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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흔 ‘재(嶺)너머 이야기’

“국내에서는 무조건적인 내진 설계 필요 없다“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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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81세인 토목기술자를 만났습니다. 이곳에서는 그냥 ‘李회장’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몇 개월 전 李회장은 두 권 분량의 역사 관련 책을 냈습니다. 지금은 또 다른 책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李회장은 日本語에 능숙하며 기억력이 20~30대 청년들 못지 않습니다. 李회장은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습니다. 대부분이 日語 原書입니다. 

李회장은 건설부 공무원 출신으로, 공무원을 그만둔 후에는 건설 감리 회사를 운영하였고,지금은 사업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李회장 30년간 중앙설계심의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항만설계자문 위원회 위원장으로도 재직했다고 합니다. 그때 우리나라 항만 설계의 기준을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李회장은 저를 보자 “우리나라 정치인, 공무원, 학자, 기자들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며 한숨부터 내쉬었습니다.

“세상은 발전하는 것 같은데 공무원, 학자, 기자들 수준은 갈수록 수준이 떨어지니 그 이유를 모르겠소.”

李회장은 먼저 언론이 ‘쓰나미’를 해일(海溢)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쓰나미는 津波(진파)라는 한자를 일본어로 읽은 것입니다. 이 용어는 국제적으로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에 우리 언론도 쓰나미란 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게 옳습니다. 이 말이 단지 일본어라는 이유로 거부감을 가지고 ‘해일’이라고 하는 언론이 있는데 정확하지 못한 표현입니다.

해일은 '바닷물이 넘치는 현상'을 말하거든요. 요즘은 그나마 ‘地震 해일’이라고 앞에다 ‘지진’이라는 글자를 붙이는데 다행입니다. 그냥 해일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개념이 좀 더 명확해졌으니까요. 하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쓰나미’라는 확실한 용어를 놔두고 다른 용어를 사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용어는 명확하면서도 축약적일 수록 좋은데, 지진과 해일 등 자연재해에 관해서는 일본 사람들이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들이 만든 용어를 쓰면 정확합니다.”

李회장은 “요즘 언론인이나 기상 전문가 중에 氣象, 海象, 地象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요즘 일기예보에서 모든 날씨 현상을 무조건 ‘氣象’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기상은 바람, 눈과 비, 온도 등의 대기 중에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말합니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은 海象이라고 구분해야 해요. 해상에는 潮汐(조석), 파도, 潮流(조류), 海流(해류) 등이 있습니다. 地象은 지진이나 화산 등이죠.”

李회장은 "우리나라에서 김대중 대통령 때 耐震(내진) 설계를 법으로 도입했다"며 "하지만 국내에서 모든 건물에 대한 내진 설계는 과다 설계로 엄청난 낭비"라고 주장했습니다. 참고로 얼마 전에는 오세훈 시장이 서울의 모든 건물에 내진 설계를 의무화하겠다고 했습니다. 

李회장의 설명입니다.

“모든 건물은 내진 설계가 없어도 진도 4.0까지는 견딜 수가 있습니다. 만약 앞으로 짓는 모든 건물에 내진 설계를 의무화 해야 한다면 역으로 우리나라에서 내진 설계가 안 된 대부분의 건물은 당장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부가 그렇게 위험한 건물을 그냥 두고 본다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위험 속에 방치한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모든 건물에 내진 설계를 의무화 한다는 것은 지금 당장 내진 설계가 안 된 건물은 모두 헐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 입니다. 

서울시만 내진 설계를 의무화하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지방 사람은 다 죽으라는 소립니까? 모든 건물에 내진 설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기를 얻기 위한 정치적 쇼에 불과합니다.

내가 80평생 살아오면서 우리나라에서 지진으로 집이 무너지고, 사람이 죽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전에 살았던 나이 많은 분들로부터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에도 지진이 나서 사람이 죽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없습니다(참고로 저는 이 부분을 확인 못했습니다-이상흔 ). 400년 전의 임진왜란 때 많이 죽고, 고생했다는 이야기는 조상들로부터 수없이 들었습니다.

삼국사기 기록은 일단 지진 발생 지역이 한반도가 아니란 이야기도 있어 제외합니다. 1978년 홍성에 난 지진은 진도 5.0입니다. 당시 집에 금이 좀 갔는데 그 정도를 가지고 심각한 피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수백년 동안 집이 붕괴해서 사람이 사망한 심각한 지진 피해가 사실상 없었습니다. 지진에 대해서만큼은 안전지대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모든 건물에 지진이 많은 나라와 같은 수준의 내진 설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학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모든 설계에는 ‘안전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건축물이 처할 수 있는 각종 불확실한 위험성을 보완하기 위해 보통 설계하중에 안전율 20%를 더해서 설계합니다. 건축학에서 가장 바른 설계는 ‘설계 外力(외력: 파도, 지진, 바람, 외부 충격 등)의 작용 시 피해가 조금 발생하는 정도의 설계’라고 말합니다.

외부로부터 충격을 심하게 받았는데도 건축물이 아무 손상을 입지 않고 멀쩡하다면 그것은 과다 설계로 잘못된 설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경제적이지 못한 설계죠. 설계 외력이 발생하면 작은 피해가 발생해야 하고, 이를 복구해서 사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입니다.

과다 설계에 드는 비용은 결국 국민의 세금이나, 소비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치인은 무조건적인 내진 설계를 외치고 다니고, 학자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들은 인기와 이름을 알리기 위해 그런 주장을 합니다. 이들 중에 누구도 과다 설계에 드는 비용이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공무원과 기술자들이 설계를 할 때 예산을 얼마나 효율적이고 적게 사용할 수 있는 가를 가장 먼저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李회장에게 “그렇다면 原電 같이 중요한 건물을 지을 때도 내진 설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하고 물었습니다. 李회장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내진 설계가 무조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건축물은 과다 설계가 되지 않게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설계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진 설계의 과학적 근거라는 것은 관측치(觀測置)를 바탕으로 한 통계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과거의 지진 관측치를 가지고, 미래의 지진 발생 빈도나 규모에 대한 관측치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관측치에 근거한 통계가 없이 개인적인 영감이나 주장에 의한 내진 설계를 하는 것은 전부 '주먹구구식 설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면 우리 국민은 발생할 가능성이 적은 위험에 비해 너무나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국내에서 모든 건물에 내진 설계를 하자고 주장하는 진정으로 국가나 국민을 위한 자세가 아닙니다.”
입력 : 201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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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흔 ‘재(嶺)너머 이야기’

hana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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