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뜨면 '미투'... 여성가족부는 뭐하나 "여가부 직무유기" 주장도 : 월간조선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미투(me too)' 운동이 법조와 문화예술 등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한 달째 구경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피해자들의 잇단 증언으로 성폭력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무르익은 만큼 정부가 이를 앞장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터넷 포털과 주요 사이트를 중심으로 네티즌들은 "여성가족부가 미투 운동에 동참한 피해 여성들을 앞장서서 보호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 "여성가족부의 존재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이럴 때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명지대 경제학과 조동근 교수는 본인 SNS를 통해 "사건 자체가 충격이다"라며 "그런데 주무 부서인 여성가족부는 왜 침묵하고 있나"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어 조 교수는 "여성인권을 보호하는 장치와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지금 여성가족부의 행보는 직무유기"라고 강조했다.

미투 운동은 1월 26일 서지현 진주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2010년 당시 법무부 소속 안태근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시인 고은씨, 연극연출가 이윤택ㆍ오태석씨, 배우 조민기씨, 인간문화재 하용부씨 등에 의해 성폭력을 당했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미투 운동이 한 달째 계속되면서 국민 사이에서 "눈만 뜨면 미투" "애들이 뉴스 볼까 무섭다"는 자조 섞인 말이 유행하는 가운데 지난 한 달여 동안 여가부가 내놓은 유일한 대책은 지난 20일 내놓은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성평등 문화 확산 10대 과제'뿐이다. ‘성평등 교육’과 ‘성평등한 미디어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어 22일 이숙진 여가부 차관은 스토킹ㆍ데이트폭력 피해방지 대책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 자리를 빌려 사회 각 분야에서 피해를 알린 피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정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문화를 바꾸기 위해 피해사실을 알리고 미투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과 끝까지 함께하겠다. 여러분의 용기가 헛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 성희롱과 성폭력을 없애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모두 원론적인 얘기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노력하겠다는 대책은 없다. 피해자들은 소송비용과 해당업계에서 퇴출될 우려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쳤지만,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들도 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어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투에 동참할 뜻을 보인 한 문화예술계 피해자는 "지금 억울함에 미투에 나서려 하지만 앞서 나선 피해자들이 오롯이 혼자 고통을 감내하고 있어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라며 "모든 피해를 감수하고 미투에 나선 분들은 밝히기까지 그 피해와 고통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투가 이 정도로 일파만파 확산됐으면 제도적인 대책이 마련됐을 만도 한데 그런 분위기는 전혀 없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서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죄가 될 수 있다고 걱정해 주고 있다"며 "여성단체든 여성가족부든 이 정도로 미투운동이 사회적 이슈를 가져왔다면 피해자들에 대해 상담하고 도와줄 수 있는 긴급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알리면 초기 상담부터 소송, 의료 지원 등 종합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원스탑 센터가 있어야 한다. 현재 여가부 산하에 여성 긴급 전화 1366이 있지만, 규모가 너무 작다. 전국적으로 센터를 늘려 피해자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은 “여가부가 성폭력 피해 근절을 위한 컨트롤타워가 돼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며 “위원회 차원에서도 관련 법을 정비하고, 예산을 확보하겠다. 국무총리실 내에 별도의 전담 기구를 두도록 제안하는 등의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