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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국제

근육질 상남자 ‘통가맨’을 평창에서 볼 수 있을까... 태평양 유일 왕조국가 '통가'는 어떤 나라?

2016년 리우올림픽 때 통가선수단 旗手였던 타우파토푸아... 크로스컨트리 스키선수로 평창 도전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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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정신이 강해요. 순해 보이기도 하지만 호전적인 면도 있어요. 과거 폴리네시아 지역을 통가 왕국이 지배했다고 하잖아요. 그 피가 남아 있는 겁니다. 작은 나라이지만 국민들의 자부심이 상당해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호전적·진취적 기질 때문인지 이 나라 사람들은 몸싸움이 심한 럭비를 아주 좋아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 사람들에게 몽골족 피가 섞여 있는 것 같아요. 갓 태어난 아기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는 걸 많이 봤어요. 여자들이 머리를 뒤로 묶는 것도 우리와 비슷하고요.”
2016 리우 하계올림픽 개회식 때 통가 선수단 기수로 등장했던 피타 타우파토푸아가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로 평창 동계올림픽에 도전한다. 독일 남부 발더슈방의 한 스키장에서 훈련 중인 타우파토푸아. 사진=인스타그램
 
2016년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개회식. 세계는 이 근육질의 ‘상남자’에 환호했다. 태평양 소국(小國) ‘통가’ 선수단의 기수(旗手)였던 피타 타우파토푸아. 우리의 국기(國技) 태권도의 통가 대표선수였던 그는 자국(自國) 선수단이 입장할 때 맨 앞에 나와 웃통을 벗어던진 구릿빛 근육질 몸매를 자랑했다. 허리 아래엔 통가 전통의상 ‘투페누’를 둘러 통가 문화를 세계에 알렸다.
    
이 근육질의 상남자가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할 수도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5일 “타우파토푸아가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로 변해 평창에 도전한다”며 “6~7일 폴란드에서 열리는 국제스키연맹 대회에서 올림픽 출전권 획득을 노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가 평창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할 경우, 올림픽 사상 최초로 동하계 올림픽 출전 선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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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리우올림픽 이후 “평창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뒤 독일에서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배우기 시작했다. 훈련 초기에는 10세 이하 어린이들과 함께 스키의 기본을 배웠다고 한다. 입문 한 달여 만에 국제스키연맹 크로스컨트리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물론 참가선수 156명 중 153등을 했다.
    
그가 평창행 티켓을 거머쥘지는 이번 폴란드 대회가 끝나봐야 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가능성을 50 대 50으로 봤다. 출전 여부와 상관없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도전정신은 어디서 왔을까.
          
태평양 섬나라 ‘통가’를 현지(現地) 취재한 적이 있는 기자는 거센 파도를 뚫고 통가에 정착한 조상(祖上)의 개척정신과 태평양 섬나라 유일의 왕조국가 출신이라는 자부심에서 찾고 싶다. 통가를 소개한다(〈월간조선〉 2013년 9월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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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가 해변은 어디를 가더라도 아름답다. 사진=월간조선

통가는 어떤 나라?
    
통가의 정식 국명(國名)은 통가왕국이다. 국토 면적은 748km²로, 169개 섬으로 구성돼 있다. 36개 섬에만 주민이 거주하고 대부분 무인도이다. 서울(605km²)보다 조금 넓다. 인구는 10만여 명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통가 사람도 대략 10만 명이다. 이 중 절반이 뉴질랜드에 산다.
   
통가는 크게 네 그룹(통가타푸·바바우·하파이·니우아스)의 섬들로 구성돼 있다. 수도는 통가타푸에 있는 누쿠알로파('노를 저어 항해하다'란 의미. 인구 약 3만 명)이다.
   
한국보다 네 시간 빠르다. 인종은 대부분 폴리네시아인들이다. 종교는 기독교이며 통가어(語)와 영어를 쓴다.
 
정부 형태는 입헌군주제이며 왕국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197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현재 국왕은 조지 투포우(George Tupou) 6세, 수상은 투이바카노(Tu’ivakano)이다. 2009년도 국가 국내총생산(GDP)은 미화(美貨) 3억4300여만 달러, 1인당 GDP는 3300달러 수준이다.
   
