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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취재> 노벨문학상에 일본 출신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그는 누구인가?

인간존재와 문명세계에 비판적 성찰을 촉구한 '현대 영미문학의 거장'

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가. 사진=구글 캡처

한국시간 5일 오후 8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수상자는 일본 출신의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63)다. 가즈오는 앞서 영국 배팅사이트 래드브록스가 예측한 응구기 와 시옹오, 무라카미 하루키, 마거릿 애트우드, 고은 시인 등을 제치고 수상의 영광을 거머쥐었다.

영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2007년 도리스 레싱(1919~2013) 이후 10년 만이다. 이시구로는 일본계 작가로는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 1994년 오에 겐자부로(82)에 이어 세 번째로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차지하게 됐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이시구로의 소설에는 위대한 정서적인 힘이 있다"며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이시구로를 선정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이시구로가 "위대한 정서적 힘을 가진 소설들을 통해, 세계와 닿아있다는 우리의 환상 밑의 심연을 드러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는 대단히 성실한 작가"라며 "곁눈질하지 않고 자신만의 아름다운 우주를 개발했다"고 격찬했다.

인간세계 속 문명의 그늘과 존재의 심연을 통찰한 우리 시대의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월간조선》이 그의 삶과 문학을 되짚어봤다.

일본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이민

《현대영국작가사전》에 따르면 가즈오 이시구로는 1954년 11월 8일 일본의 나가사키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가 영국국립해양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부터 영국에서 살았다. 1960년 이시구로는 두 여동생과 함께 가족을 따라 영국 서리 주 길드퍼드로 이민을 떠났다. 이후 발모럴 성(Balmoral Castle: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하일랜드 별장)에서 왕대비의 꿩 몰이꾼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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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벨상 홈페이지 캡처


영국 스토턴 초등학교와 서리주 워킹카운티 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및 캐나다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다. 레코드사에 데모테이프 등을 보내며 저술활동을 병행했고 자유로운 문학적 감수성을 쌓았다.
1974년에는 켄터베리의 켄트대학교에 진학해 1978년 영어학과 철학학사 과정을 마쳤다. 졸업 후 런던에서 상주 사회복지사로 활동하기도 하며 1년 동안 소설을 쓰기도 했다. 이스트앵귈라 대학에서 학업을 재개해 1980년 창작문학(Creative Writing) 석사과정을 마쳤다.
1982년 영국 시민권을 획득한 뒤 전업 작가로 나섰던 그는 1983년 첫 소설을 발표하자 《그란타(Granta)》지가 선정하는 ‘영국 최고의 젊은 작가들 20명'에 선정되면서 문명을 떨쳤다. 일본을 배경으로 태평양 전쟁 이후의 상처와 현재를 절묘하게 엮어 낸 첫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1982)으로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수상했다. 1989년에 발표한 세 번째 소설 《남아 있는 나날》로 맨부커 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했다.

인간 문명에 비판의 날을 대다

2005년에 발표한 그의 《나를 보내지 마》는 복제 인간의 사랑과 비극적 운명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의문을 제기한 화제작이다. 해당 작품으로 이시구로는 타임 ‘100대 영문 소설’ 및 ‘2005년 최고의 소설’로 선정됐다. 더해 전미 도서협회 알렉스 상, 독일 코리네 상 등을 수상했다.
이시구로는 인간과 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을 작품마다 개성 있는 문체로 잘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의 문단은 그를 두고 '현대 영미권 문학을 이끌어 가는 거장'이라고 칭한다. 그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대영제국 훈장을, 1998년 프랑스 문예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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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경리 소설가. 사진=조선DB
이시구로는 올해 진행된 제7회 박경리문학상 후보명단에도 올랐다. 수상자는 영국작가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이었지만 최종 후보자 5명 중에 꼽혔다. 제7회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장 김우창 문학평론가는 "올해 1월부터 수차례 회의를 거쳐 5명의 최종 후보자를 선발했다"며 "현재도 활발하게 글을 쓰는 세계적인 작가 가운데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이들을 꼽았다"고 했다. 이어 "최종 후보자는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영국), 코맥 매카시(미국), 가즈오 이시구로(일본계 영국인), 페터 한트케(오스트리아), 얀 마텔(캐나다)이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후보로 선정된 작가들은 리얼리즘으로부터 거리를 두면서도 탐험, 여행, 항해 등 조금은 인위적인 방법을 차용하는 서사적 접근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풀어냈다"며 "오늘날 같은 정보와 문자의 과잉 시대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 듯하다"고 이시구로를 비롯한 5명의 후보작가들을 칭찬했다.

