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하원(국민의회)은 7월 23일 TV 수신료 폐지법안을 통과시켰다. 찬성은 170표, 반대 57표였다. 여당인 르네상스와 보수 야당인 공화당(RN),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N)이 수신료 폐지에 찬성한 반면, 제1야당인 좌파연합 뉘프는 반대했다.

종래 프랑스에서는 TV를 설치한 2300만여 가구를 대상으로 가구당 연간 138유로(약 18만원)를 징수해왔다. 지난 대선 기간 중 보수 및 극우 후보들은 물론 중도성향인 마크롱 후보(현 대통령)까지도 수신료 폐지를 주장했었다.

마크롱 정부가 이 수신료 폐지법안을 내놓은 이유는 인터넷 및 스마트폰의 보급, 넷플릭스 등 OTT서비스 및 유튜브의 확산 등으로 TV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TV 수상기 보유자를 대상으로 한 현재의 수신료 징수 방식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인식 때문이다. 브리엘 아탈 공공회계담당 장관은 “스마트폰 시대에 텔레비전 보유를 기준으로 시청료를 부과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라고 지적했다. 

극우 야당인 국민연합(RN)이 수신료 폐지에 찬성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극우세력은 수신료에 의해 운영되는 공영방송은 ‘완전한 좌파’이며, 수신료 폐지를 통해 자신들의 ‘적(敵)’인 공영방송을 ‘중립화’시켜야 한다고 공언해왔다. 국민연합의 마리 르펜 대표와 또 다른 극우정당인 르콩케트의 에릭 제무르는 지난 대선 당시 수신료 폐지는 물론 공영방송의 민영화까지 주장했었다. 이번 하원에서의 논의 과정에서도 국민연합은 수신료 폐지를 넘어 공영방송인 프랑스 텔레비지옹과 라디오 프랑스의 민영화를 요구했다. 

반면에 좌파연합인 뉘프 소속 이나키 에샤니즈 의원(사회당)은 “수신료 폐지는 잘못된 발상”이라면서 “공영방송의 재정 안정성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신료는 폐지된다고 해서 공영방송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바로 끊기는 것은 아니다. 수신료 폐지법안은 수신료를 폐지하는 대신, 2025년까지 부가가치세에서 충당한 37억 유로(약 4조 9500억원)를 프랑스 텔레비지옹, 라디오 프랑스, 아르테, TV5 몽드, 프랑스 메디아 몽드 등 공영방송에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공영방송은 앞으로 3년 안에 다른 자금 조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마크롱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수신료 폐지를 주장하면서도 그 대신 공영방송 예산을 국가 예산에 병합해 해마다 의회에서 투표를 통해 결정하자고 제안했던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수신료 폐지에 나선 것은 프랑스만이 아니다. 전 세계 공영방송의 효시이자 모범으로 알려진 영국 BBC는 지난 1월 가구당 연간 159파운드(약 25만원)인 수신료를 2년간 동결하고 2027년 말에는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일본 NHK도 수신료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 때문에 고심 중이다. NHK는 지난 수년 사이에 수신료를 두 차례 인하했으며, 내년에도 10%를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구조 조정 계획도 내놓았다. NHK 수신료는 계좌이체나 신용카드 결제 시에는 지상파 월(月) 1225엔(약 1만1800원), 위성방송 2170엔(약 2만1000원)이다. 

일본 유명 할인점 ‘돈키호테’가 작년 12월 OTT 서비스는 수신할 수 있지만 지상파 TV는 나오지 않는 텔레비전(‘42V형 안드로이드TV 기능 탑재 풀HD 튜너리스 스마트TV’)을 내놓아 히트를 치기도 했다. 2개월여 만에 1억 엔 이상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KBS가 오랫동안 수신료 인상을 요구해 왔으며,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여 KBS 수신료를 월 2500원에서 3800원으로 인상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MBC 박성제 사장은 2020년 5월 “수신료는 특정 방송사에만 주는 기금이 아니라 공영방송 전체 사업의 경비 충당을 위한 것인 만큼, MBC가 수신료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MBC노동조합(제3노조. MBC노조)은 7월 24일 프랑스의 TV 수신료 폐지 뉴스에 관한 성명을 내고 “안타깝게도 한국의 공영방송은 매우 퇴행적인 수신료의 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MBC노조는 “그 사이 글로벌화된 우리 민영 드라마 예능 콘텐츠 시장은 공영방송이 만들기 힘든 수준으로 그 품질과 수준이 향상되었다”면서 “이런 구조라면 언제까지 공영방송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MBC노조는 “공영방송 스스로 시장적 경쟁체제의 도입을 통하여 콘텐츠의 질을 높이고 자체적으로 경영이 가능하도록 정부와 국민이 회초리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라면서 “그렇지 않다면 철밥통 언론노조는 드라마 콘텐츠 경쟁력에는 손을 놓은 채로 편파뉴스에만 골몰하는 지금의 추태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