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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미투’ 이후 이문열의 1994년작 〈사로잡힌 악령〉 다시 주목

‘환속승려’ 고은 연상케 하는 작품... 고은 “뉘우친다”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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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영미

최영미가 성추행을 고발한 시 〈괴물〉 속 ‘En 선생’이 누군지를 두고 온라인 공간이 분노와 충격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현재 ‘En 선생’이 원로 시인 고은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최영미 시인은 고은 시인을 단정해서 확인해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은 시인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30여 년 전 어느 출판사 송년회였던 것 같은데, 여러 문인들이 같이 있는 공개된 자리였고, 술 먹고 격려도 하느라 손목도 잡고 했던 것 같다”며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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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
 
고은이 누군가. 해마다 가을이면 그의 수원 자택에  문학담당 기자들이 몰려든다.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확정되는 순간, 그의 첫 육성을 담고 싶어서다. 그런 시인이니 더 충격적이다. 평생 쌓아온 삶과 명성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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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잡힌 악령〉이 수록된 이문열 중단편 전집 《아우와의 만남》
최영미의 〈괴물〉은 이문열 소설가의 1994년작 단편 〈사로잡힌 악령〉을 연상케 한다. 이문열은 고은을 떠올리게 하는 시인, 정확히 ‘환속승려’를 등장시켜 그와 그를 따르는 문단 주변을 싸잡아 조롱한 일이 있다.

소설 내용은 이렇다.
법조인을 1인칭 화자로 내세워 그의 눈에 포착된 한 승려 출신 시인의 행적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환속승려인 시인은 한때 유명한 고승의 상좌이자 시인이다. 자신의 이름값을 이용해 문화예술계 명사들과 사냥하듯 교분을 틀고 문학을 지망하는 여성과 친구의 부인 등을 마구잡이로 농락하는 등 ‘악마성’을 과시한다.
그러던 그가 자신이 본래 속했던 순문학 진영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자 갑자기 민주투사의 탈을 뒤집어쓴다. 1970~80년대 저항문학의 선두에 섰던 그는,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서는 등 상황이 바뀌자 또 다시 저항시인의 탈을 벗어던진다는 내용이다. (한겨레 1995년 1월 18일자 기사 참조)
 
이후 고은이 소속된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소설 속 등장인물을 문제삼자, 이문열은 “작품을 보면 어떤 시인의 행보가 연상되겠지만 그를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작품이 아닌 1980년대의 시대상을 담아내는 작품으로 봐 달라”고 물러섰다. 이문열은 〈사로잡힌 악령〉의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영미의 시 〈괴물〉도 이문열의 〈사로잡힌 악령〉처럼 풍자적 성격의 시다.  ‘En 선생’을 ‘노털상’ 후보라고 부른다. 누가 봐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고은을 연상시킨다. 시 전문은 이렇다.
 
괴물
— 최영미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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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캠페인이 한국문단 내 확산될 지 주목된다.

한편, 최영미의 〈괴물〉 이후 문단 내 ‘미투(Me Too)’가 확산될지도 주목된다. 최근 한국시인협회 회장에 당선된 감태준 시인의 2007년 제자 성추행 사건이 불거져 나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시인은 피해자 고소로 형사 기소됐는데, 법원에서 피해자 진술이 번복됐다는 이유 등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자 해임 취소 행정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다른 제자에 대한 성추행 사건의 경우 여러 증거가 있어 사실로 봐야 하고 학교 명예를 훼손한 것이 맞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인 류근 시인은 “놀랍고 지겹다. 60~70년대부터 공공연했던 ○○ 시인의 손버릇, 몸버릇을 이제야 마치 처음 듣는 일이라는 듯 소스라치는 척하는 문인들과 언론의 반응이 놀랍고, 하필이면 이 와중에 연예인 대마초 사건 터뜨리듯 물타기에 이용당하는 듯한 정황 또한 지겹고도 지겹다”고 했다.
시인 김현은 “성차별이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바로잡으려 해도 혐오나 소수자 문제가 늘 거대한 것 때문에 뒷전에 물러날 수밖에 없다”며 미투 운동을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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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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