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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갑식 ‘세상읽기’

찰스 2세와 宣祖를 위한 변명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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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懲毖錄)'이 재조명되면서 선조(宣祖)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왜군과 명(明)에 약하면서 자기 신하는 한없이 의심하는 드라마 속 그는 '쪼다'의 전형이다. 누가 병자호란 당시 인조(仁祖)의 모습을 그리기 전까지 오명은 계속될 것 같다.
 
영국 역사에도 그런 왕이 있었다. 역사는 묘해서 명군(名君) 뒤에 암군(暗君)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사후 왕위를 이어받은 제임스 1세, 찰스 1세, 찰스 2세가 그랬다. 제임스 1세(재위 1603~1625)는 독재자의 전형이었다. 그에게 염증을 내 메이플라워호(號)를 타고 신대륙으로 향한 주민들이 훗날 미국 건국의 아버지가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찰스 1세(1625~1649)는 청교도혁명 때 크롬웰에게 목숨을 잃었고, 그의 아들 찰스 2세(1660~1685)는 더 한심했다. 프랑스와 스페인을 전전했고 크롬웰 사후 왕좌를 되찾았지만 방탕한 생활을 한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영국에서 그는 요즘 표현대로라면 '과학 대통령'쯤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런던 외곽의 그리니치 천문대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세계 표준시(標準時)의 기준이 되는 장소로 유명하지만 세계 최초의 천문대는 아니었다. 1637년 덴마크가 코펜하겐에, 30년 뒤인 1667년 프랑스가 파리에 천문대를 열었다. 영국이 뒤를 따른 것은 프랑스의 권유 때문이었다. 프랑스 천문학자 피에르는 "양국에서 달의 움직임을 관찰하면 경도(經度)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찰스 2세는 '경도'라는 말에서 '무역선단'을 떠올렸다.
 
당시 항해자들이 제일 무서워한 것은 방향 상실이었다. 경도 측정이 부정확해 사막에서 신기루에 홀리다 쓰러지듯 바다를 헤매다 침몰하는 사고가 빈발했다. 그리니치 천문대에 소속된 최고의 과학자들은 1707년 경도법을 제정하고, 1884년 그곳을 본초자오선(本初子午線)의 국제표준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비로소 안전한 대양 항해가 가능해졌고 세계인의 시간이 통일됐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그리니치 천문대의 공식 가이드북은 천문대의 공헌도를 항해술, 시간, 본초자오선 순(順)으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가 천문대 하면 연상하는 별 관측이나 우주라는 단어는 끝부분에야 나온다.
 
찰스 2세와 견줘본 선조도 무능하지만은 않았다. 조선은 세계 최초의 전략무기 3종을 개발했는데 세종 때 만들어진 신기전(神機箭)을 제외한 비격진천뢰와 해전(海戰)의 패러다임을 바꾼 거북선이 선조 때 개발됐다.
 
찰스 2세와 선조를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 국책연구기관장에서 물러나 학교로 돌아간 사람으로부터 '미래' '창조' '과학'을 표방하는 정부 부처와 청와대 수석, 산하 기관장들 사이에 벌어진 낯 뜨거운 행태를 들은 다음부터였다. 남에게 책임 떠넘기기, 브리핑 기회 박탈해 상대방 견제하기, 대통령 외유(外遊) 때 따라가 자기만 잘 보이려고 남의 출장 계획 바꾸라고 압력 넣기, 사표 안 내고 뭉개기 같은 치졸한 신경전이 차마 글로 옮기기 민망할 정도였다. 기자도, 이 사례를 말한 이도 대통령은 이런 사정을 모를 것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생각할수록 '과학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울해지면서 찰스 2세와 선조,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적 업적의 좌표(座標)가 궁금해졌다.

입력 : 201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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