통가에는 3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기원 후 10세기 무렵 투이통가 왕조가 들어선 후 400여 년 동안 피지, 니우에, 사모아까지 영향력이 미쳤다고 한다. 광활한 바다를 통치하다 보니 당시 통가 사람들은 상당히 호전적이었다고 한다.
  
유럽인과의 접촉은 1616년부터(네덜란드 상인 야곱 레말·Jacob Lemaire) 시작됐으며 1770년대 이후 잦아졌다. 제임스 쿡 함장도 세 차례 이곳을 방문했다. 1777년 제임스 쿡 함장이 이곳에 들렀을 당시 피나우(Feenough) 추장을 비롯한 원주민들이 잔치를 베풀며 친절히 맞이하자 쿡 함장은 통가를 ‘친절한 섬(Friendly Islands)’이라 불렀다. 통가 사람들은 자국(自國) 소개를 할 때 이 표현을 자주 인용한다.
    
여느 태평양 섬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통가에도 1790년대부터 유럽의 천주교와 기독교가 전파됐다. 1831년 당시 국왕 조지 투포우 1세가 세례를 받으면서 통가 국민 전체가 기독교로 개종(改宗)했다. 통가는 태평양 국가 중 기독교의 영향력이 아주 강하다. 일요일에 교회를 가지 않으면 사회생활을 못할 정도다. 이 나라에서는 일요일에 비행기도 이착륙하지 않는다. 주일을 섬기는 게 절대적이다.
   
1800년대 초반의 통가는 영국인 선원 윌리엄 마리너(William Mariner)에 의해 서양에 자세히 알려졌다. 그는 1806년부터 4년 동안 통가에 거주했던 경험을 영국의 인종학자 존 마틴(John Martin) 박사의 도움을 얻어 《남태평양 통가 제도의 원주민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1875년 당시 통가 왕은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농노제도를 폐지하고 외국인의 토지소유를 금지하는 통가헌법을 제정하고 국기(國旗)와 국가(國歌)도 만들었다. 민족국가로서 체제를 갖춘 통가는 곧바로 독일·영국·미국과 협약을 체결해 독립국가로서 인정을 받았다. 1893년 조지 투포우 1세가 사망하자 그의 증손자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통가는 영국의 보호령에 편입된다(1900년). 통가는 1968년 영국과의 보호조약을 수정해 내치(內治)와 외교권을 회복했고, 1970년 정식으로 독립국가가 됐다.
     
통가는 1800년대 후반 일찌감치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유럽 제국의 식민지로 추락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헌법상 군주제가 지속돼 진정한 민주국가로 발전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재 국왕은 조지 투포우 6세이다.

태평양 섬나라 중 유일한 王國, 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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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가는 왕이 통치하는 나라이다. 태평양 섬나라 중 유일하다. 유럽인의 영향을 받아 1830년대 이후 대부분의 국민이 기독교로 개종했다. 기독교 영향이 커 일요일에는 비행기 이착륙도 일절 없다.

취재를 앞두고 기자는 통가(Tonga)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대충 아프리카 어느 한 귀퉁이에 있는 국가로 생각했다. 그런데 태평양에 있다니…. 태평양 섬나라에 대한 기자의 상식은 무(無)에 가까웠다.
   
통가에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비행기로 뉴질랜드를 거쳐 갈 수 있고, 피지(Fiji)를 통해 갈 수도 있다. 기자 일행은 후자를 택했다. 이번 취재에는 박흥식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하 해양과기원) 태평양해양연구센터장과 김선욱 연구원, 방장완 한국해양과기원 피지·통가현지법인 소장이 동행했다.
  
해가 가장 빨리 뜨는 느림의 나라
 
2013년 7월 말,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피지를 경유해 17시간 만에 통가의 수도(首都) 누쿠알로파에 도착했다. 수도는 통가 가장 남쪽에 위치한 통가타푸 섬에 있다. 착륙 전 하늘에서 본 섬은 매우 평화로워 보였다.
    
2011년까지 통가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날짜가 바뀌는 나라였다. 날짜변경선 바로 왼쪽에 접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통가 동북쪽에 있는 사모아가 2012년부터 통가와 같은 시간대를 사용하면서 두 나라가 세계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뜨는 곳이 됐다.
    
통가 땅을 처음 밟았을 때의 첫 느낌은 한마디로 ‘느림(slow)’ 그 자체였다. 모든 게 천천히 돌아갔다. 시계가 고장 난 줄 알았다.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느림의 미학(美學)을 읽을 수 있었다. 여유가 있어 보였다.
     
