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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오봉 ‘주말 나들이’

5000년前 창강(長江) 상류에 번성했던 외계문명?

이오봉  월간조선 객원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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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고의 흥행 실적을 올린 제임스 캐머린 감독의 3D 영화 ‘아바타’에서는 가상과 현실, 자연과 인간, 이승과 저승, 현실과 초현실을 오가며 4차원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의 장면에는 ‘에이와 나무(생명의 나무)’가 쓰러지면서 나비族이 최후를 맞는다.

판도라 행성의 나비族처럼 지구상의 인류도 산이나 들판의 서 있는 노거수(老巨樹)를 태양을 숭배 하듯이 神처럼  모셨다.

5000년 前에 중국 창강(長江) 연안에 살았던 민족들이 이러한 ‘신수(神樹)’를 청동으로 만들어 받들어 모셨다.
중국 쓰촨(四川)省 광한(廣漢)市에 있는 싼싱두이(三星堆) 박물관에 가면 5000-3000년 前의 진귀한 고촉(古蜀) 문명 속에서 탄생한 청동 신수를 볼 수 있다.


싼싱두이 동북쪽 한구석에 세워진 샨싱두이 박물관 입구.

1929년 봄, 지금의 쓰촨(四川)省 광한(廣漢)市 서쪽 7km쯤 남싱진(南興鎭) 전우촌(眞武村) 웨량완(月亮灣)의 엔다오청(燕道誠)씨의 집 옆에서 엔 씨의 형제들은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물길을 파다가 땅 밑에서 옥장(玉璋), 옥종(玉琮) 옥벽(玉壁) 등 옥기 300-400점을 캐냈다.

당시 엔다오청 씨는 옥기 일부를 친척과 친구들에게 주었고 일부를 집에 보관하거나 몇 점을 골동품상에 내다 팔았다.
광한의 웨량완 엔씨네가 파냈다는 옥기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던 현지에서 전도활동을 하던 V.H. 도니스론(V.H Donnithorne)목사가 일부 옥기들을 거둬들여 화시(華西)대학 박물관에 기증을 했다.

그 후 1934년 3월 화시대학 박물관 관장 데이비드 C. 그레이험(David C. Graham)과 임명균 교수가 구성한 고고 발굴대가 웨량완 옌씨 집 부근 천서평원에서 처음으로 싼싱두이 유적의 발굴을 시도했다.


청동입인상(靑銅立人像), 商代 말기, 높이 172cm,
받침대  높이 90cm, 전체 높이 261cm,
1986년 싼싱두이 유적지 2호 제사갱에서 출토.


      청동입인상 무늬 그림.


청동신수(靑銅神樹), 商代 말기, 나무 줄기 높이 384m,
전체 높이 396m,  싼싱두이 2호 제사갱에서 출토.
청동신수를 둘러보는 조유전 경기도 박물관장(왼쪽)과
최병식 박사(계간 ‘한국의 고고학’ 발행인).


용과 과실과 새가 달린 청동신수 가지.

웨량완 남쪽 4km쯤 마무강(馬牧河) 건너편에 길이 20-30m의 언덕이 3개가 있다.  전설에는 옥황상제가 하늘에서  뿌린 흙이 말목하 남쪽 연안에 떨어져서 별이 3개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고장의 이름을 샨싱두이(三星堆)로 부르게 됐다. 그동안 고고학자들이 이 일대가 왕성(王城)이라는 전설을 뒷받침하는 3000년 전에 쌓은 성벽을 찾아냈다.

1984년부터 1989년까지 이곳이 동서 2100m, 남북 2000m 총 면적이 3600km2나 되는 고대 도시 유적지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발굴 당시 남아 있던 성벽의 두께는 5-40m, 높이 2-5m 정도였다.
조사 결과 폭이 40m 전후이고 상부의 폭이 20m, 높이가 8-9m, 그리고 성벽의 바깥쪽에는 깊이 2.8m의 호구(豪構)가 갖춰진 인공성벽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1986년에는 싼싱두이 유적 성벽內 남서부에 있는 벽돌공장 작업장의 2개의 흙구덩이 안에서 무게가 수백 g인 금기들과 1톤이 넘는 청동 주조물을 비롯하여 500점 이상의 옥, 석기, 80여개의 상아와 수많은 조개껍질 등이 발굴됐다.
1호갱(坑), 2호갱이라 불리는 흙구덩이에서 출토된 유물들 중 가장 주목을 끄는 것들은 청동 유물들이다.


