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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미국이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계속할 지도 모른다는 헛된 생각을 떨쳐버리라!"

피터 자이한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브레튼우즈체제'의 최대 수혜자 한국의 살 길은?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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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러시아는 과거 소련의 영토였던 발틱 3국과 우크라이나, 벨로루시를 다시 병탄(倂呑)하고 폴란드를 침공한다. 전통적으로 안보강박증에 시달려왔던 러시아는 저출산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징집자원이 줄어들기 전에 장차 줄어든 인구로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최단 국경선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전화(戰火)가 동유럽을 휩쓰는 가운데, 북유럽의 강소국(强小國)들인 스칸디나비아 제국(諸國)과 영국이 힘겹게 러시아에 맞선다.

수니 이슬람의 맹주(盟主)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 이슬람의 맹주 이란이 중동(中東)의 패권(覇權)을 놓고 전쟁에 들어간다. 이란군이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정복하고,. 페르시아만이 폐쇄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상대방의 유전, 정유시설, 석유선적항들에 미사일을 날린다. 세계 유가(油價)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세계 무역, 아니 세계 경제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동아시아에서는 얼마 남지 않은 석유자원과 이를 가져오기 위한 해상운송로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이 충돌한다.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해 온 남중국해 인근의 동남아 국가들은 누구 편에 설 것인지를 강요당한다.

미국의 국제전략가 피터 자이한의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원제; The Absent Superpower)》에 나오는 이야기다. 세계 주요국간의 무력 충돌은 제2차셰계대전 이후 지난 70여 년 동안 없었던 일이다.

그런데 지구촌이 이런 극도의 무질서 속으로 빠져드는 상황에서 ‘경찰관’이 안 보인다. 미국이 팔짱만 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하는 일이라고는 러시아에게 정복당한 폴란드의 저항군들에게 스팅어 미사일을 제공해 주는 정도다. 지구 어느 구석에 있는지도 모르는 신생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5만여 미군의 피를 흘렸고, 대량살상무기 제조 의혹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해 이라크를 침공했던 미국이!

그 이유는 셰일혁명 때문이다. 2007년부터 시작된 셰일혁명 덕분에 미국은 자국(自國)에서 생산되는 셰일석유와 셰일천연가스만으로 필요한 석유자원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됐다. 셰일혁명 덕분에 미국의 제조업도 다시 살아난다. 온갖 현대 산업에 투입재(기초재료)가 되는 석유‧천연가스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미국 제조업의 원가(原價) 경쟁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해외로 나갔던 제조업들이 유턴하면서 일자리가 넘쳐나고, 미국 경제는 유례없는 활황(活況)을 누리게 된다. 유럽과 중동에서의 전쟁으로 유가가 배럴 당 수백 달러로 치솟아도, 미국인들은 40달러대의 저유가를 즐긴다.

사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지탱해 온 것은 ‘브레튼우즈 체제’였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미국 해군이 세계의 해상운송로(석유와 상품을 나르는)를 보호해 주고, 막대한 무역적자를 감수해가면서 미국 시장을 세계에 관대하게 개방해 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이는 물론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냉전 해체 이후에도 미국이 마지못해 그 체제를 유지해 온 것은 석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셰일혁명으로 에너지독립국가가 되면서 미국은 미련 없이 국제문제에 대한 관심을 끄게 된 것이다.

세계가 혼돈 속에서 허우적거릴수록 ‘나 홀로 번영’을 누리는 미국의 달러는 더욱 힘이 세진다. 미국의 군사력 역시 세계 최강을 유지한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꼭 필요한 지역에만 조심스럽게 - 그것도 믿을만한 동맹국을 앞세워서- 개입한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던 세계는 한숨 돌린 후, 더욱 막강해진 유일 초(超)강대국 미국의 모습을 보게 된다.

흥미롭기는 하지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고? 하지만 피터 자이한의 얘기 중 일부는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트럼프의 등장과 미국의 독자행보, 러시아의 크리미아반도 병합과 은밀한 동부 우크라이나 점령,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충돌하고 있는 예멘전쟁 등이 그것이다. 자이한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오늘날의 국제정세, 주요국들의 역량과 한계 등도 분석해 보여준다.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서 자유와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 말한 ‘브레튼우즈 체제’ 덕분이었다. 그러나 피터 자이한은 사실은 그 체제가 비정상적인 것이었고, 이제 세계는 다시 정상적인 체제, 즉 무질서의 체제로 돌아가고 있다고 단언한다.

‘미국 없는 세계’에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야속하게도 자이한은 그에 대한 대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그는 수출길이 막히고, 전기가 끊기고, 차(車)가 못 다니게 되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누구 뒤에 줄을 서야 할지 몰라 절절매는 한국의 모습을 얼핏 비춘다.

피터 자이한은 한국을 포함해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에게 악몽 같은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그려보이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대못을 박는다.

“미국이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계속할 지도 모른다는 헛된 생각을 떨쳐버리도록 하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미국은 분명히 세계에서 손을 떼게 된다. 그리고 한국을 비롯해 모두가 새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라도 ‘세계가 조선(한국)을 중심으로 돌아 간다’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는 이 나라 위정자(爲政者)들에게 꼭 읽히고 싶은 책이다. ◉

입력 : 2019.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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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 등이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제가 읽은 책들을 소개하면서 세상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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