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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이 비행기를 처음 만들었다구?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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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한국전쟁 기간중 국산비행기 제작 성공 우리 비행기를 처음으로 만든 것은 공군이 아닌 해군이라는 재미있는 기록이 발견됐다. 해군본부가 밝힌 해군일화집에 따르면 1951년 8월 해군이 단독으로 국산비행기 '서해호'를 제작했다고 한다. 우리 국산비행기가 어떤 산고를 겪어 태어났고 어떤 벽에 부딪혀 좌절했는가 하는 기록이 해군일화집 제1장 "초창기편"에 나온다. 참고로 전문을 소개한다. 국산비행기 제작의 효시 1951년 8월 우리 해군이 단독으로 국산비행기 '서해호'를 제작 완성한 것은 조경연 중위와 배종민, 김종건 문관을 비롯하여 그밖에 17명의 공창 기술진의 피땀어린 노고의 결정이었다. 1946년 9월에 우리 해군은 처음으로 300톤급의 쾌속정 '충무공정'을 만들어 세인을 놀라게 한바 있거니와 그후 해군은 또다시 국산 비행기를 만들어 공창 기술진의 기량과 기개를 드높였다. 우리 나라에서 비행기를 만든 것은 이것이 처음으로서 그대의 애로와 난관이란 참으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비행기 제작에 주동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어디까지나 조경연(趙敬衍) 중위였다. 조 중위는 일제부터 항공기 연구에 몰두해 온 청년으로서 그는 모형비행기를 만들기를 몹시 좋아하였다. 그가 해군에 입대 PF기관장으로 있을 무렵이었다. 목포지구에 미군 비행기 1대가 추락되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조 중위는 미군이 버려둔 추락 비행기의 엔진과 그 밖의 부속품을 사모아 어떻게 하든지 비행기를 만들어 놓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에 불타고 있었다. 그후 그는 목포에서 주어온 엔진을 말끔히 수리하는 한편 여러 방면으로부터 자재를 구득하기에 온갖 열성을 다하였다. 그리하여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마침내 조 중위를 비롯하여 배종민, 김종건 등 10여명은 수상비행정 1대를 제작, 시험비행에 성공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함대사령부 편제에는 건공반이 새로 생기게 되었고 건공반이 창설되자 대원들은 더욱 분발하여 해군 603정으로 강원도 설악산까지 가서 추락된 비행기를 수색 엔진을 구해오는 등 비행기 제작에 헌신적인 노력을 다하였다. 그리하여 그 후 이들은 1954년 6월에 제2서해호를 비롯하여 쌍발수상기 제해호(制海號) 및 육상비행기 등 도합 4대의 비행기를 제작 완성하였으며 또한 이것이 계기가 되어 동 건공반은 1957년 9월에 함대 항공대로서의 명예로운 발전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 동 항공대는 미 군사원조 협정에서 끝내 항공기 도입의 통과를 보지 못한 채 해체되고 말았다. 이리하여 오늘날 동 항공대는 비록 해체되고 말았지만 이들이 남긴 국산 항공기는 제작의 혁혁한 업적은 우리 해군의 발전사상에 길이 길이 남을 것이다.*

입력 : 200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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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msi@chosun.com 기자클럽 「Soldier’s Story」는 국내 최초로 軍人들의 이야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軍隊版 「피플」지면입니다. 「Soldier’s Story」에서는 한국戰과 월남戰을 치룬 老兵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후손들에게 전하는 전쟁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또한 전후방에서 묵묵하게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軍人들의 哀歡과 話題 등도 발굴해 기사로 담아낼 예정입니다. 기자클럽 「Soldier’s Story」에 제보할 내용이 있으시면 이메일(gomsichosun.com)로 연락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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