청동수가면(靑銅獸面具), 商代 말기, 높이 65cm, 폭 138cm, 싼싱두이 유적지 2호 제사갱 출토.


금면조동질평정인두상(金面조銅質平頂人頭像), 商代 말기,  높이 42.5cm, 쌍싱두이 2호 제사갱 출토(오른쪽)과 또 다른 금면조동질평정인두상, 높이 48.5cm.


청동수가면(靑銅獸面具), 商代 말기, 높이 82.5cm, 폭 78cm,
싼싱두이 유적 2호 갱에서 출토.

쓰촨성 청두에서 40km 떨어진 광한市에서 발굴된 쌴싱두이(三星堆)라는 이름의 유적지에서 쏟아져 나온 이 같은 청동기 유물들이 발견되기 전까지 수천 년간 사람들은 중국 문명의 발원지는 황허(黃河)강 유역이라는 믿어왔다.
신화와 전설로만 알려져 왔던 고대 촉나라의 유물이 발굴 되면서 이러한 학설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후기 신석기시대 이후 商末에서 周初까지 약 2000년간 계속된  창강(長江) 유역에서 발달한 싼싱두이 문명의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들은 보면 현재의 중국 문명은 단일 뿌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청동수면(靑銅獸面), 商代 말기, 높이 22cm, 폭 38.4cm,
쌍싱두이 유적지 2호갱에서 출토.


청동사양사조뢰(靑銅四羊四鳥礨), 商代 말기 구경 26.5cm,
다리 26cm, 높이 54cm, 싼싱두이 유적지 2호 제사갱에서 출토.


황금 지팡이(金杖), 商代 중기, 길이 143cm, 지경 2.3cm,
무게 463g, 싼싱두이 유적지 2호 제사갱에서 출토.
그림은 황금 지팡이 무늬.

1988년 1월에는 광한(廣漢)市 서남쪽 난싱진(南興鎭)이라는 곳에 있는 12km2에 달하는 싼싱두이 유적지를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공포하고 1977년 10월에 싼싱두이 유적의 동북쪽 귀퉁이에 쌴싱두이 박물관을 설립했다.
건축면적이 7000m2이며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된 전시공간의 총면적은 4000m2이다. 전시공간의 총 길이는 800m에 이른다.
싼싱두이 박물관의 정면 외관은 삼각형의 뾰족한 지붕 모양으로 우뚝 솟아 있어 멀리서도 삼성퇴박물관임을 알아 볼 수 있다. 박물관 주변의 넓은 공간을 연못, 돌, 꽃나무들로 아름답게 꾸민 원림(園林)식 박물관이다.


옥장(玉璋), 상대 말기, 길이 54.2cm, 두께 0.8cm,
싼싱두이 2호 제사갱에서 출토. 과(戈)와 비슷하고
끝 부분의 일부는 불에 타 닭뼈처럼 하얗고 나머지는
회색이다. 冠人像 등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림은 옥장에 새겨진 무늬.


1986년 발굴 당시 2호 제사갱.

중국의 고대사의 새로운 비밀을 밝혀주는 싼싱두이 유적지에 발굴된 유물들의 제작연대가 초기 3500년 前에서 현재 5000 前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춘추전국시대 이전 쓰촨 지역에 있었다는 蜀나라의 문명은 황허 문명과 전혀 다른 독자 문명을 일으켰음을 보여주고 있다.
 
싼싱둥이 유적지 발굴을 통해 巴 문화와 蜀 문화의 기원을 찾아 갈수 있으며, 그 형성과 발전의 전모를 탐색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촉나라 초기의 도성으로 보이는 싼싱두이 유적의 규모로 보아 고대 중국의 서남쪽에 위치한 촉나라의 기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잠작할 수 있다. 

어떤 사연인지 알 수가 없지만 제사 용품을 불에 태워서 한 곳에 묻었던 두 군데 갱(坑)에서 발굴된 500여점의 유물은 중원 문명과는 또 다른 독자적인 청동문명이며, 殷, 商문명에 못지않은 고대 문명의 중심지였음을 밝혀주고 있다.


