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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오봉 ‘주말 나들이’

호연(浩然)이라는 두 글자를 늘 가슴에 품었던 조선 중기 여류 시인 金浩然齋(김호연재)를 만나다

이오봉  월간조선 객원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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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절없이(謾吟)


시내와 산에 밤은 고요한데 시간이 길었고
국화 꽃 이슬 머금어 작은 뜰이 향기롭도다.
고갯마루 북두칠성 기울어 그름 꽃은 흩어지고
지는 달 마루에 가득한데 가을 빛 서늘하구나.
좋은 술 반쯤 깨니 지기(志氣)가 트이고
새로운 시구가 생동하니 세상의 뜻을 잊노라.
스스로 즐기고 스스로 탄식하니 이 몸은 무엇인가?
즐거움도 슬픔도 없이 취한 한 미치광이인 것을-.

夜靜溪山玉漏長(야정계산옥누장)
黃花浥露小庭香(황화읍로소정향)
樞星倒嶺雪華散(추성도령설화산)
落月盈軒秋色凉(낙월영헌추색량)
微酒半醒志氣濶(미주반성지기활)
新詩欲動世情忘(신시욕동세정망)
自歎自歎身何似(자탄자탄신하사)
無樂無悲一醉狂(무락무비일취광)


생애(生涯)

나의 삶은 오직 흰 구름의 사립문만을 보나니
이 사바세계 외로운 베옷 입은 한 백성임을 아네.
날은 저물고 찬 하늘의 돌아갈 길 머니
또 술동이의 술은 가져 취하고저 하노라.

生涯唯見白雲扉(생애유견백운비)
知是南州一布衣(지시남주일포의)
日暮寒天歸路遠(일모한천귀로원)
且將樽酒欲爲迷(차장준주욕위미)


속절없이(謾吟) 중에서

녹수는 콸콸 울타리 밖에 흐르고
청산은 은은히 난간 앞에 펼쳐져 있네.
공명은 다만 인간사 한바탕 꿈일 뿐
무엇을 구구하게 세상과 다투리오.

綠水冷冷籬外在(녹수냉냉리외재)
靑山隱隱檻前生(청산은은함전생)
功名祗是黃梁夢(공명저시황양몽)
何事區區與世爭(하사구구여세정)

양반 집에 시집을 왔으나 남편을 기다리다 외로움에 지처 고향을 그리고, 형제를 그리며 때로는 시와 술로 자신을 달랠 수밖에 없었던 이조 중기 여류시인 金浩然齋(김호연재, 1681-1722)의 詩다.

申師任堂(신사임당,1504-1551),許蘭雪軒(허난설헌, 1563-1589)에 이어 任允摯堂(임윤지당, 1721-1793) 등 16세기 후반부터 19세기 까지 여류문인들이 대체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가는 여류문학사의 맥을 형성하는데 시인 김호연재(金浩然齋, 1681-1722)가 있다.

호연재 김씨(浩然齋 金씨)는 안동 金씨로 고성 군수를 지낸 김성달의 넷째 딸이다. 충남 홍성 갈산 오두리에서 태어난 그녀는 19세에 동춘당 송준길의 종손인 소대헌 (小大軒) 송요화(1682-1764)와 결혼하여 28세에 아들 송익흠(보은 현감, 號 : 오숙재)을 낳고, 딸을 낳았으며,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호연재 김씨는 출가한 이래 법천(法泉)이라 부르는 큰 시냇물이 흐르던 지금의 대전광역시 대덕구 송촌동 있는 소대헌 고가(小大軒 古家, 송용억 가옥: 市 민속자료 제2호)에서 살면서 이 지역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틈틈이 지은 漢詩 224편의 작품이 전해오고 있다.
그녀가 살던 은진 宋씨 송준길家의 동춘당 소대헌은 지금의 동춘당공원 안에 옛날 그대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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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직할시 대덕구 송촌동 192번지에 소재한 회덕(懷德) 동춘당(同春堂, 보물 제209호). 동춘당 송준길(宋浚吉, 1606-1672) 선생이 선친인 송이창이 처음 세웠던 건물을 옮겨 지은 것이다. 동춘이란 ‘살아 움직이는 봄과 같아라.’는 뜻으로 송준길 선생은 이곳에서 독서와 교육을 하면서 인재를 양성하고,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등과 함께 회덕향안(懷德鄕案)을 복원하였다. 현판은 우안 송시열 선생이 썼다.

