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NewsRoom Exclusive
  1. 정치

조국 집안이 자랑하던 항일운동가 종조부는 남로당 간부였나?

황태순TV, "조국 종조부가 남로당 노동부장 지냈다는 제보 받아"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종조부가 남로당 간부였다고 보도한 황태순TV.
조국 일가족이 독립운동을 했다고 주장해 온 조국 법무부 장관의 종조부가 해방 이후 남로당 간부를 지냈다는 주장이 나왔다. 황태순TV는 8월 27일 방송을 통해  "조국 법무부장관의 종조부(조부의 형제) 조맹규는 해방 이후 남로당 노동부장“이라는 독자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정치평론가 황태순씨와 함께 이 뉴스를 진행한 김연광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조국이 항일운동, 3.1운동 얘기만 했지, 할아버지 조맹규라는 사람이 대단한 지위에 있었던 빨갱이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전 편집장은 ”지역의 독자가 정말 몰라서 안 하는 것이냐면서 제보해 주셨다“고 밝혔다.
황태순씨는 "지금 저희들이 언급한 조맹규가 조국 후보자의 종조부가 맞는지는 저희가 제적 등본을 안 봤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다“면서도 좌파 인사들을 주로 소개하는 《노동자신문》사이트에 나와 있는 조맹규의 약력을 소개했다. 여기에 나와 있는 조맹규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

[조맹규(曺孟奎, 생몰년 미상)] 

(경남 적색농조운동 참가자, 민전 중앙위원) 경남 창원군 웅동면에서 결성된 웅천(熊川)적색농민조합에 참여했다. 1932년 4월 일본경찰에 검거되었다가 1933년 2월 예심이 종결되어 공판에 회부되었다. 그 후 진해 동양제사공장, 부산 조선방직회사에서 여성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해 노력했다. 1934년 10월 진해경찰서에 검거되어 1935년 1월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45년 11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상임위원회 문화부장을 맡았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전평 대표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남조선노동당 노동부장을 지냈다.
 
 

본문이미지
《노동자신문》사이트에 나와 있는 조맹규의 약력. 조국 후보자의 종조부와 활동지역, 한자이름이 같다.

황태순씨는 “조국 수석이 사노맹 활동을 하고도 전향이라든가 일체의 반성이 없었던 것은 이런 집안 내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김 전 편집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경축사에서) 항일한 사람들을 왜 빨갱이라고 하느냐고 했던 것은 이 얘기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한편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어머니인 박정숙 웅동학원 이사장은 지난 8월 23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웅동학원은 일제강점기 시절 지역 독립운동에 앞장서 온 가족사가 깃들어 있습니다. 34년 전 학교를 맡아서 지켜달라는 지역 분들의 부탁으로 재정 상태가 어려운 학교를 인수하고 운영하기 위하여 사비를 털어 넣었던 제 남편의 선의가 이렇게 왜곡되다니, 억장이 무너집니다”라고 주장했었다. 
조국 후보자의 종조부인 조맹규씨는 경남 웅천지역의 3.1운동에 참여했고, 계광학교(웅동중학교의 전신)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30년 8월에는 동료 교사들과 함께 항일격문을 뿌린 일로 구속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0년 9월 28일자 《중외일보》는  "경남 창원군 웅동면 사립 계광학교에서는 지난 2일 웅천의 제2차 격문사건으로 동교의 교원 조맹규 조원갑 양씨가 검거되고 지난 23일에 웅동면 통원리 격문사건으로 조정호 조명진 양씨가 또 검거를 당하여 가르칠 선생이 전부 없어져서 부득이 임시휴교를 하게 되었다 한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 속에 나오는 조국 후보자의 종조부 조맹규씨의 한자 이름도 《노동자신문》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은 '曺孟奎'이다.
활동지역과 이름이 같은 것으로 보아 조국 후보자의 종조부로 알려진 조맹규씨와 《노동자신문》에 소개되어 있는 조맹규는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황태순씨는 방송에서 “이 조맹규가, 조국 수석이 항일애국자라고 그토록 자랑하는, 그 조맹규와 일치하는 지는 - 99.99% 일치한다고 보지만-, 청문위원들이 자료제출을 요구해 확인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 전 편집장은 "이 사이트에는 조맹규의 생몰년이 '미상'으로 나오는데, 아마도 월북했기 때문에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청문회를 통해 밝혀져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조국 후보자의 고모할머니인 조맹임씨도 1928년 ‘웅동여자청년회’를 조직하고 문맹퇴치운동을 벌였으며,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으로 허리뼈가 부러져 평생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고 한다. 이 역시 《노동자신문》에 소개되어 있는 조맹규가 일제 하에서 '여성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대목과 연결지을 수 있다.
2017년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취임할 당시 웅동학원의 지방세 체납 논란이 빚어지자 조국 후보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웅동은 선산이 있는 고향으로 종조부께서 웅동학교 교사이기도 했고, 집안 어르신들이 힘을 보태 만든 민족사학이 폐교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요청에 따라 재단을 인수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었다. 조국 후보자의 일가는 웅동학원 관련 의혹이 제기 될때마다 재단의 열악한 재정상황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신 조상의 얼이 서려 있는 학교"라는 점을 부각시키곤 했다.
지난 한 달여 동안 조국 후보자가 ‘죽창가’ ‘매국’ ‘친일파’ 등의 극단적 표현을 쓰며 항일선동에 앞장서자 한 뉴스매체는 “조국 연일 ‘극일’ SNS, 항일운동 고초 겪은 집안 사연이…”라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하의 고위공직자나 정치인의 조상으로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알고보니 공산주의 활동을 했던 것으로 드러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손혜원 의원(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다가 탈당)의 아버지 손용우씨는 과거 6차례 독립운동유공자 신청을 했다가 탈락했으나 문재인 정부 들어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손용우씨는 △1945년12월 조선공산당 공산청년동맹 서울지부 가입(1989년 가평경찰서장 사실조회 회보서) △1947년말 입북, 1948년 남파돼 지하공작, 6⋅25 당시 북한 중앙정치국과 재접선 활동 후 남한에 잔류했다는 증언(1990년 성북경찰서장 사실조회 회보서) △1949년4월14일 보안법 위반 구류 2일, 6⋅25 당시 ‘조선노동당 가평군 설악면 당가일리 세포책’으로 활동했다는 증언(1986년8월 치안본부) 등이 있음에도 독립운동유공자로 선정되어 논란을 빚었다.

입력 : 2019.08.28

조회 : 13185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사진

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 등이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제가 읽은 책들을 소개하면서 세상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