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울시립승화원 벽제리묘지에서 실미도 부대 공작원 4명의 유해 발굴을 위한 개토제가 진행되는 가운데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국방부가 실미도 부대원 유해 발굴을 시작했다. 실미도 부대는 1968년 1월, 북한이 김신조 등 무장공비 31명을 남파해 청와대를 기습하고,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소위 '1·21 사태'를 계기로 같은 해 4월, 창설된 북파 공작 부대인 이른바 '684부대'를 가리킨다.
해당 부대원들은 경기도 부천군 용유면 무의리(현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동) 실미도에서 '북한 침투 후 김일성 제거'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살인적인 훈련을 받았다. 훈련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미도 부대는 그렇게 고된 훈련을 받았지만, 막상 실전에 투입되지는 못했다. '미국의 대외 군사 개입 최소화'와 '아시아에 대한 방어 공약 사실상 철회' 등을 밝힌 소위 '닉슨 독트린(1969년 7월)' 탓에 대북 공세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대북 보복용 부대 창설을 주도한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경질되면서 북파 작전이 취소됐다.
이후 실미도 부대는 방치됐다. 가혹한 훈련, 열악한 처우, 장기간 대기에 따른 불만이 부대원들 사이에서 고조됐다. 그에 따라 실미도 부대원들은 1971년 8월 23일, 교관·기간병 18명을 사살하고 인천으로 탈주했다. 이어서 시내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로 접근하던 도중 서울시 영등포구 대방동(현 동작구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수류탄으로 자폭했다. 당시 현장에서 생존한 실미도 부대원 4명에게는 군사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됐다. 공군은 1972년 3월 10일, 사형수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사형을 집행하고, 시신을 암매장했다.
이와 관련, 뒤늦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부대원 불법 모집 ▲사형이 집행된 공작원 시신 암매장 ▲대법원 상고 포기 회유 등 실미도 사건의 인권 침해 사실에 대해 국가의 사과와 유해 발굴 등을 권고(2022년)한 바 있다.
이에 국방부는 15일, 사형 당한 실미도 부대원 4명의 시신이 매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경기도 고양시 벽제리 묘지에서 개토제를 개최했다. 개토제는 묘지 조성을 위해 땅을 처음 팔 때 지내는 제사다.
이와 관련,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사과문을 통해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여러분께서 겪으신 그간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인들의 명예 회복과 유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는 취지로 사과했다.
글=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