현지 사정에 밝은 방장완 소장이 통가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다. 현지 교민인 방 소장은 피지와 통가에 20년 넘게 거주하고 있다.
    
“이곳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전통이 잘 보존돼 있습니다. 사람들도 친절하고요. 카사바(뿌리식물)를 주식으로 먹어요. 단호박을 많이 재배하는데 2006년 무렵 한국에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여행객들로는 유럽인과 호주, 뉴질랜드 사람이 많아요. 2006년 사모아에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이곳도 영향을 받았는데, 그때 이 나라 왕이 언덕에 위치한 자신의 저택을 열어 주민들의 피해를 막기도 했어요.
      
수도가 있는 통가타푸 섬은 산호섬이라 석회질이 많아요. 수돗물을 그냥 마시면 안 됩니다. 이곳 사람들은 하루에 몇 차례 내리는 스콜(비)로 샤워를 해요. 물 사정이 별로입니다. 생수로 유명한 피지와 달라요. 섬 자체에 배수가 잘 안 돼 중국이 배수시설을 설치해 줬어요. 그런데 중국 근로자가 직접 이곳에 와 공사하고는 그냥 돌아가는 바람에 그 후 보수공사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고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가 버렸지요. 시내에 있는 수도관은 오래전에 일본이 지어 줬어요. 누수가 생기고 보강공사가 잦아지면서 최근 세계은행과 일본 정부가 돈을 대 공사를 다시 하고 있습니다.”

중국人 3000명, 일본人 50명, 한국人 20명
 
기자는 취재 기간 동안 현지인을 만날 때마다 “한국을 아느냐”고 물었다. 이튿날 시내에서 만난 몇몇 여고생은 한국에 대해 전혀 몰랐다. “인터넷을 통해 한국 얘기 들어본 적 없느냐”고 했더니 “인터넷이 학교에 설치돼 있지만 언제든지 이용할 상황은 못 된다”고 했다.
     
현지에서 만난 한 남자 고등학생은 “어릴 때 한국인 선교사에게 태권도를 배웠다”며 한국 사람을 만난 것을 반가워했다.
 
작년(2012년) 통가를 방문한 적이 있는 박흥식 박사는 “내가 만난 학생들은 우리나라 아이돌그룹의 이름까지 대며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남자 아이돌그룹 샤이니를 알더라고요. 한 학생은 ‘뭐든지 할 테니 나를 한국에 데려갈 수 없겠느냐’고 했어요. 학생들은 영어로 된 한국 연예인 소개자료도 원했죠. 우리나라를 알리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문화적 접근인 것 같아요. 한류를 적극 활용하는 겁니다. 아프리카 사람들보다 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우리와 맞아요.”
     
같은 아시아 계통이어서일까. 우리와 정서가 맞는다는 느낌은 사모아, 쿡제도를 취재하면서도 실감했다.
 
통가에서의 첫날 밤, 취재 겸 저녁식사를 위해 교민 이귀영씨가 운영하는 한국식당 ‘후렌지파니(Frangipani·태평양 섬에 자생하는 꽃)’를 찾았다.
    
이귀영 사장은 1992년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이곳에 왔다고 한다. 그가 운영하는 식당은 통가에서 꽤 유명하다. 닭볶음탕, 삼겹살, 주물럭, 김치찌개, 파전 등 한국 음식을 파는데 한국인보다 중국인이나 일본인,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현지 고위 인사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왜 안 오느냐”고 물었다. 그의 말이다.
    
“사람이 없어서죠. 교민이라고 해봤자 20명이 채 안 돼요. 2009년에는 30명가량 있었는데 점점 줄고 있어요.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호주, 뉴질랜드로 떠나요. 중국인은 3000여 명이나 됩니다. 대부분 장사를 하지요. 일본 사람은 50명 정도 있는데 봉사활동을 하러 온 젊은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사장은 통가 사람들의 기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도전정신이 강해요. 순해 보이기도 하지만 호전적인 면도 있어요. 과거 폴리네시아 지역을 통가 왕국이 지배했다고 하잖아요. 그 피가 남아 있는 겁니다. 작은 나라이지만 국민들의 자부심이 상당해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호전적·진취적 기질 때문인지 이 나라 사람들은 몸싸움이 심한 럭비를 아주 좋아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 사람들에게 몽골족 피가 섞여 있는 것 같아요. 갓 태어난 아기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는 걸 많이 봤어요. 여자들이 머리를 뒤로 묶는 것도 우리와 비슷하고요.”
   