싼싱두이 박물관내에 설치된 유적지 개념도.


싼싱두이 박물관 청동인물상과 가면 전시장.

쌴싱두이 박물관을 둘러보면 싼싱두이 문화의 발생과 패망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게 된다. 최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싼싱두이 유적에 필적할 만한 유적이 청두 인근인 진사(金沙)에서 발견됐다.
진사 유적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라진 싼싱두이 문화의 수수께끼가 조금은 풀렸다. 천재지변에 의해서 야쯔강(鴨子河) 강 연안에 살던 싼싱두이 거주인들이 청두로 들어가는 모디강(摸低河) 연안으로 이주하여 진사(金沙)에 정착하며 새로운 문화를 일으켰다고 추정한다.

쌴싱두이 박물관에 진열된 유물들 가운데 도기(陶器)들은 모래가 섞인 갈색 도기가 가장 많은데, 그 제작 시기를 넷으로 나눠보면 첫 번째는 사천분지에서 형성된 신석기 문화로 방사성 원소로 측정한 연대는 4800년 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번째는 夏에서 殷代까지, 세 번째 시기는 은대 중기와 말기 무렵으로 볼 수 있다. 네 번째는 殷代 말기에서 西周 초기 무렵에 해당한다. 네 시기의 도자기들의 모양, 장식, 재질, 제작 기술에서 蜀 문화의 끊임없는 발전 과정을 엿 볼 수 있다.


싼싱두이 도자기 전시장.


청동신수(靑銅神樹) 전시장.

玉器로는 출토된 양은 많지 않지만 제작 수준이 뛰어나다. 특히 예기, 병기, 도구 중에서 병기와 도구는 날카로운 부분이 제작 당시처럼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유물들은 두께가 얇아 실생활에 쓰였다기보다 제사 등 의식을 치를 때 쓰인 것으로 보인다.

싼싱두이 제사갱에서 출토된 金器들은 매우 정교하면서 독창적이다. 황금 지팡이(金杖)와 황금 가면, 금속 장신구 등이 나왔는데, 황금 지팡이에는 위쪽에 사람의 머리, 물고기, 새, 벼 이삭 등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양을 새겼다.

무엇보다도 쌴싱두이 박물관 유물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것은 靑銅 유물들이다. 전체 무게가 1톤을 넘고 수량이 500점에 이나 된다.

기원전 1천년 이전에 만들어진 싼싱두이에서 출토된 靑銅器들은 해외 전시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곳에 출토된 청동 인물상은 풍부한 상상력과 거대한 규모, 정교한 제작 기술로 殷,周시대 청동기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출토된 청동기들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祭器로 쓰였던 술잔, 장군, 접시, 이(彛-술을 담던 그릇) 등이 있다.


싼싱두이 박물관 제2전시장 입구.

또 다른 종류로는 종교적인 색채가 뚜렷한 신상, 동물상, 인물상이 있다.

그중에 청동입인상(靑銅立人像)은 전체 높이가 261cm, 무게가 180kg으로 콧대가 오뚝하며 눈이 크고, 턱이 각지고 귀가 크다. 귓불에는 구멍이 뚫려 있으며 머리 뒷부분에는 변발이 길게 붙어 있다.
머리에는 태양신을 상징하는 연꽃형 짐승 무늬와  回자무늬의 화려한 관을 쓰고 옷에는 용무늬 장식이 있으며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 형태의 구름무늬가 있는 긴 두루마기를 입고 있다. 왼팔을 위쪽으로 올리고 오른 팔은 가슴  앞쪽으로 곧게 구부리고 있으며, 매우 큰 두 손은 각각 고리 모양으로 쥔 상태이다.
두발은 모두 맨발인 채로 사각 받침대 위에 서 있다. 이 같은 형태는 殷,周 청동기 중에서는 유일하다. 학자들은 이 입인상은 왕인 동시에 제사장의 인물상이라고 본다.

