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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후보로 다시 거론되는 시인 고은...그의 삶과 詩세계를 통해 본 후보로서의 가치

연작시 '만인보'로 유명한 승려 출신 시인...노벨상 발표 임박하자 상위권 후보로 거론돼

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권영민 교수는 “한국문학이 세계문학 속에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세계의 독자를 상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면 노벨문학상의 영예도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는 것”이라며 “노벨문학상에 대한 터무니없는 환상보다는 한국문학의 세계화 작업을 더욱 규모 있게 꾸준히 실천해 가는 방법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고은 시인. 사진=조선DB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임박했다. 발표 시각은 한국시간 기준 오는 5일 오후 8시다. 그동안 높은 확률로 수상자를 맞춘 영국의 배팅사이트 '래드브록스'가 한국 시인 고은(84)을 상위권에 올려놓았다. 10위권에 멈춰있던 그의 배당률 순위가 3일 ‘4위’로 급상승했다.
    
이는 앞서 선두 3위권 안으로 거론된 케냐 소설가 ‘응구기 와 티옹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를 바로 잇는 순위라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고은 시인은 그동안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 왔다. 2017 노벨문학상 유력후보로 급부상한 고은 시인의 삶과 문학관을 통해 그 이유를 추적해봤다.
  
승려에서 시인으로
   
《한국현대문학대사전》(권영민,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에 따르면 고은 시인은 1933년 8월 1일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출생했다. 군산중학교를 다니던 중 6·25전쟁을 맞아 휴학, 1952년 입산(入山)해 효봉선사의 상좌가 됐다. 10여 년 간 수양과 방랑을 거듭하다 1962년 환속했다. 본명은 고은태(高銀泰), 법명은 일초(一超)다.
   
1958년 시 ‘폐결핵’이 《현대시》에 추천을 받으며 문단에 등단했다. 시인 조지훈과 서정주에 의해 한국시인협회 기관지인 《현대시》 제1집과 《현대문학》 11월호에 네 편의 시가 추천됐다. 《피안감성》(1960), 《세노야, 세노야》(1970), 《전원시편》(1986), 《선시, 뭐냐》(1991), 《순간의 꽃》(2001), 《허공》(2008) 등 지금까지 수십 권의 시집을 펴냈다. 1974년 제1회 한국문학상 당선 이후 2017년 제4회 이탈리아 로마재단 국제시인상에 이르기까지 수상경력도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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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의 대표작. 사진=조선DB
    
그의 초기 시들은 허무주의적 정서를 주조(主潮)로 했다. 1973년 1판 1쇄를 펴낸 《한국문학사》(김윤식·김현, 민음사)는 고은 시인의 작품세계를 다음과 같이 논했다.
     
“고은은 서정주와 함께 불교에서 시적 영감을 얻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불교취(佛敎趣)는 그러나 서정주처럼 인연설에 기초해 있지 않다. 그의 불교취는 오히려 대상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선적(禪的)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선적 직관에 의한 대상 파악은 그의 시의 상당 부분을 경구 스타일로 만든다. (…) 불교취의 선시에서 그가 표현하고 있는 것은 소멸의 의미이다. 사라져 가는 것 혹은 없어져 가는 것에 대한 그의 편애는 그의 최초의 시집인 《피안감성(彼岸感性)》에서부터 그의 후기의 걸작시 《문의 마을에 가서》에 이르기까지 널리 편재해 있다.”
    
1970년대 중반에 발간된 《문의 마을에 가서》(1974) 이후 그의 시세계는 역사현실에 접근했다. 시대 비판적 안목과 민중 중심의 사관을 바탕에 둔 자기 인식으로 권위주의 세상에 투쟁의지를 노래했다. 통일 지향의 문학을 추구하는 민중 시인으로 거듭난 그는 새로운 인식론적 깨달음을 통한 다음과 같은 시를 노래했다. 확신에 찬 어조로 ‘이념의 절대성’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 '화살'이다.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 온몸으로 가자 / 허공 뚫고 / 온몸으로 가자 /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 박혀서 /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 우리 모두 숨 끊고 활 시위를 떠나자 /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 행복이라던가 / 뭣이라던가 /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 허공이 소리친다 / 허공 뚫고 / 온몸으로 가자 / 저 캄캄한 대낮의 과녁이 달려온다 /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 단 한 번 /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 돌아오지 말자 / 돌아오지 말자 //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 고은 ‘화살’ (장석주, 《나는 문학이다》, 나무이야기, 2009)
    
1980년 이후 고은 시인의 작품세계는 다시 한 번 굽이친다. 이 시기에는 장시 ‘백두산’과 연작시 ‘만인보’가 창작됐다. ‘백두산’은 고은 시인이 1987년부터 발표해 1994년에 완성한 장편 서사시로 총 7권의 책으로 출간됐다. 구한말 개화기 시절부터 일본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삼아 한국 민족의 역사적 고통과 극복의 과정을 다뤘다.
    
