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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速記] 25일 이용수 할머니 2차 기자회견 전문(全文)

“윤미향, 사리사욕 채우려 출마… 결코 용서한 적 없다”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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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대구 인터불고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문을 들어보이고 있다.(사진=뉴시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2)가 25일 오후 2시 30분경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할머니는 “윤미향이 1차 기자회견 후 갑자기 찾아와 용서해 달라 했다”며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데 대체 무슨 용서를 비는지 분간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이어 “(비례대표 출마 사실을) 나에게 얘기한 적도 없었고, 자기 마음대로 한 것인데 내가 무엇을 용서하냐”고 했다.
 
이 할머니는 앞서 지난 5월 7월 대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게 30년 간 당할 만큼 당했다”고 밝혀 파장을 일으켰다. 아래는 25일 이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 전문이다. 속기(速記)를 다듬긴 했으나 다소 매끄럽지 않다.
 
“정신대와 위안부는 반드시 구분해야”
 
“제가 오늘 두 번째 기자회견을 합니다. 누굴 원망하고 잘못했다고 하는 건 제가 처음 기자회견할 때 (말) 했고 한데, 많이 생각지 못하는 것이 나왔어요.(추가로 보도된 내용을 뜻하는 듯-편집자 주) 이런 내용들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검찰에서 조사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정신대대책협의회’는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을 의미합니다. 공장 갔다 온 할머니하고 위안부, 아주 더럽고 듣기 싫은 위안부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공장 갔다 온 할머니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는 간 데가 다 달라요.
 
잠깐 제가 간 데를 말씀드릴게요. 우리나라 나이로 하면 16살, 만으로 하면 14살입니다. 그땐 성을 갈지 않으면 배급을 안줬습니다. 성을 야스하라로 바꿨습니다. 학교도 일본 학교를 3, 4학년까지 다녔고 가타카나도 배웠습니다. 대만 카미카제 특공 부대로 끌려가서도 그 장교와 가타카나로 대화를 했고요. (중략) 그리고 1992년 6월 25일에 신고할 때는 윤미향이 간사였습니다. 25일에 (신고) 하고 29일에 모임이 있다고 해서 갔습니다. 어느 교회였습니다. 갔더니 그날따라 일본 어느 선생님이 정년퇴직을 하고 돈을 좀 줬다고 하면서 100만 원씩을 나눠줬습니다. 그게 무슨 돈인지도 몰랐어요. 그때부터 모금을 하는 걸 저는 봤어요. 왜 모금을 하는지도 모르고요.
 
따라다니면서 모금을 하는데 보니까 (어떤 날은) 농구선수들이 농구를 하는데서 기다렸어요. 기다렸더니 그 농구선수가 돈을 들고 모금을 하더라고요. 그 돈을 받아오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그게 왜 그런지 몰랐어요. 그런가보다 했는데도 좀 부끄러웠어요. 저렇게 하면서 애를 쓰고 이기려고 하는데 거기 버젓이 앉아서 그 농구 끝나고 하면 돈을 받아서 나오는 게 말이에요.
 
(그리고 언젠가는) 좀 늦은 시간이었어요. 늦게 배가 고팠어요. 좀 맛있는 거 사두고 하려니까 돈이 없습니다. 그래도 뭐 그런가보다 생각했어요. 어디 가도, 또 교회 가도 또 돈을 주면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모르고 쭉 30년을 해가지고 나왔어요.
 
정신대대책협의회는 공장 갖다온 할머니들로 해야 하는데, 말하자면 빵으로 말하자면 공장 갖다온 할머니들이 밀가루로 반죽해서 빚어놓은 건데, 그 속은 위안부인 겁니다. 그걸 30년을 해와도 저는 몰랐어요.”
 
“일본이 사죄 안하는 데에도 이유 있어”
 
“사실 저는 그것도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어저께 제가 생각하니 이럴 수가 있나 싶었어요. 30년 동안 앉아가지고 얘기하는 게 “사죄해라, 배상해라” 아닙니까. 그런데 일본 사람이 뭔 줄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하죠. (이렇게) 섞어 놓아가지고 사죄 안 해도 된다는 거 아닙니까.
 
이걸 30년 동안 하면서 사죄배상 요구하고 학생들까지 그 고생을 시킨 겁니다. 그 학생들 돼지저금통 털어 나오는 돈도 다 받아 챙겼어요. 이래서 저 어제 한숨도 못 잤습니다. 왜 뭐 때문에, 정신대대책협의회면 정신대 문제만 할 것이지, 왜 지네가 무슨 권리로 위안부 피해자를 사용합니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자다 일어나서 펑펑 울었습니다. 왜 내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왜 여태까지 말도 못했나, 하는 걸 생각하니까요. 그래, 내일 기자회견에는 이것을 반드시 밝혀야겠다, 싶었습니다. 저희가 사죄배상 요구하는 것을 막았잖아요? 위안부하고 정신대하고 어떻게 같습니까. 위안부는 생명을 걸어놓고 거기 가서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걸 30년을 이용해 왔습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내일 기자회견 할 때는 이것을 내가 반드시 밝혀야 되겠다고요.
 
