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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배진영 ‘간서치의 세상읽기’

미국의 이념내전 - <미국이 없는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가?>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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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없는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가?>, 디네시 더수자. 21세기북스 (2016)

1831년 미국을 방문한 프랑스 귀족청년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미합중국이라는 신생 민주공화국이 약동하는 모습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그는 구대륙과는 다른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신대륙의 정치-사회-경제-문화를 목도하고, 신생 공화국의 작동원리와 그 무한한 가능성을 책으로 써냈다. 그것이 바로 이제는 고전이 된 <미국의 민주주의>다.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난 흙수저 청년이 1978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다트머스대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한 그는 미국기업연구소 등을 거쳐 30년 후 뉴욕킹스컬리지 학장을 지냈고,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의 보수사상가“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그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디네시 더수자이다.

원제가 <아메리카>인 이 책은 21세기 초 미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국제관계 등을 돌아보면서 지금 미국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미국은 어떤 나라여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21세기판 <미국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지금 미국은 ‘1776년의 정신’과 ‘1968년의 정신’이 치열하게 충돌하고 있는 나라다.

‘1776년의 정신’은 ‘이민자들의 정신’이고 ‘낡은 세계에서 벗어나 다시 시작한 사람들의 정신’이다. 독립자존의 정신 아래 끊임없이 혁신해 나가는 사람들의 정신이다.

저자는 미국 건국 정신으로 만민평등과 천부인권의 사상 못지않게 ‘미국은 혁신과 기업활동을 통해 부를 쌓아 올린 수 있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나라’라는 점을 꼽는다. 미국이 권리장전을 헌법에 추가하기 이전에 헌법이 언급한 유일한 권리는 특허와 저작권에 대한 권리였다는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미국은 '능력주의 시장경제'라는 역사적인 발명을 했다. 이러한 사회는 ‘평등한 권리는 불평등한 성공이나 결과를 허용할 뿐만 아니라 불평등한 결과에 대해 도덕적으로 정당한 이유를 제공한다. 모든 사람이 같은 규칙에 따라 경쟁을 벌였을 때 어떤 사람은 금메달을, 어떤 사람은 은메달을 목에 거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생각에 기초한 사회에서 ‘불평등한 결과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필요악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는 불평등하게 재산과 재물을 축적하는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미국이 만들어낸 ‘능력주의 시장경제’라는 발명품은 1세기 남짓 만에 미국을 세계 제일의 부국으로 키워냈다. 그리고 오늘날 중국이나 인도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도 그러한 생각을 수입했기 때문이다. 세계인이 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와 개선된 삶의 질, 그리고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빠른 속도로 빈곤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능력주의 시장경제’의 소산인 ‘기술자본주의’ 덕분이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미국인들은 자신들과 세계인을 위해 많은 것을 이룩한 ‘1776년의 정신’으로부터 이탈해 있다. 대신 오늘날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1968년의 정신’이다. 이 정신은 한 마디로 ‘반미주의’, 즉 ‘미국식 생각과 제도에 대한 강렬한 적대감’이다. 이들이 보는 미국은 ‘용서받지 못할 나라’이다. 미국과 미국의 가진 자들이 누리는 부(富)와 지위는 한 마디로 도둑질한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역사적으로는 인디언과 흑인, 나라 밖에서는 제3세계국가(식민지)들, 국내적으로는 노동자들이 도둑질을 당해 왔다. 당연히 가진 자들은 가진 것을 빼앗아 이들에게 돌려주어야 하고, 미국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당한 몫을 내놓고 그 국제적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20세기 중반 케냐 출신인 아버지에게서 반(反)식민주의 이데올로기를 물려받았고, 1960년대 급진적 사회운동가 솔 알린스키의 세례를 받은 오바마는 바로 그런 생각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이다.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오바마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나 해리 트루먼, 존 F.케네디, 지미 카터는 물론 빌 클린턴과도 다른 새로운 종류의 민주당 대통령이라고 주장한다. 오바마는 그들과는 달리 ‘조국인 미국이 용서받지 못할 나라라고 생각하게 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오바마의 경제정책, 사회정책, 국제정책은 미국을 해체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가 보기에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2014년의 미국은 ‘국가의 자살’을 향해 가고 있는 나라다.
 
