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여행길에 우연찮게 색슨족의 젊은 영웅 위스턴, 도깨비에게 잡혀갔다가 돌아와서 환각 증세를 보이는 소년 에드윈, 그리고 용(龍)을 죽이라는 아더왕의 유지(遺志)를 받든 왕년의 '원탁의 기사' 가웨인경(다분히 돈키호테를 연상케 하는) 등이 동참한다. 
'반지의 제왕'을 연상케 하는 환상적인 모험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서히 역사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진실은 한편으로는 위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추악한 것이었다. 브리튼을 통일하고 브리튼족과 색슨족의 평화를 가져온 아더왕의 치적 뒤에는 배신과 학살이 가득했지만, 그 기억은 봉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기억이 봉인된 것은 아더왕의 마법사 멀린이 사람들의 기억 - 개인들의 소소한 일상의 기억, 사랑의 추억들까지도- 을 지워버리는 입김을 뿜어내는 암룡 캐리그를 잠재웠기 때문이었다. 캐리그가 죽지 않고 입김을 뿜어내는 바람에 사람들은 안개속을 헤메는 것 같은 기억상실 속에서 살아가게 되고, 아더왕 시절의 배신과 학살의 기억도 봉인되게 된 것이었다. 
늙은이 액슬은 실은 왕년에 아더왕의 궁정에서 일하면서 브리튼족과 색슨족의 화해를 위해 일했던 외교관이었다. 그리고 암룡 캐리그를 퇴치하러 다닌다던 늙은 가웨인경의 진짜 임무는 사실은 그 캐리그를 은밀히 보호하는 것이었다.

늙어 죽어가는 암룡 캐리그의 숨통을 끊어버리려는 위스턴에게 가웨인경은 이렇게 말한다.
"저 입김이 끊긴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이 땅 곳곳에서 어떤 기억들이 깨어나겠소! 좋소, 인정하오. 우린 강자든 약자든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을 학살했소. 하느님이 우리에게 미소를 보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전쟁을 없앴소. 부탁하오. 이 땅을 그냥 두고 떠나요. 당신과 내가 기도를 올리는 신은 서로 다르지만, 내가 믿는 신이 그랬듯이 당신이 믿는 신도 분명 이 용에게 축복을 내릴 것이오."
위스턴은 이렇게 반박한다.
"잘못된 일이 사람들에게 그냥 잊힌 채 벌받지 않기를 바라는 신은 어떤 신인가요?"
가웨인경은 호소한다.
"그날 우리가 한 일에 대해 나의 신도 불편한 마음으로 보아왔다는 걸 알고 있소. 하지만 오래된 과거고, 이제는 죽은 뼈들도 기분 좋은 푸른 풀밭 카펫 아래 편히 쉬고 있다오. 젊은 사람들은 그 뼈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부탁하건대 이 땅을 떠나요. 캐리그가 조금만 더 자기 일을 할 수 있게 해 줘요. 한두 계절일 거요, 기껏해야 그 정도 밖에 살지 못해요. 하지만 오래된 상처를 영구히 치유되고 우리에게 영원한 평화가 정착되기에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할 거요. 이 용이 간신히 목숨 줄에 매달려 있는 걸 봐요! 자비를 베풀어 이 땅을 그냥 두고 떠나요. 이 땅이 망각 속에서 쉴 수 있게 해 줘요."
위스턴은 다시 반박한다.
"어리석은 소립니다. 구더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어떻게 오래된 상처들이 나을 수 있겠습니까? 학살과 마법사의 술수 위에 세워진 평화가 영원히 유지될 수 있을까요?"
위스턴은 결국 암룡 캐리그를 죽인다. 그리고 나서 위스턴은 과거 브리튼족의 학살로부터 색슨족을 구해내기 위해 노력하다가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초야에 몸을 숨긴 액슬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이제 대륙에서 색슨족이 몰려와 브리튼섬을 정복하고, 브리튼족을 학살할 것이라고....자기가 암룡 캐리그를 죽인 것은 앞서 브리튼으로 이주해와 브리튼족과 싸우다가 아더왕에게 패배한 후 기억이 봉인되어 브리튼족과 평화롭게 살고 있는 색슨족에게 잊어버린 기억을 되찾게 해 색슨족의 정복전쟁에 앞장세우기 위해서였다고....
소설은 늙은 액슬과 비어트리스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면서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작은 낙원의 섬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이시구로 가즈오의 소설 《파묻힌 거인》은 우리에게 ‘기억’의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강요된 진실, 그 강요된 진실에 기반을 둔 위선적이고 허약한 평화, 그게 과연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진실이고 평화일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파묻힌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새로운 갈등과 전란을 불러온다면? ‘진실’을 드러낸다는 명목 아래, 그 ‘진실 찾기’가 권력자가 자기 입맛에 맞는 세상을 만드는 도구로 전락한다면?
과거의 역사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과 해석을 둘러싸고 홍역을 앓고 있는 요즘, '진실'과 '죄책감'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