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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우리 가까이, 잡지 이야기 <6>] 한인(韓人) 디아스포라 열정 담은 《한솔문학》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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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선DB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北美)와 호주지역 문인들의 작품을 담은 계간 문예지 한솔문학(대표 손용상) 9호가 최근 간행되었다. ‘타향과 본향(本鄕)을 잇는 징검다리 문예지를 지향하는 잡지다. 한인(韓人) 디아스포라의 문학을 담고 있어 소중하다. 한국이든 해외이든 모국어로 쓴 작품은 모두 한국문학이 아닌가.

 

기획특집으로 소설가 김훈의 <화장>(2004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을 다시 싣고, 월간조선 20022월호에 실렸던 오효진 기자의 김훈 인터뷰를 재수록 했다. 인터뷰 중에 이 문장에 눈길이 갔다.

 

<“소설가 김훈이라고 하지 마세요. 이제 겨우 두 편 썼는데 소설가는 무슨 소설갑니까, 쪽팔리게.”

그는 봐달라는 시늉으로 손을 비볐다. 그러면서도 그는 장편소설 얘기를 열심히 했다.

지금 거의 다 썼어요. 50살 먹은 썩은 인간이 불륜을 저지르는 얘기지요.”

 

-그럼 세속적으로 가치가 없는 인간의 연애군요.

 

연애를 가장 아름다운 거라고 한다면, 그 아름다운 것도 더러운 세상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할려구 그래요. 요새 젊은 작가들이 연애를 괴기하게 만들어가지고 현실과 관련 없이 허공에 띄워 놓고 있거든요.

그런데 인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생로병사거든요. 내가 그 틀 안에다 연애를 집어넣어서 연애라는 것도 생로병사의 일환이고, 생로병사의 과정으로서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죠. 스토리로서는 재미가 없겠지요.”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떻게 문학이 인간을 구원합니까. 아니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을 구원해? 난 문학이 구원한 인간은 한 놈도 본 적이 없어! 하하. 문학이 무슨 지순(至純)하고 지고(至高)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 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도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하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월간조선 2002년 2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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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시코너

 

초대시코너에는 국내 작가인 김경련 김승희 문창길 유자효 이우영(시조) 최서림 최정란 시인의 시를, 교포 작가인 강민경 김경숙 양안나 오정방 이용해 이창범 전희진 차신재 홍마가 황미광의 시를 실었다. 오늘의 디아스포라를 느낄 수 있는 몇몇 작품을 소개한다.

 

햇빛 드는 길가

작은 나뭇잎 사이 응달에서

숨죽이고 살금살금 다가와

나와

눈 맞추는 눈

이슬에도 눈이 있다

 

밤새도록 내려

갈증 달래고

아침 햇살에 멱 감고

싱싱하고 탱탱한 몸 가꿨다고

첫선 보이려 나온 새색시처럼

젖은 동공이 참 맑고 곱다

 

반짝반짝, 소곤소곤

저 선량한 눈망울에

반했는가? 눈이 부셨던가,

멱 감겨주던 햇살마저도

이슬 품 안에 들어

정신을 잃고 까무러치는

그게 다 이슬의 눈이다

 

 - 강민경의 시 <이슬의 눈> 전문

(강민경 시인은 1947년 전북 정읍 출생이다. 1980년 미국으로 이민 와 하와이에서 북가주 Fremont로 이주했다. 하와이시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


점심상에 놓인

국수 대접에 열무꽃이 피었다

 

강에서 멱감고 나온 바람의 젖은 머리칼

오렌지 나뭇가지에 걸어 두고

국물 한술 맛을 본다

 

나비와 꿀벌 품었던 풋것으로 담근 김치

이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 맛을,

저 먼 곳에 계신 어머니가

항아리 속에 한 줌 풀어 놓고 가셨나 보다

 

평상 위 둥근 상 앞에 빙 둘러 앉아

더위 날리던 웃음소리

사탕 깨물 듯 하얀 열무 씹던 소리

그릇 안으로 흘러내린다

 

고향 하늘이 감돌다 떠난 뒤

혼자 먹는 소면 위로 고요가 자란다

내일은 김치가 시어지기 전에 진국인 친구 불러

고향 이야기나 나눠야겠다

 

바람이 맴맴 매비소리를 낸다

 

 - 양안나의 시 <열무국수> 전문

(시인이자 수필가인 양안나 씨는 미주한국일보 여성의 창필진으로 활약하고 있고, <시와 정신>에서 시로 등단했다.)


