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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갑식 ‘세상읽기’

권총과 달러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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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평양에서 열린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간부 회의에서 김정일이 테이블 위에 권총과 달러 다발을 늘어놓은 뒤 퀴즈를 냈다. "동무들, 권총과 달러 중 어느 쪽을 가지고 싶은가?" 간부들이 머뭇댔다. 잘못 입을 열었다가는 이 변덕쟁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걸 그들은 알았다.

좌중에 침묵이 흐르자 김정일이 경호원을 지목했다. 한 명은 "달러가 있으면 권총을 살 수 있다"고 했다. 다른 한 명은 "권총이 있으면 달러를 빼앗을 수 있다"고 했다. 김정일이 두 번째 대답에 웃으며 말했다. "동무 대답이 맞는다. 우리가 경제를 희생하며 핵과 미사일을 만드는 이유가 거기 있다"고 했다.

못된 유전자일수록 진화(進化)가 빠른 법이다. 김정일이 평생 되뇌었던 "알사탕은 없어도 되지만 총알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그의 아들 김정은 대(代)에 와서는 "알사탕도 총알도 함께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말로 바뀌었다. 알사탕은 대북(對北) 경제 지원, 총알은 핵과 미사일을 뜻한다.

아무리 국어사전을 뒤져도 '날강도'라는 말 외에 이 부자(父子)의 심리를 표현할 단어를 찾을 길이 없다. 핵폭탄과 미사일이 우리 머리 위로 쏟아져 북한식 표현대로 '불바다'가 되기 직전인데도 정작 이 날강도 패밀리가 언제부터, 왜 못된 모의를 했고 무슨 수법을 쓰는지 아는 이가 드물다.

1953년 남북(南北) 지도자는 울화를 터트리고 있었다. 북진 통일을 원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소심한 트루먼 미 대통령에게 실망했다. 적화 통일을 눈앞에 뒀던 김일성은 병력 지원 요구를 거부하며 자기를 한사코 휴전회담장으로 이끄는 중국 모택동과 소련 스탈린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두 사람의 선택은 달랐다. 이승만은 세계 최강국을 대한민국의 방패로 만드는 한미방위조약을 맺었고 김일성은 경제 파탄을 각오하며 핵 개발을 결심했다. 악마(惡魔)의 유혹에 빠져 주민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지만 이 외골수 3대가 호락호락한 존재였다면 북한은 진작에 망해버렸을 것이다.

북한의 세계 전략은 '미국을 견제하며 중국은 애를 태우고 남조선은 가지고 논다'는 것이다. 구한말 청(淸) 관리 황준헌이 쓴 '조선책략'에 나오는 '친중-결일-연미(親中-結日-聯美)'의 변주(變奏)다. 북한 외교전술 역시 막무가내식으로 보이지만 '테크닉'이 보통이 아니다. 그 예를 들어본다.

김정일은 1994년 북미 교섭 대표인 강석주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중국 4대 기서(奇書) 중 하나인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처럼 행동하라고 하면서 내놓은 해석이 의미심장하다. "저팔계는 정직한 듯도 하고 바보인 듯도 하고 불쌍한 듯도 하고 둔한 듯도 하지만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지 않는가?"

우리 외교와 비교하면 알파고급(級)인 북한의 '남조선을 가지고 논다'는 전술에 걸려든 유명 조연(助演)이 몇 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정몽헌 부자다. 나는 조만간 그 명단에 누군가의 이름이 추가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올해 본 뉴스 중 가장 전율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도, 문재인 대통령 당선도 아닌 5월 22일 보도된 사진 몇 장이다. 북한의 '북극성 2형' 미사일에 달린 카메라가 담은 지구 모습이었다. 머지않아 우리는 북한 우주인이 진짜 달에서 문워크(moonwalk)를 하는 장면을 목격할지도 모른다.

북한과 달리 우리는 팝스타 마이클 잭슨이 히트곡 '빌리진'에서 선보인 '문워크'처럼 과거를 향해 허우적대고 있다. 통쾌해 보이지만 거꾸로 가는 '문워크'와, 미련해 보이지만 전진하며 일발필도(一發必倒)를 노리는 '문워크' 가운데 누가 승자가 될지는 곧 밝혀질 것이다.
입력 : 2017.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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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갑식 ‘세상읽기’

gsmoon@chosun.com 1988년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편집부-스포츠부-사회부-정치부를 거쳐 논설위원-기획취재부장-스포츠부장-선임기자를 역임했다. 현재 월간조선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사회부기자 당시 중국민항기 김해공항 추락-삼풍백화점 참사-씨랜드 화재-대구지하철화재 등 대형사건의 현장을 누볐다. 이라크전쟁-아프가니스탄전쟁을 취재했으며 동일본 대지진때 한국기자로선 처음 현장에서 들어가기도 했다. '문갑식의 하드보일드' '문갑식의 세상읽기' '문갑식이 간다'같은 고정코너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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