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 출범 후 KBS와 MBC의 새 경영진이 언론노조 산하 노조의 동의 아래 추진해 온 ‘적폐청산’ 작업이 잇달아 제동이 걸리고 있다.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은 5월 8일 이른바 적폐청산이라는 명목으로 ‘진실과 미래위원회’ (이하 진미위)를 만들면서 구성원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직원들에게 불리한 새 징계 규정을 신설, 과거 보도 등을 조사한 뒤 징계를 하려 한 혐의로 양승동 KBS 사장(사진)을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KBS 진미위는 지난해 6월부터 기자와 PD 등 15명의 ‘조사역’들을 구성, 이명박-박근혜 정권시절 기자와 PD 들이 보도했던 내용과 활동 등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인 후, 과거 기자들이 작성한 ‘성명서’와 ‘사드배치’, ‘4대강’, ‘세월호’ 보도 등을 이유로 징계조치를 추진해 왔다. KBS 단체 협약에는 회사가 직원들에 대해 새로운 징계규정 등을 만들어 적용할 경우, 근로자 전체의 과반수이상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KBS는 언론노조 산하 KBS본부노조측의 동의만 얻었을 뿐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KBS 공영노동조합(위원장 성창경)은 지난해 7월, 진미위가 방송법 등을 어기고 직원에 대한 무차별 보복을 한다며,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진미위 활동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작년 9월 15일, “KBS가 ‘진미위 운영규정’에 징계규정을 만들면서, 직원들의 과반수 동의 등 소정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진미위에 대해 징계권이 없다고 판결했다. KBS공영노조는 법원의 이 같은 판결을 근거로, 지난해 11월 26일 양승동 KBS사장을 단체 협약 위반 등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고발했다. 이번 고용노동부가 양승동 사장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도 이 판결에 근거한 것이다.

 

KBS 공영노조는 5월 8일 성명을 내고 “이번 노동부의 기소의견 검찰송치는 사실상 KBS 내에 무리한 적폐청산 활동에 대한 법적 심판이 시작이 된 것으로 본다”면서 “이번 결정으로 다른 기관의 적폐청산기구에 대한 불법성 시비도 확산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공중파방송에서 진행되어 온 ‘적폐청산’ 작업이 제동이 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1민사부는 지난 5월 3일 MBC정상화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MBC가 기자를 해고한 사건에 대해서도 해고처분은 무효라고 판결한 바 있다. 이때도 법원은 “MBC가 해당 기자를 조사하는 근거가 된 '정상화위원회 운영규정‘의 출석·답변·자료제출 의무권과 징계요구권은 취업 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한다”면서 “1노조 조합장이 단독으로 사규(社規) 제정에 동의한 사실은 인정되나, 사규 개정 과정에서 1노조 내부의 공식적인 의견 수렴 절차가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 또 2노조나 3노조의 의견을 구하거나 협의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편 KBS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남부지청이 8일 기소 의견으로 KBS한국방송을 검찰에 송치한 이유는 근로기준법 94조1항 ‘규칙의 작성 변경 절차’를 위반했다는 것”이라면서 “일부의 주장처럼 ‘직원들에게 불리한 새 징계 규정을 만들어 조사한 뒤 징계를 하려했다’는 부분은 전혀 노동청에서의 조사 대상이 아니었다”고 알려왔다. KBS는 이와 함께 “‘법원의 판결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형사처벌은 불가피하다’ 는 주장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다. 현재 진미위 가처분 이의신청에 대한 항고가 진행 중으로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주장했다.

 

 

글=배진영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