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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흔 ‘재(嶺)너머 이야기’

오원춘 판결과 사문화된 사형제도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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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자를 잔인하게 살해한 오원춘이 무기징역을 확정 받았다. 현행법에서 최고형은 ‘사형’이기 때문에 오원춘이 사형을 선고 받지 않았다는 것은 재판부가 그가 최고형을 받을 만한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오원춘 같은 살인마가 최고형을 받을 만한 감이 아니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연쇄살인 외에는 사형을 받을 일이 거의 없다는 뜻이 되고, 사람 한명 정도는 아무리 잔인하게 죽여도 최고형에 미치지 못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차피 선고하지 않을 유명무실한 사형제를 폐지하여 최고형을 무기징역으로 낮추는 법개정이 이루어져야 법과 현실과 괴리를 줄이든지 아니면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 한 나라의 형법을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끌고갈 수는 없는 법이다. 왜냐하면 사형이 현행법으로 엄연히 존재하는데, 재판부의 개인적 법철학으로 나라의 최고 형법을 사문화 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법치주의에서는 법을 적용하거나 시행하는데 지도자나 재판부 개인의 법철학과 감정을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의 노벨상 꿈을 이루기 위해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고, 이는 결과적으로 후임 대통령과 법무장관들에게 엄청난 짐을 안겨 주었다. 그렇더라도 법무장관은 법원이 내린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법에 따라 판결한 사형을 합리적인 기간안에 집행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나 직권남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생명은 한번 사라지면 다시는 회복이 불가능하다. 죽은 당사자에게는 우주를 다 준다고해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형법에 ‘사람을 죽인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한 것은 단순히 보복적 댓가의 형벌을 내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남의 목숨을 빼앗을 경우 자기 목숨 외는 어떤 등가물도 없다’는 것을 명시한 것으로, 이는 곧 인간의 목숨이 가장 고귀하다는 것을 역으로 천명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사형제는 단순히 사형이 또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네 마네 하는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한차원 높은 인간 생명에 대한 존엄의 문제이다. 사람을 죽인 사람의 생명을 똑같이 박탈하는 것과 무기징역과는 거의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피해자는 우주보다 귀한 목숨을 잃었지만, 가해자는 어찌되었건 법에 의해 자연적인 생명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사형이 집행되는 것은 범죄 피해 유가족에게 심리적 보상과 치료를 하는 의미도 포함하기 때문에 실정법에 있는 사형제도는 법관이나, 대통령, 법무장관이 개인법 철학에 의해 유명무실되거나 재해석되거나, 좌지우지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법에 의해 최고형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한단계 낮은 벌을 받는 것과, 이미 최고형을 받은 사람이 집행을 면제 받는 것은 가족에게는 견디히 힘든 심리적 고통을 안겨 준다. 법이 그 사회 구성원이 느끼는 정의를 실현하지 못할 바에는 그런 재판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한 사회의 법이 정의를 실현하지 못한다는 것이 사회의 통념으로 자리잡고 있다면, 그것은 법으로서 이미 권위를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15년이 넘게 법에 엄연하게 존재하는 최고형을 대통령의 개인적인 법철학에 의해 실제 집행하지 않음으로써 법치주의와 법의 정의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법치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결코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이는 사형제 찬성이냐 반대의 문제가 아니다. 나라의 형법이 지금처럼 눈가리고 아웅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형제를 폐지하려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확실히 폐지해서, 국민들에게 무기징역이 최고형이라는 하루라도 빨리 심어 주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법에 정해진대로 확실하게 형을 선고하고 집행해야 한다. 한 나라 형법의 최고형벌 조항이 문항으로만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은 법치국가가 아니다.

(2013년 1월 17일 facebook에 올린 글을 수정하여 다시 올림)

입력 : 2013.01.18

조회 : 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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