이분들이, 그 사람들이 바봅니까. 무엇하러 정신대대책협의회가 위안부 문제를 하는데 거기에 해당치도 않았는데 뭣 하러 그 사람들이 사죄하고 배상을 하겠습니까. 안한 이유를 저는 알았어요. 이것 또한 무엇인가. 사진 한 장만 목에 걸었는데, 이걸 위안부 할머니들로 팔아먹은 겁니다. 내가 왜 팔려야 됩니까.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저도 우리 부모님이 불면 날아갈까, 싶은 마음으로 귀하게 키웠습니다. 그런 귀한 딸을 밤에 머리를 질질 끌고 가서 돌덩이보다 험한 군화발로 차고 그랬어요. 저 잘못한 거 없습니다. 그런데 잘못했다고 빌면서 살려달라고 했어요. 이래도 이걸 왜 그런지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어요.
 
그런데 정신대대책협의회라고 하면 이걸 밝혀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할머니 어디 갔다 왔습니까. 해서 밝혀줬는데 한 번도 할머니 앉혀가지고 증언 한번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밥 먹는 데도 어디 갔다 왔습니까, 하면 그걸 가지고 책을 냈어요. 그 책을 6500원에 팔았어요. 그래도 그걸 몰랐어요. 그런 책이 있는 줄 모르고 그것이 당연한가보다, 하고 다니면서도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제가 제 일이라고 생각하고 증언도 하고 또 정신대대책협의회 박물관을 짓는데, 서대문형무소에서 짓는다고 했을 때도 대표 대우도 안 해주고…(중략)”
 
“윤미향 용서한 적 없다”
 
“윤미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미향씨, 이러면 안 되지 않느냐고, 한 번 오라고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기자회견 한다, 고 했는데 아주 큰소리로 당당하게 기자회견 하라고 해서 제가 5월 7일 기자회견 한 거예요. 이런 내용 하나하나 말씀을 다 못 드리겠어요. 빨리 생각이 안 납니다.
 
(5월 7일 1차 기자회견 후) 어느 날 저녁에 나갔다가 들어오니까 (누가) 문을 열어달라기에 열었는데, 윤미향씨가 싹 들어오는 거예요. 놀라서 넘어갈 뻔했습니다. 그러면서 무릎을 꿇고 무슨 용서? 근데 뭐를 용서를 합니까. 뭘 가지고 와야 용서를 하든가, 말든가 하지요. 용서? 무엇을? 보니까 엄청나더군요. 이런 건 검찰에서 조사할 내용이고, 내가 며칠 후에 (2차) 기자회견을 할 테니 그때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갔는데, 나가보니까 소위 교수라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사람이 있어서 (추가적인) 말을 안했어요.
 
뻔뻔하게 차에서 내려서 휠체어 타려고 하니까 뭣이 어떻고. 도대체 뻔뻔하기 짝이 없어요. 기자회견 할 테니까 그때 오라고 했는데…. 무슨 원수진 것도 아니고 30년을 지내왔는데, 그랬더니 한 번 안아달라고 합디다. 그래서 저는 그래 이게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안아주니, 참 저도 인간입니다. 30년을 같이 했으니 원수도 아니고요.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눈물이 왈칵 나서 제가 울었는데, 이걸 가지고 기자님들 제발 부탁드립니다. 명백하게 기사를 내주세요. 그걸 가지고 ‘용서했다’ 이런 기사, 너무 황당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이거는 확실하고 명백히 여러분에게도 다 책임이 돌아가는 일입니다. 제가 이거를 명백하게 하려고 했어요. 어떻게 이걸 그만둬라, 하지마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있었던 건데 이 사람은 자기 맘대로 뭐든지 하고 싶으면 하고 팽개쳐요. 어떻게 30년 같이 해왔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요. 맘대로 팽개쳤어요.
 
