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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북한에서도 베트남 같은 개혁개방정책 가능할까?

베트남에서는 쯔엉찐 등 혁명원로들이 기득권 내려놓고 자진 사퇴....후진들이 '도이모이(개혁)' 추진할 수 있는 길 열어줘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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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개혁개방의 길을 연 쯔엉찐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열리는 트럼프-김정은 제2차 미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정은이 이번 기회에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을 보고 배우고, 미북 수교 후 미국과 한국, 일본의 자본이 북한으로 들어가면 북한의 급속한 경제발전이 가능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2월 23일 “미국이 여러 장소 중 베트남을 낙점한 것은 김 위원장에게 베트남처럼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면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북한판 도이모이’를 기대하는 이들은 베트남이 개혁개방인 ‘도이모이’를 처음 시작한 것은 1986년이지만, 본격적인 경제발전이 이루어진 것은 1991년 미국이 베트남에 대한 경제제재를 완화하고 1995년 베트남과 국교정상화를 한 이후부터라는 점을 주목한다. 2000년 이후 베트남은 연 7% 이상의 경제성장율을 자랑하고 있다. 1960~70년대 한국을 연상케 하는 성적이다. 골드만삭스는 향후 20여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을 할 나라라고 꼽은 바 있다.
전 세계적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얼마나 미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경제발전의 관건이다. 제2차세계대전 후 서유럽국가들과 일본이 1950~1960년대에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이 수출을 중심으로 급격한 성장이 가능했던 것도,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미국이 관대하게 자국 시장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이전에 각국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체제정비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서독과 이탈리아, 일본은 군국주의-파시즘과 결별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용했다. 한국은 5.16 이후 체제를 정비했다. 베트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도이모이로 가는 과정에서 국가-당 수뇌부의 자기희생적 결단이 있었다.
 
도이모이(Doi Moi)는 글자 그대로 ‘쇄신’이라는 뜻이다. ‘도이’는 ‘바꾼다’, ‘모이’는 ‘새로운’이라는 뜻이다.
1975년 공산화 이후 베트남 공산당은 전쟁 때문에 뒤로 미루었던 사회주의화를 서둘렀다. 1976년 채택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농업부문에서의 집단농장화, 상공업 부문에서의 국유화를 요체로 하고 있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과거 쌀 수출국이던 나라가 쌀 수입국으로 전락했고 경제 전반이 망가졌다. 이에 당황한 공산당은 1979년 신경제정책이라는 이름의 타협책을 내놓았다. 급진적인 통제경제체제를 완화하고 다소간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하지만 한번 망가진 경제는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공산당 수뇌부는 철저한 사회주의경제체제 도입을 주장하는 보수파와 개혁을 요구하는 개혁파로 나뉘어 다투었다.
이때 1세대 공산당 원로들이 나섰다. 프랑스와의 독립투쟁 시기부터 호치민과 함께 활동했고, 호치민 사후(死後) 베트남을 이끌어온 당 서기장 레주언은 개혁파의 후견인으로 변신했다.

1986년 7월 레주언이 사망한 후 쯔엉찐이 당서기장이 됐다. 쯔엉찐은 마오쩌둥의 ‘장정(長征)’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만큼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다는 얘기다. 그와 함께 지도부를 형성한 사람이 총리 팜반동, 정치국원 레둑토였다. 모두 호치민과 함께 프랑스, 일본, 미국과 맞서 싸워온 1세대 혁명원로들이었다. 레둑토는 1973년 파리평화협정의 베트남측 대표로 유명하다.
이들은 모두 통일은 이루었지만 가난한 조국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총리 팜반동은 이미 1981년 미국 학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 우리는 미국을 이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여러 문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식량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개발도상국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전쟁을 실행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한 나라를 운영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쯔엉찐은 레주언 하에서 2인자 위치에 있으면서 경제난으로 고통 받는 인민들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현장을 찾아 ‘장마당’과 같은 시장시스템의 장점을 알아보았고, 남베트남 출신 경제브레인을 자문역으로 기용했다. 때문에 그가 집권하자 개혁개방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그런데 쯔엉찐이 서기장이 된 지 불과 5개월 후인 1986년 제6차 전당대회에서 일대 이변이 일어났다. 쯔엉찐을 비롯한 팜반동, 레둑토 등 혁명원로들이 동시에 은퇴해 버린 것이다. 서기장 쯔엉찐이 혁명원로세대에게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함께 물러나 다음 세대에게 길을 열어주자고 설득했다고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인책사임’이었지만, 그들은 얼마든지 1세대 혁명원로로서의 공적과 기득권을 내세워 저항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깨끗이 퇴진하면서 다음 세대에게 기회를 주는 길을 택했다.
이들의 뒤를 이은 것은 개혁파인 응우옌반린이었다. 응우옌반린 역시 젊어서부터 공산혁명운동에 투신한 투사였지만, 원로들보다는 10년 정도 아래인 젊은 지도층이었다. 상대적으로 과거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들은 과감하게 도이모이정책을 추진했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가능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응우옌반린 등장 후 10년 동안의 개혁이 있었기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 후 급속한 경제발전도 가능했다.

지금 ‘북한판 도이모이’를 말하는 이들은 바로 이 대목을 놓치고 있다. 쯔엉찐의 시장친화적 개혁이나 미국과의 관계 개선 등은 이야기하지만, 쯔엉찐을 비롯한 당시 국가지도부가 스스로 동반퇴진하는 자기희생적 모습을 보여준 것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김정은에게서 쯔엉찐과 같은 자기희생을 기대할 수 있을까?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김씨 3대 왕조의 자기혁신이 가능할까? 김정일 때도 낮은 수준에서 시장경제 도입 시도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조금만 왕조체제를 위협할 것 같으면, 김정일은 어김없이 기득권수호를 위해 경제와 인민을 희생시키는 길을 택했다. 그것이 베트남과 북한이 다른 점이다.

입력 : 2019.02.26

조회 : 6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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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 등이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제가 읽은 책들을 소개하면서 세상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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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19-02-27)

    아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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