부패와 족벌주의, 수천년을 이어져온 신분제도의 굴레가 지배하는 인도 태생 이민자인 저자는 ‘1776년의 정신’을 강력하게 옹호하고 ‘1968년의 정신’의 허구성을 맹렬히 비판한다. “이루다 (making it)'이라는 말은 그저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을 내 손으로 만든다는 의미다”라고 외치는 저자는 자신이 ‘1776년의 정신’의 계승자라고 자부한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탐욕의 사상’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향해 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한다. 자기애와 자발적 교환의 원리에 기초한 자본주의는 “도둑질과 약탈을 위한 체제가 아닌, 도둑질과 약탈을 방지하는 대안”이라고 역설한다. “자본주의는 결혼이 성욕을 교화하듯 똑같은 방법으로 탐욕을 교화한다”.

“자유시장이 아름다운 이유는 공급자가 ‘가치’가 공급자에게 돈을 지불할 사람들의 손에서 정확하게 결정되기 때문이다”고 말하는 저자는 CEO 급여 제한을 주장하는 오바마 대통령을 겨냥해 “자신이 급여를 주는 사람도 아니면서 CEO가 얼마를 받아야 한다고 거들먹거리며 이야기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은 얼마나 가당찮은가”라고 일갈한다.

저자는 노동자, 못 가진 자들이 느끼는 박탈감 내지 시기심을 인정하면서도, “노동자가 성공하려면 고용주를 만족시키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고용주가 성공하려면 소비자라는 훨씬 더 큰 공동체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받아친다. 기술자본주의 하에서 확대되는 빈부격차에 대한 지적들에 대해서는 “불평등한 번영은 평등한 빈곤보다 낫다”고 응수한다.
 
저자는 서양의 제국주의가 제3세계 국가들을 수탈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반박한다. 경제사학가 P.T바위를 인용. “영국이 통치하기 전 말레이 반도에는 고무나무가, 서아프리카에는 카카오나무가, 인도에는 차나무가 없었다”고 꼬집는다. 그럼 서양국가가 부유해 진 것은 무엇때문인가? 저자는 서양사회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근대과학과 근대기술, 근대자본주의를 발명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저자는 “미국 역시 결코 다른 나라들로부터 부를 훔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이 몰락한다면 새로운 강대국이 등장해 미국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전 세계가, 아마 진보주의자들까지도 전 세계 역사상 가장 인도적이고 가장 신사적이었던 초강대국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오히려 저자에게 ‘진짜 도둑’은 ‘노력을 통해 부를 일군 사람들에게서 재산을 빼앗기 위해 국가권력을 사용하는 진보주의자들’이다. “도둑의 뒤를 쫓고 훔친 물건을 되돌려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정부는 가장 큰 도둑이다.” “가장 큰 도둑은 미국이나 자본주의가 아니며 백악관에 거주하는 정중하지만 비열한 악당이다.”

저자는 “진보주의는 부를 일군 사람들에게서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 정치적 지지세력을 얻으려는 속임수에 바탕을 둔 종합적인 이론”이라고 일갈한다. 진보주의는 사람들의 ‘시기심’을 바탕으로 자라나고, 시기심이 당당하게 행세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준다. “진보주의자들은 시기심을 정치적으로 조장하는, 시기심이 도덕률이라는 여권을 들고 돌아다니도록 허가하는 공을 세웠다.”

고율과세, 규제, 정부명령은 저자가 보기에는 ‘한쪽 국민에게서 다른 쪽 국민에게로 불법으로 부를 이동시켜 국민의 돈을 빼앗는 것’이다. 저자는 중세 농노들이 사흘은 자신을 위해, 사흘은 봉건영주를 위해 무보수 노동을 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40~50%에 달하는 세금을 부담하는 미국인들은 중세 농노들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는다.