세계 곳곳에 우리 국민들이 그 데모에 나오십니다. 그분들도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랬어요. 이래놓고 자기가 사리사욕 챙겨서 맘대로 또 국회의원 비례대표도 나갔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한테 얘기도 없었고 하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거니까 제가 무엇을 용서를 합니까. 용서? 그분도 자기 맘대로 했으니까 하든지 말든지 하는 건데요. 물어볼 필요도 없잖아요. 무엇 때문에 용서를 바랍니까. 그거 아니라도 여러 수십만 가지를 제가 말씀을 다 못 드립니다. 속이고 이용한 것이요. 30년 동안 재주했습니다. 그 돈은 받아먹었고요. 무슨 용서를 바랍니까. 저는 데모 방식을 바꾼다는 거지 끝내는 건 아닙니다.”
 
“韓日 학생들 왕래하며 역사 이해도 높여야”
 
“일본과 한국은 이웃나라입니다. 이 학생들이 결국은 그 나라 주인이죠. 그러니까 학생들이 이 내용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일본 학생들이) 무엇 때문에 사죄배상을 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자꾸 한국이 거짓말 한다는 내용이 나오는 거예요. 우리 학생들도 모르고 있는 거고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일본과 한국을 학생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이것이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시간이 가도 이 학생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이 왜 일본한테 배상하고 사죄하라고 하는 건지요.
 
김복동 할머니요? 김복동 할머니는 한쪽 눈이 실명입니다. 저보다 두 살 위고요. 실명이고 한쪽 눈 조금 보이는 이 할머니를 끌고 댕겼지요. 미국으로 어디로 끌고 다니면서 있을 때 잘하고, 할머니 있을 때 해야 하는데 고생시키고 끌고 다니면서 할머니 이용해먹고 그래놓고도 뻔뻔스럽게 여주에 가가지고 눈물을 흘려요? 그거는 가짜 눈물입니다. 병 주고 약주고 하는 거죠. 그것도 죄인데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 이럽니다. 그것은 다 검찰 측에서 밝힐 겁니다. 하지만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위안부를 이용해서 한 것은 도저히 용서 못합니다. 이것 또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나이가 들다보니 자신이 없습니다. 한데, 우리 학생들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과 한국과 학생들 해서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올바른 역사를 공부를 해서 위안부 문제 사회 배상 이걸 풀어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양국이 친하게 지내면서 역사를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다, 언니 동생들,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으니 나를 용서해달라고 빌랍니다. 그래서 그거를 생각하니까 너무 제가 미안하고 한데 저는 하나도 부끄럼이 없어요.
 
위안부가, 위안부가 여성이잖아요. 이것이 저는 세계 여성분들께 피해 끼칠 일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요. 세계 여성 여러분들 저희가 위안부지만 여성이라는 그 두 글자가 너무 미안하고 해서 어떡하면 이런 것도 내가 좀 미안한 말씀 드릴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 기회로 모든 여성분들께 정말 미안하다고 말씀드립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누명도 쓰실 것이고 여자이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런 소리 들으실 겁니다. 제가 한사람, 한사람에게 어떻게 다하겠습니까. 이런 기자회견을 통해서 세계 여성분들에게 확실하게 위안부가 여러분들의 여자라는 두 글자 손상 입혔다는 게 참 죄송합니다.”
 
“윤미향의 추가 의혹은 검찰이 밝힐 것”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두 나라가 왕래하고 친하게 지내며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것과 이 억울한 위안부 문제를 사죄 받는 것입니다. 제가 왜 위안부고 성노예입니까. 그 더러운 성노예 소리를 왜 합니까. 미국 들으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이렇게 팔아서 뭘 했습니까. (중략) (요즘) 저 안성(쉼터) 이라는 것도 나오는데 쉼터 화려하게 지어놨습니다. 윤미향 대표,  그 위대한 대표의 아버님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것들이 엄청나게 나왔는데 그것은 검찰 측에서 다 밝힐 겁니다.
 
이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도 큰 소리 하고 있는 이 사람들, 죄는 지은 대로 가고 공은 닦은 대로 갑니다. 꼭 이 죄를 물어야 합니다. 그런다고 마음이 제가 편한 건 아닙니다. 고쳐야죠. 이후에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기자 여러분들 부탁드립니다. 꼭 했던 말 그대로 해주세요. 없는 말 추측해서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저를 욕보이는 말씀입니다. 기자 여러분들이 이것을 다 옳은 말씀으로 기사를 내주셨으면 합니다.
 
그 많은 얘기를 다 하면 여러분들도 가슴 아파 할 것이라 제가 요점만 얘기했습니다. 여러분들 그리 아시고 정말 죽겠습니다. 너무 죽겠습니다. 그 좁은 데서 만약에 하면 또 코로나가 퍼졌다고 하는데 걱정이 됐어요. 좁은 데서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여러분들을 이렇게 큰 데 모셨습니다. 그 점을 양해하시고 꼭 기사는 있는 그대로 내주세요.”
 
글=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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