김호연재의 詩에서는 당시에 충,효,열이라는 도덕률에 억눌려 살아야 했던 사회적 약자였지만 품위를 잃지 않고 당당히 살았던 여성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김호연재의 詩에는 친정에 대한 그리움, 여성으로 사는 고달픔과 恨 등 일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이러한 일상을 당시 최고 권위를 지닌 문학형식인 漢詩를 통해 당당하게 읊어낸 것이다. 천부적인 시인으로 유머러스한 詩를 통해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가부장제에 맞서는 도도한 모습도 여러 곳에서 돋보인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규방의 여인으로서의 道를 몸소 실천하면서 浩然(호연)이라는 두 글자를 품고 살았던 여인, 그녀가 남긴 漢詩 들이 뒤늦게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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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춘당공원에 2002년에 세워진 김호연재의 오연율시 ‘야음(夜吟)’ 시비(詩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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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동춘당공원 소대헌 뒤뜰에 핀 상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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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문화원에서 주관하는 2013년 제4회 김호연재 여성문화축제 안내 현수막.

김호연재 보다 앞선 여류 시인으로 우리는 자신의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하고 죽은 불운한 천재 시인이며 남편과의 불화로 외로운 여인의 삶을 산 이조 중기 여류 시인인 許蘭雪軒(허난설헌, 1563-1589)을 잘 알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만은 속박할 수 없었음을 알린 그녀의 詩는 중국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허난설헌 못지않게 김호연재도 자신만의 호연한 기상을 잃지 않고 생활 속에서 느끼는 감상들을 숨김없이 詩로 그렸다.

결혼 前 열린 분위기의 가족 사회 속에서 글재주를 자유롭게 펼치며 지냈던 그녀는 결혼 後에는 평생을 밖에서 지내는 남편이나 시댁일로 마음껏 문학의 끼를 마음대로 드러내며 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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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재 金씨가 출가한 이래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까지 살았던 대전직할시 대덕구 송촌동에 있는 소대헌 고가(小大軒 古家, 송용억 가옥: 市 민속자료 제2호).



꿈에 돌아가다 (夢歸行)

꿈속에 혼이 돌아 고향에 돌아가니
놀 안개 강에 가득하고 물은 부질없이 물결치도다.
어촌은 쓸쓸히 봄빛 저물었는데
아득히 높은 집이 우리 집이로구나.
방초 돋아 난 못 둑에서는 푸른 이끼 끼었고
이리저리 떨어진 꽃 땅에 가득히 붉었어라.
주렴 반만 걷고 서로 나와 웃으며 맞으니
형제들 옛 집 가운데 완연하였도다.
은근히 묻고 대답함은 평상시와 같은데
서로 그리웠었다는 말에 눈물이 절로 흐름이여.
그리움에 몇 번이나 애가 끊어지려 했던가?
아우의 얼굴 이미 쇠하고 형의 머리 희었구나.
홀연히 물 위의 새벽 조수 움직임을 듣나니
꿈속의 혼 돛대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깨었네.
돌아오매 서글픈 마음 찾을 곳이 없고
오직 서창에 지는 달 밝게 비침을 보도다.

夢裏魂歸歸故鄕 (몽이혼귀귀고향)
烟霞滿江水空波 (연하만강수공파)
漁村寥落春色暮 (어촌요락춘색모)
縹緲高閣是吾家 (표묘고각시오가)
芳草池塘生碧花 (방초지당생벽화)
落花紛紛滿地紅 (낙화분분만지홍)
珠簾半捲笑相迎 (주렴반권소상영)
弟兄宛然故堂中 (제형완연고당중)
慇懃問答以平昔 (은근문답이평석)
言致相思淚自流 (언치상사누자류)
相思幾度暗斷腸 (상사기도암단장)
弟顔己哀兄白頭 (제안기애형백두)
忽聞湖上曉潮動 (홀문호상효조동)
夢魂驚覺落帆聲 (몽혼경각락범성)
歸來惆悵無尋處 (귀래추창무심처)
惟見西窓落月明 (유견서창낙월명)


달을 보고 집 생각을 하다(對月思家)

초당에 물 떨어지는 소리 쇠잔하고
주렴 밖 둥근달 높이 솟아있네.
시름 많은 사람 잠들지 못하고
쓸쓸히 맑은 밤에 앉아있도다.
처량한 나뭇잎엔 이슬이 맺히고
샘물 소리 목메어 우는 듯하구나.
서늘한 바람 나의 옷 파고들고
은하수 이미 서쪽으로 기울었네.
이별의 정 막을 길 없으니
달을 마주하여 부질없이 마음만 아프지.
남북으로 흩어있는 형제 생각하노니
하늘가에 외로운 신세 되었어라.
봄 기러기들은 다 돌아가고
편지는 부탁할 데가 없구나.
한 번 읊고 또 한 번 탄식하나니
눈물이 절로 뚝뚝 떨어짐이여!