인류학적으로 폴리네시아인(人)들은 동남아 계통인데 몽골족 피가 섞여 있는 것 같다는 교민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식당(코리아하우스)과 수산업을 하는 또 다른 교민 정재호씨의 말이다.
    
“봉분(封墳)도 우리와 비슷합니다. 명당자리를 따지는 것도 같고요. 가족을 중시하고 윗사람을 공경하는 것도 우리와 닮았지요. 밥상머리 교육도 비슷해요. 어른들이 밥을 먼저 먹어야 아랫사람들도 먹을 수 있어요.
   
이 나라가 기독교 국가이지만 관혼상제도 우리와 유사해요. 과거 우리나라 시골에 5일장, 7일장이 섰던 것처럼 이곳에도 장날이 있습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통가가 기독교 교리를 철저히 지키는 나라라는 사실을 알고 상당히 놀랐어요. 일요일에는 모든 게 스톱(stop)입니다. 이 나라 사람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한류 바람이 불긴 했지만 아직도 잘 몰라요. 일본은 잘사는 나라로 인식해요.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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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가 사람들은 과거 10세기경 그들의 조상이 폴리네시아 일대를 지배했다는 데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전통문화 의식이 강한 그들은 지금도 일상생활에 전통의상을 즐겨 입는다.
 
“우리와 정서 맞아… 문화적 접근 필요”

통가에는 우리 정부가 위촉한 한국 명예영사가 있다. 현지에서 건설업을 하는 테비타 풀로카(Tevita Fatafehi Puloka) 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작년(2012년) 여수엑스포 때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의 말이다.
    
“인천공항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여수까지 갔는데 발전 규모를 보고 크게 놀랐어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한국과 통가는 앞으로 가까워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매운 음식을 좋아해요. 한국 음식 중에서 닭볶음탕을 아주 잘 먹지요. 이 나라 수상은 투이바카노(Tu’ivakano)라는 분인데 태권도를 아주 좋아해요. 체육부 장관 출신인데 현재 태권도협회 책임자이기도 합니다.”
    
통가 수상이 태권도 애호가(愛好家)라는 사실에 놀랐다. 풀로카 명예영사에 따르면, 통가 사람들도 태권도를 좋아한다고 한다. 특히 경찰과 군인들의 경우, 태권도로 격투기 실력을 갖춘다고 한다. 과거 태권도를 할 줄 아는 우리나라 선교사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풀로카 씨는 “오는 2019년 태평양도서국 태권도대회가 통가에서 열린다. 그런데 마땅한 경기시설이 없다. 한국은 태권도 종주국으로 알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풀로카 씨를 통해 통가 현지 사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통가의 경제상황은 넉넉한 편이 못 된다. 수출 기반이 약해 호주, 뉴질랜드, 미국에 나가 있는 통가 재외국민(10만여 명)이 보내는 돈과 외국의 원조자금에 크게 의존한다. 통가의 청장년들이 매년 농산물 수확기 때 호주와 뉴질랜드 농장에 건너가 벌어들이는 임금도 국가 경제에 적잖게 기여한다.
   
다른 태평양 섬나라들처럼 관광수입도 통가의 큰 수입원이다. 기반시설이 좋아지고 사회가 안정되면 관광산업을 통해 국가 경제가 활성화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10세기 왕조 설립 후 폴리네시아 일대 통치

통가는 1875년 제정된 헌법에 입각한 군주국이다. 태평양 국가 중 유일하게 국왕이 실권을 갖고 직접 통치한다. 국민들 또한 왕국(王國)이라는 데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우리의 잣대로 볼 때 갈 길이 먼 후진국이지만, 그들은 한때 폴리네시아 일대를 통치했던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통가에는 군대도 있다. 육군과 해군, 지원군으로 구성돼 있으며 현재 병력은 500명 정도다. 소규모이지만 2004년과 2007년 이라크전(戰)에 소규모의 병력을 파병하기도 했다.
    
