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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배진영 ‘간서치의 세상읽기’

새누리당 탈당파의 디즈레일리 벤치마킹? -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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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영국 보수당의 역사>, 강원택 지음, 동아시아연구원 펴냄 (2008)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함께 우리 사회에서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새누리당이 해체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비박계 의원들은 개혁보수신당이라는 당명을 내걸고 집단 탈당을 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개혁'과 '보수'라는 일견 상충되어 보이는 가치를 당명에 담으면서 영국 보수당의 디즈레일리를 벤치마킹하겠다고 나섰다는 점이다. 많은 한국인들에게 생소한 디즈레일리를 벤치마킹하겠다는 그들을 보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이 책을 떠올렸다.
 
영국에서 보수당의 전신인 토리(Tory)라고 하는 당파가 등장한 것은 1680년 전후한 시기였다. 가톨릭을 신봉하는 제임스2세의 왕위계승을 수용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비록 가톨릭교도지만 왕가의 후예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의회 내 그룹이 토리, 그에 반대해 영국 성공회와 개신교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 휘그(Whig)였다. 계급적으로 보면 토리는 귀족과 농촌지주들의 입장을, 휘그는 도시의 신흥상공업자들을 대변하고 있었다. 이들이 1830년대 선거법 개혁 논란이 있던 시기를 전후해서 각각 보수당과 자유당이 되었다. 그런데 보수당과 함께 19세기 영국정치를 좌우하던 자유당은 1920년대 이후 노동당에 밀려 정치무대에서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했다. 반면에 보수당은 20세기에도 70년 가까운 기간을 집권당으로 있었고, 지금 이 시간에도 정권을 쥐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숙종과 장희빈의 시대에 출현한 정당이 아직까지도 영국 정치의 주역으로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그 비결이 어디 있을까?
 
저자는 보수당의 가장 큰 특질로 보수당은 이념적 원칙이나 순수성보다 권력장악이라는 실용성을 강조하는 정당이라는 점을 든다.
물론 세상의 모든 정당이 권력장악을 희구한다. 권력장악을 원치 않는 정당은 정당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수당이 이념이나 도그마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수당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빌어먹을 너의 원칙을 버려라. 그저 당에 충실해라고 말했다. 마거릿 대처의 측근이었던 노먼 테빗도 보수당은 무엇보다 권력장악을 위해 애쓰는 정당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서 보수당은 어디에 그런 역량이 있는지 항상 주목하며 살펴왔다고 했다.
 
