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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태완 ‘Stand Up Daddy’

수도 서울의 고독한 당신, 그리고 1964년, 김승옥

7080문학이야기 ⑧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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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교과서 '문학'(해냄에듀 출판사)에 나오는 소설 <서울, 1964년 겨울> 삽화. 일러스트 김옥. 에디터 이진화.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으로 시작되는 소설. 고교 교과서 여러 곳에 실렸다. 1인칭 주인공 시점. 무의미한 대화의 연속, 거짓 희망과 과장된 절망에 대한 진지한 응시. 김승옥에게 동인문학상을 안긴 작품. 사상계19654월호에 게재됐다.
는 스물다섯. 시골출신에 육사에 지원했다가 실패, 군대에 갔다가 임질에 걸린 적이 있다. 지금은 구청 병사계에서 일한다. 그리고 대학원생인 ()’, 서적 판매원인 사내가 등장인물이다. 이름이 없다. 모두 익명성에 숨었다.
이 무의미한 대화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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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승옥
안 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아니오, 아직까진.”
그가 말했다.
김 형은 파리를 사랑하세요?”
.”
라고 나는 대답했다.
날 수 있으니까요. 아닙니다. 날 수 있는 것으로서 동시에 내 손에 붙잡힐 수 있는 것이니까요. 날 수 있는 것으로서 손 안에 잡아 본 것이 있으세요?”
가만 계셔 보세요.”
그는 안경 속에서 나를 멀거니 바라보며 잠시 동안 표정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없어요. 나도 파리밖에는.”
김 형, 꿈틀 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하고 그가 내게 물었던 것이다.
사랑하구말구요.”

대화는 종잡을 수 없다. 동문서답, 미로를 걷는 듯하다. 암울한 분위기이야기는 허공을 맴돈다.

평화 시장 앞에 줄지어 선 가로등들 중에서 동쪽으로부터 여덟 번째 등은 불이 켜 있지 않습니다.
나는 그가 좀 어리둥절해하는 것을 보자 더욱 신이 나서 얘기를 계속했다.그리고 화신 백화점 육 층의 창들 중에는 그 중 세 개에서만 불빛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해질 사태가 벌어졌다. 안의 얼굴에 놀라운 기쁨이 빛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가 빠른 말씨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서대문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이 서른두 명 있는데 그 중 여자가 열일곱 명이고 어린애는 다섯 명, 젊은이는 스물한 명, 노인이 여섯 명입니다.”
그건 언제 일이지요?”
오늘 저녁 일곱시 십오분 현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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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숫자의 연쇄
숫자는 자신만이 아는 기호다.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는 숫자. 사회와 단절되고 무력한 개인을 드러낸다.
다만 의 말이 울림을 준다. “김 형과 나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서 같은 지점에 온 것 같습니다. 만일 이 지점이 잘못된 지점이라고 해도 우리 탓은 아닐 거예요.”라고. (‘우리 탓은 아닐 거예요에 밑줄 쫙~) 두 사람의 대화가 처음부터 잘못됐음을, 진실하지 못했음을, 두 사람은 안다. ‘은 동전의 앞뒤다. 서로 대화하고 있지만 등을 돌린 채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한다. 그건 둘의 잘못이 아니다.

이때 한 사내가 등장, 합석을 제안한다. ‘이 사내를 빤히 쳐다본다. 사내는 재작년 결혼한 아내가 급성 뇌막염으로 죽었다고 말한다. 그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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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64년 6월 4일자 1면. <서울, 1964년 겨울>은 6.3 사태라는 우울한 시대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아내는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해부 실습하느라고 톱으로 머리를 가르고 칼로 배를 가르고 한다는데 정말 그러겠지요?”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돈을 오늘밤 다 쓰고 싶다. 밤새 술에 취해 거리에 나온 세 사람. 거리는 영화에서 본 식민지의 거리처럼 춥고 한산하다. 양품점에 들어간 사내가 에게 호통을 친다.

넥타이를 하나 골라 가져. 내 아내가 사 주는 거야.”

세 사람은 돈 쓸 궁리를 하다가 앰뷸런스를 따라 간다. 그곳은 아비규환이다. 경찰 호각, 사이렌, 불 길 속에서 나는 탁탁 소리, 물줄기가 건물 외벽에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하다. 그러나 사람들의 소리는 아무 것도 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불빛에 비쳐 무안당한 사람처럼 붉은 얼굴로, 정물처럼 서 있다.(이 문장에도 밑줄 쫙!)
사내는 불길을 보더니 아내가 불 속에 타고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불길 속을 손가락질하며 내 아내가 머리를 막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곤 주머니에 있던 돈(아내 시체를 병원에 판 돈)을 불길 속에 던진다.

세 사람은 함께 여관방에 들어가 각자 방을 잡는다. ‘에게 사내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 그를 혼자 두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튿날 아침 깨보니 사내가 자살을 했다. ‘은 서둘러 여관을 나오려 옷을 입는다. 그때,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내 발이 있는 쪽으로 기어 오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

어쩌면 그 개미가 자살한 그 사내일지 모른다. ‘은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헤어진다. ‘가 버스에 올라 창으로 내어다보니 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다.

 
1964년 그해에 일어난 국내외 여러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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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형의 《20세기이야기-1960년대》
’, ‘사내가 등장하는 우울한 서울, 같은 공간 1964년 한국, 그리고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100년의 기록, 100년의 교훈이란 타이틀을 내건 조선일보 김정형 기자의 20세기 이야기-1960년대를 읽어 보았다.

27일 영국 밴드 비틀스 미국 상륙.
229일 아카데미 극장에서 신성일 주연 맨발의 청춘개봉. 공전의 히트로 그해 1114일 여우 엄앵란과 결혼. 서울 워커힐에서 올린 결혼식에는 자동차만 1,200대가 몰렸다.
315일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이 선사한 세기의 결혼.
4월 최배달 국제 가라테연맹 극진회관발족.
63일 계엄령 선포 : 박정희 정권, 수세 국면을 일거에 반전시키고 야당과 언론, 학생들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
72. ‘2의 링컨 선언으로 불리던 미국 공민권법 발효 : 피부색깔,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투표, 공공장소, 고용 등에서의 차별관행을 법적 금지.
82일 언론윤리법 제정과 반대 투쟁.
85일 미 제7함대 베트남 통킹만 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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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발표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이듬해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로 제작,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 노래는 왜색가요 판정을 받았다.
10월호 사상계에 김승옥 <무진기행> 발표.
1010일 도쿄 올림픽 개막.
112일 화가 장욱진 첫 개인전(서울 반도화랑).
이미자 동백 아가씨음반 발매 :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쉬운 곡조에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서러운 상처를 건드린 것이 주효해 대박을 터뜨렸다. 1964년은 대중음악사적으로 기념비적인 해다. 그해 록그룹 키보이스와 신중현의 애드포가 최초의 한국 록 음반 빗 속의 연인을 발매. 4인조 남성 보컬그룹 아리랑 브라더스가 최초의 통기타 음반을 발표.
IBM 3세대 컴퓨터 시스템/360’ 발표.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1차원적 인간출간 : 인간은 산업사회에서 가능성을 박탈당한 채 단지 현실성의 차원에서 매몰된 1차원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마셜 매클루언 미디어의 이해출간 : 인쇄술의 발전으로 서적이 보급되면서 인간은 시각에만 의존하는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서적의 목차와 글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사고하는 선형적(線型的) 사고법을 갖게 됐다.
입력 : 201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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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 ‘Stand Up Daddy’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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