문제작 ‘만인보’
    
〈만인보〉는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총 30권으로 발간된 연작시다. 해당 기간 고은 시인이 집필한 4001편의 시를 모았다. 1986년 계간 《세계의 문학》에 연재를 시작, 그해 창작과비평사에서 1∼3권이 나온 뒤 2010년 4월에 30권으로 완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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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이 <만인보>를 집필한 경기도 안성의 서재. 사진=조선DB
    
각 작품마다 한 인물을 중심으로 한다. 평범한 생활인, 역사적 인물, 초월적·종교적 존재들을 다뤘다. 초반부는 해당 인물과 연관된 사건을 말한다. 후반부는 화자의 정서적 판단을 표출한다. 단일 주제로 쓰인 시집 중 가장 많은 권수를 기록했다. 민족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아닌 개개인 생애의 구체성을 묘파했다. 주로 토속성과 일상성을 담은 시어들을 사용했다. 
          
<만인보>에는 현재 구속된 ‘국정농단 폭로자’ 전 더블루K 이사 고영태 씨의 가족사가 나와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만인보> 중 한 시편에는 고영태 씨 아버지인 고규석씨와 어머니인 이숙자 씨가 등장한다. 5·18 당시 아버지 고규석 씨가 숨진 이후 이숙자 씨가 5남매를 키우는 삶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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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태씨. 사진=조선DB
고규석의 마누라 살려고 나섰다 / (중략) / 광주 변두리 / 방 한 칸 얻었다 / 살려고 버둥쳤다 / (중략) / 조금씩 나아졌다 / 망월동 묘역 관리소 잡부로 채용되었다 / 그동안 딸 셋 시집갔다 / 막내놈 그놈은 / 펜싱 선수로 / 아시안 게임 금메달 걸고 돌아왔다. - 고은 ‘만인보 단상 3355-이숙자’
    
<만인보>는 2000년대 이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작으로 거론되며 고은 시인의 수상 가능성을 높였다. 이를 두고 2015년 9월 11일 경기도 수원문화재단에서 열린 '고은학회' 창립 기념 세미나 발제문에서 염무웅 문학평론가는 “우리 문학사에 전무후무한 업적”이라고 극찬했다. 염 평론가는 “<만인보>는 한반도의 모성적 대지와 민족의 현대사 전체를 그 실물 크기에서 언어화한 서사시적 실험 그 자체”라고 격찬했다. 
       
<만인보>의 성취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2006년 8월 20일자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시영 시인은 당시 계간 ‘문학수첩’ 가을호에 게재된 ‘만인보가 이룬 것과 잃은 것’에서 “앞으로 30권으로 마무리될 고은의 <만인보>를 얘기할 때 1∼3권을 으뜸으로 치고 있어 과연 명불허전인지, 명실이 상부한지를 한번 따져보고 싶은 비평적 욕망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 다산성에 비해 그다지 특출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없을 뿐더러 비슷비슷한 시들의 되풀이 내지 앞의 작품들의 모방이 결코 대작이 갖춰야 할 미덕이라고 추켜세울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왜 고은인가

2013년 10월 26일자 고은 시인을 인터뷰한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시 한원균 국립한국교통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고은 시인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두 가지 이유를 꼽았다. 첫 번째는 그의 시가 비교적 활발하게 번역됐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그가 해외 시인들과 교류와 만남을 통해 자신의 문학을 알려왔다는 점이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한 교수는 “거기엔 어느 정도 정치적인 역학 관계도 작용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진보성향 문예지 《창작과 비평》을 중심으로 한 일군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그의 시가 한국 저항 문학을 대표하는 지위를 얻었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의 시가 "변치 않는 열정으로 이 땅 위의 삶을 노래했다"는 문학적 이유도 분명히 있다고 했다.
         
