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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201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 ①본 조비(Bon Jovi), 더 카스(The Cars)

[阿Q의 ‘비밥바 룰라’] 뉴저지 출신의 블루 컬러, 뉴 웨이브 음악의 히피들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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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이 발표됐다. 팝송의 천재들이 호명되는 자리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팝 음악을 빛낸 인물들을 기억하는 상. 1983년 아틀랜틱 레코드 설립자 아흐메트 에르테군(Ahmet Ertegun)의 주도로 1983년 설립됐다.
1986년 이후 해마다 수상자를 뽑는데, 공연자(Performers), 작곡가나 제작자 등 비공연자(Non-Performers), 초창기 로큰롤에 영향을 미친 자(Early Influences), 음악적 우수상(Sidemen)을 포함, 4개의 부문에서 헌액 인물을 선정한다.
1986년 첫 해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엘비스 프레슬리, 척 베리, 제임스 브라운, 레이 찰스, 셈 쿠크, 팻즈 도미노, 에브리 브라더스, 버디 홀리, 리틀 리차드, 제리 리 루이스 등이다. 이름만 들어도 황홀해지는 로큰롤의 거장들이다.
 
2018년 올해의 수상자(공연자 부문)는 본 조비(Bon Jovi), 더 카스(The Cars),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 무디 블루스(The Moody Blues), 니나 시몬(Nina Simone)이다. 또 초창기 로큰롤에 영향을 미친 이(Award for Early Influence)로큰롤 대모로 불리던 시스터 로제타 사프(Sister Rosetta Tharpe)가 뽑혔다.
 
2018 Rock & Roll Hall Of Fame inductees 글 싣는 순서
Bon Jovi, The Cars
Dire Straits, The Moody Blues
Nina Simone, Sister Rosetta Thar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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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결성된 미국 헤비메탈 사운드의 상징인 본 조비.

본 조비
 
미국 뉴저지 출신의 ‘블루 칼러’ 노동자를 배경으로 한 존 본 조비(Jon Bon Jovi), 리치 샘보라(Richie Sambora), 데이비드 브라이언(David Bryan), 티코 토레스(Tico Torres), 알렉 존(Alec John)은 전 대륙에 걸쳐 헌신적인 팬들을 자랑한다.
 
차트의 한 자리를 장식한 친숙한 노래들로 “You Give Love A Bad Name” “Livin’ On A Prayer” “Bad Medicine” “I’ll Be There For You”(1980년대 히트곡), “Blaze Of Glory” “Bed Of Roses” “Always”(1990년대 히트곡), “It’s My Life” “Have A Nice Day”, 그래미상 수상곡인 “Who Says You Can’t Go Home” “We Weren’t Born To Follow”(2000년대 히트곡) 등이 인기를 얻었다.
 
앨범이 전 세계적으로 12000만 장 이상이 팔렸다. 작년 "This House Is Not For Sale" 투어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3400만 명 이상의 팬들을 위해 2600번 이상의 콘서트가 열렸다.
 
 
본 조비는 자신이 좋아하던 음악을 위해 학교 진학을 포기했는데 그의 나이 열 다섯 무렵이었다. 친구들과 아마추어 밴드도 만들었지만 그는 더 큰 세상에 나가고 싶었다. 무작정 고향 뉴저지를 떠나 뉴욕에 정착했다.
그는 뉴욕의 레코딩 스튜디오 ‘파워 스테이션(power station)’으로 향했다. 주인이 누구이든 찾아가 일자리를 달라고 매달렸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잡일을 맡게 됐는데 스튜디오까지 지켜준다는 조건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청소부터 시작해 녹음하러 오는 스타들의 담배, 커피, 서류 등의 잔심부름을 도맡았다. 새벽부터 해가 지고 밤이 깊을 때까지 일했고 모든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는 혼자서 스튜디오의 마룻바닥에서 새우잠을 자며 꿈을 키웠다.
파워 스테이션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데이비드 보위, 에어로스미스, 롤링스톤즈,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이 과정에서 악기연주에서 작곡법, 편곡법, 그리고 믹싱의 묘수까지 터득했다.
세월이 흘러 자신이 생기자 미련없이 파워 스테이션을 떠난 그는 고향인 뉴저지로 돌아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밴드인 ‘본 조비(Bon Jovi)’를 결성했다. 1984년 그의 나이 스물한 살에 데뷔 앨범 《본 조비》를 내놓았을 때 로큰롤 계에 일대 회오리가 일었음은 물론이다.
(인용 김광한·이양일의 《팝스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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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미국 뉴웨이브 음악을 선도한 더 카스.

더 카스
 
미국 보스턴에서 1976년 결성된 더 카스(the cars)는 싱어이자 기타리스트, 작곡가인 릭 오케이섹(Ric Ocasek)과 싱어이자 베이스 주자인 벤저민 오어(Benjamin Orr)가 주축이었다. 두 사람 다 한때 ‘히피 포크(hippie folk)’ 주자였다.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음악인 미국 뉴 웨이브 사운드의 계승자이자 창조자로서 1960년대 팝, 70년대 그램록이 혼합된 형태의 음악을 만들었다. 일설에는, 후기 비틀즈와 데이비드 보위, 록시 뮤직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의 실력은 이미 데뷔 초기에 인정을 받았다. "Just What I Needed", "My Best Friend's Girl", "Good Times Roll"이 계속해서 히트를 하면서 1979년초에 열린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카스는 ‘78년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6장의 스튜디오 앨범, 그중에서 ‘탑 10앨범이 5장에 이른다. 또 ‘탑 40싱글이 모두 13곡이다. 펑크 록의 격렬함과 지적인 모험을 이끌어 언더르가운드에서 ‘확고하게 그리고 영원히’(firmly and forever), 미국 음악의 메인 스트림에 안착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들은 1980년대 후반에 해체됐다. 얼터너티브 록의 붐이 일었던 1990년대에도 이들의 저력을 증명했다. 커트 코베인의 너바나(Nirvana) 같은 인기밴드가 카스의 곡을 리메이크하며 추종했다. 2000년 베이스 주자인 오어의 죽음은 이들의 재결성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만들었다.
 

입력 : 2018.08.02

조회 : 3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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