***


새벽엔 수탉이 오김없이 꼬끼오 울어대고

아침엔 온갖 새들이 지지배배 노래하고

낮에는 장끼들이 후루룩 홰를 치면서 날아가고

밤에는 귀뚜리들의 합창에 두 귀가 마냥 즐거운

그런 한적한 산촌에서

몇 날, 몇 밤이라도 지내고 싶다

 

새벽엔 뽀오얀 안개 헤치며 오솔길을 걷고

아침엔 뜨락에 심긴 화초들에 물을 주고

낮에는 등나무 아래에서 좋은 시를 소리 내 읽고

밤에는 평상에 누워 쏟아지는 별들을 헬 수 있는

그런 고요한 산촌에서

몇 날, 몇 밤이라도 보내고 싶다

 

 - 오정방의 시 <그런 산촌에서> 전문

(수필가이며 시인인 오정방 씨는 1987년 미국 오레곤으로 이민을 갔다. 오레곤문인협회 창립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초대소설희곡’ 코너

 

초대소설희곡코너에서는 국내 작가 이경자 이은집 이홍사 황충상의 작품이, 교포 작가 곽설리 김길수 박종진 백해철 정종진 한영국의 작품이 게재되었다인상적인 몇몇 작품을 소개한다.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제 나라에서 쫓겨나 타향을 떠돌며 힘겨운 망명 생활을 했을 메르세데스 소사가 이렇게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는 고백의 노래를 진심으로 정성껏 부르다니나는 메르세데스 소사의 넉넉하고 푸근한 모습을 떠올리며 노래에 깊이 빠져들었다.

 

 - 곽설리의 소설 <살아있음에 감사를> 중에서

(소설가이자 시인은 곽설리 씨는 시문학, 문학나무로 등단했다. 재미시인협회, 미주한국소설가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

 

현직 미합중국 고등법원 판사를 대상으로 인질극을 벌이는 한국계 입양아 출신의 싸이몬- 김철수- 스미스. 그는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려져 미국으로 입양을 오게 됩니다. 선천적 소아마비로 인해 제대로 걷지 못하는 싸이몬은 처음에는 미국 양부모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으며 문제없이 자랍니다. 하지만 행복도 잠깐, 어린 시절 이층계단에서 내려오는 걸음 연습을 하다가 중심을 잃게 되고 그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양엄마 매리가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하반신 마비가 되자 평안했던 가정에 먹구름이 드리우게 됩니다.

 

- 김길수의 소설 <텍사스 아리랑> 중에서

(희곡작가이자 언론인인 김길수 씨는 달라스 문학회 회원이다. 2010년 미주 문학 희곡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

 

기남이 멕시코를 통하여 미국으로 밀입국하던 때는 35세 되던 해였다. 한국 나이로 35세였지, 실제 미국 나이로는 33세밖에 안 된 에너지 꽉 찬 젊은이였었다. 시카고 시내 클락 길을 따라 혼자 터덜터덜 걸어가는 젊은 놈이 가여웠던지, 김 씨의 트럭이 기남 옆에 바짝 다가붙어 섰다. 그 트럭 옆면에는 워터 타우어 건축이란 사인과 전화번호가 쓰여 있었다.

한국 사람이세요?”

 

- 정종진의 소설 <혼자 가는 길> 중에서

(소설가 정종진은 미주중앙일보 공모 소설에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시카고 문인회장을 역임했다. 시카고 문화회관 문창교실 인스트럭터로 활동 중이다.)

 

◇‘수필’ 코너

 

수필코너에는 국내 작가로 이승하 오정순 조송원 차윤옥의 작품이, 교포 작가로 김재동, 모니카 류, 민유자, 박인애, 이유식, 장석재, 정동순, 정 세실리아, 정형민, 함영옥의 작품이 실렸다. 인상적인 몇몇 작품을 소개한다.

 

당시 내가 만난 MR. ZIMMEMAN 교수는 조국의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의 보좌역을 역임했다는 분이었다. 90세인 이 노교수는 필라델피아 주립대학의 음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며 그의 부인 캐서린은 그의 제자였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스페인에서 공부를 할 때 안익태 선생을 모시며 조국의 애국가를 작곡함에 일조를 했다는 말에 감사의 인사말을 올렸다. 노교수의 말은 현재 자기의 부인은 50대 중반으로서 학부와 마스터 코스에서 자기의 애제자였다는 말도 전해 주었다. 안익태 선생은 스페인에 정착하기 전 미국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에서 첼로 연주자였고 그 후 헝가리에서도 활동을 했었다.

 

- 이유식의 수필 <바이킹 유람선에서 만난 ZIMMEMAN 교수> 중에서

(시인이며 수필가인 이유식 씨는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고 있다. 캐나다한국문인협회 1~3대 회장, 캐나다한인총연합회 5대 회장을 역임했다.)

 

***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시드니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7시간 달려 자 카란다 축제가 열린다는 그라프톤 Grafton에 왔다. 그라프톤이 자랑하는 자카란다 거리를 걸었다. 거대한 자카란다 나무 2,000여 그루가 활짝 펴, 땅도 하늘도 온통 보라 세상이다.