통가의 주요 국가조직으로는 추밀원(국왕의 자문기관), 내각, 의회, 사법부 등이 있다. 국왕은 행정권을 포함해 사실상 전권을 갖고 있다. 내각은 총리를 포함해 16명으로 돼 있다. 국왕이 모두 임명한다. 내각은 추밀원이 결정한 사항을 집행하는 조직이다. 입법부는 귀족 대표 9명(33명의 세습 귀족 중에서 3년마다 선출)과 평민 대표 17명(3년마다 보통선거로 선출)으로 구성된다.
    
오랜 세월 동안 귀족 중심의 정치가 계속되면서 부패가 심해지자 2000년대 이후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마침내 2005년 9월, 통가 인구의 10분의 1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가 수도 누쿠알로파에서 일어났다. 그 여파로 2006년 2월 당시 총리(국왕 투포우 4세의 3남)가 사퇴하고, 첫 평민 출신 총리(페리티 세벨리)가 나왔다.
    
2010년 헌법 개정을 통해 의회는 평민 출신 의원이 귀족 출신 의원보다 더 많아졌다. 당시 국왕 투포우 5세는 각료 임명을 포함한 정치적 결정은 국민이 선출하는 수상에게 맡기고, 정치 문제에 대해 자신은 후견인 역할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통가는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다.
 
통가 의회에서 파카파누아(Faka-fanua) 국회의장을 잠시 만났다. 그는 뉴질랜드에서 공부한 29세의 젊은 정치인이었다. 통가 왕세자의 처남으로, 국왕 조지 투포우 6세의 신임이 상당하다고 한다. 향후 통가 수상 자리도 맡을 것이라고 한다.
    
파카파누아 의장에게 통가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느냐고 물었다.
 
“갈 길이 멀지만 우선 정부 개혁이 제대로 되는 데 노력할 것입니다. 통가에 민주주의 체제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도 할 일이 많아요.”
   
그는 통가와 한국의 우호증진 방안에 대해 “자주 만나야 하지 않겠나. 한국이 통가 국왕과 수상을 초청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한국 고위 인사가 통가에 오는 것도 환영한다. 정부든 민간이든 얼굴을 맞대고 자주 봤으면 한다”고 했다. 
   
새로운 정치적 시대 맞고 있는 통가

지난 총선(總選)에서 국민의 지지를 많이 받았던 통가 민주당 대표이자 야당 최고지도자인 아킬리시 포히바(Akilisi Pohiva)에게 국가 개혁 방향에 대해 물었다. 이 자리에는 통가 재무차관 출신인 알리시 의원도 동석했다.
    
“통가는 작은 나라입니다. 경제적으로 강대국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주요 경제 수입원은 농업, 수산업, 관광업, 해외동포 송금 등인데 이것으로는 어려움이 있어요. 요즘 들어 해외동포의 송금액이 크게 줄고 있습니다. 국가발전을 위해 동양, 특히 일본과 중국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긴밀한 협력을 원합니다. 한국과는 해양자원개발 외에는 특별한 게 없습니다. 단호박 수출 문제로 한국과 접촉한 적은 있군요.”
   
포히바 대표는 “통가는 정치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며 국가발전 모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10년 개헌을 통한 정치 개혁으로 현재 많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혁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정부 개혁과 업무수행평가를 위해 새로운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는데 통가 국민이 토지분배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 공평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는 통가 해역(海域)의 해양자원개발을 위한 우리의 탐사활동에 대해 “한국의 자원개발 활동을 환영한다. 그로 인한 이익이 통가 왕국과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통가의 한 해 예산은 우리나라 돈으로 2000억 원이 조금 넘는다. 내년의 경우, 미화(美貨) 2억200만 달러(한화 2270여억 원 규모)이다. 최근 통가 정부는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사회기반시설 확충을 위해 중국에서 들여온 차관이 부채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13년 5월 IMF(국제통화기금)는 통가의 국가위험도를 ‘높음(high risk)’에서 ‘중간(medium)’으로 하향 조정했다. 통가 정부로서는 희소식만은 아니다. 위험도가 높으면 외부 원조금을 100% 받을 수 있지만 ‘중간’이 되면 50%만 수령 가능하기 때문이다. 통가의 해저통신망 설치를 위해 세계은행으로부터 1920만 달러를 지원받았는데 이 중 절반을 국가부채로 토해내야 하는 상황도 골칫거리다.
   