이시구로는 작사가로도 활약했다. 재즈 가수 스테이시 켄트(49)가 2007년 발표한 앨범 '출근 전차에서 아침을'(Breakfast On The Morning Tram)에 작사가로 참여했다.

대표작: 1. 《부유하는 세상의 예술가(화가)》 (1986)

이시구로는 과거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창백한 언덕 풍경>,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남아 있는 나날> 세 작품 모두 "한 개인이 불편한 기억과 어떻게 타협하는지" 그리고자 했다고 밝혔다. 특히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와 <남아 있는 나날> 두 작품에 대해서는 "직업적인 면에서 소모적인 삶을 산 한 인간을 탐구"했다고 강조했다. 소모품으로 전락해가는 인간의 일생에서 불편한 기억은 어떤 존재인지 탐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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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표지 캡처.
해당 작품은 과거 스승의 순수 예술적 노선을 배신하고 전쟁과 천황을 찬양하는 그림을 제작하여 명예와 부를 누렸던 주인공 '마스지 오노'의 이야기를 다뤘다. 전쟁이 끝난 후 그에게 남은 것은 전범이라는 비난의 눈길. '마스지'는 과거 행동에 대해 반성하는 한편 신념에 차 행동하고 성취를 맛보았던 경험에 대해 은밀한 자부심을 느낀다. 소설은 인간존재가 가진 그릇된 신념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며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대표작: 2. 《남아 있는 나날》 (1989)

1989년 출간된 장편 역사소설이다. 영국 귀족의 장원을 자신의 세상 전부로 여기고 살아온 주인공 ‘스티븐스’의 인생역정을 그렸다. 근현대 교차기에서 가치관의 대혼란이 나타난 1930년대 영국 격동기가 배경이다. 영어판만으로 100만 부 넘게 판매되는 등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으며 20여 개국에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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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표지 캡처.
이야기는 주인공 ‘스티븐스’의 6일간의 여행을 중심으로 한다. 1930년대 영국의 격동기를 지난 스티븐스의 과거사도 다룬다. 인생의 황혼녘에 깨달은 잃어버린 사랑의 허전함과 비극적 정조를 내밀한 필치로 묘파했다. 저자는 해당 작품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1993년 영국과 미국의 동명(同名) 드라마 영화로 나오기도 했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앤서니 홉킨스, 에마 톰슨, 제임스 폭스, 크리스토퍼 리브, 휴 그랜트 등 화려한 출연진으로 입소문을 탔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대표작: 3. 《우리가 고아였을 때》 (2000)

저자의 실제 경험이 담겨져 있다. 돌아갈 수 없는 유년 시절에 대해 담담한 어조로 써 내려간 해당 작품은 기억의 편린을 더듬고 있다. 아편 전쟁, 사랑의 불발, 질투, 배신 등 여러 존재들의 욕망이 뒤엉킨다. 작중인물이 세계 속에서 충격적 비밀까지 깨닫는 반전까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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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표지 캡처.
주인공은 영국의 상류층 청년이자 유능한 사립 탐정 '크리스토퍼'. 실종된 부모를 찾아 전쟁의 기운이 도는 상하이로 간다. 고풍스러운 런던의 사교계와 동양적 정취를 간직한 상하이의 거리를 주된 배경으로 했다. 중국에서 태어나 자라야 했던 영국 소년의 유년시절이 흑백필름처럼 돌아간다. 저자의 내력과 맞닿아있는 부분이다.
소설 속 아이의 시선에서 어른의 세계를 바라보는 특유의 순수함이 한편에 있다. 또 한편에는 역사현실의 이면에 감추어진 비밀을 서서히 풀어나가는 플롯의 긴박감이 조성돼있다. 향수와 역사가 굽이치는 시대의 물줄기다.

