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27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신임 당 대표에 당선됐다. 합산 득표 6만8713표를 얻어 50.0%라는 견고한 지지율로 '보수의 적통(嫡統)' 제1야당 당권(黨權)을 거머쥐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일반인 여론조사 환산 득표율에서 황 전 총리를 앞지르는 이변을 보이기도 했지만 당심(黨心)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태극기 민심을 등에 업은 김진태 의원이 합산 득표율(21.8%)에서 오 전 시장(22.9%)과 박빙을 이루면서 약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황나땡'(황교안 나오면 땡큐)이 아닌, '황나킬'(황교안 나오면 모든 후보가 킬)과 '어대황'(어차피 대표는 황교안)의 증명이었다.

황교안 신임 대표의 승리에는 특유의 '정면돌파형 리더십'이 한몫했다. 그는 당권 주자로 뛴 선거 기간 동안, 관료 출신답지 않게 좌고우면하는 법 없이 본인에게 제기된 의혹을 타파해나갔다. '병역 문제' '박근혜 프레임' '공안검사 및 강성보수 이미지' 공세에 정면으로 대응했다.

그러고도 반대편의 '꼬리 물기'가 이어지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다 했다"는 식으로 무대응 전법을 썼다. 해명과 반박을 거듭하면서 논란을 키우는 게 아닌, 초지일관의 자세로 잡음이 알아서 잦아들도록 했다. 논란과 비방에 위축되거나 흔들리지 않고, 국민과 당원들에게 '리더로서의 안정감'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그렇다고 황 대표가 당권을 거저 얻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가 44일 전 입당하면서 '황교안 대세론'이 부상하자, 당 안팎에서는 무차별 공세가 이어졌다. "박근혜 정권 탄핵으로 당이 난파될 때는 숨죽여 있다가 이제 와 무주공산(無主空山)을 취하려 한다"는 비난이 잇따랐다. 경쟁 후보는 물론 친박계(親朴系) 일부가 비토를 했고, 유영하 변호사까지 '등 돌린 옥중(獄中)의 박심(朴心)'을 전하며 배박(背朴) 논란을 키웠다.

진보 정당들은 '탄핵 총리' '좀비 정치'라며 지원사격을 했다. 북한 매체들까지 과격한 언사로 거들었다. 몇몇 경쟁 후보들이 미북회담과 날짜가 겹친 당 대표 선거를 보이콧함에 따라 전당대회 흥행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입당 시기에 따른 출마 자격에 대한 시비도 있었다. 특유의 정통보수 이미지는 태극기 민심에 힘입은 김진태 후보에게 밀리는 듯 했고, 참신한 개혁보수 이미지는 오세훈 후보에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박근혜 탄핵의 도화선이 된 소위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 가능성에 대한 입장 표명은 역풍(逆風)을 불러올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장애 요인도 '대세'는 거스르지 못했다. '민생 회복'과 '헌법 수호'라는 가치는 분명했고, "보수통합을 이뤄내 문재인 정부의 폭정(暴政)에 맞서겠다"는 메시지는 확실했다. "동어 반복에 애매모호한 화법을 구사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치명적인 결점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에게는 막강한 무기가 있었다. '차기 유력 대권 후보'라는 타이틀이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 성향 대권 주자' 1위를 차지했고, 보수/진보를 통틀어 1위에 오른 경우도 있었다. 또 진보 진영에서는 이낙연 총리가 '맞수'로 거론되면서 '전현직 총리의 대권 혈전(血戰)'이라는 볼만한 구도도 그려졌다.

오랜 침묵 끝에 청년과의 소통을 주제로 한 책 《황교안의 답》을 펴내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한국당 의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당 대표 선거에) 나간다면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등 남다른 '권력의지'까지 보여줬다. 고건, 반기문 등 역대 관료 출신 대권 주자들이 '2인자의 한계'라는 프레임에 걸려 좌초한 것과 비교하면 그의 '대권론'은 더 돋보였다.

그 대권론을 지탱하는 두 축이 바로 '국정운영 경험'과 '통진당 해산 추진'이었다. 탄핵정국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혼란한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었고,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종북(從北) 세력을 엄단한 사실 등은 부정하기 힘든 그의 공적이었다. 특히 최근 박 전 대통령 탄핵의 부당성 논란이 재점화(再點火)됐고, 통진당 출신 인사들이 재기를 모색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그의 역할론도 재조명됐다. 평가의 좋고 나쁨을 떠나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된다는 것은, '정치 신인'으로서는 이름을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그런 점에서 황 대표에게 당수(黨首) 자리는 정치인으로서 첫 평가를 받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 그는 검사, 장관, 총리 등 임명직만 거쳐온 고위공무원 출신이자 의정(議政) 경험이 전무한 정치 신인이다. 더욱이 비교적 여유가 있는 집권여당도 아닌, 투쟁과 견제를 지속해야 할 제1야당의 대표직을 물려받았다. 여러모로 영광보단 책임이 막중한 이유다.

황 대표에게 앞으로 주어진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정권 교체를 목표로 한 보수 재건, 즉 '계파 통합'과 '총선 승리'다. 수년 간 이어진 친박(親朴)-비박(非朴) 계파 투쟁을 종식시키고, 투명 공천으로 내년 총선에서 현 정부의 실정을 심판해야 한다. 강성 보수당 이미지를 뛰어넘을 '외연 확장 작업'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당의 부흥을 동력으로 삼아야만 차기 대권의 길도 열릴 것이다. 실제 한 한국당 의원은 "그가 앞으로 당에 얼마나 기여하는지에 따라서 대권후보로서의 가치도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다행히 '김병준 비대위'의 무난한 운영으로 당 지지율은 회복 단계로 접어든 상태다. 탄핵과 대선 직후에 비해 어느 정도 안정된 당을 물려받은 만큼, 대표로서의 공과(功過)에 대한 정가(政家)의 냉정한 평가도 뒤따를 것이다.

바야흐로 '황교안 시대'가 개막(開幕)했다. 황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혁신의 깃발을 더욱 높이 올리고, 자유 우파의 대통합을 이뤄내겠다. 정책정당·민생정당·미래정당으로 한국당을 담대하게 바꿔나가겠다"며 "문재인 정권의 폭정에 맞서 국민과 나라를 지키는 치열한 전투를 시작하겠다. 내년 총선 압승과 2022년 정권교체를 향해 승리의 대장정을 출발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행로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