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나 연예인 등 유명인이 자살했을 때, 언론에서는 ‘자살’이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극단적 선택’ 하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한다. 그냥 ‘별세’ ‘사망’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얼마 전 탤런트 전미선씨나 정두언 전 의원의 죽음 때에도 그랬다. ‘왜 자살한 사람을 자살했다고 보도하지 않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이유는 기자협회에서 마련한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 대신 ‘사망’,‘숨지다’등의 표현을 사용합니다.
2. 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습니다.
3. 자살과 관련된 사진이나 동영상은 모방자살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유의해서 사용합니다.
4. 자살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지 말고, 자살로 발생하는 부정적인 결과와 자살예방 정보를 제공합니다.
5.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에는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합니다.
※ 유명인 자살보도를 할 때 이 기준은 더욱 엄격하게 준수해야 합니다.
자살을 미화하는 등의 보도를 통해 자살을 조장하게 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언론이 관련 보도를 자제하자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3.0’가운데 1,2,3,5항은 비교적 잘 지켜지는 것 같다. 특히 자살을 했을 경우 ‘극단적 선택 가능성’ 하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4항이다. 물론 자살 자체를 미화하거나 합리화하는 보도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 자살을 하는 순간, 그가 저질렀던 과오는 사라지고 그를 미화하는 보도가 쏟아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 7월16일 자살한 정두언 전 의원의 경우도 그렇다.“‘‘합리적 보수정당’ 만들고 싶다던 ‘비운의 풍운아’” “‘여야 故 정두언 조문 줄이어...’개혁보수‘ 큰 아픔 애도” 하는 식으로 고인을 기리는 듯한 기사가 이어졌다. 노회찬 의원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자(死者) 앞에서 관대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런 보도는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으로 볼 때 적합한 것일까?
오히려 이런 보도야말로 자살을 미화하고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질병이나 생활고, 가정사, 혹은 범죄혐의 등으로 궁지에 몰린 정치인-연예인 등 유명인들이 자기보다 먼저 ‘극단적 선택’을 했던 이들이 언론으로부터 긍정적인 조명만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래. 죽어버리자. 죽으면 내 허물은 모두 잊혀지고 나에 대한 좋은 기억들만 남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식으로 자살한 이들의 생애를 '미화'해 대면서,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 대신‘사망’,‘숨지다’등의 표현을 사용하라”느니, “자살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지 말고 자살로 발생하는 부정적인 결과와 자살예방 정보를 제공하라느니” 하는 건, 모순, 아니 위선 아닐까?
조금 잔인한 얘기지만, 누군가 자살했을 때 그가 어떤 구차한 상황에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그런 상황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의 허물은 없었는지, 특히 그가 범죄혐의를 받다가 목숨을 끊었을 경우에는 그가 받던 혐의가 얼마나 엄중한 것이었고 그가 평소 보여주던 언행과는 얼마나 상반되는 것이었는지를 철저히 추궁하는 보도를 하면 어떨까?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해서 현실에서의 구차함이나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자살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보도의 과정에서, 자살한 사람의 무죄함이 드러난다면, 이 또한 자살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
지금의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은 어떻게 보면 언론의 면피용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자살자에 대한 간접적인 미화 보도까지도 억제하는 ‘자살보도 권고기준 4.0’을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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