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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흔 ‘재(嶺)너머 이야기’

마지막 팀스피리트 훈련에 대한 기억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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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병이던 1993년 3월 팀스피리트 훈련에 참여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마지막 팀스피리트 훈련이 되었습니다. 1976년부터 시작된 팀스피리트 훈련은 北核협상 과정에서 북한이 집요하게 중단을 요청하였고, 결국 폐지되었습니다.

1993년 팀스피리트 훈련을 시작했을 때 북한이 엄청나게 반발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측의 훈련이 시작되면 북한은 대응 훈련을 하는데 그것이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팀스피리트 훈련이 시작되면 이에 대항해 전후방의 북한 군인들은 전부 갱도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춥고 축축한 그곳에서 한달 가량을 벌벌 떨면서 견뎌야 한다고 합니다. 대포나 기타 각종 野戰 무기도 지하에 숨기는데 습기로 금방 녹이 슬기 때문에 관리하는데 아주 죽을 맛이라고 합니다. 

1993년 실시한 팀스피리트 훈련 때 북한은 준전시상태에 들어갔기 때문에 군인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도 고통을 당했습니다. 지난 3월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발표한 ‘비망록’에는 당시 팀스피리트 훈련을 언급한 대목이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이 우리의 《핵위협》을 운운하며 사상 최대규모로 벌린 1993년의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으로 우리 공화국에 준전시상태가 선포되고, 조선반도정세가 일촉즉발의 전쟁접경에 이르게 된 력사적 사실은 이 연습이 얼마나 위험천만한가를 보여주고도 남음이 있다.>

제가 1993년 마지막으로 뛴 팀스피리트 훈련은 군 생활 중에 한 가장 규모가 큰 훈련이었기 때문에 특히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리 사단(양구 2사단 노도부대)은 동부 전선의 전방 예비사단으로 해마다 팀스피리트 훈련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부대였습니다.

우리 사단은 하루 일과가 훈련으로 시작해서 훈련으로 끝나는 부대였습니다. 처음 입대하자 고참들이 “우리 부대는 일년의 3분의 2를 야외에서 생활한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군생활을 해보니 그 말이 맞았습니다. 

두어 달 걸러 한번 씩 큰 야외 기동 훈련이 있었고, 대대나 중대급의 소규모 야외 훈련은 거의 매월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큰 훈련 갔다 오면 장비 정비를 하고, 곧바로 다음 훈련에 대비하곤 했습니다. 훈련이 없는 기간은 일반 교육훈련, 태권도나 사격, 기타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일년 내내 훈련을 하는 부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계급이 낮은 소위 ‘쫄따구’들은 은근히 야외 훈련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야외 훈련하는 기간 동안은 고참들이 그나마 덜 괴롭히기(갈구기)기 때문입니다. 야외 훈련은 비록 몸은 힘들지만 몇 일간이라도 힘든 저녁 점호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행복했고, 내무 생활의 스트레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팀스피리트 훈련이 시작되는 날 아침 연병장에 60트럭이 잔뜩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60트럭을 본 고참들은 “야! 군대 좋아졌다. 步兵이 차로 이동을 하는 날도 있네”하며 한마디씩 농담을 했습니다.

우리 부대원을 태운 60트럭은 강원도 홍천군 어느 골짜기에 이르러 우리를 내려놓았습니다. 우리는 거기서부터 경기도 양평군을 지나 여주군까지 행군을 했습니다. 행군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 부대원들이었지만, 홍천에서 여주까지의 행군은 정말 힘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먼저 강원도 산과 경기도 산은 모습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우리는 100~200고지가 대부분인 경기도의 낮은 산에 대해서 아주 우습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평소 오르내리던 산은 800~900고지가 수두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기도의 산은 비록 높이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행군을 하기에는 아주 최악이란 것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강원도 양구는 우리나라에서 최고 고지대에 속하는 지역입니다. 이곳에 있는 산은 산능선이 계속해서 이어져 있기 때문에 한번 오르면 능선을 타고 다음 산으로 계속 이동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양구의 웬만한 산길은 군인들이 하도 다녀서 길이 고속도로 처럼 잘 나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시 거쳤던 경기도 양평과 여주의 산은 능선이 연결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산을 타고 행군을 하려면 이쪽 산 꼭대기에 올라갔다가 바닥까지 완전히 내려온 다음, 다시 저쪽 산에 올라가는 것을 반복 야 했습니다.