국민의식 개혁도 큰 과제다. 리시아테 아콜로 재무장관의 말이다.
   
“통가의 경제부흥은 쉽지 않은데 발전을 위한 국민들의 마인드를 바꾸기도 힘들어요. 우리나라의 주요 국고 수입원은 외국 원조입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의 마인드가 수동적으로 변했어요. 아무것도 안 하면서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식이죠. 그러나 최근 외부 원조금이 50% 이상 감소했고(약 1억1300만 달러), 실업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자력을 통한 경제부흥책이 절실히 필요해요.”
   
통가 정부는 수출업자들의 활로 개척을 위해 약 57만 달러를 수출장려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정부는 개혁 차원에서 공기업의 운영실태도 더욱 엄격히 관리할 예정이다.
     
사회문제로는 최근 통가 고교생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대규모 패싸움을 들 수 있다. 학생들의 패싸움은 마을 간 패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이 문제는 통가 사회 전반을 위협하고 경제발전까지 저해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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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8세의 통가 현지인 라투 웅가 씨 가족들. 3대가 같이 사는데 어린이만 11명이다.

상속은 장남에게, 명예는 장녀에게

기자는 통가 현지인의 생활상을 알아보기 위해 현지인의 도움을 얻어 한 가정을 방문했다. 시내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라투 웅가(Latu Mailangi Unga·68) 씨의 집을 찾았다. 통가 사람들은 ‘같은 부족’이라는 유대감이 강하다고 한다. 한 부족으로서 국왕에 대한 존경심도 강하고, 부족 간 위계의식도 철저하며, 대가족 제도에 따른 가장(家長)에 대한 권위도 존중한다. 태평양 국가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교육열도 높다고 한다.
 
 웅가 씨 댁에는 3대(代)가 함께 살고 있었다. 아이들만 11명(아들 3, 딸 8)이나 됐다. 웅가 씨의 말이다.
    
“통가에서 가족은 사회의 기본 바탕입니다. 가족 범위도 넓어요(우리의 12촌까지 가족으로 간주). 가족의 대소사(大小事)는 반드시 회의를 거쳐 결정해요. 집에서는 통가 전통 말을 사용합니다. 종교는 기독교인데 신앙심이 강하지요.”
   
가족 내(內) 남녀 지위와 관련해 태평양 섬나라 중 통가에만 있는 특별한 전통이 있다고 한다.
   
“가족의 땅이나 재산은 장남에게 상속됩니다. 여자에게는 가장 명예로운 지위를 물려줘요. 예를 들어 집안의 어른이 사망했을 때 장례식에서 가족을 대표하는 사람은 장남이 아니라 장녀입니다. 장례식에 왕이 와도 딸이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요. 여자에게는 명예가 상속되는 겁니다.”
 
참고로, 통가에서 토지에 대한 소유권은 국왕에게 있다. 국민은 국왕으로부터 임차받은 사용권만 갖고 있다. 이것은 상속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16세 이상의 성인남자는 3ha의 농지를 배분받는다. 이 같은 토지제도는 통가의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한다. 통가에는 전통적인 추장 시스템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한국과 관련해 웅가 씨의 며느리는 “TV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데 이곳 여성들에게 한국 프로그램은 인기가 많다”고 했다.
   
통가의 남성들은 술을 즐기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약간의 마취 성분이 있는 ‘카바(우리의 칡뿌리 같은 식물)’를 갈아 물을 섞어 마신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취재 도중 짬을 내 이른바 ‘카바클럽’을 가 봤다.
  
통가 시내 한 마을회관에 남성 50여 명이 모여 앉아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은 중간중간에 먹걸리처럼 보이는 음료로 목을 축이곤 했다. 카바였다. 한잔 마셨는데 아무런 맛이 없었다. ‘이걸 무슨 맛으로 마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20분쯤 지나자 혀가 약간 마취되는 듯했다.
    
통가 사람들은 나뭇잎으로 만든 전통의상도 즐겨 입는다. 특히 남자들의 경우, 서양식 옷에다 전통의상을 엉덩이에 치마처럼 둘러싼 것이 특이해 보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 마을의 경우 전라(全裸)에다 중요 부위만 나뭇잎으로 만든 옷을 걸치고 다닌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루빨리 태평양으로 눈 돌려야”
     
통가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아직 낮다. 국가 경제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발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통가의 주요 수출품은 농수산물 등 식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수산업을 하는 교민 최진환씨의 말이다.
   
