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은 6월 17일 통일외교안보 관련 '원로'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6월 17일 청와대로 ‘원로’들을 초청해 오찬을 베풀고 최근 남북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개성공단으로 북한군을 전진배치하고, ‘서울 불바다’ 위협을 하는 상황에서 그래도 대통령이 민심을 수렴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나 싶어 반가웠다. 하지만 그 자리에 참석한 인사들의 면면을 확인하는 순간 한숨부터 나왔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박지원 전 국회의원 등 …. 한결같이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을 거치면서 이른바 ‘햇볕정책’의 수립과 추진에 참여했거나, ‘햇볕정책 전도사’로 활동해 온 인사들이었다. ‘원로’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어려운 편향적인 인사들이었다. 그런 식으로 자기 편 식구들만을 모아놓고 무슨 의견을 구한다는 것인지….
결국 이 자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나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는데, 오늘 이렇게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현실이 다가오고 이후에 전개되는 현실을 보니 굉장히 실망스럽다”고 푸념하고, 소위 ‘원로’라는 사람들이 “대통령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덕담이나 하는 자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초록은 동색(同色)’이라고,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국제정치-남북관계의 원로, 전문가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조언을 구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인사 중에는 박정희 정권 시절 청와대 국제정치특보, 전두환 정권 시절 대통령비서실장과 주유엔대사, 주미대사를 역임한 김경원 박사,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역대 정권에 외교‧안보‧대북정책을 자문(諮問)해 온 R교수 등도 참석했다. 김경원 박사나 R교수는 누가 봐도 ‘보수’인사였다.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에 나서는 대통령을 앞에 두고 많은 참석자들이 덕담을 했다. 그런데 R 교수가 뜻밖의 얘기를 했다.
“대통령님, 북한에 가시기 전에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R교수는 황장엽을 만나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김정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황장엽 전 비서입니다. 황장엽 전 비서를 만나 김정일이 어떤 사람이고,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듣는다면, 회담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해 그 자리에 있던 정부측 인사들은 펄쩍 뛰었다. “지금 김정일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황장엽 전 비서인데, 행여 그를 만나고 평양에 갔다는 사실이 김정일에게 알려지면 회담은 파탄난다”며 질겁을 했다. R 교수는 “비밀리에 만나고 가면 된다”고 조언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날 원로들과의 만남은 김대중 대통령이 6‧15 남북정상회담을 기획, 추진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기 나름의 청사진을 갖고 남북정상회담에 임했지만, 그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타는 데에는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남북관계의 실질적 발전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일껏 조언을 했어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하나 평가할 점은 있다. 그것은 보수성향의 원로들까지도 불러서 그들의 지혜를 구하려 했다는 점, 적어도 그런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기는 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3년 전 대통령 취임사에서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철저히 국민들을 편 가르면서 ‘자기들만의 리그’에서만 환호받는 ‘반쪽 대통령’을 자임했다. 그리고 북한이 ‘서울 불바다’ 협박을 하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자기편 사람들만을 만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반쪽 대통령'이 위기시에 전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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