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리뷰] 스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우리네 인생

권지영 《쁘띠프랑스의 오후》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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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쁘띠프랑스의 오후》. 사진=알라딘

작은 프랑스라는 의미인 쁘띠 프랑스(La Petite France)’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운하를 중심으로 교역이 활발하여 주변으로 16세기의 아담한 건물들이 늘어서 특유의 운치를 만들어 낸다.

 

한 교양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요청받은 한 청년이 인생을 지하철에 빗대어 표현해 화제가 됐었다. 취업 준비생이었던 그는 기차를 타고 뒤를 돌아보면 굽이 굽이져 있는데, 타고 갈 때는 직진이라고밖에 생각 안 하잖아요라며 저도 반듯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면 굽이져 있고 그게 인생인 거 같죠라고 말했다. 인생을 아우르는 문장이다. 해당 프로그램이 방영된 지 오래인데도 그가 남긴 명언은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이유다.

 

우리네 삶은 운하를 중심으로 줄지어 서 있는 건물처럼 연속적이면서도 울퉁불퉁하다. 권지영 시인은 쁘띠프랑스의 오후시집을 통해 다양한 삶의 결을 조망하고 있다.

 

 

<1> 식물에 빗댄 우리의 이야기

1부는 우리의 인생을 식물에 빗대어 담아냈다. 여기서 인생은 때로는 떫은 감에, 별 볼 일 없는 잡초에, 고고한 목련과 동급이 된다.

 

어쩌면 생은 잡다한 수사보다 간결하고 명확한 소통이 필요한 명사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1부에서는 명사, 그중에서도 식물에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낯설기만 하고 깊게 생각하기 두려웠던 세상살이를 꺼내 보인다.

 

 

불현듯 찾아온 택배상자

 

조심스레 열어본다

 

남도의 풍요로운 햇살 만끽하며

감나무가 잉태한 주홍빛 알들

아직 어미나무의 체온이 남아있는 듯

상기된 채 고운 빛깔 선명하다

 

함안의 性根에 적응하며

모진 시간에도 무너지지 않고 단단히 뿌리내려

담백하고 강한 흙의 기운 받은 너

 

부잣집 맏며느리같이 통통하니 복스러운

간혹 상처 입어도 내색하지 않는

무던한 모습의 시누이 닮은 감

 

불현듯 내게 가을이 다시 찾아왔다

 

외로운 타향살이, 팍팍한 살림살이에

떫은 감 맛 같던 지난 시간들

때론 달콤한 맛도 있음을 알려준 감!

 

<

찰진 감의 질감처럼

달콤한 감의 식감처럼

야무지고 달콤하게 살라는 이야기 전해온다

 

불현듯 찾아온 택배상자전문.

 

 

어미나무의 체온이 남아있는 감은 고운 빛깔이 선명하다. 독립 전 부모의 품에서 안락하게 살아온 우리들이 그렇다. 이내 감은 가을이라는 계절 변화를 통해 감나무, 사람으로 치면 모체(母體)에서 떨어져 독립한다. 비로소 홀로 선 감은 때로는 떫게, 때로는 달게 사람들의 미각을 일깨운다.

 

시인은 ‘<’ 안에 자신의 생각을 오롯하게 담는다. 불현듯 찾아온 택배상자에서는 찰진 감의 식감처럼/달콤한 감의 식감처럼/야무지고 달콤하게 살라는 이야기 전해온다라고 말한다. 시인이 괄호를 빌려 전하고자 하는 속마음이다.

 

그런가하면 시인은 시를 통해 조금은 모질고 자극적인 세상에 맞설 것을 다짐하기도 한다.

 

은은한 것이 좋아

 

나른했던 오후,

유자에 소다를 발라 오염된 시간을 지우고

청정한 물로 깨끗이 씻어 얇게 저몄다

 

새콤한 세상에 달콤한 꿈을 켜켜이 넣어

유리병 가득 쟁여두었다

 

유자청 본연의 시간들

어느새 짙게 쌓여갔다

 

새콤달콤하니 톡 쏘는

진하고 분명했던 너의 맛이

내게 확신을 주었다

 

지금 이 시간, 유자수국차를 마시며

적당히 순한 향

방향제처럼 아찔하지 않은

잔잔한 맛에 끌린다

 

조금은 모질고 자극적인 세상!

적당히 느껴지는 너의 무게가

어둡지 않은 연노랑 빛깔이

내 몸을 더 유순하게 걸러낸다

 

분명하게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투명하고 은은해진 당신이 좋다

 

은은한 것이 좋아전문.

