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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오봉 ‘주말 나들이’

우리 한강을 어찌해야 할 거나?

이오봉  월간조선 객원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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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前 하늘에서 본 서울의 한강

6.25전쟁이 나기 3년 前 황해도 연안의 고향 집을 떠나  부모님과 함께 첫발을 디딘 신천지는 마포江이였다. 지금의 마포대교 바로 밑이다.
밤새워 한강 하구에서 江을 거슬러 온 황포돛배가 마포 나루터에 우리 가족을 내려놨다. 강변에는 새우 젖을 독에 담아 놓고 파는 흰 포장을 친 노점들이  즐비했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 강 건너로 모래섬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고 江 건너 한편에는 작은 바위산과 그 주변에는 웅크린  초가집들이 얼핏 보였다.
여의도를 개발을 하면서 폭파시켜 없애버리고 그 루터기만 남은 지금의 밤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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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初 여의도. 한강의 토사가 퇴적된 모래땅으로 고려시대 때부터 소나 말의 방목장으로 쓰였다. 1916년 군용비행장이 들어서면서 1958년까지 국제공항으로, 그 후 1971년 2월까지 공군비행장으로 이용됐던 여의도에 7,533m의 윤중제를 쌓고 메워 택지로 조성했다.


마포나루 한쪽 연안에는 오래 전 부터 한겨울 마포江에서 채취한 얼음을  보관했다던 얼음 창고 건물이 강 언덕에 우뚝 서 있었다.
크면서 건물의 모양이 알렉산드르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이 13년간 갇혀 있던 감옥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상상을 하게 했던 건물이다.

뜨거운 한여름 동네 꼬마들은 홑적삼에 고무줄 달린 팬티차림으로 검정 고무신을 질질 끌고 마포江까지 걸어와 물놀이를 하곤 했다.
여의도와 밤섬을 건너다 주는 나룻배도 있지만 배 삯이 없어 마포江 연안에서 미역을 감는 것이 고작 이였다.
마포江을 건너 여의도로 헤엄을 처서  건너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휘도는 깊은 강물에 빠져 죽는 아이들도 많다고 늘 들어왔다.
간간이 살기 힘들어 치마를 뒤 짚어 쓰고 마포江에 뛰어 들었다는 아낙네들의 슬픈 이야기도 들려오기도 했다.
장마철이면 마포강 언덕으로 물 구경을 나갔다. 흙탕물에 떠내려 오는 통나무들과 초가지붕을 올라타고 떠내려 오는 돼지들도 볼 수 있었다.
당시 시내에서 마포까지 전차를 타고 울 수 있었던 마포강변은 여름 피서지로, 산책 코스로, 강 낚시터로 뚝섬과 함께 서울 시민들이 많이 찾던 곳이었다.

1960년대 初까지 비행장과 밭으로 갈아 오던 여의도에 윤중제(輪中堤)를 쌓고 다리를 놓고 신도시로 개발하면서 처음 보았던 67년 前의 마포江 일대의 옛 모습은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6.25 전쟁으로 한강 하구가 막힌 이 후에도 마포 새우 젖 동네의 명맥을 이어가던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건만 그 후 차츰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어디 마포江와 여의도 일대 뿐 만이겠는가?

‘한강의 기적’을, 눈부신 경제 발전 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겠다며 한강의 자연 생태나 역사 문화적인 흔적들을 서둘러 거둬치우고 양안에 일자型 아파트 단지를 세우고 江을 끼고 달리는 왕복 8-10차 도로를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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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대교와 영등포구 당산동 일대. 강 건너는 마포구 성산동과 상암동 이다. 비어있던 江 연안 일대는 아파트와 빌딩 숲을 이뤘고 강변 둔치는 공원으로 조성됐다.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의 자리는 어디쯤 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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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구 여의도 샛강 상공에서 본 양화대교와 공사 중인 당산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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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빌딩이 들어서기 시작한 영등포구 여의도 옛 5.16광장과 국회의사당 일대. 밤섬 위를 지나는 서강대교가 공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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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구 여의도동 아파트 단지. 사진의 오른쪽에 지금의 여의도 63층 빌딩이 세워지고 있다. 기초공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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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서울 도심-여의도-영등포를 잇는 마포대교와 용산구 원효로를 잇는 원효대교 일대의 옛 한강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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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용산구 이촌동과 동작구 노량진동을 잇는 1900년에 세워진 한강철교와 한강대교(가운데). 왼쪽은 1981년 10월에 완공된 원효대교.