대표작: 4. 《나를 보내지 마》 (2005)

배경은 1990년대 후반, 인간 복제가 가능해진 세상이다. 복제인간의 비극적 운명과 사랑을 그렸다. 존재의 생멸과 인간의 존엄을 진지하게 성찰했다. 간병인 ‘캐시’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되어 온 ‘클론’들의 사랑과 비운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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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표지 캡처.
주인공 ‘캐시’와 ‘루스’, ‘토미’는 외부와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영국의 기숙학교 ‘헤일셤’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들은 복제 인간이지만 이성과 감성을 지녔고 모체가 되는 ‘근원자’에 대해 끊임없이 떠올렸다. 이들은 장기 기증자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생을 조금 더 연장하기를 염원해 독자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사실 해당 소설의 원제 ‘네버 렛 미 고’는 팝송 제목이다. 해당 곡이 수록된 카세트테이프는 진짜 인간과 복제 인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중층 의미로서의 소설 모티프다. 또 세 주인공의 진한 우정과 애달픈 사랑의 정서를 보여주는 모티프이기도 하다. 복제 인간이라는 소설적 장치를 통해 생명 존엄에 대한 문제의식을 예각화했다.

대표작: 5. 《녹턴》 (2009)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를 노래한 이시구로의 첫 소설집이다. 야상곡(夜想曲)이라 불리는 ‘녹턴’처럼 저녁이나 밤에 어울리는 감정, 몽상적 감수성을 극화시켰다. 작품마다 영국과 이탈리아를 넘나들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생애와 일상의 본질을 드러내며 감동을 자아냈다. 더욱이 음악을 문학 속으로 끌어들여 절묘하게 녹여냈다. 젊은 시절 싱어송라이터를 꿈꾸었다는 저자의 정체성 또한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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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표지 캡처.
해당 작품에 대해 영국 매체 《옵서버》는 다음과 같이 찬사를 건넸다. “황혼과 박명, 좌절과 회오에 대한 뭉클한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마치 다섯 악장으로 이루어진 음악 작품처럼 통합적으로 구상되어 있다. 첫 이야기의 배경은 이탈리아의 산마르코 광장이며 마지막 이야기의 배경 역시 이탈리아의 어느 광장이다. 녹턴의 모든 내레이터들은 어느 정도 비슷하지만, (가즈오) 이시구로는 그 음역을 미묘하게 달리함으로써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있다.”

5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노벨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의 사라 다니우스 사무총장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이시구로의 문학세계에 관해 "일상에 대해 매우 정밀하고 민감하며 때로는 정감 있게 접근한다"며 "매우 자제하고, 잘난 체 하지 않는다"고 논했다. 이어 그는 이시구로가 "여러 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작가"라며 "제인 오스틴과 프란츠 카프카를 섞은 듯하다"고 빗대기도 했다.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가수 밥 딜런을 선정한 것에 관해 다니우스 사무총장은 "지난해에 우린 간명한 선택을 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한 명을 택한 것"이라며 "올해엔 가장 정치한 소설가 중 한 명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시구로 "불확실한 세계에 긍정적인 힘이 되고 싶다"

발표 직후 영국 《BBC》 인터뷰에서 이시구로는 "굉장한 영광"이라며 "내가 위대한 작가들이 걸어온 길을 따른다는 뜻이기 때문이고, 그것은 아주 멋진 찬사다"라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이어 "매우 불확실한 순간에 있는 우리 세계에 노벨상이 긍정적인 어떤 힘이 되기를 희망한다"며 "내가 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부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매우 감동적일 것"이라고 겸손해했다.

일본 열도도 들썩였다. 비록 이시구로가 영국작가지만 출신은 일본계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대표적인 유력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쉽게 고배를 마셨지만 이시구로의 수상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상자 발표 직후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속보를 내보냈다. 특히 《교도통신》과 《NHK》는 이날 이시구로의 수상 소식을 신속하게 보도했다. 더해 과거 그의 인터뷰 내용, 이시구로와 일본의 인연, 시민들의 반응 등을 전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역시 이시구로의 수상에 ”일본에도 많은 팬이 있다"며 "함께 축하하고 싶다“고 덕담을 건넸다.

노벨문학상을 포함해 노벨상의 부문별 상금은 900만 크로나(약 12억 7000만 원)다. 시상식은 매년 창시자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개최된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7.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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