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NEWS
  1. 문갑식 ‘세상읽기’

기인이사(奇人異士)(14):박정희와 메타세콰이어(上)

경부고속도로 조경은 박정희 대통령의 작품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 스크랩
   저는 오늘 한 그루의 나무와 100년 앞을 내다본 한 정치지도자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메타세콰이어(Metasequoia)라는 나무는 원래 실물이 아닌 화석(化石)으로만 존재했다고 합니다. 1945년 중국 사천성의 마도계(磨刀溪)란 곳에서 거대한 나무가 발견됐습니다. 아무도 이름을 모르는, 그런데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올라간 나무의 정체를 알고 싶어 사천성의 왕전이라는 임업(林業)공무원이 표본을 북경(北京)으로 보냈습니다. 조사 결과 나무는 세상에 없던 것으로 알려진 메타세콰이어였습니다.

1946년 마타오치강(江)에 메타세콰이어 4000여 그루가 있다는 사실이 중국 지질학회지에 발표되면서 메타세콰이어 묘목이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미국 아놀드 식물원이 번식법을 연구했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56년, 현신규 박사에 의해서입니다. 지식의 폭(幅)을 넓혀봅니다. ‘메타세콰이어’에서 ‘메타’는 ‘나중’이란 뜻의 접두어고 ‘세콰이어’는 아메리카 인디언 중 유일하게 문자를 가진 체로키족 추장으로 현인(賢人)이었다는 이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내친김에 더 나가보겠습니다.

본문이미지
메타는 세콰이어 나무의 후속이란 뜻이다. 세콰이어는 인디언 추장의 이름을 딴 것이다.

메타세콰이어라는 이름을 처음 지은 사람은 일본인 식물학자 미키 시게루(三木茂)입니다. 이름에서 식물학자라는 게 드러나지요? 그는 1939년 일본의 식물화석에서 세콰이어 나뭇잎과 같지만 알려지지 않은 종(種)을 찾아내 ‘메타’라는 접두어를 붙인 겁니다. 수삼(水杉), ‘미국 삼나무’로도 불리는 이 나무는 침엽수지만 대부분의 침엽수가 상록수(常綠樹)인 것과 달리 낙엽수인데다 속성수(速成樹)여서 가로수나 풍치수, 즉 경관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데 자주 쓰인다고 하지요. 다시 1960년대로 돌아갑니다.

현신규 박사가 메타세콰이어를 한국에 소개한 지 5년 후 우리가 지금 ‘쿠데타’로, 저는 ‘혁명’이라고 믿는 사변(事變)이 일어나 한 군인(軍人)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떠맡게 됐습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껴안은 그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한심한 것은 산림(山林)의 상황이었습니다. 일제의 수탈과 뒤이은 6ㆍ25전쟁에 땔감을 산에서 구하는 습관 때문에 당시 1헥타르당 임목(林木)축적률은 5.7㎡였습니다. 광복 전 6500만㎡이던 나무가 1952년 3600만㎡로 줄어들었습니다.

본문이미지
메타세콰이어라는 이름을 지은 사람은 일본인이며 살아있는 나무군락을 발견한 사람은 중국인이고 묘목을 전 세계에 퍼트린 사람은 미국인이며 이 나무로 한 지역을 부흥시킨 사람은 한국인이다.

요순(堯舜)시대 이후로 지도자의 기본은 치산치수(治山治水)라고 하지요. 산을 푸르게 하고 물을 잘 다스려 홍수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산림녹화에 대한 집념을 가진 것은 1964년 12월 서독(西獨)방문 때라는 게 정설(定說)입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서독에 돈을 구걸 하러 갔습니다. 대통령 전용기조차 없어 서독이 내준 루프트한자 비행기의 구석을 차지하고 세계를 돌아 독일에 도착해 차관을 빌렸던 이 여행을 저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꾼 위대한 여정(旅程)이라 생각합니다. 일만 나면 외국으로 나가 “마일리지 쌓으려고 하느냐”고 비판받는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아버지의 행장(行狀)을 다시 읽고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여하간 서독행은 지금도 회자하는 대통령 부부와 광부(鑛夫)들의 함보른 탄광 만남 같은 감동을 만들었습니다.

서독 방문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수확은 많았습니다. 차관을 얻었고 경부고속도로의 필요성을 절감했으며 포항제철의 아이디어를 구했는데 빼놓을 수 없는 한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잘 가꾼 푸른 숲을 본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충격을 받고 이런 말을 남겼지요. “우리 산이 푸르게 변할 때까지는 유럽에 가지 않겠다!” 오기(傲氣) 서린 다짐이었지만 박 대통령도 처음엔 산림녹화에서 별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서독 방문 전인 1963년 2월부터 한시적으로 ‘녹화 촉진 임시조치법’을 시행했지만, 야산만 망가뜨린 겁니다.

본문이미지
나무뿐인 직선 도로일뿐인데도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다. 숲이 평화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동원된 사람들은 산에 대해 무지한 공무원-학생-병역 미필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무심기와 사방(砂防)사업에, 그것도 반강제로 동원됐으니 결과가 뻔했겠지요. 얼렁뚱땅 시간 보내는 식으로 일관했습니다. 독일에서 돌아온 박 대통령은 녹화촉진 임시조치법의 실패를 밑거름으로 다각적인 녹화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경과를 살펴보자면 녹화사업은 치산녹화 10개년 계획(1973~1982년)과 화전 정리사업(1974~1978년)을 양대 축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즉 나무를 심고(치산녹화), 나무를 불태우는 행위를 금지(화전 정리)한 거지요. 대대적인 녹화사업의 와중에서 에피소드도 많았는데 소개해보겠습니다. 조림산업에 대한 생생한 증언은 경기도지사에서 산림청장이 된 손수익씨의 일화에 잘 나옵니다. 박 대통령은 손씨에게 “새마을운동은 잘되는데 치산녹화가 안 되고 있어. 임자가 맡아 치산녹화를 이룩해봐”라고 지시했습니다. 손씨는 “그날로 집무실에 ‘산 산 산! 나무 나무 나무!’라는 구호를 붙여놓고 5년8개월 동안을 일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손 전 청장은 “1975년 연두 순시 때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150분 동안 3분에 한 번꼴로 50건의 지시를 받아적느라 손이 저릴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저 산엔 이런 식으로, 이 산엔 어떤 식으로 하고 지시 내린 것은 지형을 속속들이 알았다는 뜻이지요.

본문이미지
햇살과 나뭇잎이 빚어낸 조화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만큼 청신하다.
입력 : 2016.12.09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진

문갑식 ‘세상읽기’

gsmoon@chosun.com 1988년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편집부-스포츠부-사회부-정치부를 거쳐 논설위원-기획취재부장-스포츠부장-선임기자를 역임했다. 현재 월간조선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사회부기자 당시 중국민항기 김해공항 추락-삼풍백화점 참사-씨랜드 화재-대구지하철화재 등 대형사건의 현장을 누볐다. 이라크전쟁-아프가니스탄전쟁을 취재했으며 동일본 대지진때 한국기자로선 처음 현장에서 들어가기도 했다. '문갑식의 하드보일드' '문갑식의 세상읽기' '문갑식이 간다'같은 고정코너를 맡고 있다.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