“여기에는 수산물이 많아요. 경제해역 200해리가 적용되는 곳입니다. 바다 면적이 엄청나죠. 이곳 사람들이 고기를 대량으로 잡지 않아서 그렇지 참치를 포함해 어종(魚種)이 풍부해요. 땅도 비옥해서 단호박이나 일반 농작물도 잘돼요. 한국에 있을 때는 우리 것이 좋다고 했지만 막상 이곳에 와보니 여기 농수산물이 더 좋더군요. 관세 문제만 해결된다면 한국이 상생(相生) 차원에서 이곳의 농수산물을 수입하는 것도 괜찮아요. 한국에서 나지 않는 것들이 여기에 많아요.”
   
통가 정부는 국가 수익 차원에서 중국 어선들에 상어잡이를 싼값에 허용해 줬다고 한다. 최진환씨는 “한국은 하루빨리 태평양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했다.
     
통가와의 구체적인 협력관계는 한국해양과기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해양과기원은 2008년 통가의 배타적 경제해역(EEZ) 중 일부(2만4000km²)에서 해저열수광상(해저 광물자원 밀집지역)을 탐사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했다. 물론 그저 얻은 것은 아니다. 이 사업은 해양과기원·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SK네트웍스·LS-니코 동제련·포스코가 공동 설립한 해저열수광상개발사업단이 맡고 있다. 탐사활동의 주축은 해양과기원이다.
    
방장완 해양과기원 통가 현지법인 소장의 말이다.
   
“통가에는 캐나다의 노틸러스가 가장 먼저 뛰어들었어요. 그다음에 우리가 들어왔고 이어 호주·뉴질랜드가 공동으로 출자한 블루워터메탈이 들어왔어요. 통가, 피지, 바누아투, 솔로몬, 파푸아뉴기니 쪽의 바다 밑에 열수광상이 쭉 뻗어 있습니다. 그런데 해양자원을 탐사하고 개발하는 데는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요. 일단 탐사활동부터 사람이 직접 할 수 없어요. 3000m 바다 밑을 들어갈 수가 없는 거죠. 모두 장비에 의존해야 합니다. 그만큼 돈이 들어가는 거죠. 또 바다환경이라는 게 매일매일 달라 정해진 시간 내에 일을 마치기가 쉽지 않아요. 캐나다 노틸러스가 세계 최초로 파푸아뉴기니 해역에서 10년 만에 ‘자원개발’에 들어갔습니다. 10년 동안 탐사활동을 계속해 왔던 겁니다.”
  
방 소장은 “사업비가 많이 들고 리스크가 크더라도 해양자원 개발을 밀고 나가야 한다”며 “미래를 내다보고 정부나 민간기업이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면 반드시 좋은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최근 들어 피지와 통가의 해저열수광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뛰어들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요. 넓은 해역을 갖고 있는 일본과 인도는 오래전부터 자기네 바다 밑을 열심히 파헤치고 있어요. 우리는 땅도, 바다도 좁잖아요. 태평양을 우리 해역으로 만들어야 해요. 지금 통가나 피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해저탐사 활동의 노하우를 꾸준히 쌓아 간다면 언젠가 나라에 크게 기여할 날이 올 거라 확신합니다.”
        
무선통신 안테나 사건
  
주(駐)통가 한국 명예영사로 활동하는 풀로카 씨는 한국 정부가 통가와의 경제협력에 관심을 더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한국의 높은 수입관세 때문에 통가의 단호박이 한국에 들어가다 말았어요. 당시 한국 정부에 ‘관세를 낮추는 게 양국 우호증진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더니 ‘다른 태평양 국가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한국과 통가가 교역할 수 있는 품목은 농수산물입니다. 한국이 태평양 국가 전체와 특별 경제협정을 맺는다면 상생(相生)할 것들이 많을 겁니다.”
    
그는 한국의 원조정책 방향에 대해 이런 견해를 내놓았다.
  