물론 노벨상 유력후보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작가 개인이 이룩한 문학적 성취가 제일 중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고은 시인처럼 문단과 평단 등 전문그룹의 적극적인 지원과 홍보도 중요하다는 시각 역시 많다. 국가 차원의 ‘전략적인 제도적 뒷받침’ 또한 필요하다는 말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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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사진=조선DB
실제로 2011년 2월 19일자 노벨재단 유일의 동양인 한영우 특임고문을 인터뷰한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은 낮은 건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 고문은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 조직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노벨상 지원위원회 같은 것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07년 10월 《조선일보》에 ‘한국 문학이 제대로 대접 받으려면’이라는 제목의 <문화비전> 칼럼을 쓴 당시 이영준 하버드대 동아시아학과 한국문학 강사 또한 “잘 번역된 책이 발간되더라도 그 나라의 중요 매체들에서 평가해주지 않으면 서점에 배포되지도 않으니 읽히지도 않는다”고 노벨문학상 당선 가능성에 있어 ‘홍보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와 관련 《월간조선》이 접촉한 한 문단 관계자는 "국내 후보의 노벨상 당선 가능성을 높이려면 유럽 지역 문단에 상당한 홍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해외에서 적극적인 열기를 조성해 노벨문학상 선정에 영향을 주는 유럽 여론에 어필해야 한다"고도 했다.
    
다시 말해 팬덤그룹이나 지원세력이 조직적으로 활동해 해외에 누군가를 알려야 후보군에 들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그런 역량과 열정을 많이 지닌 쪽은 진보적 성향의 그룹이라고 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홍보력에 의존하는 여론조성이 일상화되면 오히려 당선 가능성이 낮아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상(賞)에 앞서 문학(文學)부터
     
한편 매년 고은 시인을 비롯해 여러 한국작가들의 노벨문학상 가능성을 점치기에 앞서 한국문학의 풍토 개선과 질적 성찰부터 실천하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민적 열망으로 수상을 바라는 것은 좋으나, 먼저 그에 걸맞은 문학적 기반부터 충분히 마련하라는 고언이었다.
    
작년 1월 28일자(현지시간) 미국의 시사교양지 《뉴요커》 온라인판에는 ‘한국은 정부의 큰 지원으로 노벨문학상을 가져갈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필자는 미국 문학평론가 마이틸리 G. 라오(Mythili G. Rao)였다.
         
해당 칼럼에서 라오 평론가는 2005년 영국 조사를 인용, 한국이 상위 선진국 30개국 중 국민 한 명당 독서를 위해 사용하는 시간이 가장 적다는 결과를 지적했다. 그는 매년 노벨문학상 발표 시점에 고은 시인이 거명되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정작 고은의 시는 한국에서 많이 읽히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013년 7월 9일자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김원우 소설가는 “기회만 있으면 한국 소설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야 한다고 하지만 노벨상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냉정하게 자기 인식을 해야 한다”고 한국 문학계를 비판했다. 김씨는 “우선 가장 중요한 게 문장의 힘이다. 그것부터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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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사진=조선DB
2013년 10월 6일자 《세계일보》에 ‘노벨문학상에 대한 단상(斷想)’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문학평론가 권영민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는 “한국의 문학인들도 노벨문학상을 꿈꾸고 우리 독자들도 이를 간절하게 기대한다. 한국문학이 언제쯤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지 따져 묻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해당 칼럼에서 권 교수는 “그렇지만 노벨문학상에 대한 환상을 가지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에게 솔직하게 따져볼 일이 많다”며 “우선 한국문학이 세계의 독자들에게 두루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우리에게 과연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진지하게 숙고하면서 이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세계의 문단에 이름을 널리 알린 문학인이 얼마나 되는지도 다시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언제부터 한국문학이 세계의 독자들에게 두루 읽힐 수 있도록 외국어로 제대로 번역 출판하게 됐는지도 따져보아야 한다”고도 했다. 
      
권 교수는 “한국문학이 세계문학 속에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세계의 독자를 상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면 노벨문학상의 영예도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는 것”이라며 “노벨문학상에 대한 터무니없는 환상보다는 한국문학의 세계화 작업을 더욱 규모 있게 꾸준히 실천해 가는 방법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연 고은 시인은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발표를 앞두고 미묘한 기대와 휘황한 영광에 앞서 우리 문학의 문제의식을 먼저 살피게 되는 추석 날 밤이 아닐 수 없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7.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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