더 나아가 저자는 테러리즘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국가권력이 커지고, 국가가 시민생활을 광범위하게 감시하는 현실을 우려한다. 이를 통해 얻은 정보를 진보주의자들이 자신의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 책은 대부분 ‘1776년의 정신’과 ‘1968년의 정신’의 대결이라는 미국 사회의 ‘이념적 내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번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 것은 ‘1968년의 정신’에 대한 ‘1776년의 정신’의 반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념적 내전’을 겪고 있는 미국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우리의 현실과도 닿아 있다. 예컨대 저자는 대공황과 제2차세계대전을 극복한 ‘위대한 세대(1920년대에 출생한 미국인들)’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아낌없이 준 까닭에 버릇없는 1960년대의 아이들이 탄생했다’고 탄식한다. 이는 절대빈곤과 6‧25를 극복했던 한국의 ‘위대한 세대(1930년대생들)’이 ‘오냐 오냐’ 하면서 윗세대의 성취와 역사를 깡그리 부정하는 386세대를 키워낸 것과 흡사하다.

저자는 1960년대 이후 진보주의자들이 ‘아래에서 바라본 역사’라고 불리는 새로운 연구를 통해 기존의 역사인식을 뒤집었으며 ‘그 결과 이들의 움직임은 오늘날 미국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주요 방식으로 자리 잡을 만큼 완전히 제도화됐다’고 말한다. 이는 ‘교과서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연상케 한다.

1960년대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의 저자 솔 알린스키(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이 그 제자이다)가 급진주의운동을 ‘선량한 시민운동’인 것처럼 가장해서 미국 사회에 침투시키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시민사회운동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당연하다. 우리나라의 시민사회운동가들은 솔 알린스키의 제자들이니까).

또 저자는 미국을 비난하면서도 미국의 그 어떤 제도들보다 더 나쁜 이슬람 독재체제를 구축한 이란의 호메이니를 찬양한 미셸 푸코의 이중성을 지적한다. 이 또한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도 북한의 세습독재체제에는 눈 감는 국내 좌파지식인들을 떠오르게 한다.
 
<미국이 없는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가>라는 이 책의 한국어 제목과 가장 걸 맞는 이야기는 마지막 장(제16장 몰락은 선택이다)에서 나온다. 저자는 지금처럼 가면 미국이 몰락하고 그 자리를 중국이 차지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중국이 패권을 차지한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의 저자 마틴 자크를 인용, “중국인은 민주주의자도, 평등주의자도 아니다. ‘다양성’을 믿지도 않는다”고 경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더는 정복자의 윤리에 지배받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은 그렇게 할 것이다. 중국은 정복자의 윤리를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아직도 세계에 미국이 필요한 이유다. 미국은 여전히 강제로 빼앗는 방법이 아니라 발명과 상업을 이용해 부를 획득해야 한다는 생각의 수호자다.”

대한민국은 ‘정복자의 윤리를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중국’과 ‘발명과 상업을 이용해 부를 획득해야 한다는 생각의 수호자인 미국’사이에서 어느 편에 서야 할 것인가? 미국은 몰락하는 나라이며, 미래는 중국의 것이라고 믿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 저자는 그런 사람들을 향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중국은 자신이 더 나은 대안처럼 보이도록 약삭빠르게 반미정서를 이용하는 중이다. 그러나 중국인은 훨씬 더 큰 패권을 원하며 다른 국가에 과거 미국이 바랐던 수준보다 더 깊이 복종하기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대외정책은 뒤늦은 깨달음이라는 역사학자가 지닌 특권을 지니지 못한다”는 저자의 경고는 오늘의 대한민국에게 주는 소리 같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가? 미국 국기가 계속 휘날리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진보주의자들에게 굴복해 흐느껴 울며 자멸의 길로 향할 것인가? 역사는 미국인이 어떤 식으로 문제를 이겨나갔는지를 보고 판단할 것이다. 몰락은 선택이다. 하지만 자유도 마찬가지다. 미국인으로서 자유를 선택하겠다고 굳게 다짐하자.”

저자의 말은 최순실사태로 국가가 표류하고 있는 와중에 다시 한번 좌파세력의 총공세에 직면한 오늘의 대한민국에게도 절실한 이야기이다. “태극기가 계속 휘날리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진보를 자처하는 좌파세력에게 굴복해 흐느껴 울며 자멸의 길로 향할 것인가?”
 
자유와 평등, 자본주의와 윤리, 보수와 진보, 중국의 부상 등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주옥같은 글들이 가득한 보고(寶庫)와 같은 책이다. 강추!
입력 : 2016.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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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간서치의 세상읽기’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년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 등이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제가 읽은 책들을 소개하면서 세상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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