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희상 국회의장. 사진=조선DB
문재인 정부 들어 과거사 문제 등으로 한일(韓日)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문희상 국회의장이 미국 ‘블룸버그’ 통신과 인터뷰한 내용이 파장을 낳고 있다. 문 의장은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한일 갈등에 대해 “한 마디면 된다.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 또는 곧 퇴위하는 (아키히토) 일왕이 (사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매체는 지난 8일 동영상 기사를 통해 문 의장의 해당 발언을 아래와 같이 공개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왕, 나는 왕이 했으면 좋겠어요. 왕. 그분은 얼마 이제 퇴임하신다고 그러니까. 그분은 전범의 주범의 아드님 아니세요? 그러니까 그런 양반이 할머니 한 번 손잡고 ‘정말 잘못했어요’ 그 말 한 마디가 다 퍼지는 거예요.”
일본 정부는 이날 외무성을 통해 항의했고, 다음날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가 우리 외교부에 재차 항의했다. 일본 조간들은 10일 ‘그의 발언이 양국 관계 악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일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틀 뒤에는 아베 신조 총리가 “너무나 부적절한 발언으로 극히 유감”이라고 나서기까지 했다. 아베 총리는 전날 국회에서도 문 의장의 발언이 부적절하다며 한국 측에 사죄와 발언 철회를 요청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문 의장은 “사과할 사안이 아니다. 내가 한 말은 평소 지론이며 10년 전부터 얘기해온 것”이라며 “진정성 있는 사과 한 마디면 끝날 일을 ‘왜 이리 오래 끄느냐’는 것에 내 말의 본질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전범 아들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전쟁 당시 일본 국왕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지도자의 진정 어린 사과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나온 표현”이라고 밝혔다.
사실 문재인 정부 못지않게 역대 우리 정부는 특정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반일(反日) 기조’를 취해왔다. 반일의 최전선에 있는 진보 성향의 매체인 〈한겨레〉까지 작년 4월 16일 〈일본 패싱은 안 된다〉는 칼럼을 게재할 정도였다. 이 칼럼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일본에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말했다가 외환위기 때 일본의 돈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내정치 곤란을 타개하려고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가 일본의 반격으로 독도 문제에서 한국의 입지는 악화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를 이유로 일본을 쳐다보지도 않다가 최악의 합의를 해주는 처지로 몰렸다. 일본을 우습게 보다가 당한 것이다.”
실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취임 직후부터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며 선전포고를 했다. 광화문에 세워진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시키며 지지율 상승을 도모했지만, 임기 말 터진 IMF 금융위기 사태 때 자금줄을 쥔 일본의 지원을 애걸해야만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2011년 12월 교토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측이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평화비’ 철거를 요구하자 “일생에 한을 갖고 살던 할머니들이 몇 분 남지 않았다.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일본은 영원히 기회를 놓치는 것이 된다”고 되레 받아쳤다.
이 전 대통령은 이듬해 8월 14일 한국교원대에서 열린 ‘학교 폭력 책임교사 워크숍’에 참석, 한 교사가 독도 방문의 소회를 묻는 자리에서도 “(일왕이) 한국 방문을 하고 싶으면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그는 “(일왕이) 한 몇 달 고민하다가 ‘통석의 념’ 뭐 이런 단어 하나 찾아서 올 거면 올 필요 없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일왕의 전쟁범죄 및 위안부 문제 사죄’ 등을 고리로 삼아 일본을 자극할 때마다, 일왕을 존귀하게 여기는 일본은 조야(朝野)를 불문하고 ‘강력 반발’에 나서 한때 외교 비화(飛火)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