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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오봉 ‘주말 나들이’

다시 세운 비운의 ‘한국땅’ 표시한 한국산악회 독도 표지석

이오봉  월간조선 객원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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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산악인 5천 여 명이 회원이 참가하고 있는 (사)한국산악회(회장 장승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명예교수)가 1945년 9월 15일 창립 70년을 맞는다.

1930년대부터 조선인들만으로 산악활동을 해오던 백령회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해방을 맞은 지 한 달 뒤인 1945년 9월 15일 YMCA강당에서 창립총회를 가졌다.
명칭을 조선산악회라 하고, 초대 회장에 민속학자인 송석하(宋錫夏) 선생을, 부회장에 조선일보 홍종인(洪鍾仁) 주필을 추대하였다.

1945년 9월 15일 광복 이후 한 달 만에 진단학회(震檀學會)에 이어 두 번째 사회단체로 생겨난 한국산악회는 6.25 한국전쟁 등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오늘 날까지 산악운동의 외길을 걸어 왔다.

한국산악회가 산악활동의 하나로 시작한 첫 번째 활동은 국토구명사업이었다.
1946년 2월 한라산을 시작으로 오대산, 태백산맥, 소백산맥, 울릉도.독도 학술조사 활동을 시작으로 1951년 8월 전설 속의 섬으로 알려져 왔던 제주도 파랑도(이어도)를 탐사했다.

그 후 서해 선갑도와 덕적군도 등과 다도해에 이르기 까지 전 국토의 섬과 산에 대한 학술조사 사업은 계속됐다.

광복 3년 뒤인 1948년 1월 한라산에 적설기 등반대를 파견하였고,
1949년 5월에는 등산의 대중화를 위해 일반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제1회 등행경기도 개최하기도 했다.

1955년까지 이어진 국토구명사업은 전국 41개 산과 21개 도서지역에서 실시되었으며 그중에 가장 뜻 깊은 성과는 1947년 8월 16일 부터 시작하여 한국전쟁 중임에도 한 차례, 그리고 휴전 후 1953년 10월에 실시한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다.

실제로 1948년 미군의 독도 폭격 사건과 1952년 평화선을 둘러싼 일본의 일방적인 독도영유권 주장이 발생하였을 때 한국정부가 적극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1947년 8월 최초로 실시한 독도 실측 등 독도에 관한 종합 학술조사 자료가 큰 힘이 됐다.

당시 한국산악회의 독도조사에 참여한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대 대장에는 민속학자로 초대 국립민속박물관장이였던 송석하(宋錫夏, 1904-1948), 부대장인 홍종인(洪鍾仁, 1903-1998, 前 조선일보 회장)과 서울대 교수이자 국어학 방언학의 대가였던 방종현(方鍾鉉, 1905-1952) 등 당시 여러 전문 분야에 종사했던 한국산악회 회원들이 오늘날 온 국민들이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든 분들이다.

금년 창립 70주년을 맞이한 한국산악회는 이번에 리앙쿠르 대신 DOKDO KOREA로 변경하여 2015년 7월 6일 국가지정문화재현상변경허가를 받아 그 자리에 다시 세웠다.

처음 1953년 10월 15일에 한국산악회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단의 홍종인 한국산악회 회장이 설치했던 최초의 표지석은 일주일 만에 일본에 의해 철거됐다.
그 후 2005년 일본 시네마縣이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는 등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 수위를 높이자 경상북도는 그 해 8월 15일 한국산악회가 처음 세웠던 표지석을 복원했다.

그러나 2008년 8월 미국의회 도서관이 독도를 가리키는 장서 분류이름을 ‘독도’에서 리앙쿠르(Liancourt)로 바꾸려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산악회의 독도 표지석에 적힌 이름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 되자 경상북도는 공무원을 보내 전격적으로 표지석을 자진 철거했던 것이다.

오는 9월 15일 ‘한국산악회 창립 70주년 기념’ 행사의 하나로 지난 8월 7일에는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독도학술대회도 가졌다.

