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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오봉 ‘주말 나들이’

“鄭周永회장님, 50년 젊게 찍어 드리겠습니다.”

이오봉  월간조선 객원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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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긋이 웃으시면서 카메라 앞에 늘 서시던 정주영(鄭周永)회장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100살까지 사실 것 같이 건장하셨던 정주영 회장님이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지도  벌써 8년이 지났다.


1985년 7월 현대 중공업 조선소 야드에서 만난 정주영 회장.
그의 모습이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생생하다.
바로 내 카메라 앞에 서 있는 것 같이-.

우리 국민이 오늘날 이만큼 잘 살게 된 데는 건설에서 조선과 중화학 공업으로, 다시 자동차, 전자 산업으로 발 빠른 전환을 주도해 온 현대그룹의 힘이 컸다.
 현대그룹을 이끌어 온 정주영회장과의 인연은 1978년 현대건설 홍보실에서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였다.

브로슈어나 각종 홍보물에 쓰일 사진을 찍다 보니 가까이서 鄭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이나 그의 생각까지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되였다.

鄭회장은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는 않았으나 시골 노인네들처럼 괜히 쑥스러워 하곤 했다.

어느 날 鄭회장의 공식 인물사진을 찍기 위해 회장실 옆방에 간이 촬영 세트장을 만들어 놓고 아침 일찍부터 鄭회장의 출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에 들어선 鄭회장은 카메라맨의 지시에 따라 몇 번의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해서 몇 커트 찍자마자 “ 이제 됐지, 필름 아깝게 뭐 그리 많이 찍어.” 하면서 발길을 돌려 획 나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증축 될 울산조선소 야드 공사 현장에서 설계 도면을 펼쳐 놓고 기술진과 열띤 토론을 하는 정주영회장.

사진가들은 언제나 많이 찍어서 그 중에서 제일 잘 나온 커트를 고르고 싶어 한다. 자연스런 인물 사진은 실제로 많이 찍어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鄭회장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재빠르게 지체 없이 셔터를 눌러대야 한다.

예고 없이 돌아서거나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때가 많아 자칫하면 만족스런 사진을 찍을 순간을 놓치기 일쑤였다. 그 때마다 야속하다고 생각했지만,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그의 검소한 생활을 지켜봐온 나로서 지금 생각하니 정말로 필름 값을 아끼라는 말이였던 같다.

1982년 5월 5일 어린이날 현대그룹 경기도 용인 사원연수원 마당에서 鄭회장 일가족이 모두 모여 단란한 가족체육대회를 가졌다.

아들들과 손자 손녀들이 모두 모여 소프트볼을 하고 테니스를 치며 즐거운 한 낮을 보내고 있을 즈음 돌아가신 정몽헌(鄭夢憲)회장이 슬그머니 다가와 “李과장 오늘 어린이 날인데 이렇게 수고를 해서 되나, 어지간히 찍었으면 이제 집에 가지 그래.” 이제 그만 사진을 찍고 가라고 부추기는데 마침 옆에 鄭회장님이 서 계셨다.
“회장님, 오늘이 어린이 날이고 한데 李과장 애들 과자 값이라도 좀 주시죠. 그리고 일찍 집에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이봐 이리와.”
鄭회장은 나를 불러 세우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세기 시작했다.
“오늘 노는 날인데 수고 했어.” 하면서 5천원(지금 돈으로 치면 5만 원 정도)을 주신다.
이를 옆에서 보고 있던 정몽헌회장이 씩 웃으시면서 “회장님, 조금 더 주시지요.”라며 수고비를 더 듬뿍 줄 것을 부추겼다.

그러나 세고 남아 그의 주머니 속에 들어간 돈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만 6년 동안 현대그룹 홍보실에 근무를 해왔지만 鄭회장으로부터 직접 촌지를 받아보긴 처음이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1985년 7월 25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에서 아들 식구들과 아침 식사를 하시는 鄭회장님 댁의 밥상. 검소한 생활의 일면을 엿 볼 수 있다. 가운데는 2007년에 작고하신 부인 변중석여사.

그 후 현대그룹 홍보실을 떠나 다시 신문사로 돌아와 현대그룹의 회장 동정을 찍는 카메라맨이 아니라 그를 취재하는 사진기자로서 어느 신문이나 잡지 사진기자보다도 더 잘 鄭회장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사진을 찍어 보려고 나름대로 무척 노력을 했다. 그 후 취재차 몇 차례 정주영회장을 수행하면서 사진 찍을 기회도 있었다.

서산간척사업으로 서울 여의도의 48배가 넘는 2억 6천 4백 평의 농지를 얻게 될 것이라는 큰 꿈을 가진 그는 뜨거운 여름 한철에도 쉬지 않고 현장을 손수 걷거나 짚 차를 타고 그 넓은 간척지를 돌아보곤 했다.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 생각하니 그의 마음속에는 늘 농심(農心)이 자리 잡고 있었던듯 했다. 鄭회장을 따라 서산방조제 공사 현장에 가면 카메라를 메고 鄭회장을 쫒아가기 힘들 정도로 논두렁을 펄쩍 펄쩍 뛰어다녔다. 