 

자카란다 축제는 이만 삼천의 인구가 살고 있는 이 조그마한 도시의 최대 행사이다. 이 도시엔 신호등도 없고 경찰차도 안 보인다. 말을 타고 천천히 지나가는 남녀 경찰이 보인다. 거리를 오가는 여자들은 대부분 보라색 모자를 쓰고 다닌다. 오후엔 각종 행사가 시계탑을 중심으로 이 곳 저곳에서 벌어진다. 그 옛날 우리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를 보는 듯했다.

 

구경 인파를 벗어나 조용한 강가로 발길을 옮겨 강이 내려다보이는 아담한 공원에 왔다. 아름답고 조그마한 공원에 바람이 솔솔 불어 자카란다 보라 꽃잎이 내 머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 공원 중앙에서 내 키보다 조금 더 큰 탑을 만났다. 아니, 우리나라 전쟁에서……. 한국전 참전 용사 추모탑이다.


탑에 각인된 이름을 하나, 하나 읽었다. 17명이다. 이 아름다운 그라프 톤에서 살았던 20살 안팎의 젊은이들이 멀고 먼 이국땅 코리아에서 전사했다니……. 이들이 전사하지 않고 돌아왔다면 지금쯤 90세 초반의 할아버지들이 되셨을 것이다. 6·25 한국전쟁에 호주는 17,164명의 군인들이 참전하여 339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그중 이곳 그라프톤에서 살았던 17명의 청년들이 코리아의 어느 전선에서 눈을 감았다. 그들은 입대 전까지 살았던 천국 같은 그라프톤의 퍼플 세상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자카란다의 꽃말은 '화사한 행복'이라고 하는데,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화사한 보라색 꽃잎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우리 고국이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도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들이 전사하던 때에 태어난 나는, 여기에서 다시금 그들의 이름을 가슴으로 읽는다. 고국의 DMZ 철책선 등이 하나, 둘 밝아 오는 듯하다.


 - 장석재의 수필 〈DMZ 발전병중에서

(호주 시드니에 거주 중인 수필가 장석재 씨는 1997년에 호주로 이민을 갔다. 2012년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부문 대상을 탔다.)


***


A4는 미국에서는 특수한 종이다. 가끔 한국의 공모전에 원고를 보낼 일이 있었는데 A4용지에 인쇄해서 동봉하라는 것이다. A4용지를 사러 문구점을 서너 군데 다녔지만, 그 무렵엔 A4 종이를 구하지 못했다. 결국, 큰 종이를 사다 A4 크기로 잘라 사용했다. 지금은 A4용지를 몇 묶음 구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쓰고 있다.

 

나에게 A4는 정장 셔츠를 입은 초임 시절이다. 그때는 기안용지라는 문서 형식이 있고, 책상에는 전결. 미결, 완결이란 서류철이 있었다. ‘결재 판에 담아서 문 앞에서 노크 세번, 문을 열고 들어가 상사 앞에서 90도로 절하고 결재판을 펴서 서류의 머리를 돌려 두 손으로 공손하게 올리고, 몇 걸음 물러나 기다린다. 질문이 있으면 대답하고, 나올 때는 뒷걸음으로 세 걸음 물러선 다음 다시 90도로 절하고 절도있게 뒤돌아 나온다.’ 선임이 가르쳐 준 내용이다.

 

정동순의 수필 〈A4와 레터 사이즈〉중에서

(수필가 정동순 씨는 현재 미국 시애틀에 거주하고 있다. 2012년 미주중앙신인문학상 수필 대상을 차지했다.)

 

***


부부는 닮아간다는 통계학적 증거도 있지만 두 사람이 같을 수는 없다. 아니, 둘이 똑같거나 한쪽이 너무 자제하면 발전의 기회를 놓치고 말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사연으로 떨어져 있어야 할 때도 있지만, 부부는 되도록 함께 있으며 서로의 특성에 배려하고 장단점을 잘 융화시켜 나가면 삶의 폭이 넓어질 것 같다요즈음 각종 SNS 상에 부부는 동시에 큰 소리를 지르며 화내지 말며 절대로 단념하지 말라는 등의 "부부 십계명"이 돌아다닌다. 상대방에게 의지할 때도 있지만, 부부는 공동 효과(co-efficient)를 발휘할 많은 기회를 얻는 둘이 하나가 되는 한 쌍이다. 부부의 날을 보내며 모든 부부가 함께 있음을 감사히 생각하고 상대방을 아 껴주고 노력하면 좋겠다. 그러면 같이 걸어가야 하는 굴곡 많은 긴 인생의 여정이 좀 더 수월해지고 아름다운 가정과 나아가서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것 같다.

 

- 정문자의 수필 <함께 있음에> 중에서

(수필가 정문자 씨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CWRU) 의과대학 교수 겸 명예 아카데미 회원이다.

