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72주기 유격백마부대 위령제
“유격백마부대 생존 용사들이 오늘 이 자리에 백발(白髮)을 휘날리며 앉아있습니다. 이들은 세월과 더불어 한 분 한 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물려준 애국심과 반공, 자유의 정신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제현(94) 예비역 소장이 부축을 받으며 휠체어에서 일어났다. 그는 지난 24일 유격백마부대전우회(회장 최성룡)가 연 위령제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방부 보도 자료에 등장한 그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이날 행사는 유격백마부대 전사자 552명을 위해 열렸다. 유격백마부대는 6·25전쟁 당시 평안북도 정주군 오산학교 출신의 학생과 청장년들이 조직한 치안대(治安隊)다. 위령제는 서울 서초구 양재시민의 숲 유격백마부대 충혼탑에서 진행됐다. 국가보훈부와 대한민국재향군인회, 6‧25참전유공자회, 평안북도 도민회, 평안북도 정주군민회가 후원했다. 평안북도중앙도민회 관계자들과 양종광 평안북도지사 등이 참석했다.
김진이 서울남부보훈지청장도 참석해 박민식 보훈부장관이 보낸 축사를 대독(代讀)했다. 김 지청장은 “국가 수호를 위해 헌신하신 모든 유격백마부대 용사님들께 무한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바친다”고 전했다.
이어 양종광 평안북도지사는 “여기에 잠든 유격백마부대 552명의 희생으로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이 있다”며 “청춘을 조국에 바친 숭고한 애국 정신에 경의(敬意)를 표한다”고 밝혔다.
최성룡 유격백마부대전우회장은 이날 “선열들이 목숨으로 지켜낸 서해”라며 “NLL(북방한계선)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북파(北派) 공작 부대 ‘켈로부대’에서 선박대장으로 활약했던 최원모씨의 아들이다.
1950년 12월 22일 조직된 유격백마부대는 6·25 전쟁 당시 국군 소속이 아니었다. 따라서 군번도, 계급도 없다.
앞서 《월간조선》은 2007년 7월호를 통해 KLO(켈로) 부대 소속 유격백마부대에 대한 국방부 문건을 보도했다. 1971년 9월 16일자 ‘국방부 장관의 전 유격백마부대에 관한 사실 증명’이다.
이에 따르면 유격백마부대의 병력은 2600여명, 전사자는 552명이다. 부대원들의 출신지는 대부분 평안북도 정주였다. 주요 활동지는 서해의 여러 섬이다. 북한군 3000여명을 사살하는 등의 혁혁한 공을 세웠다. 중공군 600여명을 포로로 잡았으며 2800명의 청년과 1만5000명의 동포를 구출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적(북한)의 철도, 터널, 교량과 같은 보급로를 파괴하고 중요 시설을 기습했다. 소속은 미8군(주한미군)이었다가 1952년 미국 극동사령부 정보처로 이관, 1954년 국군으로 정식 편입됐다.
한편 유격백마부대전우회에 따르면 552명의 전사자를 기리는 행사는 1952년부터 백령도에서 진행해왔다. 이후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1992년 현재의 자리에 충혼탑을 세웠다.
글=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