 출토된 청동기 중에서도 매우 뛰어난 가치를 지닌 청동기 인물 두상(頭像)과 가면상(假面像)이 있는데 형태나 크기가 모두 다르다. 대형 가면은 폭이 134cm, 높이가 65cm, 무게가 10kg에 달한다.
인체 비례로 인물상의 키를 추정해 봤을 때 높이가 4m 정도가 되는 거대한 인물상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크기도 여러 가지다. 얼굴은 장방형이고, 횡단면은 U자형이다. 굵은 눈썹, 크고 긴 눈, 눈알은 원주형으로 불룩하다. 눈알 속은 비어있다.
가면은 귀가 크고 코가 높으며, 눈이 상당히 과장되어 있다. 가장 핵심 부분인 눈동자가 매우 과장되게 표현됐는데, 튀어나올 것처럼 돌출되어 있어 마치 천리 밖을 내다 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전시장의 옥과(玉戈)들.

다음으로 청동 유물 중에 눈여겨 볼만한 것은 청동 신수(神樹)다. 높이 약 4m이며 굵은 가지가 3단으로 분리 되면서 그 나뭇가지에는 한 마리의 커다란 용이 마치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모습처럼 부착 되어 있다. 이는 하늘과의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한 종교적이 목적이 담겨 있으리라고 해석을 한다. 가지 끝에 과실이 매달려 있으며 새가 앉아 있는 가지도 있다.
고도로 발달된 주조기술과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는 이 청동 신수는 예술적인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아 실로 신이 빚어낸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일부 종교학자들은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창세기의 ‘선악과 나무’라고 해석을 하는가 하면 싼싱두이 문명은 유태인들의 문화라고 까지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싼싱두이에서 발굴된 신수(神樹)의 양식은 동서양에서 공통적으로 받들어 모신 태양신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학자들을 말하고 있다. 옛부터 중국에서 해가 뜨는 바닷속에 있다는 상상의 나무인 ‘(부상)扶桑’을 상징한다.


1986년 발굴 당시 현장 사진전시장.

샨싱두이 박물관의 청동인상이나 동물상들은 중원의 청동기의 어느 유형과 닮지 않았다. 샨싱두이 인물상을 보면 중국인 같지 않고 외국인처럼 보인다. 이로 인해여 싼싱두이 문명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 수수께끼를 풀어보려 애를 쓰지만 학자들 간에도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그 이유는 싼싱두이 문명이 역사시대의 문명인데도 문자가 없어 문자로 남긴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쌴싱두이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장장 70년에 걸친 발굴의 성과다. 현재도 대규모 발굴은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유물이 나올지 모른다.
외계 문명설까지 나와 있는 삼성퇴 문명에 대한 궁금증은 언제 풀릴지 알 수가 없다. 그만큼 기대도 크다.


황금 지팡이(金杖) 발굴 당시를 재현한 전시장.


청동인두(靑銅人頭像), 商代 중기, 높이 45.6cm, 폭 21.7cm.
싼싱두이 유적지 1호 제사갱 출토.
머리 양쪽으로 긴 뿔모양의 깃털을 쓰고 있고 구름 모양의 큰  귀의
귓뿔에는 구멍이 나 있다. 위엄이 있는 표정이다.
머리에는 비녀를 꽂았던 흔적이 있다.


2008년 5월 중국 삼국시대 蜀나라 영토였던 쓰촨(四川)省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싼싱두이(三星堆) 박물관은 외벽이 손상됐고 진열돼 있던 3000-4000년 前 토기 20점이 땅에 굴러 떨어져 산산 조각이 났다는 소식에 들려왔다.
 
청두 외곽에 있는 後期 싼싱두이  문명의 유물들을 전시한고 있는 진사(金沙) 박물관의 제2전시실에 있던 고대 토기 항아리들도 지진의 충격으로 땅에 떨어져 깨졌다.  다행히 두 박물관의 청동유물과 금, 은, 상아 장식품들은 무사했다고 한다.

 창강(長江)의 고대문명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먼저 싼싱두이 박물관 보고나서 2007년 4월에 문을 연 청두 북쪽, 싼싱두이에서 서남쪽으로 50km 떨어진 청두(成都)市 칭양구(靑羊區) 쑤포항(蘇坡港) 진사촌(金沙村)에 세워진 진사유지박물관(金沙遺址博物館)을 둘러봐야한다.
입력 : 201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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