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훈-양정철 회동을 촬영한 <더팩트> 영상. 왼쪽은 서훈 국정원장. 사진=<더팩트> 영상 캡처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21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한정식집에서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보기관 최고 책임자가 특정 정당 전략 책임자와 만난 것을 두고, '정치적 중립성' 논란도 일고 있다.
복수의 언론은, 집권당 싱크탱크 수장(首長)과 현직 국정원장이 따로 만난 건 흔치 않은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양정철 원장은 내년에 치러질 민주당 총선 전략을 총괄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훈 원장은 국내·외 정보의 총괄 책임자다. 두 사람은 무려 4시간 동안 함께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원장은 출입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당일 만찬은 독대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적인 지인들이 함께한 모임"이라며 "특별히 민감한 이야기가 오갈 자리도 아니었고 그런 대화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또 "서 원장에겐 모처럼 문자로 귀국 인사를 드렸고, 서 원장이 원래 저도 잘 아는 일행과의 모임을 잡아놨고, 저와도 같이 하자고 해 잡힌 약속"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양정철 원장의 해명에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총선이 1년도 안 남은 민감한 시기, 그것도 대통령의 최측근과 국가 정보기관 총책임자의 회동은 누가봐도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박근혜 정권 국정원장 세 명이 정치 개입 등의 혐의로 구속된 사례를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국정원의 탈(脫)정치화를 여러 차례 강조했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당시 공약으로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업무를 전면 폐기하고 대북한 및 해외 안보 및 테러 국제 범죄를 전담하는 최고의 전문 정보기관인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2017년 6월 1일 서훈 국정원장 임명장 수여식에서도 “국내 정치 정도만큼은 철저하게 금지하는, 그것은 국민께 우리가 여러 번 드렸던 약속이니만큼 꼭 좀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같은 해 11월,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국정원은 국민의 정보기관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국정원이 국내 정치와 절연하고 해외와 대북 정보에만 전념하도록 개혁하겠다”며 “저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이듬해 7월 20일 국정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나는 여러분에게 분명히 약속한다”며 “결코 국정원은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을 확실하게 보장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서훈-양정철 만남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이러한 의지가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27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총선을 1년도 남겨 놓지 않았고, 양 원장이 취임하면서 이목이 집중되는 민감한 시기에 국정원장을 만났다는 건 이유가 어찌됐든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채 교수는 “국정원이 탈정치화하겠다고 약속했는데도 한 당의 싱크탱크 원장을 만났다는 건 현 정부의 약속과도 맞지 않는다”며 “왜 만났는지 소상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야당도 비판적이다. 김정재 자유한국당 원내 대변인은 “국가 안보 위기 상황에서 국정원장이 여당의 ‘총선 도우미’를 자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재 대변인은 “대통령 최측근과 국정원장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총선에서의 정치적 중립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즉각 국회 정보위를 소집해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한다”며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알 수 없지만, 장시간 독대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이 충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