뒤늦게 서울市는 2007년부터는 2030년까지 1천만 시민과 세계인이 즐겨 찾는 한강을 조성하는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펼쳐왔다.
한강 중심의 도시 공간 구조를 재편하여 미래성장 동력의 기반이 되도록 한다며 상암, 마곡, 난지, 당인리, 여의도, 용산, 흑석, 행당, 잠실지역을 워터 프론트 타운(水邊도시)으로 조성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한강변 건축물의 경관관리와 강 안팎의 분위기를 새롭게 보여주는 조명 시설을 하여 한강변의 경관을 개선하고 경인운하와 미래의 서해 개방에 따르는 주운(舟運)수로를 확보하여 운행 여건에 적합한 선박을 도입하고 터미널 조성을 해 서울을 ‘항구도시 서울’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한강과 지천(支川)을 아우르는 동서남북의 생태 네트워크(Eco-Network)를 구축하여 생명이 살아 숨 쉬는 한강을 만들고 주변 도로망 등을 개선하여 시민들이 접근하기 쉬운 테마가 있는 역사, 문화, 교육의 체험공간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2010년까지 1단계 사업으로 한강공원 특화사업, 생태공원 조성, 플로팅아일랜드 분수 조성 등 33개 사업을 추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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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구 흑석동과 도심으로 이어지는 용산구 한강로와 맞닿아 있는 한강대교. 노들섬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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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동작구 반포동 반포아파트 단지와 용산구 서빙고동을 잇은 반포대교 양 연안. 美 8군기지內 용산공원과 국립중앙박물관 터가 보인다. 동작대교가 공사 중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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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한강변 둔치공원 개발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빈터가 많이 남아 있던 강남구 신사동과 용산구 한남동, 이태원동 일대. 한남대교가 경부 고속도로와 연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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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 일대. 동호대교 공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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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합수머리를 지나는 성수대교 양 연안. 지금의 서울숲은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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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대교 건너 뚝섬유원지와 광진구 자양동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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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구 천호동 광나루유원지 상공에서 본 천호대교(왼쪽)와 광진교. 강 건너는 광진구 광장동과 구의동 일대.


올 4월 서울市는 독일 라인江을 모델로 삼아 여의도 공원의 5배에 달하는 한강 숲을 조성하는 걸 골자로 하는 한강 자연성 회복 기본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동안 오세훈 前 서울시장이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추진하긴 했지만 중앙 정부가 서울시와 손잡고 한강종합개발에 나서겠다고 한 것은 30여 년 만의 일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9월 1일에 만나 한강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할 공동 테스크포스(TF)를 만들기로 했다.

30년 前 80년대 한강 개발은 1조원에 가까이 투입해 4년 여 만에 끝냈다.
이번 한강종합개발 계획은 앞으로 50년 이상을 내다보고 만들어 내놔야 한다. 그동안 졸속으로 시행했던 국토종합개발사업으로 인하여 국민의 혈세가 줄줄이 세나간 예를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역대 정권들이, 역대 서울시장들이 그랬듯이 이번  한강종합개발계획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안 된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서비스업 육성 대책의 하나로 한강을 중심으로 볼거리, 즐길 거리, 먹거리를 개발하면 관광객이 늘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한강의 자연과 역사와 문화를 되살려서 우리의 정체성도 되찾고 즐기고 먹고 사는데 보탬이 되는 진정한 한강종합개발계획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유럽의 江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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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나江 강변에 자리 잡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1849년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손꼽히는 세체니 란츠히드 다리 등 8개의 다리가 강을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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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1억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는 체코 프라하의 엘베江 지류인 블타바江 강변. 카를교 상류에 수중보(水中洑)가 설치된 블타바江 연안 곳곳에는 백조가 노닐고 시민들이 접근하기 쉬운 수변공원으로 조성했다.


유럽에서 2번째로 긴 2,200km의 두나(도나우) 江은 東西 문화를 실어 나르는 江이다.
유럽의 여러 江들을 둘러보면 알뜰히 가꿔서 강가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각종 수상 스포츠를 하거나 낚시를 하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운하를 만들어 화물선도 다니곤 하지만 무엇보다도 대도시의 江에는 관광객들을 가득 실은 수많은 유람선들이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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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베江의 지류인 독일 베를린 슈프레江 강변의 박물관 섬. 베를린 시내를 돌아보는 유람선들이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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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풍치를 느끼게 하는 독일 베를린 슈프레 강변 공원. 인공 백사장을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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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으로 유입되는 라인江 동쪽 연안의 내륙 항구 도시인 독일 뒤셀도르프. 루르공업지대의 생산품을 실어 나르는 화물선과 유람선들이 분주히 오간다. 강변을 친환경 수변 공간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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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하이델베르크 古城에서 내려다 본 라인江의 지류인 네카어江. 데오도어 다리 상류에 설치된 가동보(可動洑)가 강물의 흐름을 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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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을 타고도 돌아 볼 수 있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江 내륙 운하에서 본 ‘피의 사원’. 1883에 착공하여 24년만인 1907년에 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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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네바江을 거슬러 오르내리는 관광 유람선들. 배를 타거나 강변 산책을 하려는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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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의 모스크바江을 끼고 있는 크레믈린 궁전. 유람선을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 볼 수 있다.


江은 용수를 공급하는 것만 아니라 인류 문명의 발달에 크게 기여를 해 왔다.
江의 이 두 기능을 얼마나 잘 활용을 하느냐가 국가 발전을 크게 좌우한다.
강변에서 인류의 문명이 시작 되었듯이 지금이라도 한강의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먼 앞날을 내다보고 잘 가꾸어 새로운 文明의 터전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입력 : 20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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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봉 ‘주말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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