 죽은 뒤에도 유고를 모아 잡지에 발표했고 1939년과 1948년 시집 《소월시초》와 《소월민요집》을 펴냈을 정도로 제자를 못 잊었다. 소월이 20세기 한국의 대표시인이 된 데는 스승이 있어 가능했을지 모른다. 사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초창기 한국문학을 꽃피웠던 것이다.
 
  박 관장은 “안서의 편지들은 소월의 대표작인 〈못 잊어〉와 〈제비〉의 원형을 밝힐 수 있다는 점 외에도, 근대문학사와 관련해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력 : 201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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