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 '이메일'에 담긴 파일엔 어떤 비밀이? : 월간조선

원세훈 전 국장원장의 선거개입 의혹 사건의 주요 변수가 된 파일을 작성하고도 재판에서 위증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 국정원 직원에게 실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전직 국정원 직원 김모(63)씨에게 위증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1일 밝혔다. 또 김씨에게 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도 확정했다.

김씨는 원세훈 전 원장의 선거개입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정원의 조직적인 불법 사이버 여론 조성 활동이 없었고, 이른바 ‘425지논.txt’ 및 ‘ssecurity.txt’ 파일 등을 자신이 작성하지 않았다고 위증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파일에는 국정원 윗선으로부터 하달된 사이버 활동 방향과 심리전단 요원들이 사용한 트위터 계정, 비밀번호 등이 텍스트 형태로 담겨 있었다.

《월간조선》은 이른바 ‘국정원 댓글사건’에 연루돼 공직선거법과 국가정보원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의 1심 판결문(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2014년 9월 11일 선고)을 구해, 해당 내용이 어떤 식으로 적시돼 있는지 살펴봤다. 이 판결문을 보면 문제의 ‘425지논.txt’ ‘ssecurity.txt’ 파일과 관련, 검찰과 재판부가 치열한 법리다툼을 벌였음을 엿볼 수 있다.

국정원 댓글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2013년 10월 10일 김씨의 이메일 계정을 압수수색하던 중, 김씨의 이메일 계정(kim○○○○○○○@naver.com) ‘내게 쓴 메일함’에서 ‘신의일’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발견했다. 여기에 ‘425지논.txt’ ‘ssecurity.txt’ 등 5개의 텍스트 파일이 첨부돼 있었다. ‘425지논.txt’ 파일과 ‘ssecurity.txt’에 담긴 내용을 판결문에서 옮기면 다음과 같다.

<‘425지논.txt’에는 광우병 문제, FTA 문제, 제주해군기지 문제,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 문제 등 다양한 정치적 이슈 또는 대북 이슈에 관한 내용이 날짜별로 정리돼 있었고, ‘ssecurity.txt’ 파일에는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직원들로 보이는 이름의 앞 두 글자와 다수의 트위터 계정, RSS(rich site summary·컨텐츠의 업그레이드가 자주 일어나는 웹사이트에서 업데이트된 정보를 자동적으로 사용자에게 제공하기 위한 서비스) 주소 등이 기재되어 있었는 바….>

검찰은 이 텍스트 파일이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의 트위터 상 사이버 활동을 밝혀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판단,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2014년 3월 17일 제25회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위 이메일 계정을 자신이 사용한 것은 사실이고 다른 사람이 위 이메일 계정을 사용한 적은 없으나, 425지논 파일, 시큐리티 파일 등의 첨부파일을 작성한 기억은 없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판결문의 한 대목. 사진=월간조선

같은 해 6월 2일 열린 제33회 공판기일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측 변호인은 이 파일들에 대해 ‘특별한 의견이 없다’는 취지의 증거의견을 진술했다. 이날 김씨도 앞선 공판기일에서와 마찬가지로 문제의 파일들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내용’이란 취지로 말했다.

이에 대해 1심 판결문은 “김○○의 구체적인 업무 내역을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등 위 각 파일이 김○○에 의하여 작성된 것은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적시했다. 이어지는 내용이다.

<그러나 위 각 파일이 김○○이 관리 사용하는 이메일 계정에서 작성된 이메일 본문 내용이 아니라 이메일에 첨부된 문서임을 고려할 때 위 각 파일을 김○○이 제3자로부터 단순히 전달 받아 자신의 이메일 계정에 저장해두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중략) 김○○이 자기 자신에게 보내려고 직접 작성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부분도 발견되므로, 결국 위 파일은 그 작성자가 누구인지조차 명확히 밝혀졌다고 볼 수 없다.>

판결문은 또 “위 각 파일이 김○○이 작성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 ‘공판준비나 공판기일에서의 그 작성자 또는 진술자의 진술에 의하여 그 성립의 진정함이 증명된 때’에 한하여 증거능력을 부여하도록 정하고 있을 뿐”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위 각 파일은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보지 않을 수 없으므로 결국 위 각 파일은 모두 진술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검찰 측은 ‘425지논.txt’ 파일과 ‘ssecurity.txt’ 파일이 업무 상 작성된 통상문서로서 형사소송법 제315조를 근거로 ‘신용할 만한 정황에 의하여 작성된 문서에 해당하는 경우 당연히 증거능력이 있는 서류’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위 각 파일은) 그 작성자 및 작성 보관 등의 경위가 분명치 아니한 점 ▲설령 위 파일을 김○○이 작성하여 보관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각 파일의 내용이 모두 업무와 관련된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란 점 ▲위 각 파일의 내용이 인터넷 상 사이버 활동에 관련한 내용인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그에 기재된 내용이 통상적이고 반복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이지 않은 점을 들어 “증거능력이 있는 서류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씨 위증 혐의에 관한 심리를 맡은 1심 재판부는 "김씨가 재판에서 위증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 상당한 기간이 지연됐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유죄로 인정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범행의 동기와 경위, 범행 후 정황 등을 종합했을 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 판결은 너무 가볍다"며 위증 혐의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높였다. 결국 대법원도 2심 판단이 옳다며 원심을 확정, 김씨는 형(刑)이 집행돼 수감됐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