 

 

이 시에서는 본연의 모습인 유자와 소다로 세척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유순하게 변한 유자수국차가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오염된 시간을 보내는 등 힘든 과거를 겪은 유자는 조금은 모질고 자극적인 세상속에서 유순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접목시켜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데, 첫 번째로는 삶에 풍화된 우리의 인생으로 읽을 수 있겠고 두 번째로는 본연의 삶을 잃어버리고 은은해진유자수국차를 씁쓸하게 바라보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두 해석 모두 삶의 연속성을 포함하여 해석하고 있으며, 작가는 두 가지 시선을 통해 독자에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쁘띠 프랑스를 속삭이고 있다.

 

 

<1>와는 다르게, <2>가족인생에 대해 다룬다. 주로 명사에 가족(아버지, 어머니 등)을 빗대는 형식이다.

 

광명동굴

 

폭염도 식혀줄 만한 냉기 있다

추위에 얼어붙은 몸 다독여줄 인정 있다

그런데 가슴 안은 온통 패이고 상처투성이

빈 껍데기

버티고 선 것이 기적이다

 

한평생 지혜로 다굽어진 허리, 져온 길

구불구불 저린 가슴 보인다

기억 곳곳에 분노의 불 밝히며

일제시대 눈물 어린 역사를 얘기하고

산업화시대 가슴 아린 기억을 되뇌인다

 

평생 치열하게 살아온 나날

열정으로 응축된 땀도 회한에 젖은 눈물도 삭히고

검붉은 피와 무른 살 다 내어주고도

강건하게 버티다 굽어진 허리,

헤아릴 수 없는 깊이

무엇으로 메우리

 

어두운 동굴 안,

이제, 후손들 응원의 불빛 밝혀본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를

역사의 증인 힘내시길

오래도록 버티시길……

 

어머니!

 

광명동굴전문.

 

시인은 앞선 시인 보일러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열기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과 대비되게 광명동굴에서는 어머니를 냉기에 빗대고 있다. 어머니는 한평생 열기를 식히고, 후손들(자손들)을 위해 노력한다. 마지막 문단에 어머니!’라고 짧게 외치는 시인의 말을 통해 시인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시인은 광명동굴에서 시작하여 현무암시를 통해 어머니를 회상한다. 이후 시인 자신도 자식을 두게 되어 악몽이거나 추억이거나, 베이비 시터, 운명 같은 이야기등의 이야기로 한 가족의 아이였던 시인이 어느새 성장하여 아이를 낳고 육아하는 모습을 그린다.

 

 

<3>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그린다. 3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시가 바로 쁘띠 프랑스의 오후.

 

쁘띠 프랑스의 오후

 

무대 위에 오른 삐에로

가늘고 긴 줄에 머리, , 다리가 묶여있다

아니 인생 전체가 묶여있다

긴 줄은 숙명이다

늘 버겁지만 자신을 믿는다

 

태어날 때부터 같이 나왓던 줄

삐에로는 긴 줄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

넘어질 듯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긴 줄이 신호를 보내는 대로

우스꽝스럽게 때론 넉살 좋게 행동하는

 

삐에로가 웃는다

우리에게 손짓하며

슬프면서 기쁜 눈으로

괴로우면서 즐거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웃음은 슬픔의 일종인가 보다

<

자식 앞에서, 가족 앞에서 난 삐 에 로

내게 매인 가족이라는 줄

운명 앞에서 웃고 있는 마리오네트

버겁게 이어온 삶의 질긴 끈을

마음대로 할 수도 끊을 수도 없는 생

 

마리오네트에게 진한 연민을 느끼는

쁘띠프랑스의 오후

 

쁘띠프랑스의 오후전문.

 

이 시의 제목인 쁘띠 프랑스는 단어 그대로 작은 프랑스(petit France)로 해석할 수도 있고, 가평에 위치한 테마파크로도 해석 가능하다. 어떻게 해석하든, 좁게 느껴지는 공간을 우리의 삶에 빗대어 표현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시에 나온 은 탯줄과 가족간의 연(), 넓은 의미로는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적 관계를 상징한다. 삐에로가 줄에 묶여 움직이듯, 우리는 일평생 여러 줄에 묶여 살아간다. 시인이 마리오네트를 언급했듯, 우리는 사회에서 여러 보이지 않는 줄에 묶여 삶의 질긴 끈을 마음대로 할 수도 끊을 수도 없는 생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마침내 <4>에 다다르자 욜로의 밤, 하수구 뚫기, 편견에 대하여등의 시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들을 짚어나간다. 그러면서도 가장 마지막에 시집에 실린 시인 자투리의 마지막 문단에는 길 끝에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면……이라는 말을 적어놓아 변화의 희망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잔잔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돋보기로 비춰보듯 조명하는 시집, 쁘띠프랑스의 오후는 각종 판매 사이트에서 12000원에 구매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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