 

***


래리는 내가 출석하는 교회의 장로님이시며 변호사이시고 내 성경 공 부 반의 선생님이기도 하다. 또한 조이는 미국 병원의 수석 간호사이며 래리의 부인이다. 이 두 분은 항상 교회의 중심에서 열심으로 봉사하며 본인들의 삶에서도 본받을 만큼 열심히 그리고 깨끗하게 사신다.

 

이들 부부의 자녀 중 한 명인 수전이 휴스톤에서 살고 있다. 사위는 원 자력 엔지니어이며 자녀를 5세 아들과 3세 딸 하나를 두고 있는 다복한 크리스천 가정이다. 그런데 얼마 전 래리의 딸 부부가 한국에서 아들 하 나를 입양을 하였다. 래리의 큰딸 수전이 결혼 전 남편과 약속하기를 자녀를 두 명 낳은 후 한국에서 아이 한 명을 입양을 하자고 하였단다.

 

몇 번이나 수전 부부는 입양 절차상 한국을 다녀왔다. 입양을 위해 수전은 한국 교회에서 봉사하며 한국 음식과 한국말 그리고 한국 풍습을 배우며 준비를 하더니 더디어 2살짜리 남자아이 하나를 입양하게 되었다. 아들을 입양 후 지금도 한국 교회에 출석하며 입양한 아들을 정서적으로 외롭지 않게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2살이라고는 하나 내가 보기에 는 4살은 족히 되어 보였다. 첫째로 2살이라고는 하는데 체구가 수전의 5살짜리 아들과 비슷하고 2살치고는 말도 상당히 잘하는 편이었다.

 

미국에 살면서 자녀들을 입양한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내 직장 상사였던 데이빗도 2명이나 입양을 하였고 성가대의 마리아도 첫째 아들이 입양한 아들이란다. 젊은 수전 부부가 대견하고 존경스러우면서도 무언가 부끄러운 마음도 숨길 수는 없었다. 그런데 입양한 아들 마이클이 날마다 울음을 그치질 않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수전 부부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한번은 이들 부부가 콜로라도에 있는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자동차로 이동을 하는데 출발할 때부터 마이클이 울기 시작한 것이 콜로라도에 도착할 때까지 울음을 끊이질 않더라는 것이다. 장장 750여 마일의 장거리이며 10시간을 넘게 차로 운전을 해야 하는 긴 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내 친 아이라도 그렇게 오랜 시간 울어대면 신경이 곤두설 것 같은데 수전 부부는 어떻게 참았을까? 이들 부부뿐만 아니라 그 집 두 아이들도 시샘을 하고 투정을 부릴 만도 한데, 워낙 아이들에게 입양아에 대한 설명을 오래전부터 해온 터라 3살짜리 어린 딸조차 불평 없이 마이클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때가 벌써 입양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때인데도 아직도 적응을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한다. 래리 부부도 종종 마이클을 보기 위해 휴스턴을 다녀오곤 했었다. 그러던 중 문자 메시지로 수전 아들을 위해 기도를 부탁한다는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수전의 큰아들이 머리를 크게 다쳐 입원하였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입양아인 마이클과 수전의 큰아들이 집 안에서 놀다가 수전의 아들이 2층 창문에서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쳤다는데 지금 중테라는 것이다. 래리 부부도 급히 휴스톤으로 내려가고 교회는 모두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공연히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 한 사람 내게 눈총을 주거나 불평을 하지 않는데도 내가 한국인이고 일면식도 없는 수전의 입양아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쓸데없는 공통분모를 찾은 것인지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수전의 큰아들은 사고 후유증으로 언어가 불편하고 기억력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걸음이 불편해지는 등 어려운 일이 많다는 소식을 들을 적마다 공연히 가슴 조이며 교회에서 래리 내외를 만날 적마다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언짢은 기색 한번 없이 평온한 얼굴로 입양 손주의 소식도 전하고 여전히 교회일에 열심이었다. 그들이 왜 하필 한국 아이를 입양하기로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젊은 부부의 신앙과 마음은 가상하고 존경스러워도 곁에서 보는 한국인인 나는 참 착잡한 마음이었다.

 

그들이 마이클을 입양한지 어느덧 2년이 지난 지금 큰아들도 많이 회복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인지 능력과 언어가 어눌하다고 한다. 마이클은 어느 정도 새 가정에 적응하여 입양 초기 때와 같은 어려움은 없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 곧 수전의 큰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하여야 할 텐데 어떻게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 된다.

 

 - 함영옥의 수필 <래리와 조이> 전문

(수필가 함영옥 씨는 텍사스대 - 팬 아메리칸(UTPA)에서 수학했다. 미주문학 수필로 등단했다.)

입력 : 20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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