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NEWSROOM
  1. 문갑식 ‘세상읽기’

기인이사(奇人異士)(14):박정희와 메타세콰이어(中)

한우의 식성까지 바꾼 박정희 대통령의 한 마디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 스크랩
   박 대통령은 빈농 출신으로 산을 잘 알아 추풍령에 산불을 끄거나 병충해 방지작업을 할 때 횡(橫)으로 임도(林道)를 만들도록 직접 지시했고 식목일(4월5일)에 이어 육목일(育木日)을 11월 첫째 토요일로 정한 것도 자기가 심은 나무를 확인하란 뜻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심지어 우리 한우(韓牛)의 식성(食性)까지 바꿨다고 합니다. “여물을 먹이려면 땔감이 들어가니 생풀을 먹이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는데 실험해보니 풀을 끓여주는 것보다 날로 먹이는 게 훨씬 영양가가 높게 나왔다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이 치중한 산림녹화는 사방(砂防)사업과 함께 진행됐는데 여기엔 사연이 있습니다. 1959년 추석 하루 전날 한반도가 태풍 ‘사라’에게 강타당했습니다. 평균 초속이 45m인 초대형 태풍 사라는 1904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가장 규모가 컸습니다. 사망자만 924명에 이재민이 10만명이 생겼으며 당시 재산피해가 우리나라 GDP의 1.5%인 2600만달러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피해가 컸던 것은 태풍이 워낙 셌던 탓도 있지만 산에 나무가 거의 없었고 사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이유도 컸습니다.

산에 나무가 빽빽하고 토양의 유실을 막았다면 막을 수 있는 피해를 고스란히 당했던 겁니다. 부랴부랴 이승만-장면 정권은 사방사업을 시작했는데 동원된 일꾼들에게 미국에서 원조받은 밀가루를 나눠줬다고 해서 ‘밀가루 사방사업’이라고 불렸습니다. 하지만 산림녹화와 병행하지 않는 사방사업의 효과가 제대로 났을 리 없습니다. 박 대통령 시절, 사방사업의 대표로 꼽히는 것이 포항제철 인근 영일만에서 시행된 공사입니다. 이곳이 지목된 것은 외국손님들이 가장 많이 드나들던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본문이미지
메타세콰이어는 속성수다. 1년에 1미터씩 자란다고 한다. 40년만에 거목이 된 메타세콰이어 숲길은 담양의 자랑이다.

“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오면 맨 먼저 눈에 띄는 곳이 이곳”이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971년 시작돼 1977년 끝난 영일만 사방사업은 연인원이 360만명이나 동원돼 황폐지 4538헥타르를 녹지대로 탈바꿈시킨 기적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당시 경북도청 산림국장의 회고를 봅니다.

“1975년 4월17일은 폭풍우가 엄청났어요. 박 대통령은 해병대 지프를 타고 현지로 갔습니다. 헬기로 2~3분이면 될 거리인데 세 시간이 걸렸습니다. 덜컹대는 지프에 경북지사는 머리를 부딪쳐 피멍이 들었고….”

다시 이야기를 메타세콰이아 쪽으로 돌려봅니다. 이렇게 산림녹화와 사방사업에 몰두하면서 박 대통령은 가로수 정비사업을 내무부에 지시합니다. 그게 1972년의 일입니다. 당시 정부 가로수 시범사업 지역으로 꼽힌 곳 중 하나가 전남 담양입니다. 담양읍에서 순창까지를 잇는 국도 24호선 8㎞ 구간에 무엇을 심을 것이냐를 두고 공무원들 사이에 논전이 벌어졌습니다. 한 공무원이 권장 가로수로 정해진 품종 가운데 메타세콰이어를 택해섭니다. 당시 나무를 납품한 이는 김재호(85) 선생입니다. 김 선생은 담양 천변 근처에서 조경수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가 키운 3~4년생 묘목은 1965년 서울 창경원(지금의 창경궁)에서 꺾어다 기른 것이라고 합니다. 이때 심은 메타세콰이어는 속성수답게 1년에 1m씩 쑥쑥 자라났습니다.

본문이미지
메타세콰이어길 옆에 있는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 40년전 나무를 심던 이들은 이런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길을 필두로 담양에는 4400그루의 메타세콰이어가 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메타세콰이어를 심자고 건의했던 공무원은 농민들의 반발로 물러났다고 하지요. “너무 큰 나무 때문에 그늘이 생겨 농사에 지장 있다”고 불평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2000년 국도 확장공사 때 지역 시민단체들은 메타세콰이어 178그루를 베라고 주장했는데 일부 뜻있는 이들의 반발로 64그루만 베고 나머지는 겨우 살아났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앞을 보는 혜안(慧眼)의 중요성을 실감했습니다.

지금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전국의 아름다운 길’에 빠지지 않고 뽑히고 있으며 매년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옵니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로 인한 혜택이 어느 정도일까요? 일단 입장료가 1일당 2000원입니다. 아름다운 풍광이 소문나자 메타세콰이어 길은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영화 ‘역린’ ‘간신’등의 포스터가 메타세콰이어 길 중간에 있는 촬영 세트장 벽에 붙어 있는데 이것 또한 관광객들을 유인(誘引)하는 좋은 재료가 될 것 같습니다.

본문이미지
직선과 직선이 만들어내는 메타세콰이어길은 사진작가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가운데 하나다.

거기에 음료수-식사를 할 것이니 1년에 100만명만 잡아도 담양주민들은 43년 전에 심어놓은 나무 덕으로 먹고산다는 결과가 나오겠지요. 그늘 때문에 농사를 못 짓겠다고 한 농민들은 그렇다 치고 178그루를 베어버리자고 한 시민단체들은 또 뭔가요? 메타세콰이어길은 차량이 다니는 도로 외에 도보용 길이 있는데 약 2.1㎞입니다. 양옆으로 487그루의 메타세콰이어가 심어진 길을 걷다 보면 저절로 기분이 상쾌해지고 흙길을 밟는 기분 또한 그만입니다. 초록색은 안구를 시원스럽게 정화해주기도 하지요.

Photo By 이서현

입력 : 2016.12.13

조회 : 3418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진

문갑식 ‘세상읽기’

gsmoon@chosun.com 1988년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편집부-스포츠부-사회부-정치부를 거쳐 논설위원-기획취재부장-스포츠부장-선임기자를 역임했다. 현재 월간조선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사회부기자 당시 중국민항기 김해공항 추락-삼풍백화점 참사-씨랜드 화재-대구지하철화재 등 대형사건의 현장을 누볐다. 이라크전쟁-아프가니스탄전쟁을 취재했으며 동일본 대지진때 한국기자로선 처음 현장에서 들어가기도 했다. '문갑식의 하드보일드' '문갑식의 세상읽기' '문갑식이 간다'같은 고정코너를 맡고 있다.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