거기에다 대부분의 산이 사람이 다니지 않은 곳이라서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았습니다. 어깨에 메고 있는 기관총 총구가 나뭇가지에 자주 걸렸고, 행군 중 나뭇가지를 피하기 위해 몸을 자주 숙여야 했는데 이런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행군을 힘들게 했습니다.

3월인데 날은 얼마나 추웠던지 차고 있는 수통이 전부 얼어버려 우리는 행군도중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군장에 기대어 쉬고 있는데 대대장이 짚차를 타고 달려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차에서 내린 대대장은 갑자기 중대장에게 달려가더니 이단 옆차기로 중대장을 걷어 찼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대대장은 중대장에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야 이 멍청한 놈아! 부대원들을 이렇게 녹초를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 싸우나? 지금 중대 전투력이 제로야 제로. 적군이 당장 기습하면 어떻게 대응할래? 행군도 좋지만 전투력을 유지하면서 병력을 이동 시켜야지 이렇게 녹초를 만들어 놓으면 어떡해?”

대대장에게 욕을 먹고, 걷어차인 중대장도 엄청 억울했을 겁니다. 중대장은 아마 '몇 시까지 부대원을 어디에 집결시키되, 차가 다니는 큰 길을 피하는 전술 행군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겁니다. 대대장은 중대장이 유연성이 없이 굳이 오르지 않아도 되는 산을 타면서 무리한 행군을 했다고 화를 냈을 겁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무식하게 하루종일 산을 타면서 행군을 한 부대는 우리 중대밖에 없었습니다.

어쨌든 그날 부근 산속에서 텐트를 치고 숙영에 들어갔습니다. 이때부터 4~5일간 한 번도 씻지 못한 기억이 납니다. 공교롭게도 이동한 숙영지마다 부근에 물이 없었습니다.

설사 야영지 부근에 냇가가 있어도 물이 너무 더러워서 그냥 세수를 하거나, 마실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강원도는 아무 곳이나 텐트를 쳐도 가까운 계곡에 내려가면 물이 넘쳐났고, 또 그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었는데 경기도는 상황이 많이 달랐습니다.

일단 물이 없는 곳에 야영을 하게 되면 분대별로 한 두명이 차출되어 수통을 모아 물을 뜨러 가곤 했습니다. 한번은 그렇게 물을 뜨러 갔는데 좁은 도랑의 흙탕물에서 각 중대의 식기 당번들이 식판을 씻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나마 먹는 물은 좀 더 상류에서 가늘게 졸졸 흘러나오는 깨끗한 물을 받을 수 있었는데, 줄이 무척 길었습니다.

병장 이상의 고참들은 이렇게 떠온 수통의 물로 고양이 세수라도 할 수 있었지만, 우리 쫄따구들은 아무 대책이 없었습니다. 소금기에 절은 전투복을 입고, 얼굴에 땀과 위장 크림이 범벅이 된 채 몇일 동안 그냥 지내야 했는데, 나중에 부대원끼리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밥먹는 것도 더럽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후 저는 女軍은 장교와 사병을 떠나 절대로 보병 전투 부대에 배치되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하루는 산속에서 야영을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군장을 싼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출발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그늘 진곳에서 마냥 기다리자니 너무 추웠습니다. 우리는 펄쩍펄쩍 뛰거나, 왔다갔다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기다린 후 어디론가 출발을 했습니다.

