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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오봉 ‘주말 나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쓰시마(對馬島) 바다낚시터 아소만(淺茅灣)에 백제인 들이 쌓은 가네다城

이오봉  월간조선 객원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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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2년 전인 663년 동쪽에서 쳐들어오는 신라 5만 군사와 산동반도에서 건너 온 당나라 13만 대군이 일본에서 건너간 구원군와 백제군 2만 7천명과 4차례에 걸쳐 백촌강(지금의 백마강)에서 대전을 치른다.
이 전투에서 백제군과 일본군은 전멸을 하고 마침내 사비성이 함락된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을 비롯한 수많은  군신과 백성들은 그해 8월 포로로 당나라로 끌려갔다.
일부 왕족과 백성들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서해안을 따라 남으로 내려간 백제 유민들이 제주도를 거처 첫 기착한 곳은 쓰시마.
이곳을 거처 이끼(壹岐)섬을 거처 지금의 규슈지방의 후쿠오카에 닿았다.

그들은 나당연합군이 일본에 까지 추격해 올 것으로 예상하고 2년 후 1차 방어선으로 대마도 아소만 내려다보이는 흑뢰성산(城山의 다른 이름, 黑瀨城山)에 가네다성(金田城)을 쌓았다.
한반도를 향하고 있는 표고 276m의 바위산을 이용해 축성된 이 산성은 그야말로 천연 요새로 백제산성의 모습을 그대로 본떠 축성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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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시마초 미카타 우끼조 낚시 민박집에서 올려다 보이는 조야마(城山) 연봉. 동남쪽 기슭에 가네다성(金田城)이 있다. 정상에는 로일(露日)전쟁 당시에 대한해협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위용을 자랑했던 포진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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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하라港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미쓰시마초(美津島町) 미가타(箕形)의 우끼조 낚시 민박집. 한국 스포츠피싱 ZEROFG 협회 회장인 민병진(58, 체육학 박사, 상명대 특임교수)가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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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2년 전의 고성으로 원형이 잘 보존된 아소만 동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가네다성. 아소만이 내려다보이는 남문지 근처 성터와 건물지를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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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다성은 성 안쪽은 판축으로 쌓고 외벽은 자연석을 짜 맞춰 쌓아 견고한 백제성의 특유의 구조로 지어졌다. 성 둘레에 곳곳에 망루 역할을 하는 치(雉)를 갖췄다. 명치유신 당시 성을 보수하면서 상부 돌쌓기 형태가 일부 달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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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성 특유의 구조를 갖춘 가네다성(金田城). 산 정상과 바다를 둘러싸고 축조된 천연의 요새인 가네다성은 3곳의 계곡을 끼고 있으며 배수구와 우물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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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원형이 발굴 된 가네다성(金田城)을 일주하면서 지나는 제2 성문지(城門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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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가 울창한 가네다성 입구.

예로부터 조선식 산성, 백제식 산성이라 불리는 가네다성은 삼국사기와 중국의 구당서, 일본서기(日本書記)에  천지(天智) 6년(667)에 대마국에 가네다성(金田城)를 쌓았다고 축조연대를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서기 665년 8월 망명해 온 수많은 백제 유민들이 일본에 건너와 대마도 말고 이키섬(壹岐島-규슈와 쓰시마 사이에 있는 섬), 지금의 규슈지방을 일컫는 츠구시(築紫)에 방어병력과 봉수대를 배치하고 미즈키(水城)등을 쌓았다.
오늘날 대마도에 남아있는 가네다성을 비롯하여 이끼섬과 규슈에 있는 오노죠(大野城), 미즈키(水城), 기이죠(基肄城)등은 모두 이 시기에 백제인들이 주축이 되어 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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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式 산성을 본떠서 임진왜란을 대비하여 쌓았다는 이즈하라(嚴原) 뒷산 (217m)에 축조된 시미즈야마죠(淸水山城). 한국의 고고학 발행인 최병식 박사 일행이 답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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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懸 대야성市 대야산 또는 사천왕사산 이라 불리 우는 산에 있는 오노성(大野城). 몽촌토성을 닮았다. 백제인들이 쌓은 조선식 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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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오카縣 다자이후(大宰府)시 뒷산, 해발 410m의 오노(大野)산에 665년 산허리를 따라 8km 정도의 성벽을 축성했다. 백제式 산성인 대야성이다. 벌판 너머로 후쿠오카 시내와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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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축(版築)기법으로 단단하게 토성을 쌓은 다음 그 위에 석축을 쌓는 백제式 산성인 오노성(大野城). 도로로 일부 구간이 끊겼다.


이런 성들의 축조에 백제의 지배층이 관련되어 있다는 기록은 물론 현재 성곽의 배치관계와 축조기법 뿐만 아니라 출토되는 그릇조각이나 기와조각이 부여에서 보는 것과 동일하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성문과 수구문(水口門)을 축조하였으며 대부분의 성벽은 돌로 된 기단위에 판축(版築)의 토루(土壘)로 구성됐다.
 
바위 절벽을 따라 이어진 석축과 3곳의 계곡을 끼고 축성된 높이 2-3m, 길이 5.4km의 가네다성은 바다와 닿은 3개의 골짜기에 수문과 성문이 설치됐다.
 최근 제2성문과 제3성문 사이에 주변에서 다수의 건물 유적지와 유구(遺構)를 발굴했다. 이곳은 방인(防人, 관동지방에서 파견되어 군사적 요지를 경비하던 병사)들의 숙소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백제 유민들이 바다에서 건져 올린 어물로 배를 채우며 무거운 돌을 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며 쌓았을 가네다성(金田城)은 나가사키懸이 국가지정 특별사적지로 지정하면서 발굴과 복원을 계속하고 있다.