때문에 보수당은 정책적인 측면에서 놀라울 정도의 유연성을 보여 왔다. 1840년대 보수당 출신 수상이었던 로버트 필은 산업혁명 이후 산업사회로의 변화 추이에 맞춰 곡물법 폐지를 추진, 성사시켰다. 외국에서 수입되는 곡물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던 곡물법은 도시 상공인, 노동자들의 이익에는 부합하지만, 보수당이 대변하던 농촌지주들의 이익에는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보수당은 거의 양분되었다. 필은 보수당이 기득권을 옹호하는 반동적 집단이 아니라, 그러한 내홍을 겪으면서도 시대적 요구와 변화에 적응하는 역량을 가진 정치세력임을 보여주었다. 필은 근대 보수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1860년대 후반 정권을 잡은 더비경과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제2차 선거법 개혁을 주도했다. 이들은 이전 자유당 정권이 추진하던 것보다 더 급진적인 선거법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디즈레일리는 근로조건 개선, 노조 활동 허용, 공공위생, 주택, 지방정부 개편 등도 추진했다. 디즈레일리의 보수당은 제도와 전통의 보호자, 대영제국을 수호하는 애국자라는 차원을 넘어서 대중복지를 담당하는 사회개혁자임을 자임했다. 그가 제시한 이 세 가지 요소는 보수당의 철학으로 자리잡았다. 덕분에 보수당은 산업혁명 이후 성장한 자본가나 중산층, 전문직은 물론 도시노동자의 일부도 포섭할 수 있었다.
1920년대에 수상을 지낸 스탠리 볼드윈은 사회적 조화, 산업적 동반자 관계, 대결보다 합의를 중시하는 새로운 보수주의를 주장, 1차세계대전 이후 변화한 사회환경에 대응했다. 남녀동등선거권 부여, 낙후지역 개발, 대도시 교통체계 개선, 의무교육 기간 연장, 과부고아노령연급 도입 등의 개혁이 이루어졌다. 볼드윈은 새로 등장한 노동당을 볼셰비키로 간주하여 경계하는 대신 헌정의 파트너로 수용했다.
이 책에서는 수상이 아니라 집권 전 보수당수로 등장하는 데이버드 캐머런 현 영국 수상도 이러한 전통의 충실한 계승자이다. 그는 시장경제의 바탕 위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와 분배, 환경보호 등도 강조하는 온정적 보수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캐머런은 19973의 길’‘신노동당을 들고 나온 토니 블레어에게 패배한 이래 13년간 대책없이 헤매던 보수당을 재건, 2010년 정권을 탈환했다.
, 디즈레일리, 볼드윈 등 개혁적인 지도자들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1829년 반동적이던 웰링턴 수상도 심사법을 폐지하고, 가톨리구제법을 통과시켜서 가톨릭 교도에 대한 차별을 철폐했다. “불가피한 변화라면 끝까지 저항하기보다 그것을 수용하고 주도함으로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보수당의 전통을 보여준 것이다. ‘마지막 귀족 수상이던 20세기 초의 솔즈베리도 소작농과 탄광노동자들 보호, 노동자 주거환경 개선, 교육개혁, 지방의회제도 도입 등의 온건한 개혁조치들을 취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아무리 현상유지적인 보수주의라고 하더라도 필요한 개혁에 눈 감지 않았다고 평한다.
자유당이나 노동당 등 반대당이 이룩한 개혁을 파기하지 않고 수용한 것도 보수당의 이러한 유연성의 소산이었다. 1945년 총선에서 제2차세계대전의 승리자 윈스턴 처칠이 이끌던 보수당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약속한 클레멘트 애틀리의 노동당에게 충격적인 참패를 당했다. 하지만 1951년 정권을 탈환했을 때, 보수당은 노동당이 건설한 복지국가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았다. 이든, 맥밀란 등 처칠의 후계자들도 케인지언적 경제정책과 복지국가노선을 견지했다. 그게 시대의 흐름임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일랜드 독립, 상원 권한 축소, 여성 참정권 허용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의 저자 강원택 교수는 변화된 시대에 당을 유연하게 맞춰 나가는 것이 성공한 보수당 지도자들의 리더십이었다면서 때문에 모든 보수당 지도자들은 기회주의자 혹은 배신자라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고 말한다. 우리가 보수당이라고 할 때 연상하는 마거릿 대처 같은 이념형 지도자는 어떻게 보면 보수당의 역사 속에서는 예외적인 존재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보수당이 철학 없이 시세에 영합하기만 하는 정당이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안팎의 위기시에도 보수당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 신념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최초의 보수당 출신 총리 윌리엄 피트(소피트) 시절, 휘그당에서 보수당으로 전향한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대혁명의 격변을 지켜보면서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을 저술했다. 그는 헌정적 전통과 제도의 수호를 주장하면서도 적절한 변화의 방법을 갖지 못한 국가는 그 스스로 보존의 수단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필요한 개혁을 거부하지 않았던 보수당은 이 점에서도 에드먼드 버크의 충실한 후계자였던 셈이다.
1945년 총선에서 노동당에게 40년래의 최악의 참패를 당한 보수당의 중진 퀸틴 호그는 유명한 펭귄문고문고판으로 <보수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썼다. 여기서 호그는 보수주의는 모든 변화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곧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일시적인 시대적 유행이나 사고방식에 저항하며 사회적 균형을 잡고자 하는 것이라면서 보수주의는 점진적 변화와 전통을 중시하고 그에 기초한 유기적이고 인본적인 사회를 보호하려는 중도적 입장을 대변한다고 역설했다. 이 무렵 보수당은 산업헌장을 발표, 노동당이 단행한 산업에 대한 정부개입과 노사간 상호협력 등을 수용했다. 그러면서도 보수당은 사회주의자들은 국민들에게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국민에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표를 의식해서, 시대의 흐름에 저항할 수 없어서, 현실과 타협하면서도 보수주의의 마지노선은 지키려 했던 것이다.
 