팀스피리트 훈련은 워낙 대규모 병력이 동원되는 훈련이다 보니까 산속에 흩어져 있는 중대 단위 부대의 움직임을 조율하는데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이렇게 큰 훈련에 참여하면 일개 부대원들은 지금 자기와 자기 부대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소대장이나 중대장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어떤 때는 숙영지로 결정되어 텐트를 쳤는데, 금방 "이동하라"는 명령이 내려와 다시 텐트를 뜯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여주에서 남한강을 渡河했습니다. 공병대가 와서 우리가 도하할 고무 단정을 새카맣게 강변에 내려놓았습니다. 우리는 평소 훈련했던 대로 단정의 노를 저어 강 건너편으로 건넜습니다. 강물이 시퍼렇고, 물살이 제법 센 것이 단정이 뒤집히면 그대로 휩쓸려 갈 것 같았습니다.

“하나둘 하나둘” 하며 열심히 강을 건넜지만, 일부 단정은 호흡이 맞지 않아 방향이 일직선으로 가지 않고 삐뚤게 나아가기도 했습니다. 이런 단정에 탄 고참(분대장)들은 쫄따구를 잡아 먹을 듯 씩씩 거렸습니다.

건너편 백사장에 도착하자 말자 한 고참이 개머리판으로 노를 저은 자기 분대원들의 철모를 사정없이 내리치기 시작하는데 보기가 아주 딱했습니다. 이 고참은 평소에도 소대원들을 자주 패거나 얼차려를 주는 못된 고참이었습니다. 태권도 하다가 발차기 자세가 좋지 않다고 개구리를 한 마리씩 잡아 오라고 하더니 "먹으라"고 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강을 건너서 인근 숲속으로 散開해서 들어가자 이어서 백사장에서 대규모 도하 훈련이 진행되었습니다. 수륙양용 장갑차가 갑자기 물속에서 튀어 나오기도 했고, 백사장 공중에서는 평소 TV에서만 보던 공격 헬기가 줄지어 떠 있었습니다. 색색의 연막탄이 수백미터 백사장에서 터지는 모습이 아주 장관이었습니다.

강을 건넌 후 세종대왕릉을 지나오는데 미군 부대 공병대 차량이 우리가 건너왔던 남한강으로 浮橋 설치 훈련을 하기 위해 이동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한번 지나가기 시작한 미군 차량 행렬은 기차가 꼬리를 물듯이 그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미군이 가진 장비의 위력을 실감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종대왕릉을 지나서 여주 시내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대장이 짚차를 타고 오더니 “여기까지 왔는데 세종대왕께 인사나 하고 가자”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던 길을 다시 돌아 세종대왕릉인 영릉에 들어가 다음 이동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몇 시간동안 휴식을 취했습니다. 영릉에는 많은 미군들이 들어와서 쉬고 있었습니다.

사실 보병의 야전 훈련이란 것이 재미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이동하고 행군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팀스피리트 훈련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첫날 홍천에서 여주까지의 종일 행군 한 것 외에는 대부분의 훈련이 여주나 양평군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특별한 장거리 행군도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아침 먹고 어느  산속으로 이동해 참호를 파고 한나절 이상을 대기한 적도 있는데, '혹시 상부에서 우리 부대가 어디 처박혀 있는지 잊어먹은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봤습니다. 그저 밥먹고 나면 이동하고, 잠자고 나면 이동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습니다. 

다만 큰 훈련이라서 그런지 매일 초코파이나, 기타 다양한 간식이 끼니마다 나왔습니다. 사실 자대에서 하는 대대급 훈련은 몸은 두세 배 힘들지만, 간식이라고 해봐야 컵라면 외에는 거의 제공되지 않은 것에 비하면 팀스피리트 훈련 때 제공되는 간식은 상당히 다양했던 기억이 납니다.

천안함 爆枕 사건으로 대규모 韓美 합동 훈련을 다시 연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으니 제가 참여했던 마지막 팀스피리트  훈련이 생각나서 군대 이야기 몇자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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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이야기: <M60 사수 이야기>

입력 : 2010.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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