아마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난다면 쓰시마로 수많은 우리 피난민들은 쾌속선이나 어선이나 요트를 타고 백제 유민들처럼 전쟁을 피해 일본 쓰시마로 몰려가지 않을까.
핵폭탄이나 미사일 폭격을 피해 땅속 깊이 대피를 하지 못한다면 가장 가깝고 안전한 곳으로 쓰시마만한 곳이 어디 또 있겠는가.

65년 전 6.25전쟁 중에도 수많은 피난민들이 몰래 배를 타고 쓰시마로 몰려들어 한 때 3만 여명의 주민 가운데 5천 여 명이 한국인들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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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카츠港에 내리는 한국인 관광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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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특유의 리아스式 해안을 잘 보여주는 에보시다케(鳥帽子岳)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아소만.


한일(韓日) 국경의 섬인 쓰시마는 부산에서 49.5km, 여객선으로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면 갈 수 있다.
경북 울진에서 130km 떨어진 울릉도 보다 훨씬 가깝다.

지금 한해 20만이나 되는 한국관광객들이 쓰시마를 찾는다.
우리 젊은 바다 낚시인들에게는 쓰시마는 감성돔과 벵에돔 낚시 천국으로 떠오른다.

호수인가 바다인가, 쓰시마 미쓰시마초(美津島町) 미가타(箕形) 우끼죠 낚시 민박집 마당에서 올려다 본 가네다성.
아소만의 바닷물에 비친 성산의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면 쓰시마로 원정을 간 한국인 낚시인들이 탄 낚싯배들이 한반도와 마주보고 있는 서쪽 바다를 향해 달린다.
대한해협과 마주보고 있는 아소만 입구의 갯바위나 방파제를 찾아가 대물 감성돔과 벵에돔을 낚는다.

“수심 10m 내외로 진주와 가리비 양식장이 널려 있는 아소만에는 갑각류 등 감성돔의 먹이가 풍부한 탓에 한낮에도 50cm급 감성돔이 낚입니다.
한낮 양식장의 작업시간에 맞춰 먹이활동을 하는 길들여진 감성돔들은 해가 지면 입질을 뚝 끊습니다.
낚시터에서는 한낮에 뿌리는 밑밥에 정비례하여 감성돔이 낚이지요.
우리나라처럼 새벽에 낚싯배를 타고 갯바위를 찾아가야만 하는 전투낚시가 아니라  대마도 감성돔 낚시는 가능성 있는 포인트를 찾아갑니다.
아소만의 양식장 어부들이 바다에서 작업을 하는 아침 9시에 맞춰 배를 타고 나가서 근처에서 하루를 즐기는 힐링낚시를  하는 것입니다.
잡식성인 감성돔은 이곳에서는 육지에서 멀지 않은 수심 5m에서 먹이 활동을 하고요.
겨울에는 수심 10m에서 놀지요.
먼 바다 갯바위를 찾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쓰시마 아소만은 벵에돔은 물론 감성돔 낚시의 천국입니다.
꼭 지켜야 할 것은 수심이 얕은 근처에서 먹이 활동을 하기 때문에 발을 구르거나 큰 소리로 내서는 안 됩니다. “

민박집에서 나와 아름다운 작은 섬들을 둘러보면서 10여분 만에 닿는 아소만 감성돔 낚시 포인트를  찾아가는 동안, 우끼조 민병진 사장이 들려준 이야기다.

우리 조상들이 삼국시대이전 부터 전전긍긍하며 보살피고 지켜 준 일본의 대마도 땅에서 지금은 그 후손들이 환한 얼굴로 낚시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삶을 맘껏 즐기기 위해서, 초들물 타임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밑밥을 던지고 기대와 긴장 속에  대한해협에 낚시를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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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우끼조 낚시민박집에 머물며 2박3일 해외 원정낚시를 하는 부산 낚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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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8일 아소만 마구와지마(馬耙島) 해상공원 방파제에서 49cm 감성돔을 낚은
부산에서 온 이원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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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한 낚시인이 37cm 감성돔을 릴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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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8일 부산낚시인들의 조황. 왼쪽부터 이원석, 화성종, 최용운, 권기현, 손희식, 우동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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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들물에 눈앞에서 어른거리던 감성돔들이 하나, 둘씩 올라오는군요.” 최용운씨의
감성돔과의 만남은 이렇게 이뤄졌다.


6.25 한국전쟁 이후부터 1960년대 말까지 변칙무역(밀수)의 소굴이었던 쓰시마, 삼국시대부터 한반도 연안을 수시로 드나들면 노략질을 하고 이조시대에는 원조를 받으며 살면서도 호시탐탐 조선 침략의 야욕을 키우는데 앞장섰던 쓰시마에는 가네다성 말고도 우리역사의 흔적이 쓰시마 전역에 수없이 많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이 실효지배를 하면서 일본 땅이 돼 버린, 언제나 눈앞에 어른거리는 쓰시마.
이곳에 사는 쓰시마 주민들은 한국인의 DNA가 100% 똑 같다는 연구 발표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너무 가까이 있기에 서로를 위해서 서로 오가며 살 수 밖에 없는 땅이다.
 
그곳에서 낚시를 하면서 백제인 들의 숨결을 들리는 가네다죠를 한번 둘러보면서 우리 후손들과 한국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듯하다.
리아스式 해안이 잘 발달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아소만의 잘 보존된 자연을 맘껏 감상하면서-.
낚시 초릿대만 눈여겨보지 말고 눈을 돌려 백제인 들이 쌓은 한 많은 가네다성(金田城)이 있는 성산(城山, 조야마 276m)을 올려다보라.

입력 : 2015.10.16

조회 : 14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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