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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흔 ‘재(嶺)너머 이야기’

<한중록>을 原文으로 읽어보니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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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 조선 22대 왕인 正祖 임금의 어머니이신 惠慶宮 洪씨(헌경왕후)가 쓴 회고록입니다.

혜경궁은 이 책에서 남편인 思悼世子가 아버지 영조의 미움을 받아 뒤주에 갇혀 죽게 된 과정과 政嫡들(특히 洪國榮)이 자신의 아버지와 삼촌, 동생들을 모함해서 몰락시킨 과정을 피를 토하는 심정을 담아 기록했습니다.

한중록에는 사도세자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주는 영조의 괴팍한 성격과 이런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갈수록 틀어지는 父子간의 관계가 요즘말로 ‘리얼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사도세자는 옷에 대한 정신병적인 편집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병이 수발드는 사람을 수시로 죽이는 발작 단계로 진행 됩니다. 사도세자가 정신이 나갔을 때는 눈에 뵈는 게 없었나 봅니다. 그는 심지어 자기가 가장 총애했던 애첩마저 칼로 베어버렸습니다. 혜경궁도 사도세자가 죽기 바로 전 자기를 부르자 “그날 죽을 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혜경궁은 사도세자가 평소에는 효심이 강하고, 주변 정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면서 말을 하는 것을 보고 “하늘 아래 나 말고 과연 누가 경모궁(사도세자)의 병이 이렇게 깊은 줄 알 것인가”하며 수없이 탄식을 합니다.

혜경궁은 “내가 아직 살아 있는 데도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다”며 “내가 죽고 나면 상황이 어떻겠냐”면서 한중록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합니다.

사도세자의 정신병에 대해서는 옆에서 지켜본 혜경궁 홍씨가 가장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고, 나중에는 사도세자의 친 어머니인 영빈 李씨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세자가 사람을 밥먹듯이 죽이자 보다못한 영빈 李씨가 “내 아니면 누가 말하겠냐”며 직접 나서서 영조에게 아들의 非行을 고발하고, “아들을 죽여서 宗廟社稷을 보전해 달라”고 말하기에 이릅니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세자가 혹시 임금이라도 되는 날은 왕위 유지는 고사하고, 자칫 세손도 위험하고 나아가서는 종묘사직이 위태로워 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자의 비행을 안 영조는 격분해서 칼을 들고 고함을 치며 사도세자에게 自決을 명합니다. 세자가 따르지 않자 결국 뒤주에 가두어 죽였습니다.

냉혹한 영조 였지만 世孫인 正祖의 지위까지 흔들려서는 안되었기 때문에 곧바로 폐서인했던 세자를 복권시키면서 시호를 내리고, 祭文을 직접 지어 장례식에서 읽었습니다. 이후 세손의 지위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 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한중록>은 원래 한글로 쓴 책이라 한자로 제목을 표기할 때 일부에서 恨中錄이라고 붙이기도 했지만, 閑中錄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맞다는 데 학자들이 대부분 동의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한중록을 原文으로 읽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지금 쓰는 한글 표기법(아래아 사용 등)과도 다르고, 문체도 달라서 읽기가 힘들었지만 몇 장을 참고 읽어보니 그 후로는 읽을 만 했습니다.

특히 漢字語가 아닌 순 우리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뜻이 대부분 통했고, 요즘 쓰이지 않는 단어의 경우는 책 하단에 각주로 친절한 설명을 해놓았기 때문에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한자어로 된 단어입니다. 한자어 단어의 경우 괄호안에 한자를 倂記해 놓았지만 제가 가진 어휘력만으로는 도저히 문장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혜경궁이 아무리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남자들처럼 과거시험을 위해 유교 경전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는 않았을 텐데, 그가 구사 하는 한자어 어휘력은 가히 놀라울 정도입니다.

혜경궁이 일부러 어려운 단어를 골라 쓴 것도 아닐테고, 그저 양반 계층의 일상언어와 궁중에서 쓰던 단어를 사용해서 책을 썼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풍부한 어휘력을 자유자제로 구사할 수 있는지 그저 감탄사만 쏟아낼 뿐이었습니다.

저는 200여년 전에 혜경궁이 자연스럽게 구사했던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그것도 괄호 안에 한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각주를 찾아가며 읽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독서를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글쓰는 것이 직업인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에 아무리 어려운 논문이 있다한들 어휘력이 부족해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는 않을텐데, 조선시대의 한 女人이 남긴 회고록을 붙들고 단어 뜻을 몰라 문장마다 멈춰서 각주를 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일개 양반집 여인조차 자유롭게 구사했던 이 많은 國語 단어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저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비단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때문만이 아닙니다.

조선 후기 광범위하게 보급된 흥부전, 춘향전 같은 서민들을 상대로 한 소설을 원문으로 읽어봐도 그 풍부한 어휘력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들 책에는 속담, 故事成語, 양반언어, 상놈언어가 서로 뒤엉켜서 춤을 추듯이 지면을 활보합니다. 마치 언어의 饗宴을 보는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글로 된 古典은 구할 수만 있다면 원문을 읽어보려 합니다. 600년 전에 쓰인 訓民正音 서문이 아무리 어렵고 낯설어 보여도 열 번만 소리 내어 읽어보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뜻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글로 쓰여진 우리의 고전도 처음에는 좀 어려워 보이지만 읽다보면 그 뜻이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중록 원본을 읽으면서 우리가 생활에서 漢字를 멀리함으로써 동시에 수백년동안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썼던 수많은 국어 단어도 함께 쓰레기통에 들어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입력 : 201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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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흔 ‘재(嶺)너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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