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우크라이나는 단순한 이웃 국가가 아니다. 우리(러시아)와 분리할 수 없는 역사, 문화, 정신의 일부이다” “독립국가로서의 우크라이나는 레닌과 볼셰비키가 만든 것이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일부였던 것을 분리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는 푸틴만의 생각이 아니라 러시아인들이 은연중에 혹은 노골적으로 품고 있는 생각이다. 

러시아 모두 10세기 키에프공국(公國)에 뿌리를 두고 있다. 키에프는 지금 우크라이나의 수도이다. 때문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키에프공국의 정통은 자신들이 잇고 있다고 주장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일부였다고 주장하지만,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모스크바를 포함한 당시 키에프 루스 공국(키에프공국)의 동쪽 지방은 민족도, 언어도 달랐고, 16세기가 되어서야 핀어(핀란드어) 대신 슬라브어가 사용됐을 정도였다”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의 역사학자 오레스트 수브텔니는 “우크라이나 역사 최대의 주제는 ‘나라가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라가 없었다고 해서 민족마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의 저자인 구로카와 유지로 전 우크라이나주재 일본대사는 “우크라이나는 ‘나라가 없다’는 큰 결점과 언어와 문화 및 관습이 매우 유사한 대국인 러시아를 이웃으로 두고 있었으면서도 정체성(正體性)을 잃지 않았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인들조차 우크라이나인들이 자신들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 민족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민속학자인 코스토마로프는 1861년 러시아제국의 수도인 페테르부르크에서 쓴 《두 러시아 민족》이라는 논문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민족성의 차이를 이렇게 묘사했다.  

- 우크라이나인은 개인주의 경향이 강하고, 러시아인은 집단주의를 중요시한다.

- 우크라이나인은 최소한의 통제 질서를 가진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능력이 있는 반면, 러시아인은 한 사상으로 통합된 확고한 집단적 체제를 선호한다.

- 우크라이나인은 연방제를 선호하는 반면, 러시아인은 절대주의나 왕정을 선호한다.

코스토마로프는 “러시아적 요소는 거대하고 창조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전체주의적 정신, 통일적 의식, 실용적 이성의 지배를 받는다. 러시아인들은 모든 고난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행동에 나서기에 가장 좋은 시간과 환경을 선택한다”면서 “반면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러한 특성을 결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정신은 사회적 제도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이끌거나, 모든 방향으로 민족적 노력을 분산시키는 소용돌이 같은 기도를 하게 한다”고 말했다.

무려 161년 전에 나온 분석인데도,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걸어온 길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러시아의 경우 옐친 집권 시절이 지금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권위주의적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KGB 출신인 푸틴 집권 이후에는 비판적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암살당하거나 투옥되는 독재국가로 회귀했다. 반면에 우크라이나는 2004년 오렌지혁명과 2013년 마이단혁명이라는 두 번의 시민혁명을 일으켰고, 한 명을 제외하면 한 번도 대통령 재선을 허용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것은 국가적 통합이나 국력의 결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마이너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인들보다 먼저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를 형성할 자질을 갖추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국제전략가 로버트 케이건은 “푸틴이 나토의 확대에 반대한 진짜 이유는 이 동맹기구의 군사력이 동쪽으로 진출할까봐 우려했다기보다 민주정체 국가들이 러시아의 국경에 훨씬 근접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허승철 전 주우크라이나 대사는 “오랜 독립투쟁의 결과가 소련의 붕괴로 갑자기 독립을 얻은 우크라이나인들은 한동안 그 독립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모르고 허송세월했지만, 2014년 크림반도 병합을 계기로 민족정체성이 강해지기 시작했다”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크라이나인들은 비로소 진정한 네이션빌딩(nation building)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압도적 군사력 앞에서 전멸을 각오하고 싸우는가 하면, 예정보다 앞당겨 결혼식을 한 신혼부부가 함께 국토방위군에 입대하고, 평범한 시민이 러시아군 기갑부대의 행렬을 가로막는 등 결사항전에 나서고 있다. 161년 전 코스토마로프가 말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자유를 중시하는 기질이 조국을 지키려는 열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압제 아래 있던 우크라이나의 민족시인 파울로 추빈스키는 ‘우크라이나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시(詩)를 지었다.

“우크라이나의 영광과 자유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형제들이여, 운명은 그대들에게 미소짓고 있도다.

우리의 적들은 아침 태양의 이슬처럼 사라지리라,

그리고 우리는 형제의 땅에 자유롭게 살게 되리라.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우리의 몸과 영혼을 희생하자,

그리고 우리는 카자크의 피를 이어받은 형제임을 보여주리라.”

이 시는 1918년 우크라이나가 잠시 독립했을 때 국가(國歌)가 되었고, 1991년 독립 후 우크라이나공화국의 국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