일망무제(一望無際)의 드넓은 농토가 생겼으니 그는 절로 신바람이 났다.


1978년 5월 경기도 광주로 회사 중역들과 모심기 자원봉사에 나선 鄭회장.
“잘 들 심어요. 모가 죽으면 우리가 가을에 쌀로 대신 갚아야 해요.”


어느 해 뜨거운 한 여름 서산간척지 논두렁을 분주히 오가는 鄭회장의
발걸음은 누구의 발걸음 보다 빨랐다.

당시 서산 A지구 마지막 남은 270m의 물막이 공사가 난제였다. 초속 8m으로 흐르는 바닷물은 자동차만한 바위도 순식간에 쓸어갈 정도였다.
84년 2월 25일 정주영 회장은 이 공사 현장에 울산에 정박 중이던 폐선을 끌어와 물길을 막고서 공사를 조기에 마무리 할 수 있게 했다. 이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정주영式 '유조선 방조제공법'은 많은 공사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었다.

그 후 서산간척지 너른 벌은 논으로 변했다. 추수기를 앞 둔 어느 해 鄭회장을 취재할 일이 있어 함께 농장을 돌아보게 됐다.

“鄭회장님, 벼 한 포기를 잘라 한 아름 안고 사진을 찍게 해주십시오.”

 흔쾌히 승낙을 한 鄭회장은 잘라 온 벼를 한포기 안자 얼굴에 모나리자의 웃음만큼이나 심오한 미소를 띠었다. 이렇게 해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배고픔을 잊지 못했던 鄭회장의 꿈을 사진 속에 담을 수 있었다.


서산간척지 가을 들녘에서 수확을 앞둔 벼를 한 아름 안고 있는 鄭회장의
모나리자 미소.

식량만큼은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鄭회장의 지론을 몸소 실천해 보였던 순간이었다. 그는 이제 서산간척지 농장을 배경으로 산업화와 국제화에 앞장서서 한국 경제 발전을 선도한 지도자가 아니라 소박한 농부가 되어 카메라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鄭회장의 사진을 가까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마지막 만남이었던 같다.

그 후 국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거를 치르면서 멀리서 그의 마지막 소망인 대통령이 되는 꿈이 이뤄질 것을 기원하며 취재 현장에서 몇 번 뵌 적이 있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까이서 鄭회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대통령 선거를 치른 이후 호기 있고 싱긋이 잘 웃으며 달변을 토하던 그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왜 그런지 힘이 없어 보여서 신문기자로서 지켜보던 나의 가슴이 저려왔다.


1981년 현대건설 해외근무 임직원 가족 위로 만찬장에서 부인 변여사와 함께 열창하고 있는 鄭회장의 노래는?  가수 윤항기의 ‘이거야 정말’이였다.

지금도 귀에 생생히 들려오는 鄭회장님의 말씀 한마디.
“여봐요, 한 10년 젊게 찍어주세요.”
 
鄭회장은 함께 여럿이 사진을 찍을 때 마다 던지는 이 한마디로 같이 서서 사진을 찍던 주위 사람들을 웃게 만들곤 했다. 어떻게 보면 찍히는 사람보다 사진을 찍는 카메라맨이 더 긴장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鄭회장은 오히려 이렇게 찍는 이의 마음까지도 편하게 해주셨다.
 
이렇게 찍은 사진속의 인물들의 표정은 모두 환하다. 鄭회장의 말 한마디로 자연스럽고 밝은 표정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이 드신 분들의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셔터를 누르기 전에 정주영회장이 카메라 앞에 서면 빼 놓지 않고 늘 사진을 찍는 나에게 던졌던 한마디를 잊지 않고 곧 잘 써먹는다.
 더 보태서 ‘20년 젊게 찍어 드리겠습니다.’라고 아니 ‘30년 젊게 찍어 드리겠다’고 외치곤 한다. 그 때마다 카메라 앞에 선 모두들 웃지 않는 이들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가 생기고 연이어 현대자동차가 자리를 잡은 경남 울산市가 국민 소득도 제일 높고 잘사는 도시로 손꼽히고 있다. 정주영회장이 세운 현대그룹이 울산市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오늘날 이만큼 잘살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정주영회장의 이미지들을 몇 장이나마 남길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소프트 볼, 테니스, 배구를 특히 잘 하셨던 鄭회장님. 어느 해 여름 강릉 경포대에서
있었던 현대건설 신입사원 하계 수련회에서 사원들과 배구 시합을 하면서 박장대소
(拍掌大笑).

“鄭회장님, 50년 젊게 찍어드리겠습니다.”
“그래, 한번 잘 찍어봐.”
 
지금 살아 계신다면 당장 뛰어가 정주영회장님의 내면의 세계를 드러낸 영원히 남을 인물사진을 다시 잘 찍어 드리고 싶건만 지금 그분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하늘나라에서라도 새털처럼 가볍게 南北을 오가시고 계시리라 믿는다.

입력 : 2009.12.14

조회 : 8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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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봉 ‘주말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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