한국산악회 박종한 부회장을 비롯하여 영남대 김호동 교수, 서원대 송호열 교수, 국제해양법학회 박현진 이사, 신순식 경상북도 독도정책관이 한국산악회의 1947년에서 1953년에 걸친 독도학술조사의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 의미를 재조명하였다.
경희대 최승환교수, 이화여대 정병준 교수,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 동북아역사재단 김영수 연구원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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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7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있었던 한국산악회 창립 70주년 독도학술회의 주제 발표자와
토론자들.
왼쪽부터 김호동(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교수), 송호열(서원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신순식(경상북도 독도정책관), 박현진(국제해양법학회 이사), 최승환(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호사카 유지(세종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정병준(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 김영수(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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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7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있었던 한국산악회 창립 70주년 독도학술대회에서
축사를 하는 장승필(72, 張丞弼) 한국산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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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7일 300여명의 산악계와 독도 관련 학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사단법인 한국산악회와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동북아역사재단이 공동 주최한 한국산악회 창립 70주년 기념
독도학술대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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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6일 독도의 동도에 세워지고 있는 한국산악회 새 표지석. 뒷면이 보인다. 사진–한국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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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6일 새로 건립된 한국산악회 독도 표지석.
한국산악회 장승필 회장(맨 왼쪽)등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개막식을 가졌다. 사진-한국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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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6일 옛 자리에 새로 만들어 세워진 비운의 한국산악회 독도 표지석.
숱한 사연을 안고 68년 만에 다시 세워졌다. 사진-한국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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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0월 15일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단은 독도 측량을 위해 독도의 동도에서 1박을 했다.
전 과정은 당시 홍종인 단장의 권유로 참가한 사진작가 김한용 선생의 기록으로 지금까지 남아있어 당시
한국산악회의 활약상을 잘 전하고 있다.
독도의 동도에 야영지를 마련한 한국산악회 독도학술조사단. 사진-김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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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0월 15일 독도 측지와 지도 작성을 위한 조사활동을 하는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단원들.
독도의 절벽을 기어올라 측량용 폴을 설치했으며 이를 이용해 동도와 서도에 대한 실측을 시도했다.
사진-김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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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0월 15일 세 번째 상륙한 독도학술조사단은 한국산악회 회장 홍종인(洪鍾仁, 1903-1998, 당시 조선일보 회장) 단장, 국문학자 이숭녕(李崇寧, 1908-1994, 前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부단장을 포함해서 35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독도와 부근 수역 조사, 독도 측지와 지도 작성, 독도와 울릉도 도민의 생활상태 조사, 문화영화 ‘울릉도와 독도’ 촬영과 울릉도와 독도’ 보고서 간행, 조사기록 보도, 계몽선전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사진-김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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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0월 15일 해군 함정을 타고 독도에 상륙한 한국산악회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단원들이 독도의
동도 자갈마당에 세워 놓은 ‘島根縣 隱地郡 五箇村 竹島(시마네켄 오치군 고카무라 다케시마)’라고
쓰인 2m가 넘어 보이는 나무 말뚝을 뽑아내고 있다.
이 나무 말뚝은 6·25전쟁 발발 2년째인 1952년 6월25일 미국 성조기를 단 일본의 수산시험선을 타고
독도에 상륙한 일본인 9명이 설치했다고 한다. 사진-김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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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0월 15일 한국산악회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단장인 홍종인(洪鍾仁, 1903-1998, 前 조선일보 편집국장, 주필, 부사장, 회장 역임) 한국산악회 회장이 일본인 들이 불법으로 설치한 독도가 시마네현 소속 일본 땅이라는 말뚝을 뽑아내고 그 자리에 한국산악회 명의의 전면에 ‘독도’ ‘獨島’ ‘LIANCOURT(리앙쿠르)’를 새긴 표지석을 세우고 있다.
‘독도와 獨島’를, 아래에는 국제 해도에서 독도를 지칭하는 LIANCOURT(리앙쿠르)란 프랑스어를 화강석에 새겨 넣었다.
이 표석은 1년 전인 1952년에 설치하려다 못한 것이라 뒷면에는 1952년 8월15일을 뜻하는 영문 ‘15th AUG 1952’(1952년 8월15일)이 새겨져 있었다.
표석 옆면에 표석을 실제 세운 날인 53년 10월15일을 나중에 추가로 새겨 넣었다.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한 장의 사진이다. 사진-김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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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있었던 김한용 선생(가운데) 8순 기념 사진전에 처음으로 발표된 독도사진 작품 앞에 산악인이며 저술가인 손경석(孫慶錫, 1926-2013, 前 한국산악회 부회장, 맨 왼쪽)과 서립규(77, 徐立圭 우림콘크리트 회장, 前 한국산악회 부회장, 맨 오른쪽)씨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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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8월 당시 월간 국제보도(발행인 송정훈, 작고) 사진기자였던 김한용(91, 金漢鏞, 광고 사진가)씨가 독도학술조사단에 합류하여 촬영한 독도 학술조사 활동 기록사진들이다.
2003년 3월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연 김한용 선생 8순 기념 사진전에 처음으로 발표되면서 언론의 큰 관심을 끌게 됐다.

지난 70년간 (사)한국산악회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동해의 작은 섬 독도가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 자체였다.

입력 : 2015.08.20

조회 : 4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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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봉 ‘주말 나들이’

ob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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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일성 (2015-10-05)

    큰 소리 없이 묵묵히 꼭 해야 할 일을 한 한국 산악회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 중심에 있는 장승필 동문의 노력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상세히 설명해서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어 이오봉 동문에게도 감사합니다.

20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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