보수당의 또 다른 강점은 커다란 패배를 당해도 재빨리 그 충격에서 벗어났으며, 그 와중에도 당의 체질개선, 개혁을 도모했다는 사실이다.
1945년 총선 패배 직후 보수당은 정책자문위원회를 설치하고, 전시 중 폐지되었던 보수당 조사국을 부활시켰다. 정책개발, 연설, 선전 등을 위한 기초 자료를 당에 제공하는 기관이었다. 여기서 이안 매클로드, 에녹 파월, 레지날도 모울딩 등 차세대 정치인들이 육성되었다. 현 수상인 데이비드 캐머런도 조사국 출신이다. 청년보수운동(Young Conservative movement)로 새로 시작했다. 마거릿 대처, 존 메이저 등이 청년보수운동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다. 당원들을 상대로 정치교육을 실시하고 그 결과물을 당원들에게 전파하는 보수당정치센터도 만들었다.
당 후보 충원 구조도 개선했다. 공직 후보자나 의원은 지구당에 명목상의 비용만을 내도록 하고, 지구당 운영-선거경비를 지구당이 알아서 모금하도록 했다. 모금에 적극적이지 않은 지구당은 중앙당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했다. 이러한 개혁은 돈은 없어도 젊고 유능한 보수주의자들이 정치에 입문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 20~40년 후 에드워드 히스, 마거릿 대처 같은 중산층 출신은 물론 존 메이저 같은 하층민 출신이 보수당 정치인으로 대성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러한 당 개혁 덕분이었다.
1964년 총선에서 TV시대에 걸 맞는 젊은 정치인 해럴드 윌슨이 이끄는 노동당에게 패배한 후에도 보수당은 즉각 당 개혁에 착수했다. 종래 소수의 원로-중진들의 밀실합의에 의해 당수를 선출하던 방식을 폐지하고 소속 의원들의 투표로 당수를 선출하도록 했다.
보수당은 필요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데도 유연했다. 아일랜드 자치법에 반대했던 자유당 정치인들(연합자유당)을 받아들였고, 보수당의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해 자유당으로 옮겨갔던 윈스턴 처칠의 복당도 허용했다.
 
영국 보수당이 300년 넘게 살아남은 비결을 담은 책이지만, 이 책을 개혁보수신당이라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다. 안 그래도 이념적 무뇌아들인 그들이 영국 보수당의 유연한 실용주의를 배운답시고 사회적기업법 같은 포퓰리즘 입법에 앞장서는 모습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새 정당이 교육 및 충원구조 등 후계세대 양성 시스템 정비 등을  해낼 수 있을까? 에드먼드 버크나 퀸틴 호그처럼 외부의 거센 도전 속에서 이것이 보수주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이 나라에 보수(保守)’해야 할 가치는 있나? 보수해야 할 가치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존재하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보수의 전통이 아직도 척박한 환경에서 보수주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부와 권력을 상속받은 기득권 보수(?) 정치인들보다는 재야의 프롤레타리아 보수주의자들이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는 2013년에는 보수당의 라이벌이었던 자유당을 다룬 <정당은 어떻게 몰락하나?-영국 자유당의 역사>(도서출판 오름)도 펴냈다.
입력 : 2016.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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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간서치의 세상읽기’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년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 등이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제가 읽은 책들을 소개하면서 세상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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