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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鶴壽 하사와 朴成烈 병장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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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1일 국방부는 월남전 참전 중 실종된 후 越北者(월북자)로 분류됐던 安鶴壽(안학수) 하사를 국군포로 추정자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안 하사는 1963년 9월 입대한 후 베트남전에 참전, 통신병으로 근무하다 1966년 9월 9일 사이공에서 실종됐다. 국방부는 이듬해 3월 안 하사가 북한 방송에 출연하자 ‘탈영 월북자’로 처리했었다. 43년여 만에 안 하사의 가족은 ‘월북자 가족’에서 ‘국군포로 가족’으로 바뀐 셈이다.

국방부 발표 후 필자는 아주 오래전에 썼던 기사를 떠올렸다. 月刊朝鮮 2000년 9월호에 썼던 ‘추적/북한에 있다는 派越(파월) 국군 두 사람-‘안학수 하사·朴成烈(박성렬) 병장은 포로가 된 뒤 拉北(납북)됐다’ 제하 기사였다.

당시 필자는 안 하사의 동생 龍壽(용수)씨, 어머니 南金順(남금순)씨, 안 하사의 친구를 만나서 ‘인간 안학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안 하사의 아버지 永述(영술)씨는 朴正熙(박정희) 대통령과 대구사범 동창으로 안 하사가 납북될 당시 포항 동북초등학교 교장으로 있었다. 주변 취재 결과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안 하사가 자진 월북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고 판단됐다.

어머니 남금순씨는 안 하사가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의 내용을 이렇게 기억했다.

“엄마, 이 편지 받고 답장하지 마세요. 곧 귀국하게 되니까 받아볼 수 없을 거예요. 귀국할 때는 군의관들 하고 비행기로 서울로 가게 되니까 서울 외갓집에서 기다려 주세요.”

안 하사는 그 편지를 보낸 후 몇 달이 지나도 귀국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안 하사 소식을 알게 된 것은 북한의 對南(대남) 선전방송을 통해서였다. 안 하사가 북한 방송에 출연한 후 안 하사의 가족은 풍비박산났다. 아버지는 교직을 떠났고, 어머니는 충격에 쓰러졌다. 형제들은 ‘빨갱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도 배척을 당했다. 검사를 꿈꾸던 동생 용수씨는 성직자의 길을 선택해야 했다.

안 하사가 납북된 지 43년이 흐른 지금 안 하사는 명예를 회복했지만, 부모님은 ‘월북자의 가족’으로서 눈을 감았다.

필자의 기사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인물, 박성렬 병장의 가족 역시 박 병장이 자진 월북했을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박 병장은 안 하사와 동갑인 1943년생으로 맹호부대 소속이었다. 충북 진천이 고향인 박 병장의 실종일은 1965년 11월 3일이다.


박성렬 병장의 경우

필자가 당시 만난 박 병장의 친지는 박 병장의 이종사촌으로 한마을에 살았던 金德根(김덕근)씨와 박 병장의 친누나인 朴聖分(박성분)씨였다.

이종사촌 김씨는 “그때는 주변에 밥을 굶는 집들이 많았던 시절이었는데도 성열이네는 끼니를 거르는 집이 아니었다”면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성열이는 온순한 성격을 지닌 아이였다”고 기억했다.

박 병장이 자진 월북했을 가능성에 대해 묻자 그는 “무슨 소립니까. 그 아이가 크는 걸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성열이가 뭐가 아쉬워서 북한을 갑니까. 걔가 밥을 굶었습니까. 그때 부모가 없었습니까. 북한으로 가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어요.”

박 병장의 친누나 성분씨는 박 병장이 자진 월북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심증 말고 물증을 제시해 달라는 필자의 주문에 戰死(전사)통지서를 기억해 냈다.

“처음에는 성렬이가 전사했다는 전사통지서가 고향집으로 왔었어요. 전사통지서가 왔던 걸 보면 적어도 부대를 탈영해서 실종된 게 아니라 전투 중에 실종됐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아닌가요? 주변 천지가 베트콩이라는데 자진해서 월북할 생각이라면 전투에는 무엇하러 나가겠어요.”

안학수 하사가 ‘자진 월북자’라는 오명을 벗어나게 된 데에는 동생 용수씨의 집요한 노력 덕분이었다. 용수씨는 지난해 안 하사와 관련, 정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용수씨가 입수한 기무사 문건에는 안 하사가 1975년 북한을 탈출하다가 붙잡혀 ‘간첩죄’로 총살형을 당했다는 자수 간첩 김용규씨의 진술이 실려 있었다.

용수씨는 이 문건을 근거로 2008년 9월 국방부에 안 하사의 명예회복을 요청했다. 국방부는 용수씨의 요청을 받고 베트남 현지에 가서 조사를 벌인 끝에 안 하사를 ‘월북자’에서 ‘납북자’로 공식 인정했다.

용수씨의 이런 노력으로 지난 4월 28일 납북피해자보상 및 지원심의위원회가 안 하사 가족의 납북 피해위로금 신청에 대해 납북피해자 인정 및 피해위로금 지급 결정을 내리게 됐고, 지난 7월 21일에는 국방부가 안 하사를 국군포로 추정자로 인정하게 했던 것이다.

안 하사에게는 다행히 용수씨처럼 형의 명예회복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가족이 있었다. 안 하사와 박 병장 이야기를 취재할 당시 필자의 기억으로는 박 병장 가족 중에는 용수씨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번에는 안 하사처럼 가족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먼저 나서서 박 병장 본인은 물론 그 가족의 恨(한)을 풀어주는 것이 어떨까.⊙

입력 : 2009.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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