“한국으로부터 연간 20만 달러 정도 지원받아요. 일본이나 중국에 비하면 아주 적어요. 물론 한국국제협력기구(KOICA)가 통가 사람들을 선발해 한국에 데려가 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도 있어요. 이게 좀 더 활성화됐으면 해요. 통가는 한국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기를 원합니다. 중국과 일본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가 필요해요. 한국은 우수한 인적 자원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요. 사람과 사람의 교류를 통해 도움을 받기를 원합니다.”
   
현재 한국은 통가 정부 관계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다. 몇 년 전 우리가 통가에 무선통신 안테나를 지원해 준 적이 있는데 현지 작업을 맡았던 한국 업체가 성능이 형편없는 안테나를 설치했다가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하청을 맡은 업체가 이익을 내려고 저가(低價)의 제품을 현지에 공급한 것이다.
     
풀로카 씨는 몇 년 전 한국 어선이 통가 해역에서 불법으로 어업행위를 하다가 문제가 돼 해결해 준 적이 있다. 그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내가 난처해진다”며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최근 들어 태평양 국가들 사이에 급격하게 영향력이 확대된 중국과 기존 강대국(미국,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의 충돌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현재까지는 미국의 영향력이 여전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충돌한다는 느낌은 아직 없어요. 그러나 앞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 소형 항공기 無償 제공하자 뉴질랜드 견제 나서
       
통가 수도 누쿠알로파 중심에는 국왕이 머무르는 궁전이 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주통가 중국대사관이 있다. 남태평양 바다가 시야(視野)에 훤히 들어오는 해변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통가에서 중국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통가에는 중국을 비롯해 일본, 호주, 뉴질랜드 대사관이 설치돼 있다.
   
기자는 투이바카노 수상을 대신해 사미우 바이풀루(Samiu Kuita Vaipulu) 부수상을 인터뷰했다. 수상은 중국 방문 중이었다. 중국은 오는 11월, 태평양 도서국 정상들을 중국 남서부 연안도시 광저우로 초청해 ‘제1회 중국&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중국은 현재 태평양 국가들에 차관, 증여, 현물 등 여러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통가에 무상(無償)으로 소형 여객기(MA-60)를 제공했다. 이 여객기는 중국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항공기인데 2009년부터 지금까지 11차례 사고를 일으켰다.
     
뉴질랜드 정부는 중국 항공기의 안전성 문제를 이유로, 통가에 제공해 오던 수백만 달러 규모의 관광진흥 원조금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통가 외국인 관광객 중 다수(多數)를 차지하는 뉴질랜드 국민의 안전을 고려한 조치라고 했다. 방장완 소장은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뉴질랜드 정부의 입장을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일본의 경우, 국제협력기구(자이카・JICA) 대원의 활동이 돋보였다. 현지에서 만난 미사토 마쓰모토 씨는 통가 주민을 대상으로 일본어를 가르쳤다. 그녀는 자이카 대원용 사택에 거주하며 봉사활동을 펼쳐 왔다. 일본 시즈오카에서 지방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자이카 대원으로 지원해 통가에 왔다고 했다. 그녀의 말이다.
    
“월급은 따로 없고 숙소와 일부 생활비와 활동비를 보조받아요. 2년 주기로 자이카 대원은 교체됩니다. 가족 단위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아요.”
    
자이카는 농업, 산림, 수산, 문화 등 분야별로 전문 대원을 파견하고 있었다. 대원들은 자신들의 활동현황과 현지사정을 기록한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본부에 제출한다고 한다. 이들이 보내는 보고서를 통해 자이카 본부는 원조정책 방향을 지속적으로 수정한다. 일본 자이카의 태평양 폴리네시아 본부는 사모아에 있다.
  
국민계몽이 미래를 위한 시급한 과제
     
통가는 1800년대 후반에 헌법을 제정할 정도로 서양 체제에 일찍 눈을 떴다. 그러나 이후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변화는 없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통가인들은 문명이 발달한 서양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잘사는 나라도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현재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이다.
      
현재 통가 위정자(爲政者)들은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사미우 바이풀루 부수상의 말대로, 개혁과 발전에는 국민의 동참이 필요하다. 국민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통가의 운명이 달려 있다.
 
글=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8.01.07

조회 : 5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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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백승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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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신국가들인데 (2018-01-07)   

    도대체 저런 망한 나라들만 올라오는 이유가 뭐냐 평창 망했잖아.

  • ㅇㅇㅇ (2018-01-07)   

    뉴질랜드 쓰레기국가 보슬질로 망한 나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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