草堂漏聲殘(초당누성잔)
簾外月輪高(염외월륜고)
愁人自不寢(수인자불침)
寥寥坐淸宵(요요좌청소)
凄凄葉露色(처처엽로색)
咽咽泉水聲(인인천수성)
凉風逼我衣(량풍핍아의)
河漢己西傾(하한기서경)
離情不可禁(이정불가금)
對此空傷神(대차공상신)
南北憶弟兄(남북억제형)
天涯作孤身(천애작고신)
春雁己歸盡(춘안기귀진)
素書無處托(소서무처탁)
一吟復一歎(일음복일한)
潸然淚自落(산연누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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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3일에서 9월 13일까지 김호연재여성문화축제가 고택 소대헌 사랑방과 동춘당공원 마당에서 매주 금요일 오후에 펼쳐졌다.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배재大 문희순 교수의 김호연재 한시(漢詩)에 대한 열강을 경청하는 수강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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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여성문화콘텐츠발굴사업의 일환으로 김호연재 詩 문학과 동춘당 송준길家의 여성문화를 한데 묶은 연구 서적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김호연재의 詩作 재능은 가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그녀의 부친도 유고(遺稿)가 있으며, 서모(庶母) 또한 시문을 남겼다. 아울러 형제들 간에도 詩를 주고받았음을 김호연재 시집에서 엿볼 수 있다.
김호연재의 선조인 김상용과 김상헌도 뛰어난 詩 작품을 남겼음을 생각할 때, 그녀의 시에 대한 재능은 집안의 내력으로 전해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김호연재의 시적 재능은 회덕의 명망 있는 사족(士族)인 동춘당 후예와 혼약을 맺음으로써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그녀는 조선 후기 사대부 여성이 지닌 절제된 감정과 사유를 시문에 잘 담고 냈다.
그 밖에 남편의 외도와 시댁 식구들과의 불화를 겪으면서도 여자가 할 탓이라는 유교적 함정에 빠지지 않고 주체적 입장에서 여성 규범을 재정리하여 ‘자경문(自警文)’을 쓰기도 했다.
모두 3책으로 필사되어 가전(家傳)되고 있다.


호연재 자경문 훈독(浩然齋 自警文 訓讀) 중에서

孝親章第三(효친장제삼)

백행(百行)은 유효이시언(由孝而始焉)이니라. 박어효자(薄於孝者)는 불우형제(不友兄弟)하고 불경장자(不敬長者)하며 부부무은(夫婦無恩)하고 불호인도(不好仁道)하며 불가선사(不嘉善事)하야 이습위사벽지언(而習爲邪僻之言)하고 모리탐재(謀利貪財)하며 상시위험(嘗試危險)하나니 시(是)는 개망신지도야(皆亡身之道也)니라.

백가지 행실은 효도로 말미암아 시작된다. 효도를 등한시 하는 자는 형제에게 우애 있게 하지 않고, 어른을 공경하지 않으며, 부부간에 사랑함이 없고, 어진 도리를 좋아하지 않으며, 착한 일을 기뻐하지 않아 습관적으로 간사하고 편벽된 말을 하고 이익을 꾀하고 재물을 탐하며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하니 이것은 다 몸을 망치는 길이다.

慎言章第五(신언장제오)

不忍辱則取禍矣(불인욕즉취화의)의 不慎言則近殆矣(불신언즉근태의)리라.

욕됨을 참지 않으면 화를 초래하고, 말을 삼기지 않으면 위태함에 가까워진다.

1책은 오두추치(鰲頭追致)라고 표지에 쓴 시집이고 , 또 다른 1책은 호연재유고(浩然齋遺稿)라 표제를 한 것이며, 나머지 1책은 자경편(自警篇)이라고 한 것이다.
이 3책과 후손 송용억에 의해 원문 영인(影印)과 더불어 출간된 호연재유고는 조선 후기 여류문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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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한자이 선생이 김호연재의 한시를 정가(正歌)로 부르고 있다. 수강생들이 따라 부르며 김호연재의 한시를 음미한다.

매년 9월이면 대전직할시 대덕문화원이 개최하는 김호연재 여성문화축제가 열린다. 김호연재의 한시와 가족에게 쓴 손 편지, 자경문 등을 발굴하여 엮어내면서 시작됐다.

김호연재 시집과 관련된 옛 기록이 잘 남아 있어 그녀의 생애를 돌이켜 볼만한 자료들이 비교적 많다. 文姬順(문희순, 51, 배재大 국문과 강사)박사는 김호연재 시집 ‘법천(法泉)의 하루’를 펴냈다.
文 박사는 한시 연구로 석, 박사 학위를 땄다. 김호연재 詩 세계를 지역 문화 콘텐츠로 활성화하여 김호연재 여성문화축제로 발전시켰다. 이를 4년째 이끌고 있다.
문희순 교수가 집대성한 김호연재 詩들을 전문으로 낭송하는 모임도 생겨났다. 正歌(정가)로 부르고 이를 배우는 모임도 갖는다.
김호연재 마당극, 한시 음악회, 백일장, 설치미술전 등 을 통해 여류시인 김호연재의 詩 문학세계를 널리 알리고 기호(畿湖)지방의 또 다른 여성문화축제로 확대하여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누구나, 오가다, 아무 때나, 대전IC에서 가까운 동춘당공원을 찾아가면 291년 前의 여류시인 김호연재를 만날 수 있다.

입력 : 201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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