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NEWSROOM
  1. 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영화 '덩케르크'를 보고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 스크랩
  

영화 <덩케르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를 봤다. 1940527~ 62일 나치독일군에게 쫓겨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됐던 영국군과 프랑스군 338000명을 철수시킨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그린 영화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영국에서는 군함과 대형 여객선은 물론이고 소형 요트와 어선들까지 총동원했다. 전사(戰史)에서 본 덩케르크 철수 작전 이야기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크고 작은 영웅들의 대서사시이다. 그래서 <덩케르크>가 개봉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가슴이 설레었다.

 

적에게 포위된 조용한 도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영국군 병사들의 머리 위로 삐라가 눈처럼 쏟아진다. 독일군이 뿌린 삐라다. 삐라에는 영국군과 독일군이 덩케르크 지역에 포위되어 있는 상황을 그린 지도와 함께 너희는 완전 포위됐다. 항복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병사 하나가 몇 장의 삐라를 주워 바지춤에 넣는 순간 총성이 울린다. 동료 병사들이 쓰러진다. 총알을 피해 달리는 그들의 뒤로 총알이 계속 날아들고, 병사들은 하나 둘 쓰러진다. 총 마저 내던지고 프랑스군이 지키는 바리케이트를 지나 병사는 달린다. 그리고 한 순간 그의 눈앞에 드넓은 모래밭과 바다가 펼쳐진다. 모래해변에는 영국군 병사들이 줄을 지어 서서 자기들을 태워줄 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머리 위로 ~~~’하는 사이렌음을 울리며 슈투카(독일공군의 급강하 폭격기)가 날아든다. 병사들은 황급히 엎드린다. 기총소사 소리가 들리고 폭탄이 터진다. 폭음과 함께 병사들이 날아간다. 슈투카가 지나간 후 병사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나서 다시 줄을 선다.

여기까지가 영화 시작 10분까지의 이야기다. 소설이든 영화이든 기---결이 있기 마련이다.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서서히 고조되어 가다가 절정에 이르러 그 긴장을 일거에 해소시켜주면서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해주는 것이 소설이나 영화의 기본문법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그런 게 없다. 구조선이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병사들이 배에 오른다. 차분하게 줄을 섰다가 자기 차례가 오면 배에 오르는 병사들이 대부분이지만, 개중에는 야마시를 쳐 가지고 슬쩍 살길을 찾으려는 병사도 있다. 어렵게 배를 타고 나가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독일군의 폭격기다. 배 위로 폭탄이 떨어지고, 배 안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몸을 녹이던 병사들은 차오르는 바닷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하나 둘 목숨을 잃는다. 요행 바다 위로 뛰어 내려 목숨을 건진 병사들은 보트에 몸을 싣고 다시 덩케르크 해안으로 돌아와 하염없이 배가 오기를 기다린다.

다른 한편에서는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 요트 선장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덩케르크의 병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날아온 영국 공군 조종사들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하지만 어디에도 극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장치는 보이지 않는다.

치열한 전투신은 없다. 적기가 저공으로 날아들어도 병사들은 소총으로 화망(火網)이라도 구성해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냥 모래에 머리를 박고 적기가 사라지기를 기다릴 뿐이다. 공군의 전투도 화려하지 않다. 20분에 한 대 꼴로 이륙했다는 영국 공군기는 다 어디로 갔는지, 달랑 세 대의 비행기가 영국 공군을 대표할 뿐이다.

그러다가 한 순간 수평선 위로 크고 작은 수많은 배들이 나타난다. 해변에서 철수 작전을 지휘하던 영국 해군제독에게 육군 대령이 묻는다.

뭐가 보입니까?”

조국이 보이네.”

자기들을 구하기 위해 조국에서 달려온 배들을 보며 병사들은 환호성을 올린다. 영화에서 작게나마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이때뿐이다.

하지만 환호도 잠시. 구조작업을 벌이는 이들의 위로 다시 독일공군이 덮친다. 배들은 가라앉고, 병사들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침몰한 군함에서 유출된 기름 위에 불길이 번지고....

그러다가 한 순간, 덩케르크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을 태운 배들이 항구에 들어온다. “국민들이 우리를 손가락질 하지 않을까?”라고 걱정하는 병사들을 시민들은 따뜻하게 맞이한다. 한 노인은 병사들에게 구호품을 나누어주며 말한다.

수고했어.”한 병사가 부끄러워하며 말한다.

저희는 그냥 살아 돌아왔을 뿐인걸요.”그거면 됐네.”

그들을 배경으로 처칠의 연설이 나온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상륙지점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클라이맥스나, 카타르시스를 기다리던 관객들 입장에서는 허탈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화려한 영웅담도 없고, 눈길을 끄는 주연도 없다.

 

함께 영화를 본 임 모 교수는 감독이 스토리를 쥐고 놓지를 않았다놀란 감독, 내 눈에 보이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펄펄 뛰었다. 자리를 같이한 최공재 감독은 내러티브 따위는 버려두고 무조건 진행한다. 빈곳은 끊이지 않는 효과음과 한스 짐머의 음악으로 도배를 한다면서 그나마 이 영화의 재미를 느끼려면 반드시 아이맥스로 볼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을 봐도 이 영화에 대한 평은 극과 극을 달린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불만스럽지 않았다. 재미있게 빨려드는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볼 만 했다, 보기를 잘 했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였다. 영화의 무미건조한 긴장감은 아마 놀란 감독으로서는 공들여 빚어낸 장치가 아니었을까? 19405월 덩케르크 해변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도 그렇지 않았을까? 병사들은 폭격과 기총소사를 견뎌내면서 하염없이 구조선을 기다렸고, 운 좋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더라도 폭격과 함께 수장(水葬)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한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따뜻하게 자기들을 맞아주는 시민들 가운데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지금 우리의 현실을 생각했다. 지금 나는 덩케르크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외교안보를 흔들어대는 문재인 정권 사람들의 언사와 정책들은 영국군 병사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총탄과 폭탄 같다. 그러는 문재인 정권을 향해 박수를 쳐대는 일부 언론의 행태는 애국보수세력을 향해 너희들은 완전 포위됐다며 항복을 권고하는 삐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며 좌절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덩케르크가 끝이 아니었음을...덩케르크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이후 처칠의 연설처럼, 바다에서, 하늘에서, 거리에서, 상륙지점에서 싸웠다. 그리고 결국은 승리했다. 박근혜 정권이라는 군함은 침몰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좋은 자유주의자들, 건강한 젊은 보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류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지성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애써 찾아듣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내 눈에 그들은 크고 작은 배를 몰고 덩케르크에 고립된 병사들을 구하러 바다로 나섰던 영국인들로 보인다.

아직 덩케르크의 첫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더 많은 폭탄이 떨어지고 기총소사가 가해질 것이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영국인들이 결국 승리했던 것처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이들, 자유를 사랑하는 이들이 결국은 승리할 것이다. 영화 <덩케르크>는 말한다. 결코, 결코, 결코, 포기하지 말라고!

 

 

 

입력 : 2017.07.22

조회 : 826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진

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년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 등이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제가 읽은 책들을 소개하면서 세상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1711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정기구독

MAGAZINE 인기기사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